지난 금요일 아들이 태권도복을 안 가져가는 바람에 학교에 갔더랍니다. 학교 끝나고 바로 태권도장에 가거든요. 교실이 2층이라 올라갈까 말까 하다가 올라갔더니 수업이 안 끝나 복도에서 한참을 기다렸지요.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나오는데 아들 녀석이 안 나와 교실로 고개를 들이밀었다가 선생님이랑 눈이 마주쳤어요. 그 59세 할아버지 선생님요. 정말 전형적인 할아버지였어요. 약간 등도 구부정해 보이고 피부도 거무스름하신 게 꼭 친정아버지 보는 것 같았지요.

얼떨결에 인사 드리고 아들 녀석이 1학년 때 친구들과 자주 싸운 경력이 있음을 솔직히 고백했지요. 그랬더니 선생님 말씀. "괜찮아요. 남자 아이들이 다 그렇죠, 뭐." 하시면서 벌써 전날 아이들과 충돌이 한 번 있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배려심도 없고 고집만 피우는 아들 녀석의 성격도 이미 다 파악하신 듯했고요.

이런 경우 1학년 때 여자 선생님은 저에게 문자를 넣곤 했어요. 사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금방 알 수 있어서 좋긴 했는데 스트레스가 좀 되더군요. 여자 선생님과 남자 선생님이 이런 면이 다르구나 하는 걸 처음 알았네요. 남자라서 남자 아이들의 행동과 마음을 더 잘 이해하시는구나 싶었어요. 늘 자잘한 사건을 일으키는 아들 녀석이 선생님을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요, 바로 그때 복도에서 지나가던 한 여학생이 "삼수 씨, 안녕?" 그러는 거예요. 순간 너무 당황했어요. 삼수 씨는 바로 선생님 성함이었거든요. 집에서 아들에게 선생님 성함을 처음 들었을 때 무척 친근감이 가는 이름이라서 큭 하고 웃음을 터트렸는데. 아이들마저 저렇게 부르다니 싶어 "선생님 성함을 그렇게 부르면 어떡하냐"고 한마디 했죠.

그런데 선생님이 "괜찮아요. 난 아이들이랑 그냥 친하게 지냅니다."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 얼굴 다시 한 번 쳐다보았어요.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 상상이 가시나요?

"삼수 씨, 안녕?" 주말 내내 입 안에서 맴돈 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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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8-03-17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따뜻한 정으로 아이들을 대하시는 선생님인 듯 합니다.
사실 그렇기가 쉽지 않을 텐데 말이죠
아이들을 본인의 손자같이 대하시는 선생님을 만나뵙고 싶어지는 데요

소나무집 2008-03-18 12:04   좋아요 0 | URL
아직은 잘 모르지만 좋으신 분 같아요.

세실 2008-03-18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따뜻한 선생님이시네요. 연세 많은 분의 좋은 점이 바로 아이들을 그저 손주같이 귀여워 하신다는 거. 그래도 "삼수씨 안녕"은 좀 심했어요. ㅎㅎ

소나무집 2008-03-18 12:35   좋아요 0 | URL
맞아요. 별로 다른 데 신경 쓸 거 없으니까 오로지 아이들 생각만 하는 것 같아요. 근데요 세실 님, 저도 자꾸 삼수 씨라고 부르고 싶은 거 있죠?

2008-03-20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8-03-21 11:46   좋아요 0 | URL
네,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