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앞바다에 기름이 유출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가끔식 있는 일이라 그런가 보다 하면서 친정에 갔습니다. 금요일 밤 10시 무렵 태안 근처에 갔을 때부터 아스팔트 까는 냄새가 나더군요. 그때만 해도 근처에 무슨 공사장이 있겠거니, 설마 기름 냄새가 읍내까지 나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건 역한 냄새 때문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냄새지? 만리포 해변에서 7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친정집 안방까지 날아온 건 바로 기름 냄새였습니다. 아, 기름 유출! 그때서야 정신이 나서 뉴스를 틀으니 친정에만 오면 놀러 가던 만리포와 천리포 해변이 TV 화면에 보였습니다. 하지만 푸른 바다와 곱디 고은 모래 사장 해변은 밀려온 기름으로 새까맣게 변해 있었습니다.
부모님도 마냥 TV 앞을 떠나지 못한 채 한숨만 쉬고 계셨지요. "이제 이쪽 동네 사람 다 죽었다." 뉴스를 보던 아버지의 탄식이었습니다. 바다에 의지해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그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그곳 주민들에겐 환경 파괴니 뭐니는 그 다음에 생각할 일입니다. 오늘 그물을 걷으러 가고 굴을 따러 가려던 분들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요? 당장 생계가 달려 있는 바다에 시커먼 기름이 둥둥 떠다니고 있으니 쳐다보면 눈물만 나지 않을까 싶네요.
친정 동네도 반농 반어의 생활을 하는 곳입니다. 만리포보다 조금 아래 동네 신덕리 갯펄에서 바지락을 잡으며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희 친정 부모님도 여름이면 바지락 잡는 일을 하셨기 때문에 당장 그 피해가 눈앞에 보였지만 농사를 훨씬 더 많이 짓는지라 온통 바다에 기대어 사는 분들처럼 망연자실하지는 않았지요. 아버지는 바다에서 양식을 하거나 해수욕장 근처에서 장사를 하는 친구분들 걱정만 하셨습니다. "다 굶어 죽겄구먼!"
토요일, 남편은 태안해안 국립공원 사무실에 나갔다가 현장에 가본 모양입니다. 그곳 직원들도 모두 바다로 기름을 걷으러 갔는데 지독한 기름 냄새 때문에 숨을 쉬기도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그 지역 바다 생태계가 원래대로 회복되려면 십 년 이상 걸린다며 남편은 국립공원 직원답게 환경을 먼저 걱정하네요.
일요일, 만리포 쪽으로 들어가는 큰길에는 휴가철처럼 하루 종일 차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가끔은 요란스레 사이렌을 울리며 들어가는 차도 있었고, 선거 번호판을 단 대형 버스도 들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대통령 후보들이 기념 사진 찍으러 가는구나 싶더군요.
아니나다를까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기름을 퍼담고 있는 대통령 후보들의 사진이 일면을 차지하고 있네요. 그냥 욕이 나왔습니다. 대통령만 당선되면 당장 모든 어민들의 생계를 책임져줄 것처럼 떠들지만 얼마나 그 약속을 지켜줄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한번도 약속을 제대로 지켜본 적이 없는 정치인들의 이야기인지라...
오늘 아침 친정에 전화해 보니 아버지께서는 일찍 바다에 가셨다고 합니다. 현장을 보고 오신 아버지 얼굴에 주름살만 더 늘어가는 게 아닌가 걱정입니다.
기름 유출, 얼마나 무서운지 가까이서 겪어 보고야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