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댁에 가면 항상 촌수 때문에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작은할아버지 연배가 우리 시아버지와 비슷하다 보니 당숙과 당고모들의 나이가 나랑 비슷하거나 아래인 경우도 여럿.

특히 제주도에서는 삼촌을 넘겨도 무조건 삼촌이라도 부르는 탓에 오촌도 십촌도 다 삼촌이니 헷갈리는 적이 많다. 남자든 여자든 무조건 삼촌이라고 부르는 건 좀 아니지 싶은데 제주도에선 그렇게 부른다. 육지 것인 내가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시댁 일인데 그냥 하라는 대로 해야지 뭐.

추석날 새벽부터 일어나 차례를 온 친척집 다 돌아다니며 지내는 것도 여자로선 참 힘든 일. 특히나 육지에 살다 오랜만에 온 둘째며느리는 당연히 집집마다 돌면서 명절 제사를 보아야 한다니 그것도 따를 수밖에.

작은할아버지댁에서 있었던 일. 여자 넷이 주방에 모여 있었다. 당숙모 두 분에, 우리 형님과 나. 촌수로 따지면 내가 가장 아래. 나이로 따지면 내가 가장 위였다. 남편 나이는 가장 어리고. 한 살 적은 남편이랑 결혼한 내가 죄지.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나의 친형님이 설거지를 하다 하신 말씀.

"설거지는 나이 어린 제가 할 게요."

우리 시어머니 거실에서 이 말씀을 듣고는 달려와 하시는 말씀.

"나이는 무슨 촌수가 우선이지. 둘째가 설거지 해라!"

그래서 아무 소리도 못하고 설거지를 했답니다.

앞으로 세월이 좀더 흘러 내가 오십대가 되고 사십대밖에 안 된 형님과 당숙모들 앞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 같아 서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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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7-09-28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재미있는 에피소드이군요, 저는 촌수가 높다보니 친구의 아버지가 대부분 형님이랍니다. 그러다보니 친구는 저에게 아저씨라고 불러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야, 자로 하지요. 다만, 친구집에 가면 제가 지 아버지께 형님이라고 하니 울며겨자먹기식으로라도 아저씨라고 할 수 밖에 없겠죠. 간혹 둘이 있을 때 맹키로 야, 자 했다가는 형님의 불호령이 떨어진답니다. 그러면 저는 그저 즐겁답니다. 아마도 님의 형님이 저와 비슷할 듯....

소나무집 2007-10-01 09:57   좋아요 0 | URL
세 살이나 어린 당숙모께서 저 보고 '너는'이라고 주저없이 부르는 통에 속이 좀 거북할 때도 있더군요. 좀 나이 대접도 좀 해주면 좋을 텐데 말예요.

무스탕 2007-09-28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어린 손윗동서가 불편한건 맞을거에요. 저라도 그럴것 같네요. 그건 윗동서도 마찬가지일거에요.
다행이랄까.. 저희 집엔 그 순서는 잘 지켜지고 있어요 ^^
신랑 사촌동생들중 저보다 나이가 많은 동생들이 있어서 어린 사람보고 형수님이라 부르고 존대하려니 좀 싫겠지요. ㅎㅎㅎ

소나무집 2007-10-01 09:59   좋아요 0 | URL
친형님은 다섯 살이나 어리지만 그래도 잘 지냅니다. 제가 깎듯이 형님 대접을 해주니 형님도 어느 정도는 나이 대접을 해주십니다.

miony 2007-09-28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댁이 제주도시군요. 이번 태풍에 피해는 없으신지 모르겠네요. 촌수랑 나이가 거꾸로 가면 서로 좀 어색하고 어렵지요. 저희는 아버님이 막내이신데다 신랑도 막내라서 큰 댁 조카가 나이가 더 많답니다. 동네에 함께 사는 시어머님 연배(일흔이 넘으셨지요)의 집안 어른들이 다 사촌형님이 되신답니다. 어쩌다 호칭을 부를 일이 생기면 어찌나 난감한지...^^

소나무집 2007-10-01 10:00   좋아요 0 | URL
저희 시댁은 피해는 없답니다. 님도 어색하고 난감한 상황이 참 많을 것 같네요.

세실 2007-09-29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도 오빠랑 새언니가 7살 차이가 나는지라 새언니는 저보다 4살이나 어리답니다. 언니보다는 6살이 어리구요. 처음엔 어색했는데 나이가 드니 걍 언니하면서 말하게 됩니다. ㅎㅎ
명절때 힘드셨겠네요. 제주도는 육지랑 풍습이 많이 다르더라구요~~

소나무집 2007-10-01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대단하네요. 저는 처음엔 잘 안 되었어요. 시어머님께 한 방 먹은 후로 마음을 바꾸고 깎듯이 모시니 이젠 다 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