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댁에 가면 항상 촌수 때문에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작은할아버지 연배가 우리 시아버지와 비슷하다 보니 당숙과 당고모들의 나이가 나랑 비슷하거나 아래인 경우도 여럿.
특히 제주도에서는 삼촌을 넘겨도 무조건 삼촌이라도 부르는 탓에 오촌도 십촌도 다 삼촌이니 헷갈리는 적이 많다. 남자든 여자든 무조건 삼촌이라고 부르는 건 좀 아니지 싶은데 제주도에선 그렇게 부른다. 육지 것인 내가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시댁 일인데 그냥 하라는 대로 해야지 뭐.
추석날 새벽부터 일어나 차례를 온 친척집 다 돌아다니며 지내는 것도 여자로선 참 힘든 일. 특히나 육지에 살다 오랜만에 온 둘째며느리는 당연히 집집마다 돌면서 명절 제사를 보아야 한다니 그것도 따를 수밖에.
작은할아버지댁에서 있었던 일. 여자 넷이 주방에 모여 있었다. 당숙모 두 분에, 우리 형님과 나. 촌수로 따지면 내가 가장 아래. 나이로 따지면 내가 가장 위였다. 남편 나이는 가장 어리고. 한 살 적은 남편이랑 결혼한 내가 죄지.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나의 친형님이 설거지를 하다 하신 말씀.
"설거지는 나이 어린 제가 할 게요."
우리 시어머니 거실에서 이 말씀을 듣고는 달려와 하시는 말씀.
"나이는 무슨 촌수가 우선이지. 둘째가 설거지 해라!"
그래서 아무 소리도 못하고 설거지를 했답니다.
앞으로 세월이 좀더 흘러 내가 오십대가 되고 사십대밖에 안 된 형님과 당숙모들 앞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 같아 서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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