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거제도 다음으로 큰 섬이란다. 완도 같은 분위기를 상상하고 들어선 진도는 섬 같지 않았다. 넓은 농토와 섬 중앙을 관통하는 도로 덕분에 일부러 찾아나서지 않으면 바다는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순신이 13척의 배로 왜군을 물리친 울돌목이 있는 진도대교를 지나 20분 정도 가니 운림산방이 나왔다. 내가 너무 기대를 했었나 보다. 운림산방으로 들어서는 내 발걸음에 금방 서운함이 실렸다. 모두들 격찬하는 운림산방의 풍경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아침 저녁 피어오르는 안개 구름이 숲을 이룬다고 해서 붙여진 운림산방(雲林山房). 가만 생각해보니 안개도 구름도 없다. 태풍이 살짝 비껴간 다음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자마자 마주치는 인공 연못이다. 연못 안에 잉어가 얼마나 많았는지 아이들은 먹이 주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초가 모습 그대로인 운림산방 살림집은 기와집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연꽃이 피면 더 예쁜 연못이 될 것 같다.

남종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 선생이 말년을 보낸 곳이다. 아주 소박한 형태의 초가로 두 칸 방에 부엌이 딸려 있다. 아래채는 제자들의 거처였을까? 누군가 매일 닦는 듯 마루가 반질반질 윤이 났다. 앞에 기와집이 없었으면 연못도 앞산도 볼 수 있었으련만 아쉽더구만.


목가구가 그대로 전시된 방안 풍경. 아이들 뒤로 보이는, 허리를 구부려야 드나들 수 있을 듯한 작은 한지 문이 정겹다. 나도 어린 시절 방마다 저런 문이 있는 집에서 살았다. 아이들이 무엇 때문에 저렇게 웃었는지 기억이 안 나네!

소치 허련 선생 영정. 영정 옆에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동판이 걸려 있어 그가 추사의 제자임을 알려준다. 사진 속에 카메라를 든 내 모습이 보이는구만!

소치 기념관. 5대에 걸친 양천 허씨 일가의 화려한 이력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다. 이들 덕분인지 진도에는 개도 붓을 들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그림에 재주 있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소치 허련의 3남 미산 허형을 이은 남농 허건의 작품.
이 그림에 부친 아들 지우의 한마디. "소나무가 외로워 보여요. 새도 없고 꽃도 없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