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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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너그러울 수 있을까요? 관용과 포용의 한계는 과연 그 끝이 어디일까요? 나의 평가가 조금 박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들 각자가 지닌 너그러움의 한계는 스스로에게 오는 물질적, 정신적 피해가 전혀 없는 선에서만 가능하다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예컨대 성소수자에 대한 관대함은 그들로 인해 나의 종교생활에 조금의 피해도 미치지 않을 때, 천안함 생존 장병이나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배려는 나의 정치 성향과 내가 낸 세금에 눈곱만큼의 피해도 입히지 않는 선에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희생과 아픔은 폭력과 공권력의 대치라는 색안경이 벗겨졌을 때 등 대한민국 국민 각자가 생각하는 한계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미치는 피해의 유무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들 대부분은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가 아니라 제삼자의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종교가 달라서, 정치적 성향이 같지 않아서, 추구하는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직장 내에서 직급이 다르거나 나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 등 우리가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고 복잡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차별받는 누군가에 대한 고통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적어도 주류로부터 배제된 비주류에 속하거나 그들과 함께 걸을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 까닭입니다. 그들 역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라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을 잊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그들 스스로 공동체 밖으로 사라져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와 같은 인식은 김승섭 교수의 저서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에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지금 현재 고통을 받고 있거나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비정한 인식과 매몰찬 태도 말입니다.


"혐오는 쉽습니다. 가장 약하고, 아픈 당사자들을 욕하면 되니까요. 어떤 이들은 HIV 감염인에게 "네가 잘못해서 걸린 거다. 네 치료에 들어가는 세금이 아깝다"라고 함부로 손가락질합니다. 인권과 사회보장의 관점에서 그릇된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혐오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상황을 더 악화시킵니다. 혐오와 낙인은 한국의 HIV 신규 감염을 증가시키고 더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p.188)


책에서 저자는 직업병 피해자, 성폭력 생존자, 성소수자와 관련된 소송에서 전문가 소견서를 쓰거나 법정 증언을 했던 경험을 소개하면서 상대측 대형 로펌 변호사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마련하고, 우아한 얼굴로 합리적 주장을 펼침으로써 종종 승소하는 걸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자신이 살아온 고된 역사와 몸 깊숙이 새겨진 상처 말고는 자신의 주장을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갖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우리의 현실이 이럴진대 합리성과 억지를 구분할 수 있는 '합지적인'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며, 사회적 합의라는 미명하에 차별금지법을 '나중에' 처리할 일로 치부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를 뒤집을 만한 합리적 근거는 무엇일지 묻고 있습니다. 영국의 BBC는 한국,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 이와 비슷한 법률이 존재한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결국 우리나라는 차별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두 국가 중 한 나라가 된 셈입니다.


"사회적 약자의 삶에 대한 연구는 기본적으로 불평등에 대한 연구이다. 사회역학은 권력과 자본에서 배제된 이들이 살아가는 삶의 환경을 측정하고, 부조리한 환경이 약자의 몸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역학 연구는 종종 사회적 약자 집단이 기득권 혹은 전체 인구 집단에 비해서 건강 상태가 어느 정도 나쁜지를 확인한다."  (p.168)


나는 김승섭 교수의 저작 대부분을 읽어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독서의 재미나 지적 허영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나를 비롯한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가 과거에 비해 해가 갈수록 이웃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폭이 줄어들고 있지나 않나 하는 자각과 반성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내 이웃에 대한 이해와 배려심이 반려견 반려묘보다 못한 처지가 되어가고 있다는 뼈아픈 현실은 나를 슬프게 합니다. 그러나 저자가 밝힌 바와 같이 그와 같은 현실에 대한 감정적인 접근이나 감상적인 인식만으로는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정확한 근거와 합리적인 주장을 통해 의견이 다른 사회 구성원을 설득하는 게 급선무일지도 모릅니다.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낳지 않는다. 세상은 복잡하다. 사회문제 해결은 그 복잡함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시작한다.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푸는 대신, 큰 칼을 휘둘러 자르는 것은 칼을 휘두른 이를 영웅처럼 보이게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영웅적 결정은 종종 상황을 악화시킨다.”  (p.161)


“모든 참사나 재난에서도 각 인간은 고유하거든요. 개인마다 고유한 관계와 역사와 상황 속에서 서로 다른 욕구와 고민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어떤 공통의 사건을 겪었다는 이유로, 그들을 하나의 동일한 집단으로 여길 때가 많아요.”  (p.300)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한 배척이나 소외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단 정치적 견해나 종교적 주장에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인 사회 현상이나 단순한 상식의 차원에서도 나와 의견이 다른 이는 무조건적으로 배척하고 혐오합니다. 사회 통합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앞장서서 도모해야 할 종교와 정치의 기능이 상실된 까닭입니다. 차별과 배제를 통해 강력한 지지자들을 획득하려는 정치 모사꾼들과 이를 정의인 양 보도하는 사이비 언론으로 인해 차별과 혐오는 더욱더 강화되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부조리를 그저 손 놓고 바라보기만 한다는 것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할 일은 아닌 듯합니다. 사회가 유지되고 건전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른 동물이 아닌, 우리 곁을 지키는 '인간'의 체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김승섭 교수의 저작을 읽는 것도 36.5℃의 진실을 믿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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