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사진 한 장 - 사랑하는 나의 가족, 친구에게 보내는 작별인사
베아테 라코타 글, 발터 셸스 사진, 장혜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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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요양병원의 한 병실에서 이 책을 읽고 있다. 촘촘이 놓인 병실 침대마다 병문안을 온 가족들로 분주하다. 살아있는자들의 피곤과 죽음을 기다리는 자들의 절망과 공포, 그 사이를 오가는 병원 관계자들의 평온함이 마치 수프처럼 뒤섞여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연출한다. 병상에 누인 환자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하루 종일 신음을 내뱉거나, 목 안에 고인 가래를 옅은 호흡으로 연신 밀어내거나, 수발을 드는 가족에게 분노의 눈초리를 쏘아보내거나, 알아 듣기 힘든 말을 하염없이 외치거나, 이미 목숨이 끊어진 사람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 등의 방식으로 죽음의 개별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살아갈 때 저마다의 삶은 다들 비슷해 보이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감추어야 할 게 없는 까닭이다. 이곳은 마치 삶과 죽음의 중간지대쯤에 속하는 듯 곳곳에 놓인 도구들이 마치 신기루처럼 보인다. 나는 지금 아버지의 침대 옆에서 이 책을 읽고 있다.

 

<마지막 사진 한 장>은 독일의 전문 사진작가인 발터 셸스와 저널리스트 베아테 라코타가 호스피스 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23인의 환자들을 만난 기록들이다. 나는 이 책을 요양병원의 병실에서 읽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사람들 곁에서 삶의 마지막을 기록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잘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생뚱맞다. 적어도 나처럼 살아 있는 자에게는 그렇다. 그것은 마치 죽어가는 환자들을 비웃는 듯 보이기도 하고 빨리 죽었으면 하고 바라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책에서는 나란히 암에 걸린 엄마와 아들이 벌이는 힘겨운 투병과 아름다운 결별, 수없이 자살을 시도했던 한 여인이 마지막 순간에서야 미치도록 살고 싶다고 외치는 절규, 두 딸의 행복이 유일한 소망이라고 말하는 한 여인의 죽음, 친구의 두려움을 달래주려 매일같이 병원에서 파티를 열어주는 따뜻한 우정, 죽음도 변화로 받아들이며 즐거운 결말을 꿈꾸는 한 워커홀릭의 기다림 등 삶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다양한 죽음이 등장한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다들 그렇게 사는 것처럼 다들 그렇게 죽어가겠지.' 생각한다. 그러나 보편적 삶은 있어도 보편적 죽음은 존재하지 않음을 이 요양병원의 풍경에서 깨달았다.

 

"죽음은 영원하지 않아요. 삶 역시 짧지요. 숨을 쉴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죽음을 향해 다가갑니다. 그리고 죽은 후 신에게로 가면 우리는 더 아름다워집니다. 마지막 순간이 결정합니다. 아직 한 사람에게 집착하는 마음이 남아 있으면 다시 돌아오지요." (p.202)

 

아버지는 잠깐잠깐 잠들었고, 그러다가도 생각난 듯 문득 눈을 떴고, 이따금 여기가 어디냐 물었고, 답답한 듯 이따금 일어나 앉으려 했다. 코에 꼽은 산소호흡기줄과 아주 천천히 방울방울 떨어지는 수액줄과 각종 검사를 위한 도구들이 발목에서부터 얼굴에 이르기까지 온몸을 옥죄고 있는 까닭에 돌아누울 때마다 신음을 내뱉곤 한다. 옆 침상에서는 간혹 환자 자신이 믿었거나 가족들의 부탁이 있었던 것인지 약식 종교행사가 열리곤 한다. 그것은 어쩌면 멀거니 천장만 응시하는 환자를 위한 게 아니라 환자의 가족들, 이를테면 산 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의식처럼 느껴진다.

 

책의 각 파트에서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기록과 함께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의 모습과 죽은 직후의 모습이 흑백사진으로 실려 있다. 눈을 감고 깊은 명상에 잠긴 듯한 죽음 이후의 모습은 평화로워 보인다. 나의 아버지도 그럴까? 의학적 기록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나는 아버지의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나의 짐작과는 관계없이 아주 천천히 진행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의 급작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으리라. 그 과정에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농촌 사람들은 60퍼센트가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도시인은 90퍼센트는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눈을 감는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낯선 의사와 간병인들에게 둘러싸여 죽는다는 뜻이다. 그들의 근무 일정표가 마지막 삶의 리듬을 강요하는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 역시 울타리 밖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우리의 막연하고 순진한 꿈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가족, 친구의 육체적 몰락과 극적 부수현상을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볼 뿐인 것이다. 이런 사건들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위협으로 다가온다." (p.251~p.252)

 

하늘은 잔뜩 흐렸다. 병실 밖의 풍경은 단 한 번도 내가 속해보지 않았던 것처럼 낯설다. 바쁘게 드나드는 차량과 의례적인 인사를 하며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답답함이 느껴지는 병실 안의 풍경. 나는 또 삶의 현장으로 복귀할 테고 초조한 나날들이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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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8-11 04:55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마지막 장까지 다 펼쳐보지 못했던 기억이 나요. 사진 속 모습들이 낯설기도 하지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이 두렵고 피하고 싶었나봐요. 약하고 어리석지요.
월요일 아침이 밝아오네요.

꼼쥐 2014-08-12 17:03   좋아요 0 | URL
저도 아마 이런 상황이 아니었으면 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누구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괜히 쓸쓸해지더군요.

내이름은초록 2014-08-11 10:51   좋아요 0 | URL
늙는 것과 질병의 고통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지요. 곁에 있어주는 일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어요.

꼼쥐 2014-08-12 17:05   좋아요 0 | URL
병원이라는 오픈된 공간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보내는 일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더군요. 집에서 조용히 지냈으면 더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도 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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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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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낮에 도시의 작은 공원을 거닌 적이 있는지. '찜통 더위', '가마솥 더위' 등 상투적인 말들이 부지불식간에 생각나는 한낮 오후에 말이다. 나는 간혹 도시의 잉여 공간처럼 여겨지는 그곳에서 시들어가는 삶의 모습을 목도하곤 한다. 이 건조한 도시의 한복판에서 마치 생명을 잃은 나뭇가지처럼 금방이라도 와삭 부서질 듯한 노인의 시선을 마주 대하고 있노라면 '어서 빨리 가을이 와야 할 텐데'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곤 한다.

 

빌딩에 가로막혀 손바닥만한 허공일지언정 누구에게도 제 영역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말매미의 악다구니 울음이 공원에서 종일 떠나지 않고, 등 굽은 노인들이 옹기종기 공원 벤치에 모여 앉아 장기를 두었다. 이따금 큰소리가 오가고 대판 싸움이라도 벌어지려나 보면 말매미의 소음 때문인지 갈수록 청력이 떨어지는 까닭인지 메마른 시간만 한나절 흔들릴 뿐 이렇다 할 싸움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지근거리의 기척에도 누구 하나 대꾸하지 않는 그들만의 독백이 한여름 도시 공원을 떠돈다. 도시의 잉여 공간과 같은 공원 한켠에서.

 

윤대녕의 신작 에세이집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읽었다. 좋아하는 작가라고 떠벌리면서도 나는 정작 그 이유를 찾지 못한다. 분명 다른 책들도 읽어보았을 텐데 윤대녕 하면 줄곧 <대설주의보>만 떠오른다. 선물 상자의 뚜껑을 열고 바닥까지 샅샅이 살폈으면서도 혹시 몰라 상자를 높이 들고 밑면까지 확인하는 아이의 심정으로 나는 천천히, 한 발 한 발 아주 천천히 그의 공간 속을 걷는다.

 

"제 아무리 바다라 할지라도 프레임 속에 가두어놓으면 곧 공간으로 변한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 순간 시간의 지속은 멈춰지고 현재는 삽시간에 과거로 환원되며 풍경은 추억으로 변한다. 모든 사진이 실은 죽음의 기록인 것도 다 이 때문이다." (p.66)

 

공간은 장소와는 달리 입체적이면서 동시에 한시성을 전제로 한다. 영원하리라 믿었던 유년기의 공간을 중년의 작가는 이제 아프게 기억한다. 폐허의 기억들. 닿을 수 없는 시간들. 2011년 10월부터 2013년 9월까지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이 책에서 작가는 고향집, 노래방, 바다, 술집, 영화관, 우체국 등 작가의 삶과 연계된 사적인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그 속에서 작가의 지난했던 삶과 젊은 시절의 아련한 추억과 집필을 위해 옮겨다니던 수많은 공간들과 만나게 된다.

 

"흑백으로 각인된 골목의 풍경들은 내 육체 속에 숲의 잔해처럼 남아 있다. 비록 어두웠던 기억일지라도 내게는 여전히 잊지 못할 추억의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다. 저 낯선 그림자들이 서성대는 익숙한 공간으로 말이다." (p.106)

 

공간은 태생적인 한계를 품고 있다. 내가 자주 다니던 술집, 첫사랑의 연인과 함께 들렀던 영화관 등은 개개인의 추억과는 상관없이 소멸하거나 변화를 거듭한다. 그것은 오직 기억해야 할 만인의 역사가 아니라 은밀함 속에서 사라져가는 개인의 역사일 뿐이다. 삶은 때로 푸근한 인상의 안주인처럼 안주를 허락하다가도 느닷없는 퇴거를 표독스럽게 명령하기도 한다. 예외란 있을 수 없다. 잊혀진 공간에 넋두리처럼 나의 기억을 한나절 풀어놓으면 맑은 눈물처럼 정화될지, 그런 날 꿈속에서 내일은 탄산수처럼 투명한 공기방울로 나를 맞아줄지, 모르겠다.

 

"지나고 나면 삶은 한갓 꿈으로 변한다고 했던가. 돌아보니 정말이지 모든 게 하나의 꿈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나는 그 꿈이라도 한사코 복원하고 싶었던가 보다. 연재를 하는 동안 나는 과거에 내가 머물렀던 곳들을 가끔 찾아가보았다. 짐작했듯 대부분의 공간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더 이상 자취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만 그곳에는 마음의 텅 빈 장소(場所)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p.254 '작가의 말' 중에서)

 

오후에는 별안간 소나기가 내렸다. 도시의 잉여 공간과 같은 공원 한켠에는 있어야 할 메마른 시선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독백들이 잔영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공간에서 나는 내일 있을지도 모를 죽음을 더듬고 있다. 여기에 머물렀던 등 굽은 노인들을 생각하며.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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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문장 한국어 글쓰기 강좌 1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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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에게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모르긴 몰라도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연주가에게는 악기를 잘 다루는 사람이, 운동선수에게는 운동을 잘 하는 사람이, 배우에게는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이 단연 매력적으로 보이겠지요.  김연아도 그렇잖아요.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미스코리아가 잘 생긴 사람보다는 오히려 돈이 많은 사람을 배우자로 고르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자신이 속한 분야에 익숙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 분야에 대해 아는 게 많아져 사람을 판단하는 데 실수가 적은 까닭일까요.  저는 그 이유를 '닿을 수 없는 그리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웬 뜬금없는 그리움 타령이냐구요?  일종의 동경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군요.  지금까지 살면서 넘을 수 없는 한계를 단 한 번이라도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한계는 존재합니다.  선천적 재능을 요구하는 분야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연습을 통하여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룰 수 있는 분야에서도 그렇습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했던 나폴레옹의 말은 순전히 뻥일 뿐입니다.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던 에디슨의 말도 뻥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항상 더 높은 곳을 바라보기 때문이지요.  세상을 살다 보면 각고의 노력으로 이룬 얼마간의 성취가 한낱 쓰레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게 마련입니다.  나보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 나보다 운동을 잘 하는 사람, 나보다 잘 생긴 사람, 나보다 부자인 사람은 언제 어느 때나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 앞에만 서면 나는 한없이 작아지게 마련이지요.  머리가 다 아득해집니다.  노랫말도 있었던가요?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하는.

 

저는 그런 일을 시도 때도 없이 겪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이뤄놓은 게 없기 때문입니다.  '제대로'라는 말도 참 어정쩡하지만.  암튼 저는 부단한 노력이나 뛰어난 재능 중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 까닭에 제가 만났던 사람 대부분은 저보다 잘났고 부럽기 그지없는 대상이었습니다.  내가 닿을 수 없는 곳, 내가 다다를 수 없는 저쪽 세계를 그리워하고 동경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성직자가 아닌 이상 아마 없지 싶습니다.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요?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도 아닌데 몇 년을 노력해야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까요?  십 년?  이십 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글쓰기를 업으로 하지도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만요.  이 시대의 대표적인 문장가로 알려진 고종석의 글쓰기 직강 <고종석의 문장>을 읽고 들었던 생각입니다.

 

"음악이나 수학은 재능을 타고나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다다를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글쓰기는 다릅니다.  물론 글쓰기 능력이라는 것도 저는 어느 정도 타고난다고 생각합니다.  말에 대한 감각, 말을 다룰 줄 아는 능력 같은 게 어느 정도는 타고난다고 생각하는데, 음악이나 수학과 달리 이건 충분한 훈련이나 연습으로 크게 개선할 수 있습니다."    (p.40 ~ p.41)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위와 같이 썼고 자기 경험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저자를 탓할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저자와 논쟁하자는 얘기도 아닙니다.  어차피 논쟁을 해봐야 피차 확실한 근거도 없는데 쉽게 끝날 것 같지도 않구요.  1장 '글은 왜 쓰는가?'로 시작하여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예문을 들고 이렇게 고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쓰인 이 책은 다른 글쓰기 책에 비하여 친절하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따금 일반인에게는 조금 버겁겠다 싶은 전문적인 내용도 없진 않지만 그럭저럭 참으며 읽을 만합니다.

 

그러나 도서관에서 책을 검색해본 분은 아시겠지만 글쓰기 관련 서적이 좀 많아야지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아주 쉬운 책부터 전문가용 서적에 이르기까지 서가가 모자를 정도로 차고 넘쳐나는 것을 많이들 보셨을 줄 압니다.  그 많은 책을 다 읽는다 해도(다 읽기도 어렵겠지만) 글쓰기 솜씨가 눈에 띄게 좋아질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제가 드릴 수 있는 팁 하나는 '위는 쳐다보지 마세요'입니다.  실수 좀 하면 뭐 어떻습니까.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  맘에 드는 글쓰기 책 한두 권 읽고 무작정 쓰다보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결코 성에 차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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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 습격사건 - 엽기발랄 오쿠다 히데오 포복절도 야구장 견문록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동아일보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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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감이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릴 요량으로 우연히 시작한 일이 그 사람의 개인적 취향이나 습관으로 굳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컨대 기분전환 삼아 들렀던 동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우연히 맛보았던 초코 아이스크림에 대해 '생각보다 맛있네'라고 말했다면 당신은 분명 실수한 것이다. 그것도 크나 큰 실수를 범한 셈이다. 우울감을 한방에 빨아들이는 강력한 진공청소기 한 대를 장만했다고 좋아했던 당신은 그 청소기가 4개의 모터를 장착한 강력한 흡입력의 청소기로 진화하여 타깃을 당신의 몸으로 바꾸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을 것이다. 장담하건대 어느 곳에나 효용 체감의 법칙은 작용하는 법이다. 서너 번쯤 반복되면 이제는 더 이상 초코 아이스크림이 나의 우울감을 제거해주지 않는다. 효용이 의심스러운 초코 아이스크림을 떨쳐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슬슬 들게 마련이지만 진공청소기는 이제 당신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우라질! 취향은 늘 그런 식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야구장 습격사건>은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다룬 재미있는 책이다. 하네다 공항에서 20분 거리에 사는 작가는 그야말로 '여행하라고 외쳐 대는 동네'에 사는 셈이다. 스트레스를 풀 겸 작가는 오키나와 여행을 결정한다. 작가는 마치 일기를 쓰듯 여행을 기록한다. 열혈 야구팬인 작가는 하네다 공항 로비에서 오키나와로 전지훈련을 떠나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선수들과 우연히 마주친다. 작가는 여행 시작 전부터 흥분한다.

 

"눈을 휘둥그레 뜬 내 앞으로 전 주니치 드래건스 선수 다네다 히토시가 지나간다. 어이! 하마터면 말을 걸 뻔했다. 안면도 못 튼 주제에. 문예춘추 <올 요미모노> 편집부의 B여사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B여사는 주니치 드래건스의 열렬한 팬이라 나와는 동지인 셈이다. 나보다 10년 늦게 도쿄에서 태어났지만 나와 같은 수준으로 주니치 드래건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무서운 편집자다." (p.11)

 

오쿠다 히데오의 유머는 즉각적이고도 관능적이다. 웃음이 언제 배달될지 며느리도 모르는 한국식 유머와는 사뭇 다르다. 그의 작품을 읽노라면 삶의 무게가 시간에 비례하여 1kg씩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물음보다는 나도 한번쯤 이렇게 살고 싶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진지하다는 것은 때로 어깨에 뭉친 근육통만 유발할 뿐이다.

 

"난 평소에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어느 정도로 관심이 없냐면 리모컨을 잃어버리고도 한 달 동안이나 모를 정도다. 신문도 안 본다. 주간지 따위 사본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러니 아는 게 없다. 여자 아나운서의 스캔들이 터진들 애당초 그 여자의 얼굴을 모르니 관심을 가지려야 가질 수 없다.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 물으면 '내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대답한다. '채식주의자'같은 취향이라고 얼버무린다." (p.45)

 

작가는 오키나와를 시작으로 시코쿠, 타이완, 도호쿠, 히로시마, 규슈를 여행한다. 책을 읽다 보면 야구 경기를 보기위해 나 홀로 여행을 하는 오쿠다 히데오의 모습이 연상되는 듯하다. 자신이 정한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남는 시간을 어찌 보낼까 궁리하다 길거리의 어느 우동집에 들러 색다른 맛에 감탄하며 눈물을 찔끔거리거나, 야구 경기의 시간을 기다리며 영화를 한 편 때리거나, 그도 아니면 미니스커트 차림의 젊은 여성으로부터 마사지를 받으며 온갖 상상을 하는 모습 말이다.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가지고 온 책은 반도 읽지 못했다. 사색 모드로 들어간다. 나는 생각하면서 얼마든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런 능력이 소설에 활용되지는 않는다. 공상은 장사 밑천이 될 수 없다." (p.70 )

 

소심하면서도 은근 기분파인 작가는 도쿄를 떠나 맘에 드는 어느 지역으로 이사를 생각하기도 하고 트럭 운전사가 되어 사계절 내내 여행을 꿈꾸기도 한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녹색의 논에 반하여 농사를 지어볼까도 생각한다. 늘 그런 식이다. 아주 이따금 진지한 생각을 할 때도 물론 있다.

 

"막 등단했을 무렵 나는 '작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처녀작은 화제에도 오르지 못하고 업계에서는 완전히 무시당했다. 사람들이 직업을 물으면 "소설도 가끔 써요,"하고 곁가지처럼 말했다. 사실 난 아주 달콤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출판만 되면 각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원고 의뢰가 정신없이 밀려들 것이라고. 웃고 만다. 고독과 친해져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중략) 지금, 내 일정은 5년 후까지 꽉 찼다. 옛날에 비하면 거의 기적이다. 여행을 하면서 원고를 쓰기만 해도 그걸 사줄 출판사가 있다. 이 무슨 기적 같은 일인가. 그렇지만...... 괴롭다. 나는 아니디어와 테크닉으로 소설을 쓸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살을 후벼 파지 않으면 한 줄도 나가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이다." (p.209 ~ p.210)

 

누군가는 야구가 인생과 같다고 했다. 나는 그런 구태의연한 표현은 딱 질색이다. 마치 금방이라도 곰팡이가 필 것 같다. 그렇지 않은가. 인생은 결국 비극도 희극도 아니지만 나는 선택할 수만 있다면 희극을 선택하고 싶다. 별 가는성이 없어 먼저 침이라도 발라 보자는 속셈이지만. 그렇지만 책을 고르라면 나는 이런 종류의 책이 좋다. 별 것 아닌데도 신나게 웃을 수 있는 그런 책 말이다. 대리만족을 누리는 기쁨도 쏠쏠하다. 야구장을 찾아 떠나는 오쿠다 히데오의 나 홀로 여행은 2월부터 시작되어 7~8월은 쉬고 12월까지 이어진다. 책을 읽은 소감을 굳이 말하자면 '유쾌하다!'는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작가가 우동 한 그릇을 먹고 '맛있다'는 표현 밖에 다른 말을 찾지 못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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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7-14 10:22   좋아요 0 | URL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읽으면서, 소설 읽는 즐거움을 만끽했습니다.
왠지 친근한 오쿠다 히데오^^
이 글 읽으니 여행가고 싶네요.

꼼쥐 2014-07-17 13:58   좋아요 0 | URL
저도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 중에 <공중그네>를 처음으로 읽었어요. 그것도 최근에서야 말이죠. 그 책을 읽고난 후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만 읽게 되네요. 이제 곧 휴가철이니 즐거운 여행 계획 세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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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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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의 예상은 그 근거가 너무도 빈약한 탓에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쉽게 무너져내리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예상을 하고 로또의 1등 당첨 확률보다 못한, 우연에 가까운 적중률에 환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의 빗나감 때문에 실체적 힘이 더욱 강해지는 것도 아니요, 예상의 적중으로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도 아닙니다. 현실은 오직 현실로서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는 종종 현실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자신이 제시했던 예상의 근거를 작은 목소리로 수정함으로써 변명에 가까운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하여 현실이 달라지는 법은 없습니다.

 

줄리언 반스의 에세이집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서 저자는 예상치 못했던 현실에 대처하는(아니 '반응하는'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동시에 누구나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일이기에 모든 사람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줄리언 반스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물론 그의 아내 팻 캐바나의 죽음이었지만 그는 이 책에서 개별적인 (팻 캐바나의)죽음과 지극히 개인적인 (작가의)비탄의 모습을 객관화시킴으로써 삶의 보편적인 패턴을 보여주고자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번역했던 최세희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세 이야기의 묶음이다. '비상의 죄(하늘)', '평지에서(땅)', '깊이의 상실(지하)' 이라는 각 장의 제목이 암시하듯, 세 개의 수직적인 층위로 이루어진 구성이다. (원제 'Levelsof life'는 직역하면 '인생의 층위들'이다.) 층위가 다르고, 장르적 성격이 다른 세 이야기는 대동소이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의 것들을 하나로 합쳐보라. 그때 세상은 변한다.' 그리고 이 문장은 한 가닥 실처럼 세 이야기의 바늘귀를 관통한다." (p.200)

 

책을 펼치자마자 시작되는 19세기의 '기구를 즐겨 탔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독자들은 아마도 저으기 놀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캐바나에 대한 회고록 성격의 책이라는 사전 지식을 갖고 있었던 독자라면 의아한 마음은 더욱 컸을 것입니다. 아내와 사별하여 비탄에 잠긴 작가와 기구 또는 기구를 즐겨 탔던 사람들과의 연관성이 전혀 짐작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1장에서 작가는 기구를 타고 '신의 영역'인 하늘로 비상하여 '땅위에 묶여 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처음으로 사진에 담았던 나다르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내 에르네스틴을 사랑했던 그는 아내가 죽은 후 '땅 위에서의 삶'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했다고 합니다.

 

2장에서도 작가는 여전히 기구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다만 사랑의 패턴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와 그녀를 사랑하는 영국인 장교 프레드 버나비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질적인 두 보헤미안인 사라와 프레드는 두 사람의 사랑을 완성함으로써 함께 기구를 타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기구가 그렇듯 추락은 결코 순탄하지 않습니다. 순간순간의 쾌락을 찾아 헤매는 사라와 사랑의 완성을 원하는 프레드의 만남은 처음부터 추락을 염두에 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그렇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걸요. 그래서 난 지금 그렇게 말하는 거고요.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감각, 쾌락,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있어요. 난 끊임없이 새로운 감각과 새로운 감정을 찾아 헤매요. 삶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렇게 살아갈 거예요. 나의 마음은 어느 누구, 어느 한 사람이 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짜릿한 흥분을 원한답니다." (p.93)

 

3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아내를 잃고 비탄에 잠겼던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들리지 않는 위로의 말들과 그다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 비탄에서 벗어나는 여러 방법들 역시 아내를 잃고 비탄에 잠겼던 작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상실의 고통은 삶의 층위를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땅을 딛고 사는 보통의 사람들과의 영원한 단절, 비탄에 잠긴 사람들로 하여금 가치관의 기준이 확실하게 바뀌도록 만든 냉엄한 자연의 섭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탄은 시간을 바꾼다. 시간의 길이를, 시간의 결을, 시간의 기능을 바꿔놓는다. 오늘 하루가 내일과 전혀 다르지 않게 돼버린 마당에, 굳이 각각의 날들에 별도의 이름을 붙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 공간 또한 바뀌게 된다. 우리는 새로운 지도 제작법에 의거해 측량된 새로운 지형에 들어서게 된다. '상실의 사마''(무풍지대인) 무심의 호수' '(말라서) 황무지가 된 강' '자기연민의 습지' '기억의 (지하) 동굴' 등을 표시한 17세기 지도와 흡사한 그 지도에서 당신은 당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p.138 ~ p.139)

 

구름을 뚫고 하늘로 비상한 기구처럼 삶의 층위가 갑자기 변했을 때, 바람의 방향을 예측하는 일도 땅의 고저를 가늠하는 일도 자신의 삶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 되었을 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다만 우주가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자조적인 무기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건, 벗어날 수 없는 비탄의 강정이나 혹은 구름을 벗어난 행복의 감정에 충만하건 그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우주의 진행은 무심히 진행된다는 사실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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