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습격사건 - 엽기발랄 오쿠다 히데오 포복절도 야구장 견문록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동아일보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우울감이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릴 요량으로 우연히 시작한 일이 그 사람의 개인적 취향이나 습관으로 굳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컨대 기분전환 삼아 들렀던 동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우연히 맛보았던 초코 아이스크림에 대해 '생각보다 맛있네'라고 말했다면 당신은 분명 실수한 것이다. 그것도 크나 큰 실수를 범한 셈이다. 우울감을 한방에 빨아들이는 강력한 진공청소기 한 대를 장만했다고 좋아했던 당신은 그 청소기가 4개의 모터를 장착한 강력한 흡입력의 청소기로 진화하여 타깃을 당신의 몸으로 바꾸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을 것이다. 장담하건대 어느 곳에나 효용 체감의 법칙은 작용하는 법이다. 서너 번쯤 반복되면 이제는 더 이상 초코 아이스크림이 나의 우울감을 제거해주지 않는다. 효용이 의심스러운 초코 아이스크림을 떨쳐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슬슬 들게 마련이지만 진공청소기는 이제 당신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우라질! 취향은 늘 그런 식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야구장 습격사건>은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다룬 재미있는 책이다. 하네다 공항에서 20분 거리에 사는 작가는 그야말로 '여행하라고 외쳐 대는 동네'에 사는 셈이다. 스트레스를 풀 겸 작가는 오키나와 여행을 결정한다. 작가는 마치 일기를 쓰듯 여행을 기록한다. 열혈 야구팬인 작가는 하네다 공항 로비에서 오키나와로 전지훈련을 떠나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선수들과 우연히 마주친다. 작가는 여행 시작 전부터 흥분한다.

 

"눈을 휘둥그레 뜬 내 앞으로 전 주니치 드래건스 선수 다네다 히토시가 지나간다. 어이! 하마터면 말을 걸 뻔했다. 안면도 못 튼 주제에. 문예춘추 <올 요미모노> 편집부의 B여사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B여사는 주니치 드래건스의 열렬한 팬이라 나와는 동지인 셈이다. 나보다 10년 늦게 도쿄에서 태어났지만 나와 같은 수준으로 주니치 드래건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무서운 편집자다." (p.11)

 

오쿠다 히데오의 유머는 즉각적이고도 관능적이다. 웃음이 언제 배달될지 며느리도 모르는 한국식 유머와는 사뭇 다르다. 그의 작품을 읽노라면 삶의 무게가 시간에 비례하여 1kg씩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물음보다는 나도 한번쯤 이렇게 살고 싶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진지하다는 것은 때로 어깨에 뭉친 근육통만 유발할 뿐이다.

 

"난 평소에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어느 정도로 관심이 없냐면 리모컨을 잃어버리고도 한 달 동안이나 모를 정도다. 신문도 안 본다. 주간지 따위 사본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러니 아는 게 없다. 여자 아나운서의 스캔들이 터진들 애당초 그 여자의 얼굴을 모르니 관심을 가지려야 가질 수 없다.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 물으면 '내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대답한다. '채식주의자'같은 취향이라고 얼버무린다." (p.45)

 

작가는 오키나와를 시작으로 시코쿠, 타이완, 도호쿠, 히로시마, 규슈를 여행한다. 책을 읽다 보면 야구 경기를 보기위해 나 홀로 여행을 하는 오쿠다 히데오의 모습이 연상되는 듯하다. 자신이 정한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남는 시간을 어찌 보낼까 궁리하다 길거리의 어느 우동집에 들러 색다른 맛에 감탄하며 눈물을 찔끔거리거나, 야구 경기의 시간을 기다리며 영화를 한 편 때리거나, 그도 아니면 미니스커트 차림의 젊은 여성으로부터 마사지를 받으며 온갖 상상을 하는 모습 말이다.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가지고 온 책은 반도 읽지 못했다. 사색 모드로 들어간다. 나는 생각하면서 얼마든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런 능력이 소설에 활용되지는 않는다. 공상은 장사 밑천이 될 수 없다." (p.70 )

 

소심하면서도 은근 기분파인 작가는 도쿄를 떠나 맘에 드는 어느 지역으로 이사를 생각하기도 하고 트럭 운전사가 되어 사계절 내내 여행을 꿈꾸기도 한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녹색의 논에 반하여 농사를 지어볼까도 생각한다. 늘 그런 식이다. 아주 이따금 진지한 생각을 할 때도 물론 있다.

 

"막 등단했을 무렵 나는 '작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처녀작은 화제에도 오르지 못하고 업계에서는 완전히 무시당했다. 사람들이 직업을 물으면 "소설도 가끔 써요,"하고 곁가지처럼 말했다. 사실 난 아주 달콤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출판만 되면 각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원고 의뢰가 정신없이 밀려들 것이라고. 웃고 만다. 고독과 친해져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중략) 지금, 내 일정은 5년 후까지 꽉 찼다. 옛날에 비하면 거의 기적이다. 여행을 하면서 원고를 쓰기만 해도 그걸 사줄 출판사가 있다. 이 무슨 기적 같은 일인가. 그렇지만...... 괴롭다. 나는 아니디어와 테크닉으로 소설을 쓸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살을 후벼 파지 않으면 한 줄도 나가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이다." (p.209 ~ p.210)

 

누군가는 야구가 인생과 같다고 했다. 나는 그런 구태의연한 표현은 딱 질색이다. 마치 금방이라도 곰팡이가 필 것 같다. 그렇지 않은가. 인생은 결국 비극도 희극도 아니지만 나는 선택할 수만 있다면 희극을 선택하고 싶다. 별 가는성이 없어 먼저 침이라도 발라 보자는 속셈이지만. 그렇지만 책을 고르라면 나는 이런 종류의 책이 좋다. 별 것 아닌데도 신나게 웃을 수 있는 그런 책 말이다. 대리만족을 누리는 기쁨도 쏠쏠하다. 야구장을 찾아 떠나는 오쿠다 히데오의 나 홀로 여행은 2월부터 시작되어 7~8월은 쉬고 12월까지 이어진다. 책을 읽은 소감을 굳이 말하자면 '유쾌하다!'는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작가가 우동 한 그릇을 먹고 '맛있다'는 표현 밖에 다른 말을 찾지 못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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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7-14 10:22   좋아요 0 | URL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읽으면서, 소설 읽는 즐거움을 만끽했습니다.
왠지 친근한 오쿠다 히데오^^
이 글 읽으니 여행가고 싶네요.

꼼쥐 2014-07-17 13:58   좋아요 0 | URL
저도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 중에 <공중그네>를 처음으로 읽었어요. 그것도 최근에서야 말이죠. 그 책을 읽고난 후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만 읽게 되네요. 이제 곧 휴가철이니 즐거운 여행 계획 세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