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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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남겨 놓은 말들 [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 허수경]



시인이 세상을 떠난 10월, 그녀가 남겨 놓은 말들을 읽는다. 그녀의 말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그녀의 살아온 흔적을 살폈다. 더 이상 세상에 없는 그녀의 말들은 때로는 땅속에, 때로는 바람으로 스며들거나 흩어졌다.


독일 뮌스터에서 고고학을 공부했던 그녀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책은 2003년에 나와 다시 개정판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책속의 내용들은 대부분 그녀의 독일 생활의 쓸쓸함이 많이 녹아 있다. 그녀가 혼자 밥을 먹으러 들어 간 어느 날, 자신의 자인들을 불러 모아 식사를 하는 상상을 하거나 아픈 날, 중국집에 앉아 뜨거운 밥을 먹으며 멀리 있는 고향을 그리워했다. 뮌스터에서 많이 마신다는 끓인 맥주, 흑맥주에 설탕에 절린 과일을 넣고 끊기 직전까지 데운 맥주를 차게 식혀 마시는 이 술이다. 맥주를 많이 마시는 독일에서는 맥주 활용법이 많고, 그것을 보며 그녀는 가짓수가 많은 김치를 떠 올린다. 고향을 떠나도 오랫동안 살아 왔던 환경에서 얻은 추억은 계속 공유되며 환유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서양의 고급 식당에 앉아서 소리를 내면서 수프를 들이켜는 고향 선배를 보며 민망하다고 느끼는 나는? 서양 백화점에서 물건 값을 깎아주지 않는다고 소리소리 지르는 고향 선생님을 보며 민망하다고 느끼는 나는? 카메라를 든 수무 명 남짓의 동양인이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서양 교회를 보면서 탄성을 지른 것을 보며 민망하다고 느끼는 나는? 서른 개도 넘는 선물용 쌍둥이표 과일칼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사는 친척을 보며 민망하다고 느끼는 나는? 유용한 서양 소설에 나온다는 술 오백 밀리리터를 거금을 들여 사는 호사 취미를 가진 분들을 보며 민망하다고 느끼는 나는? 나는 무엇인가? 이 보잘것없는 나는 무엇인가? ” 216쪽



카셀 민박에서 만났던 주인은 나에게 그런 얘길 했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들 사가는 쌍둥이칼을 보며 독일 진원이 너희 민족은 난자냐고 물었다고 했다. 그만큼 많이 사가는 유명한 칼이니까. 한국에서 사면 조금 더 혹은 훨씬 비싸니까 많이들 사거는 것이겠지. 그런데 그곳에 사는 이들은 너무 흔한 것들이지만 멀리 12시간을 달려, 직항이 아니면 경유로 더 말리 달려 온 나라에서 이제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 많은 양의 칼을 사가는 이들을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가 생각해 본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숙소를 잡고 처음 나온 길가에서 만난 성당을 보며 나는 탄성을 질렀다. 그냥 흔한 동네 성당도 이렇게 예쁘다니. 처음 보는 유럽의 흥에 그냥 감탄 한번 할 수 있는 것에 왜, 부끄러워 하셨을까. 아, 그들은 유럽을 처음 와서 아직 더 크고 멋진 건축물을 보지 못했나. 그러니 이런 찬사를 보냈겠지? 물론 물건 값 깎아 달라고 소리 지르는 지인을 보는 것은 민망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백화점도 정찰제인데, 시장도 아닌 곳에서 왜 물건 값을 깎아 달라고 소리까지 지르셨을까. 그 부분은 나도 부끄럽기는 할 것 같다. 만약 이 글이 인스타나 페이스 북에 올렸다면 나는 이런 댓글을 썼을 것 같다. 당신에게는 너무나 사소한 것이겠지만 그것을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는 놀라울 수 있는것 아니겠는지. 그러니 그들의 그런 호들갑에 부끄러워 마시길. 그들도 더 좋은 것들을 보고 나면 시골의 어느 교회를 보며 탄성을 지를 일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시인이라는 삶이 시작된 건 아마도 말로 세계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겠지만, 인위적으로 그 삶을 목 졸리고 싶었던 이유는 아마도 말에 대한 애증 때문은 아니었는지. 독일은 우리말을 쓰는 나라가 아니고, 난 그게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191쪽



우리말을 쓸 수 없어서 때로는 입을 닫고 조용히 듣는 일에 열중했던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그녀의 책을 읽으며 계속 딴죽을 걸고 싶었다. 이런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면 그녀는 다시 냉소적으로 또 말을 해 주지 않을까. 그녀는 하고 싶은 수많은 말들을 어디에 두고 갔을까. 그것을 찾는 일은 그녀를 읽기를 하면 찾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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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로그 폴란드 - 2018~2019 최신판 트래블로그 시리즈
조대현.정덕진 지음 / 나우출판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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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중 폴란드에 대한 정보다 많이 없어서 기대가 더욱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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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양이와 살기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가쿠타 미츠요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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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그러한 삶 [이제 고양이와 살기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 가쿠다 미쓰요]



십여 년전 오랫동안 집에서 함께 살며 행복했던 강아지와 이별을 한 후 다시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내 한 몸 챙기기 힘든 이 세상에 다른 생명체를 책임지며 살아가는 일이 나에겐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자고 지인의 연락에 단숨에 달려갔을까. 작년, 독일에서 돌아와 나는 심하게 우울증을 앓았었다. 뭐 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겪은 일들이 쉽게 멘탈 회복이 되지 않았던 때였다. 그런 내게 지인이 파양을 당해 어디 갈 곳이 없는 고양이가 있는데 한번 보러 올래? 라는 말에 달려갔고 한참을 안고 있다가 나는 함께 집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의 동거는 쉽지 않았다. 처음 키워보는 고양이는 강아지와 전혀 다른 생물체였다. 책상 위로는 올라 올 수 없었던 강아지와 달리 조그마한 턱만 있으면 그걸 딛고 어떻게든 높은 곳으로 오르는 고양이의 습성 때문에 온 집안의 물건이 바닥으로 수직 하강했다. 해외 여행때 무조건 사오는 장식품들은 모두 바닥으로 떨어졌고 간혹 냉장고에 붙어진 마그네틱은 바닥과 구석으로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이런 실수와 난장판에도 내 고양이 루키와 함께 집으로 오던 첫날이 떠올라 가슴이 뜨거워질 때가 많았다.



<종이달>의 작가 가쿠다 미쓰요도 어느 날 자신이 좋아했던 작가의 고양이에게서 일곱 번째로 태어난 고양이를 선물 받았다. 그녀의 고양이는 ‘토토’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구경중이다.


“변덕쟁이도 아니고 제멋대로도 아니고, 요구만 있지도 않고, 새침 떨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토토는 대부분 받아들여 주고 용서해준다. 받아들여주고 용서한다는 것은 고양이의 특성인가, 아니면 토토의 개성인가” 47쪽



루키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본격적으로 그동안 숨겨 왔던 병을 내게 알렸다. 한 시간에 열 번 이상 재채기를 했고, 기침을 했다. 환경이 안 좋은 삽에서 태어난 루키는 품종묘였다. 온 몸으로 재채기를 하는 루키는 병원에 한 달에 네 번 이상 다녔고, 약을 하루에 두 번씩 먹으며 호흡기 치료인 네뷸라이저를 하루에 세 번씩 해야 했지만 단 한 번도 싫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낯선 병원에 갈 때도 이동 장에 조용히 스스로 들어가서 앉아 있고, 병원에서도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치료를 받았다. 약도 조용히 먹고는 아무렇지 않게 놀던 공을 차며 다녔다. 안약을 넣을 때도 몸부림치지 않고 약이 다 들어 갈 때까지 품에 안겨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어디서 이렇게 착한 녀석이 나에게 왔을까. 나의 루키도 이렇게 모든 것을 받아들여주고 자신에게 하는 것들을 용서해 주었다.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착한 생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개도 새도 착하지만, 각각 착함의 종류가 다른 것 같다. 고양이의 다정함은 속이 깊다. 배려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49쪽



너무 피곤해 불도 끄지 않고 잠들었던 어느 날, 뒤척이다 잠이 깨었다. 옆을 보니 루키가 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잠꼬대를 했던 것인가? 루키가 나를 걱정스런(물론 그건 나만의 생각이지만) 얼굴로 나를 한참 보더니 그 하얗고 뽀얀 솜방망이 발을 내 이마에 한참을 올려놓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때 나만의 오해를 했다. 우리 루키가 나를 걱정했다고. 이런 착하고 다정한 고양이라니.



“4년 전, 무사히 태어난 일곱 번째 작은 생물을, 나는 나를 구할 무엇인가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 생물은 전혀 울지 않았고, 화장실에서 볼일도 보고, 마치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내 손등에 작은 머리를 기대고 잤다. 나는 나 자신이 그것에 구원받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병원에 데려가고, 마구 뛰어 다니며 놀이 상대를 해주고, 약을 먹이고, 같이 자고, 이 아이가 없어지면 어떡하지 하고 남편과 얘기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구원받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224쪽



오랫동안 살았던 곳을 떠나 이사를 하며 그곳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잊기로 했지만 마음은 그렇게 되지 않았던 몇 달 동안 마음이 허했다. 그렇게 도망치듯 떠난 독일에선 나는 그간 남아 있었던 자존감이라는 것을 비가 온 날이 훨씬 많았던 습기 많았던 독일에 놓고 비행기에 올라 귀국했다. 공감력 없는 이와 함께 생활했던 독일 생활은 그동안 살아 왔던 나의 삶을 반추의 시간을 주었다. 내가 만나고 있는 이들이 내게 어떤 사람들인가 회의가 들었고 힘들었던 어느 날, 나에게 찾아온 고양이 루키는 매일 나를 위로 했다. 저렇게 기침을 하다 죽는 것 아닐까 걱정스러운 날 루키를 안고 울었던 그날 밤, 잠든 나에게 한참 동안 꾹꾹이를 하며 자신은 괜찮다고 얘기했다. 그 어떤 사료를 가져다 줘도 집사가 줬으니 내가 먹어는 줄게라며 시큰둥하게 모두 먹어줬고 새로 사준 스크레쳐를 힘차게 긁으며 고맙다고 했다. 사다준 물건은 어떤 것도 싫다고 하지 않고 한번은 꼭 내가 보는 앞에서 사용해 줬다. 이미 닳아 없어진 낚싯대에 리본 끈 하나 묶어 하루 종일 흔들어줘도 새것처럼 놀아주는 루키의 적응력에 감사해 했다. 작은 터널에 숨어 나를 놀래며 도망치는 루키는 나의 작은 짜증도 없애준다.


아마도 반려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나에게 와 줘서 고맙다고. 그런 운명과 인연으로 연결된 그 순간이 고맙고 다행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집에 돌아오면 골골송으로 다리 사이를 오가며 반겨주는 루키를 보며, 처음 루키를 안고 집으로 오던 지하철 안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행이다, 그날 내가 너를 다시 그 집에 놓고 오지 않아서. 아픈 너를 파양하지 않고 고치려 애썼던 그날, 너도 기운을 차려 줘서 정말 고맙다. 네가 우주로 돌아가는 날까지 우린 함께 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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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다경제 - 어디 가서 아는 척할 수 있는 경제 지식
사이다경제 외 지음 / 원앤원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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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다 경제-


그동안 온라인 기사를 보거나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얻었던 지식은 어려 방면으로 넓혀졌다. 특히 어떤 정보를 찾거나 맛집을 찾았을 때 정보를 얻었던 네이버의 선택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전 되었다. 다른 SNS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능이 더욱 활발하게 발전되어 가고 있다. 그동안 만들기에 집중했던 나는 네이버를 통해서가 아니라 유투브 이전되었고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채널은 팟캐스트나 유투브로도 변화했다. <사이다 경제> 또한 팻캐스트로 유명한 한 채널이다.



“과학은 일정한 논리로 움직이는 자연에서 법칙을 찾아내지만, 경제학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바뀌는 사람에게서 법칙을 찾아냅니다. 꽤 오랫동안 경제학자들은 인간도 자연법칙처럼 일정한 논리대로 움직인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경제를 알수록 ‘합리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인간의 실제 행동을 토대로 경제를 설명한 행동 경제학에서는 소위 말하는 ‘합리적 인간’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20쪽



<사이다 경제>의 다른 부제목은 어디 가서 아는 척할 수 있는 경제 지식이다. 시사 경제 상식부터 주식, 부동산 투자까지 꼼꼼하게 알려주고 있으며 4차산업에 대한 마지막 챕터는 읽는 동안 흥미로웠다.


그동안 정치 경제가 나와는 친한 얘기가 아니었다고 생각하며 지냈는데, 정치는 팟캐스트와 정치적 성향과 맞는 유투브를 통해 쉽게 이해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경제만큼은 친숙하게 가까워지지 않았는데 <사이다 경제>를 읽으면서 놓쳤던 경제의 구멍을 찾을 수 있었다.


책속에 민영화에 대한 부분이 의외로 많이 담겨 있는데, 분명 민영화는 명암을 가지고 있다. 포스코나 담배인삼공사, 한국 전기 통신공사들도 민영화가 되어 여러 부분은 성공한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성공의 사례도 있지만 영국의 철도는 실패한 민영화로 남게 되었다. 영국은 1994년 보수당의 주도로 철도 민영화를 시행하였다. 당시 영국 은 철도 민영화로 인해 교통 운임이 저렴해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기대와 달리 운임 비용은 3배나 높아졌고 잦은 사고로 보수당은 스스로 민영화 사업이 실패 하였음을 시인했다고 한다. 이런 부분은 영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민영화 전환으로 명암을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 나라도 지금의 정권이 바뀌기 전 의료사업도 모두 민영화로 전환한다는 얘기가 있었고 많은 이들은 반대했다. 대부분 영국의 실패한 민영화 철도 선업을 많이 비교 하였고, 안정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길 희망하는 사람들은 크게 반발했다. 같이 상생 하면 좋은 효과를 가져 올 것은 분명하지만 민영화를 통해 자신만의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세력들을 견제해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민영화 이후 공정한 경영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 고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낙하산 인사를 두거나 정부의 입김에 휘둘려 사업을 기획해서는 안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정부와 민간의 상호작용입니다. 득과 실을 잘 따져 민간에 기회를 제공하고, 효율성을 증대하는 민영화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201쪽



경제가 어렵다고 느끼는 이들을 위한 시원한 사이다 한잔을 주는 <사이다 경제>는 모처럼 추천해 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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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으로 이사 온지 벌써 2년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주소가 변경 되지 않았던 것들이 있었나보다. 카드사들의 우편은 안 받아도 큰일은 없지만. 대부분 메일 확인이니..그런데, 쇼핑을 위한 채널들은 그간 사용 안한 곳은 변경이 안 되어 있고 나도 무심하게 그냥 주문을 하고 나중에서야 변경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제도 집배원 아저씨께서 전화를 주셨다. 집에 안계시나요? 아니요 집에 있는데요....그리고 몇 호냐고 물어 보시곤 아득해졌다. 또 그리로 갔구나...다행히 집배원 아저씨는 변경된 주소로 보내 주신다며 문자로 변경된 주소를 보내 달라고 했지만, 택배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결국 그 먼 길을 (사실 버스로 30분) 택배를 찾으러 가야 했다.

 

 

 

그냥, 버리고 싶었지만 그 택배는 요즘 습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잘 안 먹고 있는 루키의 비싼 습식이었다. 그것도 한 상자나 주문한 것이라서 입맛이 고급으로 변해 가는 고양이가 나를 길들이기 위해 뛰어서 당장 대령해야 하는 밥이었다. 뭘 먹든 안 먹든 그냥 내버려 두면 다 먹는다고 하지만, 집사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고양이는 굶으면 큰일 난다며 안절부절 하며 뭐든 대령하고 있으니...이번생은 호구 집사로 남을 것 같다.

 

 

고양이 사료를 찾기 위해 버스에 올라 2년 전 살았던 그 집을 찾으러 가며 마음 한켠이 그곳에 놓고 온 오랜 기억들이 서글퍼졌다. 그곳에는 오랫동안 머물렀던 나의 청춘이 있었다. 그리고 오랜 우정이 흔들렸던 장소도 있었고 헤어졌던 사랑과의 거리도 있었다. 불편했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술집도 있었으며 가족끼리 화목했던 고기 집도 있었다. 버스에 내려 언덕을 오르며 그 모든 것들을 함께 하지 못하고 떠났던 이 가파르고 숨 차는 언덕길에 다시는 올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고양이로 인해 언덕에 올라섰다.

 

 

유난히 은행나무가 많은 공원에서는 사람들이 무심히 밟아 놓은 은행의 구릿한 냄새가 퍼지고 있었다. 그 공원에 고양이 사료를 품에 안고 숨을 몰아쉬며 앉아 지나쳤던 시간들을 다시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때로는 혼자만의 사색을 즐겼던 시간들을 떠 올렸다. 아, 이곳에서의 독서도 참 좋았는데...라며 무심코 들고 나온 책을 읽었다.

 

 

 

 

 

 

 

 

 

 

 

 

 

 

 

 

 

때마침 내 가방 속에 들려 있는 책은 가쿠다 미쓰요의 <이제 고양이와 살기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였다. 떠나온 이 동네에서의 생활로 돌아 갈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우리 루키와의 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다. 엄청 크고 엄청 길고 엄청 무뚝뚝한 내 고양이와의 하루를 위해 무거운 택배 상자를 들고 다시 집으로 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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