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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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치 않게 영화 <B급 며느리>와 인스타그램의 인기 웹툰 <며느라기>를 비슷한 시기에 보았다. 영화 <B급 며느리>를 다 보고 나서는 왜 여성은 이렇게 밖에 살아 갈 수 없는가 답답했고, 웹툰 <며느라기>의 엔딩을 보며 제발 그녀가 그 이름을 버리기를 바랐다.

 

한국에서 결혼을 한 여성이 한 가정을 꾸려 나가며 살아가는 두 이야기는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닮아 있다. 영화 <B급 며느리>의 주인공 김진영씨는 명절날 시댁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매번 자신이 입혀 보낸 옷을 벗기고 시어머니가 산 옷을 입혀 보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들과 함께 시댁과의 갈등으로 그녀는 시댁을 가지 않을 것을 선택한다. 아들만 둘이 있는 곳으로 시집간 그녀는 명절이면 어머니와 자신만 음식 장만을 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늘 남자들은 그저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앉아 만들어진 음식을 받아먹고 있다.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의 선택은 결국 며느리를 포기하기로 이른다. 간혹 그녀와 남편은 이 문제로 심한 갈등에 놓이게 되고 그녀의 절규 장면에서는 그녀가 안고 있는 답답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녀는 말했다. 결혼하기 전에 자신은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웹툰 <며느라기>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장남에 시집을 간 그녀는 명절에 시어머니와 함께 둘이서만 음식 장만을 한다. 아들이 부엌에 들어가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엌일은 오로지 여자의 일로 생각하는 시어머니는 백화점에서 산 며느리에게 줄 선물이 앞치마였다. 시부모의 결혼기념일에 가야 할 것인가 고민하다 결국 찾아가 저녁을 먹지만 아들에게는 살이 많은 갈치 몸통을 주고 며느리에게는 푹 익어 맛이 들었다는 무 조림이었다. 그녀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집에서 귀중한 존재인데 왜 시댁으로 오면 하나의 인간이 아는 집안의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인가.

 

소설 김지영씨도 어느 날 시댁에서 친정어머니가 빙의 되어 담아 두었던 얘기를 쏟아 낸다. 너희 딸이 친정에 빨리 오는 것을 원한다면 며느리도 빨리 친정으로 보내 줄것을 말했다. 그 얘기는 웹툰 <며느라기>에서도 다룬다. 새로 들인 며느리와 시댁을 들렸다 오는 딸과 함께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일 하는 며느리가 가족의 일원으로 희생을 해야만 그 모습을 완성 할 수 있는 노릇이다. 하지만 며느리 말고 그 누구도 왜 그것을 며느리만이 희생을 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는다.

소설 김지영씨는 아주 평범한 가정을 갖췄다. 너무 늦은 나이게 결혼도 하지 않았고 남편의 직업도 안정적이고 적당한 크기의 아파트를 전세로 살고 있으며 자식도 낳았다. 남들이 원하는 평범한 조건이지만 그녀는 왜 친정어머니가 혹은 선배로 빙의 되어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하는 것일까.

영화 <B급 며느리>에서 엔딩에서는 주인공 남편의 남동생이 결혼을 하게 된다. 그때 김진영씨의 남편, 즉 큰 아들은 시어머니와 새로 들어올 둘째 며느리에 대한 얘기를 한다. 시어머니는 둘째 며느리는 A급 며느리가 될 것이라고 얘기를 했다. 그녀가 말하는 A급 며느리란 대체 무엇일까? 시댁 행사에 모두 참여하고 시댁 일에 절대적으로 지지를 보내며 시부모의 말씀을 아주 잘 듣는, 그러니까 영화 속 김진영씨와 다른 행동을 하는 며느리를 말한다. 대체 누가 이런 급을 정해 그녀의 머릿속에 심어 놓았을까? 시어머니 당신도 분명 자신의 자아를 찾지 못한 며느리에 불과 할 텐데 말이다. 시어머니의 마지막 대사에 나는 많이 슬펐다. 며느리가 명절에 오지 않는 것을 그저 주변사람들에게 창피하다는 것으로 치부 하며 그녀를 B급 며느리로 만들 것이 아니라 그녀와의 진정한 화해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영화 속 며느리와 소설속의 김지영은 전혀 다른 인물이다. 영화의 김진영은 결혼 문화로 만들어진 또 다른 여성을 부정했고 원하지 않았지만 소설 김지영은 순응했고 받아들였다.

 

고등학교 시절 조금 멀리 있는 학원을 다니며 스토커 같은 남학생을 만나게 되고 그 남학생으로 인해 그녀는 공포심을 갖게 되었다. 늦은 밤 도착하는 자신을 마중 나올 것을 부탁하며 내리지만 아버지보다 그 남학생이 먼저 같이 내렸다. 이후 남학생은 돌아갔지만 그 일은 결국 늦게 다니는, 짧은 치마를 입은 지영씨의 잘못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그 남학생을 찾아 야단 칠 것이 아니라 그런 행동을 한 지영씨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었다. 어쩌면 여성 자신이 찾아야 할 권리들은 모두 시대가 만들어 놓은 것이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어느 가을날 아이와 잠시 산책을 잠시 들렸던 카페에서 지영씨는 열심히 일하다 마시는 직장인들의 커피타임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들은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아이를 키우며 사는 지영씨를 부러워하며 맘충이라고 했다. 채근하는 아이를 간신히 재워 마음을 식히기 위해 들린 카페의 카피 가격은 1500원이었다. 그 한잔의 여유를 찾은 그녀는 그들에게 그렇게 불렸고 이해되었다. 사실 이 부분으로만 그녀가 안타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들의 아주 단편적인 시선들이 모두의 시선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 제주도 올레 코스를 돌면서 만난 어느 여자가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재우며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시는 장면에 그녀의 삶을 부러워했던 적은 있었지만 그녀를 남편의 월급을 탕진하는 맘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며 지내야 하는 시간의 어려움을 모르는 나는 그녀의 잠깐의 그 외출을 일상으로 생각 했을 수 있다. 어쩜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그 카페에서 지영씨에게 맘충이라고 했던 사람들도 그렇게 보고 있을 것이다.

 

지영씨의 삶은 변함없이 유지 되어 갔다. 그래서 소설이 살짝 답답한 부분이 있었다. 그녀가 어떤 투사처럼 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소설이 2016년에 출판 됐는데도 아직까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은 아마도 변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여성은 계속 똑같이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 <B급 며느리>속 김진영씨는 자신을 위한 위인전을 쓰겠다며 며느리의 혁명가가 되겠다고 했지만 그녀의 엔딩 장면은 의외였다. 사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그 엔딩이었다. 그녀는 왜 그런 엔딩을 선택했을까 궁금하다가도 결국 이해 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되었다. 비록 그녀들이 선택한 삶을 존중하지만 이해 못하더라도 나는 그녀들에게 앞으로 자신의 선택을 존중 받으며 ‘나’를 찾아 갈 수 있는 길을 꼭 가길 원한다. 웹툰 <며느라기>의 엔딩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녀의 찾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그녀들도 그녀들의 자리를 찾길, 그리고 그들을 맞을 사회도 달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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