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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청춘, 문득 떠남 - 홍대에서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모로코까지 한량 음악가 티어라이너의 무중력 방랑기
티어라이너 글.사진 / 더난출판사 / 2013년 10월
평점 :

스페인에서 시작해서 포르투갈 그리고 모로코에서 다시 스페인으로 끝이 나는 이 여행기 [느린 청춘, 문득 떠남]에 가장 큰 궁금증은 저자였다. 티어라이너라는 저자를 모르기 때문에 누굴까 찾아 봤더니 그토록 내가 오랫동안 들었던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이선균이 불렀던 [바다여행]의 작곡가였다. 이럴 수가. 그가[커피프린스 1호점]의 음악 감독이었다니.
스스로 한량이라고 말하는 이 음악가의 여행기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사실 고민스러웠다. 놀고먹는 한량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여유 부리며 놀러 갔다 온 얘기를 뭘 책으로까지 내서 읽어야 할까 곱지 않은 눈으로 책을 읽어갔지만, 그의 고단한 발바닥 여행기를 읽다보니 마음이 짠해져 온다. 보통은 이렇게 긴 여행을 간다면 트레킹 혹은 등산화로 발이 아프지 않고 튼튼하게 다녀 올 신발을 구입해서 갔을 텐데 스니커즈를 새로 장만해서 신고 갔다니, 맙소사 정말 한량이구나. 휴가를 받아 스페인으로 여행을 온 직장인이 치밀하게 여행 계획을 세워 온 그와 달리 저자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오지 않았나 보다. 하지만 그 덕에 많은 것을(정말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볼 수 있었고 아는 만큼 즐길 수 있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가 정말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옥상 평상에 누워 기타를 치며 하루를 노닥거리는 그런류의 사람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1유로 때문에 추위를 참아가며 공항에서 노숙을 하고, 밥을 굶어가며 여행을 이어가고 많은 것을 먹지 않고 많은 것을 보는 것으로 대책을 세우고, 12인실의 호스텔에 잠을 자거나 다음날 변사체로 발견 될지도 모를 무시무시한 호스텔에서 잠을 청하는 그는 뻔뻔한 한량은 아닌 것이다.
작년에 체코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제일 많이 얘기를 들었던 내용은 집시를 조심할 것과 소매치기, 도둑을 조심해야 하니 소지품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10일 동안 단 한명의 집시도 만나지 못했다.
파리 또한 그랬다. 소매치기가 많기로 악명 높은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절대로 가방 입구와 손은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 되는 엄마의 손을 잡는 것처럼 움켜지며 있어야 한다고 여행 지인들과 몇 번씩 얘기를 해두었다. 사실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이 얘기 때문에 여행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아니, 소매치기가 무서워서 여행을 포기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여행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면 여행은 끝이고 또 무엇보다 멘탈 극복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정말로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줄’을 놓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스페인에서 저자가 당한 몇몇의 사건이 사실 나는 부럽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줄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사인단 소녀들을 만나지도 못했고, 팔지단 흑형들도 못 만났다.
처음엔 삐딱하게 읽었던 그의 여행기가 그나마 나를 위로했던 것은 그의 문학적 표현들이 좋았기 때문이다. 가끔 아, 이런 표현이 이 여행기에 바로 생각났을까 궁금했던 표현도 있고 또 훔쳐가고 싶은 문장들도 있었다.
“골목은 연애하는 여자 마음 같다. 간드러지게 굽이치다가도 어느 순간 막혀버리고, 미로와 같아 나로서는 알 길이 없어 보이지만, 어디로든 진득하게 가다 보면 곧 대로와 만난다. 폭은 좁지만 정겹고, 그 골목이 그 골목 같아 보여도 어느 골목 하나 같은 곳은 없다. 지나온 골목은 뒤에서 잊히고 눈앞의 골목은 몸을 꼬아 행인을 매혹한다.” P229

여행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줄도 있지만, 함께하는 사람이 어쩌면 가장 우선시 될것 같다. 작년 여행을 생각하면 끔찍한 몇몇의 날들이 떠오른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한없이 야박한 지인과 함께 방을 썼고, 그는 친한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다정했지만 그만큼 가혹한 말들을 쏟아냈다. 상처받을 저런 말들을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지. 그런 그녀의 동행으로 나는 작년 여행이 유쾌하지 않았다. 물론 그녀 또한 나로 인해 불편함이 있었을 것이고 힘들었겠지만.
그런 이유로 잘 모르는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동행한다는 것은 새로운 사람과 만난다는 설렘과 함께 한다는 고통을 동시에 가지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분명 매력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의 말처럼 어쩔 때는 함께 동행 하는 이가 마음이 맞지 않는다면 분명 짐이고 쓰지 않는 열쇠꾸러미처럼 매달린 모난 짜증일 테지만.
하지만 역시 여행의 끝은 결국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여행은 있었던 자리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과정일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떠나고 나서야 내가 있었던 자리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이고 그리워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었던 자리의 소중함을 알지만 계속 떠나는 이들의 마음은 무엇 때문일까. 일 년에 한 번씩 오랫동안 여행을 다녀본 결과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더 떠나봐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는 것처럼 나 또한 오랫동안 있었던 자리를 비워봐야 지금의 자리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