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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얼굴 -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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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

 

 

 

 

간혹 작가들의 책들보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얘기가 더 재미있기도 하다. 언젠가 음악가들의 사생활을 다룬 책을 읽는데 그들의 음악 생각보다 그들의 사생활의 뒷면 때문에 그가 작곡한 음악을 더 들어보게 되었던 경험도 있었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통해 더 깊숙이 알게 된 [쳇베이커]의 전기로 불구덩이 같은 광기와 시궁창 같은 인생이 어쩌면 그의 음악을 더 깊고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것도 같다. 때론 전기보다 평전이 훨씬 재미있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그런 느낌의 책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꼭 앞에 말한 것과 같은 책은 아니다. 나에게는 아주 익숙하지 않은 독일 비평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그가 읽었던 책과 그가 알고 있는 문학의 얘기는 오로지 그가 가지게 된 작가의 얼굴이 그려진 초상화 한 장으로 시작됐다. 독일의 유명한 비평가인 그가 초상화 한 장으로 시작된 문학에 관련된 이야기의 시작이 이렇게 사소했다니, 참 소박한 시작이다. 셰익스피어부터 토마스 베른하르트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학가들의 초상화가 있는 그의 서재가 궁금할 지경이다.

 

 

 

문학과 지성사의 시집 시리즈는 표지가 작가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간혹 표지에 그려진 얼굴이 정말 작가의 얼굴일까 궁금해서 다른 책의 책날개를 살펴 본적도 있다. 요즘은 자신의 얼굴을 알리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도 많지만 문학과 지성사의 시집속의 시인들은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시인의 모습을 떠올려야 한다. 어쩌면 그런 모습 때문에 시인은 더욱 매력 있어 보이거나 신비해 보인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책 [작가의 얼굴]은 문지의 표지에 있는 시인들의 얼굴 그림처럼 사진이 아닌 초상화들이 대부분 등장한다. 그의 서재에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는 많은 작품들 중에 분명 그가 좋아하는 문학가들의 모습을 담아 그들의 문학 세계를 들려주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가들은 애정 있는 작품 소개가 있거나 그렇지 않은 작가들의 얘기들도 느껴진다. 폴란드에서 태어나 독일 베를린으로 이주해 폴란드계 유대인들과 함께 강제 추방까지 당했지만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읽었던 많은 문학 작품들이었다. 강제 추방되고 강제수용소로 이송되기 직전 아내와 극적으로 탈출하고 한 농가에서 자신들의 목숨을 지켜준 주인 부부에게 세계문학 작품들을 이야기로 풀어 들려주며 열 달 넘게 숨어 지냈다는 그의 얘기에 마르셀이 독일에서 그토록 유명한 문학의 교황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짐작 할 수 있다.

 

 

많은 작가들의 얘기에 빠지지 않고 빗대어 얘기하는 사람은 괴테이다. 마르셀도 괴테의 영향을 받아 문학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대부분의 위대한 작가들이 쓴 거의 모든 것들이 결국 자기묘사로 귀착된다는 사실을 나는 괴테에게서 배웠다. 셰익스피어의 경우는 달라서 그는 모든 한계를 뛰어 넘었지만, 아마 괴테는 이 말에 해당될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고, 동시에 우리 모두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것이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지도 모른다.”P33

 

 

 

그가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희곡중 하나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이었고, 또 하나는 괴테의 [파우스트]였다. 괴테의 작품을 볼 때마다 그를 지향하고 그를 따라하고 싶은 마음은 내가 노희경의 작품을 보면서 배우고 싶은 그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 모르는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에 대한 그의 다소 냉소적인 평이 마음에 들지 않다가 그가 세계문학 가운데 중요한 희곡 세 편을 꼽아 보라면, [파우스트],[햄릿] 그리고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발렌슈타인]을 말하겠다고 하니 꼭 그가 냉소적인, 냉정한 비평가가 아닌 것 같다. 비형은 하지만 실력을 인정은 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우리는 남의 글이나 작품에 너무 많은 비평을 하려다 보니 비평이 아닌 비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비평과 비난은 분명히 다른 것이지만 비난을 하지 않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 기사들도 비난의 글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저자의 [작가의 얼굴]은 따스한 애정이 있는 비평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작가의 얼굴을 보면서 그의 작품들을 얘기하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이 책이 한 문학가의 문학 세계를 비평한 것이 아닌 아직 몰랐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읽힌다. 그러니까 이런 작가 아직 몰랐다면, 한번 읽어 볼테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할까.

소설가들은 잘 알겠지만, 생소한 시인들이 많아서 그 부분이 제일 답답한 소개였지만 이것 또한 새로운 사람을 권하는 것이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동안 안톤 체호프의 소설만 보았지 그가 어떤 소설을 썼는지 관심 밖에 있었지만 그의 비평을 읽고 그의 소설이 이런 맥락을 가지고 있었나,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는 러시아 문학 중 가장 시적인 산문드라마와 단편을 썼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대사들의 핵심은 대개 화자들이 말로 옮기지 않는 표현들 사이의 정지 장면에서 들을 수 있다. 바로 이 침묵이야말로 이 작품들의 근간을 이룬다. 왜냐하면 체호프는 속삭임의 절규, 고요의 통곡을 창시한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는 참혹한 고통으로 말을 잃은 인간을 보여주었다.” P 119

 

 

 

그의 책속에 소개된 작가의 얼굴들은 정형화된 얼굴이 아닌 모습도 많다. 이것은 마치 문학작품을 읽는 이들마다 느낌이 다르고 자유롭게 읽고 있는 것처럼 작가들의 초상화들의 모습도 비슷해 보인다. 어떻게 읽느냐보다 어떻게 느끼고 감상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 본다면 앞으로의 책 읽기가 더 즐거워질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주는 큰 미덕은 이런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자유롭고 또 자유롭게 읽을 것. 그리고 자유롭게 비평하고 또 생각해 볼 것.

 

 

 

 

 

잉크 드로잉으로 그려진 프란츠 카프카의 초상화이다.

언젠가 보았던 카프카의 평론집의 책속에서 그는 치와와 같은 또랑또랑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모습의 카프카라니. 책을 읽으면서

한참 웃을 수 있는 이런 컷들의 초상화는 이 책을 읽는 더 즐거운 여유를 주는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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