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나는 나에게로 돌아간다 - 신현림 시인의 흔들리는 청춘들을 위한 힐링 응원 에세이
신현림 지음 / 예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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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부터 쓴 일기를 아직 가지고 있다. 가끔 읽을 여유도 없지만 오래전 일기를 들춰보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들지 않는다. 이유는 오랜 일기를 읽고 나면 지금의 내 모습이 많이 우울하기 때문이다. 분명 일기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쓴 부분을 너무 많이 읽어 봤기 때문이다. 어떤 나이가 되면 정말로 그런 직업을 하고 있을 것 같았던 유년시절의 일기는 더욱 서글픈 현실에 서글퍼지곤 한다. 하지만 그런 일기라도 들춰보고 나면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후끈 달아오르는 빈 공간이 생기기 때문에 가끔, 아주 가끔 보고 싶기도 하다.

 

 

<내 서른 살은 어디로 갔나>의 개정판인 <서른, 나는 나에게로 돌아간다>인 이 책이 오랜 나의 일기장 같은 느낌이 든다. 요즘 나이에 관련된 책들이 참 많이 나온다. 마흔엔 어떤 삶을 살아라, 스무 살은 이것부터 해라, 특히 서른에 관련된 책이 참 많다. 그런 자기 계발서를 읽으면 그때만 고쳐지고 좀처럼 삶이 나아지지 않는 느낌이 참 많이 든다. 하지만 이런 나이 관련 에세이를 읽으면 저자도 나처럼 뭔가 부족한 인간이며 같은 위로를 해 줄 수 있는 경우들에 위안이 된다. 비록 지나버린 나의 스무 살이지만 그렇게 살지 못했어도 어쩔 수 없는 과거이니 안타까워하지 말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읽을 때 뿐이긴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내 나의 일기장이나 혹은 내 친구의 얘기를 다시 듣는 것같아 얇은 이 파란 표지의 책이 너무 즐거웠다.

 

 

신현림 시인을 알게 됐던 <세기말 블루스>라는 시집을 통해 그녀가 대학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알고 나서 나는 그녀의 지루한 그 시간이 안쓰럽다가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이런 시들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그녀처럼 문학이라는 공간에서 마음을 쉽게 놓이지 못하며 살았고 글을 쓰며 먹고 사는 일이 녹녹치 않은 일당직 아르바이트보다 훨씬 더 고단한 삶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그런 그녀에게 닥쳐오는 나이마다의 고비, 즉 스무살 때는 이렇게, 서른에는 이런 삶이 나의 모토가 되어 행복한 자아를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수학공식처럼 정확한 정답을 만들어내지 못할 때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 당시 세상은 그토록 푸르고 아름다운데 나만 홀로 천천히 죽어가는 느낌이었다. 주체하기 힘든 인생을 어쩌지 못해 늘 불안했다. 서른 살이 오는 것이 무서웠다.” P26

 

 

 

생각해보니 나는 서른 살을 너무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며 시간을 보냈다. 스무 살 후반에 뭔가 이뤄져야 할 인생이 있어 보람찰 것 같지만 삼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가 시와 머리끄덩이 싸움을 했을 작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도 내가 원하는 글쓰기가 어느 목표 지점에 닿아 돈을 많이 벌고 명예도 가진 대단한 작가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지 못한 나의 서른이 그냥 시시했던 것 같다. 시시한 서른을 맞이하고 한참 지나 저자의 글을 보니 나는 나의 나이에 너무 감각 없는 삶이었다는 것이 후회가 되었다. 그녀는 시를 쓰기위해 고민했고 고통스러웠다. 그것 때문에 수년 동안 불면증을 앓았고 그것 때문에 병원 치료를 받았었다. 그리고 원하는 시인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며 책을 읽고 자신을 다듬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적은 돈으로 행복해하며 추운 다락방 생활을 견뎌내었다. 그녀의 에세이를 읽지 않았어도 나는 그녀의 몇 편의 시를 통해 그녀가 지나온 질척한 땅의 습도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그녀의 부단한 노력의 일기장을 훔쳐보며 나는 나의 지난 스무 살을 반성했다. 아마도 누군들 이 책을 읽으면 말랑하기 만한 지난날이 우울할 수 있을 것이다. 단단하게 그 시절을 보냈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생각해 본들 다 부질없는 짓이다. 나는 지금의 나도 아주 나쁜 삶은 아니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시절 노력하지 못한 시절을 자책하거나 후회하는 일로 지금의 현재의 시간을 쏟아버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녀처럼 나는 왜 그때 그토록 고민이 없었을까 생각해 봤지만 역시, 나의 그 시절 일기에도 그때만큼의 무게로 고민이 실려 있기는 했다. 단지 내가 그녀처럼 불면증에 걸릴 만큼 자신을 더 가혹하게 다그치지 않았다는 것이 후회가 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아무도 지금의 나를 탓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녀의 그 고민에 나의 고민을 더해 우리, 그 시절 참 삶에 애절했다고 느끼면 되는 것이다.

 

 

그녀의 첫 번째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가 처음에 성공을 했다면 그녀는 단단한 껍질을 하나 가지고 있었을까. 물론 그런 껍질 따위 필요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인생을 견뎌줄 성공을 원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녀가 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이런 시련의 나이테를 하나 더 가졌기 때문이라고 나를 위해서 위로 삼고 싶다.

 

 

뭐든 순박하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설득당하다 좌절당하느니 저지르고 용서받는 게 낫다는 그녀의 사고방식이 있었기 때문에 추운 다락방 시절을 견디며 살 수 있었고, 그녀가 시인이자 사진작가의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명은 그녀의 저지르는 성격이 부럽기만 하다. 가끔 정말 용감한 사람들에 대해 진정한 “용자”라고 하는데, 어쩌면 그녀가 시인에서 사진작가로 거듭나는 생활을 해 왔던 것, 그리고 그녀가 싱글맘으로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 그녀는 진정한 용자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것 또한 그녀가 많이 아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그녀라고 아픔이 많았으니 다음에 찾아오는 아픔이 아무것도 아닌 그런 사람일까.

 

 

“ 사람의 외로움은 사람만으로 채워지는 게 아니리라. 외로움의 한계를 넘어야 영혼의 눈이 뜨이고, 더 큰 사랑을 만날 수 있으리라.” P 54

 

 

 

에스프레소 같은 외로움의 엑기스를 만나봐야 나를 놓아주거나 던져줄, 혹은 가혹한 서러움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일까. 그녀의 이 말에 나는 한참을 멈춰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그녀의 삶의 한 단면이 살짝 떠올랐다가 나의 오랜 고독을 함께 마주하며 앉은 느낌이다. 고독의 속살을 다 보고 다 알면서 누군가를 만나고 쓸쓸해하고, 그리워하는 행위를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단계까지 오르려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더 보내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였는지 그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과정에서는 웃음도 났다가 눈물이 맺혔다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녀의 마음을 읽는다. 그녀가 만든 질문들은 한번쯤 우리가 누군가에게 던졌던 질문들이고 들었던 대답들이다. 그때 그런 대답을 들었을 때 고작 그런 대답 밖에 할 수 없는 것인지 그때의 상황을 외로워했었지만 지금은 그 대답들이 적절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도 그런 경험을 했고, 나이가 그렇게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글쓰기는 정말 신나는 일이다. 폭우 끝에 떠오른 뽀송뽀송하고 보드라운 태양을 느끼는 일 같다. 모든 사건과 모든 감정을 의미 있게 만드는 글쓰기. 내 자신의 존재감이 커지는 치유의 글쓰기.” P149

 

 

시가 그녀에게 없었다면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용기 있는 그녀이니, 분명 다른 모습으로 살았겠지만 나는 지금의 신현림을 더 좋아했을 것 같다. 그녀에게 글쓰기가 없었다면 그녀는 그녀가 아닐 것이다. 그만큼 글쓰기는 그녀와 닮아 있다. 그런 그녀에게 글쓰기처럼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서 뭔가 이렇게 즐겁게 맞이하며 해 온 일들이 뭐가 있을까 많이 고민을 하게 됐다. 분명 그녀처럼 나에게도 글쓰기가 참 즐거웠던 때가 있었는데 그것이 사라져버린 그 시절에 나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사람이 변화하기 힘든 이유는 과거를 정리 못하고, 버리지 못하고, 애쓰지도 않으면서 매달리는 꿈들 때문이다.” P172

 

 

[섹스 앤더 시티]의 몇 시즌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때 캐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닻을 빨리 거둬야 한다고 얘기했었다. 그래야 배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인생의 닻을 거두어 나아가야 한다는 말에 그동안 보았던 회들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내레이션이었다. 과거를 버려야 하지만 저지른 실수는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기도로 모든 실수와 잘못을 삭제버튼 누르면 안 되는 것이다. 어쩜 우리는 너무 많은 변명으로 과거를 대신하며 지금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 또한 오랜 시절을 꿈을 얘기만 할 뿐 그것을 다시 한 번 도전하기위해 애써 본적이 없다. 물론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 생각이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았던 적이 훨씬 많았었다. 내가 그토록 매달리고 있는 그 꿈이 나를 얼마큼 성장시키고 외로운 마음을 달래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스무 살의 불면증처럼 서른이 넘은 내가 고민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보니 생각만큼 내가 원하는 꿈은 아주 큰 것은 아니었나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에게로 다시 돌아가는 꿈을 꿔본다. 신현림이 자신이 지나온 서른 살을 다시 돌이켜 보며 쓴 이 책을 통해 나는 처음 초반에 그녀가 쓴 이십대의 글이 풋풋하지만 서른을 넘기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쓴 후반부의 글이 훨씬 좋다. 그녀가 꿈꿨던 자신의 그리운 시절로 돌아갔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나에게도 있었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성숙한 자아를 만날 수 있을까.

 

없더라도 나는 그때, 눈물을 흘리며 공모전에 떨어져 일기를 썼던 나를 만나고 싶다. 그때 못해줬던 얘기를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으로 외로운 시간을 견디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는 것을 지금은 살짝 알겠으니 그때 나에게로 돌아간다면 다독이며 위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흘러가니 지금도 마음의 우물에 너무 많은 물을 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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