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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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과 고등학교 때까지 보름에 한 달에 두 번씩 나오는 만화 잡지가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연재하는 작품의 뒷얘기를 기다리는 잡지를 읽고 또 읽느라 보름이 훌쩍 가버리곤 했다. 좋아하는 대사나 그림은 읽고 또 보고 보름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더니 어느덧 초등을 지나 중학생으로 고등학교에서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감동을 주는 작가들의 만화를 기다리며 보낸 세월처럼 때론 주간지나 계간지가 아니더라도 매년 혹은 더 늦게라도 기대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은 내 유년시절의 보름이라는 시간의 단비 같을 때가 있다.

 

 

<완득이> 때문에 김려령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그녀의 다음 작품을 매번 기다리게 되었다.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동화 이후 그녀의 장편 소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오랜 짝사랑에게서 전화가 온 것처럼 덥석 손을 잡지도 못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그런 작가였는데, 이번 <가시 고백>에 대한 느낌은 뭔가 좀 서운한 마음이 드는 기분은 뭘까.

 

좋아했던 교회 오빠를 다시 만났는데 내가 나이가 먹은 것처럼 그도 나이를 먹어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진 중년의 아저씨를 만났을 때의 그 당혹스러움과 지난날의 설렘이 아련해지는 그런 기분, 이라고 할까.

<가시 고백>에는 여전히 익살스럽고 재미난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부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주인공이라고 해야 할 해일이보다 진오가 훨씬 더 재미있는 조연의 역할을 하게 배치 해 놓았다.

 

가발 공장에서 30년이 넘게 일하며 숙달된 손놀림이 죽지 않은 엄마의 피를 물려받아 손놀림이 빠른 해일, 새 아빠와 함께 살고 있지만 여전히 이혼한 아빠의 연민을 버리지 못하고 이혼한 부모 밑에서 감당해야 하는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지란, 태생부터 틀렸는지 초등부터 고등까지 반장 한 번도 놓치지 않고 한 다영, 이들 사이에 적절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진오는 한반의 친구들이다. 고등학교 2학년을 살고 있는 이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들이 있다.

 

 

엄마의 빠른 손을 물려받은 해일은 도둑이다. 호기심으로 슈퍼에서 껌이나 사탕을 훔쳤던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손이 반응하는 그런 도둑이다. 해일은 머리보다 손이 먼저 반응하며 물건을 훔치게 되었다. 그렇게 지란의 전자수첩을 훔치고 자신의 빠른 손에 대한 죄책감과 마음의 짐을 덜어 놓고자 일기를 쓴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진다. 이것이 해일의 가슴에 박혀있는 가시 고백이다.

 

지란은 새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 처음부터 새 아빠와 친해지지 못했지만 천천히 새 아빠와의 거리를 좁혀 가려 했지만 새 아빠의 전자수첩을 학교로 가져간 후 도둑맞은 후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새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으로 지란은 재혼한 엄마부터 가슴의 가시로 박혀있다. 하지만 진짜 가시는 지란의 친부다. 친부는 지란에게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며 딸을 찾는다. 지란은 모른 척 하고 싶지만 친부를 떨치지 못하는 자신에게 원망의 가시를 가슴에 박고 살고 있다. 지란 역시 이런 가시를 뽑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누구에든 이런 가시가 있다는 얘기를 할 수가 없다.

 

다영은 고3 반장을 하면 만랩을 찍는 반장다운 반장이다. 옛날과 같지 않게 요즘 반장들을 하고 싶어서 하기보다는 가산점을 얻기 위해 하기도 하지만 다영은 희생과 배려를 가진 반장이다. 아이들을 위해 항상 먼저가가 아닌 다음에 서 있다. 그래서 담임과의 면담도 일찍 가고 싶은 아이들을 위해 가장 나중에 하지 않았던가. 다영은 늘 반장이기 때문에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갑갑하다. 이런 답답함이 가슴에 박혀 있다. 이런 가시들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반장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한다고 다영 스스로 다독일 뿐이다. 그런 다영을 잘 알고 있는 담임은 다영의 가슴에 박혀 있는 가시들을 빼지며 보듬어 준다.

 

네명의 주인공들 사이에 가장 어정쩡한 입장에 있는 사람은 준오다. 준오의 가시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해일이 지란의 친부의 집에서 넷북을 훔치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 친구에 대한 우정과 의리, 진실 사이에서 가장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해일을 발고해야 할 것인가 친구로서 지켜줘야 하는 것인가 많은 고민들이 가시로 남았을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는 말을 듣게 되면 웃으며 넘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들 그 말들이 가슴에 박혀 내내 생각 날 때마다 아플 때가 있다. 그럴 때 상처 받음 마음을 가슴에 못이 박힌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가시 돋친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말들이 가시로 박혀 아프다는 말을 하곤 한다. 이런 부분에서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시는 상처지만, 이들에게 가시란 고민과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해일이 도둑이 되는 것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갈등,지란의 친부에 대한 연민과 새아빠와의 갈등, 반장으로 지켜야 할 역할과 고민을 가지고 있는 다영 또한 갈등의 가시를 가지고 있다. 소설의 중반으로 가면서 해일이 병아리를 부화시키며 그들은 갈등의 고리를 풀어 나간다. 병아리가 후라이드 반, 양념반으로 자랄 때까지 그들에게도 시간이 필요 했다.

만나게 되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완득이의 담임 동주의 캐릭터는 <가시 고백>에서 분산되어서 나온다. 해일이의 형 해철, 해일의 담임 용창느님으로 따뜻함을 가지고 캐릭터가 분산되다 보니 모두에게 애정을 쏟기 힘든 부분이 있다. 해일의 담임의 역할을 좀더 힘이 실어 줬거나 혹은 지란도 가슴을 뛰게 하는 독특한 해철에게 좀 더 실어줬다면 좋았을 것 같다.

 

 

비록 전작에 비해 감동이 사라진 부분은 없지 않지만, 작가의 착한 심성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주인공들을 모두 보듬어 주려는 작가의 마음, 어느 누구 하나도 낙오자 없이 작품속에 잘 녹아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느끼지 못했다면 김려령을 잘 모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알뜰살뜰하게 남을 잘 챙겨주는 이웃 언니 같은 사람이니까.

그녀에게 완득이를 또 불러와 달라고 하고 싶지 않다. 그건 그냥 완득이가 완득이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득 다른 곳에서 그들이 오지 않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은 독자의 욕심일지 모르겠다. 다만, 그녀의 끊임없는 작품 활동에 발을 걸어 넘어뜨리게 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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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6 0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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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6 02: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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