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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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라는 네임 하나만으로도 큰 울림을 준다. 세계의 오지를 떠돌아 다녔던 그녀, 말라리나에 걸려 생과 사를 몇 번씩 넘겼지만 살아남았다. 대부분 한번 겪은 일에 크게 상처 받거나 질려서 절대로 같은 일을 하지 않을 것 같지만 절대로 물러나지 않은 강철 같은 그녀. 누군가 그녀처럼 살아보라고 한다면 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며 뒷걸음질 치며 달아날 것만 같다. 그녀의 구호의 일은 절대로 만만하지 않고 어렵고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더 특별해 보이고 강단 있는 그녀의 삶이 위대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녀의 여행 기록문을 모두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녀를 알게 해준 <지구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으면서 나의 나이를 한번 떠 올려보았다. 그녀가 가슴 뛰도록 행했던 일을 시작했던 나이가 몇이지? 그것은 내 가슴속에 꿈틀대고 있는 꿈을 이루기에 늦지는 않았을까하는 걱정이었던 것 같다. 이런 나에게 한비야는 그런 말을 하겠지.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 늦게라도 시작하는 편이 백배, 천배 낫다. 시도해보지 않는다면 성공할 기회는 0퍼센트다. P95"

내 인생의 모토는 <도전하는 삶>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늘 현실이라는 시간에 도전은커녕 하루의 시간을 쪼개어 쓰는데 실패하며 매번 투정과 불만으로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울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주말 지내면 월요일이 오고 억지로 일어나 억지로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출근을 하고 밤 되어 집에 돌아와 노곤한 하루를 정리하고 그렇게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며 또 일 년이 가는 것이 허무하다고 생각하는 청춘들이 어디 한두 명일까, 그런데도 그녀는 서른아홉에 중국 유학을 가서 중국어를 배우고 더욱더 많은 이들을 구하는 일을 하기위해 보스톤으로 유학길에 오르는 그녀의 삶의 원동력은 대체 무엇일까.

 

<그건, 사랑이었네>는 그녀의 삶의 원동력들에 대한 질문의 답을 얘기해주고 있다. 그녀의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가난한 오지의 사람들을 구하는 일들이 그녀의 희망이며 꿈이며 삶의 원동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프리카 수단의 한 아이가 기니아충에 감염 되어 살갗으로 삐져나오는 기니아충 때문에 구토를 하고 괴로워하는 아이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녀는 눈물보다 더 현실적인 것들을 얘기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물은 생명 그대로라고 했다. 하지만 물이 어디 아프리카만 중요한 것일까. 이미 우리나라도 물 부족 국가이지만 간혹 점심시간이 끝나고 양치질을 하러 화장실에 가면 물을 틀어 놓고 이를 닦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가 수도꼭지를 닫아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칫솔질을 하는 동안 물을 틀어 놓고 있는 사람들의 물 사용 때문에 간혹 화장실 거울에 이런 부분을 권유해줄 문구를 써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때도 많았다. 모두에게 특히 아프리카에선 더욱도 소중한 그 물을 우리는 너무 쉽게 흘려보내고 있다. 그녀는 이런 물이라도 좀 아껴야 한다는 얘기를 한다. 이런 얘기들은 우리가 물에 대한 얘기를 할 때마다 하는 얘기지만 습관이라는 것이 무섭다. 쉽게 틀면 나오는 물 때문에 물이 소중한 것을 모르는 우리들은 어디서부터 고쳐나가야 할까.

 

그들에게 수십 미터라도 내려 보내서 떠 올릴 우물을 만들어 줄 수는 없지만 내가 좀 아껴 준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녀의 권유대로 뭔가 실천을 하고 싶어진다. 이것이 한비아의 힘인 것 같다. 그녀는 에세이를 쓰지만 읽는 이들은 이 책이 에세이가 아니라 자기 계발서로 돌변하고 만다. 그녀가 구호 과정에서 생긴 일들을 얘기하며 스스로의 시간을 반성 할 때만다 내게는 어떠했을까 고민하게 되고 실천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맨토로 삶고 싶어지는 것일 거다.

 

그녀의 삶의 원동력이 구호의 일이라지만 그녀도 안식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 안식과 위로는 그녀의 기도에서 비롯된다. 그녀는 끊임없이 기도한다. 종교의 벽이 없는 그녀는 이슬람교인과도 교류하며 그들의 종교를 인정해주고 받아들여준다. 그것이 꼭 그 종교를 흡수하고 따라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녀의 종교 얘기가 거슬렸다. 종교가 없고, 특정 종교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어 기도라는 단어를 더욱더 싫어하는 사람인지라 그녀가 기도로 사람들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는 부분을 읽을 때마다 책장을 넘겨 버리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그녀의 얘기에 집중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편견 없는 종교의 이해다. 이슬람 친구에게는 그녀의 성경책을 그녀는 코란을 읽으며 서로를 더 이해 할 수 있도록 하는 그녀는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해하려한다. 물론 꼭 서로의 종교에 대한 이해가 그녀의 방법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더 그녀의 종교 얘기에 거부감을 거두어 드린 부분은 그녀의 기도는 자신의 안녕과 평안을 위한 것이 아니라 깨끗한 물만 있어도 눈이 멀지 않을 수 있었던 수단의 한 아이를 위한 기도이며, 물을 길러 가기위해 위험한 길을 가는 여자아이가 성폭행을 당하지 않고 무사히 올 수 있도록 하는 기도이며, 하루만 더 일찍 아니 열 시간만 더 일찍 자신을 만났으면 죽지 않았을 6개월 지난 아이를 위한 기도라는 것에 가슴이 따끔거린다.

 

사실 아직도 나는 그녀가 평범한 여대생에서 직장생활을 벗어나 낡은 남방에 면바지, 지퍼 가득 달린 조끼를 입고 말라리아에 몇 번씩 걸려 사경을 해매거나 피부병에 걸려 괴로운 나날을 지내는 것이 이해 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런데 얼마 전에 유기견과 고양이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며칠 가슴이 먹먹해져서 울다가 나도 모르게 고양이 사료를 사고 밤이면 다른 사람 모르게 사료들을 놓고 오는 날들이 생겼다. 그녀가 월드비젼에서 일하는 이유는 더 특별한 것이 있겠지만, 나는 왠지 내가 느낀 그 감정과 별반 다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생각과 실천, 그 분기점에서 분명 갈등이 생기며 결국 생각을 넘어선 실천만이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많은 청춘들에게 희망을 주거나 절망을 주기도 한다. 그녀처럼 살고 싶다는 희망, 해보니 절대로 그녀처럼 될 수 없는 절망. 하지만 그녀는 그런 청춘들에게 그런 말을 할 것이다. “두드려라, 열릴 때까지!” 그리고 그녀의 말처럼 꽃이 피는 시기가 다들 다르니 내 행복이 꿈이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걱정하지 마라. 개나리는 봄에, 국화는 가을에 꽃이 피지 않느냐…….국화인 나는 아직 가을이 오지 않았으니 꽃을 피우지 않을 뿐이다. 단지 내 시간이 아직 봄을 길게 즐기다 오는 것이니 곧 여름이, 그리고 가을이 올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시작하라고. 그래서 이었을까? 그녀를 보면 사람들이 돈을 주며 구호하는 일에 보태달라고 한단다. 생일날 자신에게 멋진 코트를 사주기 위해 백화점을 가다 만난 여대생은 코트 값을 모두 한비야에게 주는 훈훈한 에피소드들이 어디 한두 개일까. 언젠가 책을 읽고 그녀의 삶에 자극을 받은 어떤 겨울날 나는 월드비전으로 전화를 걸어 매월 기부를 하고자 자동이체를 걸어 놓았다. 그것이 벌써 삼년이 되어 간다. 그 작은 돈이 아프리카 어느 아이에게 물 한 모금이라도 도와 줄 수 있다는 것을 간혹 통장정리를 할 때마다 느끼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좀 더 열심히 살자고 생각했다. 아주 작게나마 누군가를 도와 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을까. 일주일에 두 번씩 몰래 고양이 밥을 주러 나갈 때마다 밤마다 보는 그 고양이들에게 작게 인사를 할 때마다 즐거워지는 마음, 이것이 무엇일까. 그녀 또한 이것을 그렇게 부를까.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단어지만 잠시 즐거워지는 것을 보니 나 또한 그녀처럼 이불속으로 파고들며 잠을 청할 때 내일은 얼마나 즐거울까 생각 할 수 있는 단계까지 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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