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다다오의 도시방황]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안도 다다오 지음, 이기웅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안도 다다오의 도시 방황.

 

오래전부터 정말로 가지고 싶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출국과 입국 도장이 가득 찍힌 너덜너덜한 여권이었다. 요즘 유독 여행관련 책을 많이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들고 얼마전 아는 지인의 터키 여행 사진은 나의 갈망을 더욱 극대화 시켰다. 세계의 절반을 자전거로 돌았다는 모 예능 프로에 나온 젊은 청년이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부러움을 21세기도 아니고 20세기 그것도 1960년대에 아시아인이 유럽을 방황하며 그곳에서 자신이 원했던 건축이라는 꿈을 이뤄냈다는 인도다다오는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스러운 인물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보통은 건축 관련 대학을 나오거나 그쪽을 통한 일을 통해 건축과 관련된 직업을 갖은것이라고 생각하는 통상의 생각에서 벗어난 인물인 안도다다오의 세계 각국의 건축물에 대한 생각은 그저 건축이란 건물의 내부와 외형으로 나눠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무지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생소할 뿐이다.

 

언젠가 분당 쪽을 지나고 있었는데 빼곡히 들어찬 아파트 라인이 눈에 들어왔었다. 마치 누워 있는 여인의 곡선을 연상하게 하는 아파트의 높이들이었다. 도시를 디자인한다는 어느 광고 카피의 말처럼 건축의 미학은 날이 갈수록 깊어진다.

 

안도다다오가 건축의 꿈을 갖게 되는 것은 어느 유명 건축 설계자의 도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채 건축을 지향한 나날은 긴장과 불안 속에서 낯선 땅을 홀로 헤매는 여정과 같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P11) 1960년대에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무거운 짐 가방을 들고 해외여행에 나선다. 그가 건축을 꿈꿀 수 있게 해줬던 르 코르뷔지와 만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도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안도다다오는 전문적인 교육 없이 멋진 건축가가 되었다. 요코하마에서 배를 타고 나훗카로 건너간 후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모스크바를 지나, 북구에서 파리로 들어가는 코스를 밟아 그는 르 코르뷔지의 건물을 보러갔다는 부분에서 그의 오랜 시간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비행기 한번이면 하루도 안 걸려 태평양도 건널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의 시대는 이렇게 눈물겹게 길을 건너야만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를 통해 할게 된 무수히 많은 도시들은 그가 빛을 좋아하는 건축가로 만든 것은 아닐까.

 

그의 건축에 대한 소신 있는 신념은 멋지다. 그 어떤 형태와 형식이 없는 로스엔젤레스의 도시를 보며 그는 말했다.

“나는 건축에 최소한의 자료와 형태를 이용하여 최대한의 효과를 발취하고자 한다. 일견 단순하게 보일지라도 실은 복잡한 공간을 창출하고자 한다. 나는 건축을 만들 때 예컨대 원과 정방형, 입방체와 같은 원초적이라 할 최소한의 기하학 형태를 이용한다. 애매함은 철저히 배제하여 모든 요소를 내려버림으로써 성립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P218)

모든 요소를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이용하여 만들어내는 건축이야 말고 가장 근사한 작품이 아닐까. 인공적으로 만들어 질 수밖에 없는 건축은 자연을 살려 놓는다고 해도 이미 자연은 훼손되어 버린다고 생각한다. 웅장하고 멋있게 만들기 위해서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리는 것에서 자연을 살려 놓는 그 자연스러움이 가장 아름다운 건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작품들을 더 많이 만났으면 좋겠지만 요즘 어디 그런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간혹 드라마나 영화 혹은 현실에서도 건축을 의뢰한 사람들과 설계자들과의 관계가 원만치 않아 무산되거나 큰 갈등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것들을 정의하는 그의 말 또한 현명한 부분들이 있다.

“건축은 건축가 혼자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좋은 건축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건이 구비되어야만 한다. 그 조건 중 하나로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존재가 건축주다. 예컨대 가우디의 구엘 공원도 구엘이라는 후원자의 열정 없이는 태어날 수 없었고, 구겐하임 미술관도 라이트의 꿈을 공유하는 감성을 갖춘 구겐하임 없이는 완성될 수 없었다. 건축주 또한 건축가의 공동작업자다.” (P212)

 

그는 구엘에 대한 언급이 많다. 구엘은 유명한 가우디의 후원자였다. 그런 후원자가 있어야만 건축은 건축가만의 것이 아니라 건축가의 이성과 창조력, 건설자의 기술과 열정, 거기에 건축주의 경제력과 의지가 존재해야 비로소 건축은 성립된다고 했다.

건축가의 설계를 받아 줄 수 있는 경제력 있는 건축주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예술가의 혼을 모두 담아주며 그를 후원해줄 수 있어서 그의 예술세계가 확대될 수 있었던 오래전 화가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비록 넉넉한 경제력은 아니었지만 그를 먹여 살렸던 테오가 없었다면 고흐는 더 일찍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본인의 50세 생일 선물로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어 달라고 한 벨바움씨와의 작업 얘기에 그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좋은 건축을 만들기 위해서 좋은 건축가와 건축주가 필요하다는 그의 말에 따르면 그가 만들어 낸 많은 훌륭한 건축물들은 얼마나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뤄졌다는 것인가. 그를 믿고 그의 신뢰를 통해 만들어진 공간과 그 공간속에 녹아든 시간이 멋지지 않을 수 없다.

 

콘크리트와 철과 유리라는 소재, 그리고 그것들을 밑받침하는 기술에 따라 확대해온 20세기의 건축, 그 자체에 집착한다고 하는 그의 건축물의 사진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정규 교육도 받지 않고 노력하며 만들어낸 그의 집착물들에 마음이 녹녹해지고 말았다. 그의 도시 방황 속에 스며들었던 그의 건축의 생각들은 나를 자꾸만 들뜨게 만들었다. 한 건축가가 자신이 떠돌았던 유럽과 아메리카의 도시들에 남겨진 방명록을 들춰보는 재미에 자꾸만 그 도시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가 마치지 못한 도시를 내가 방황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앞으로 건물이 그냥 건물이 아닌 누군가의 집념의 집착물이라고 생각하니 나의 집착물은 무얼까 고민스러워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