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책 표지를 덮고 있는 글 중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최인호의 첫 전작소설이라는 단어였다. 전작소설이라니? 글의 서두 부분을 읽으면서 작가에게 이 소설이 어떤 소설인지 마음이 먹먹해졌다. 사실 작가 최인호의 암투병 얘기도 책 때문에 알게 되었고, 그의 화려한 작가 이력에 나는 유독 그가 자신은 현대소설 작가라고 말했던 그런 소설만 골라 읽었다는 것에 놀랐다. 나는 그가 쓴 시대소설, 역사 소설을 읽지 못했다. 그 유명한 <상도>, <해신>,<유림>은 나의 책 목록에 적혀 있지도 않은 소설들이다.

아주 많이 조숙했던 나는 중학교 2학년때 학교에서 이문열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를 읽고 이상 문학상 수상작을 뒤지다가 처음 최인호의 작품을 읽었다. 고등학교 2학년때 문단에 등단한 그의 필력도 사실 부러웠지만 매번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상업적인 작품의 구성미에 나는 더 높은 평가를 해 주고 싶었다. 어쩜 이런 소재들을 이렇게 맛깔나게 잘 찾아오는 것일까. 타고난 문장력이야 그렇다 치지만 소재의 발굴은 작가의 미덕인 것을 모두 갖춘 사람은 대체 뭐란 말인가 했었던 그의 작품들을 읽을 수 있었던 날들을 떠올리고 나니 나는 역시 그의 시대상을 다룬 소설보다 현대 소설에 더 매혹되어 있었다.

 

주인공 K의 이야기로 토요일, 일요일 그리고 월요일로 이어지는 자아의 분열과 자아를 다시 찾아가는 얘기는 거울의 뒷모습이다. 내가 오른손을 들면 거울 속에는 왼손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다가오는 모습. 익숙하지만 전혀 다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주인공 K는 아침 눈을 뜨면서 자신이 하지 않았을 행동들 하나씩 발견한다. 주말은 절대 울리지 않는 알람소리가 울리는가 하면 아내와의 잠자리에서의 실수들도 이상하다. 그리고 그가 사용하는 화장품의 브랜드도 바뀌어 있다. 마치 나의 집이지만 내가 아닌 나와 취향이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은 공간의 착각을 만들어 낸다. 나는 어떤 사람이라는 생각보다 왜 내가 하지 않았을 그런 행동들을 느끼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 하기 시작하며 서서히 K는 자신의 행적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분명 자신의 공간이고 자신의 시간이지만 K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생각에 잃어버렸던 핸드폰을 찾고, 십여 년 동안 만나지 않았던 누이를 만나고 자신의 핸드폰을 주었던 낯선 사내를 만나고 그 사내에게서 받은 핸드폰에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아내의 낯선 영상이 찍혀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자신의 행적을 따라간다. 그것은 마치 작가가 그동안 많은 작품을 써 왔던 자신의 시간을 돌이켜보는 것과 같다. 지난 시간을 추억하거나 지나쳐왔던 기억들을 다시 들춰내고 있는 것 같다. 암투병을 하면서 손톱이 빠지는 아픔을 견디면서도 두달 동안 써 내려간 이 소설 속에는 작가의 지나쳐왔던 낯선 자신과의 조우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열심히 글을 쓰고 쓰는 작품마다 영화가 되었던 자신과 아픔을 견디고 있어야 하는 자신과의 조우. 낯선 도시 속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K가 작가 최인호가 아니었을까.

 

십여 년 만에 만난 누이에게서 느끼는 욕정과 욕망, 친구H의 욕설과 배신, 그의 정부 간호사의 갈구들은 모두 나의 이면 속에 잠들어 있는 제 2의 나의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게 된다.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난 다는 것, 너무 낯설고 무서워졌다.

 

소설이 흥미롭게 읽히지만 리뷰를 쓰기에 만만찮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벌써 몇 번을 썼다 지웠다가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살인 사건 하나 일어나지 않지만 긴장감 잔뜩 가지고 있는 것은 읽다가 나의 또 다른 자아와 만나는 일이 내게도 던져질 것 같아서일까.

<나는 곧 ‘나’가 되었으며, K1과 K2는 합체하여 온전한 하나의 ‘K'가 되었다>는 그의 말에 눈물이 맺혔다. 마치 작가 최인호가 아프지 않은 자신과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의 멋진 소설을 더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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