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밤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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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문학의 숲> 차가운 밤 _ 바진

 

 

 

 

붉은 장미가 그려진 치파오를 입은 여자의 모습이 전부 담아있지 않는 다리만 보이는 사진을 들여다본다. 치파오는 늘 <화양연화> 장만옥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였을까. <차가운 밤, 寒夜>이라는 제목 때문에도 쓸쓸함이 책장을 덮고 있는 것만 같다. 묵직하지도 않는 책이지만, 책장을 덮고 있는 묵직한 분위기는 무시할 수가 없다.

시공사에서 내 놓는 세계문학의 숲 중 네 번째의 이야기, 중국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근대화 사회를 만들어 놓았던 시대를 살다간 역사적인 인물인 ‘바진’의 책이다. 책장에 있는 작가의 출생 연도를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904년생인 작가는 2005년에 생을 마감했다. 백 한살을, 남들은 1세기도 다 못 살고 세상을 떠나지만 작가는 2세기나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생의 기간이 길었듯 역사의 소용돌이에 있었던 역사적 증언을 바탕으로 해 내 놓은 소설은 생동감이 가득하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여름에는 늘 전설의 고향을 해 주곤 했는데 그때 가장 많이 나왔던 소재들은 고부간의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며느리가 귀신으로 나와 자신의 한을 풀어 달라고 하는 얘기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는 방송을 하지 않지만, 4주후에 보자는 유행어를 남긴 <사랑과 전쟁>속에서도 고부간의 갈등으로 당사자들의 문제가 아닌 외부의 문제로 헤어지는 얘기들도 많았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관계의 문제점은 많이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이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중국도 별단 다르지 않는걸 보면 말이다. 그게 어디 한 나라의 문제일까. 세상의 어디든 인간이라면 존재하는 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소설속의 주인공들, 왕원쉬안, 청수성은 대학시절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되고 아이를 낳으며 살게 됐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결혼식을 치르지 않고 살고 있다. 그리고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는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자신보다 높은 교육수준도 못마땅하지만, 가족을 돈을 아끼며 살아가는 한 가정의 아내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 빨래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아픈 몸으로도 희생하며 살고 있지만 직업을, 그것도 1940년대에 은행에서 일 하는 며느리는 눈에 가시 같기만 하다.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내세울 것은 자신은 정식으로 결혼을 해서 집에 들어왔다는 것 말고는 없다. 집안 형편에 맞지 않게 아들을 귀족학교에 보내는 며느리를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작품에서 극단적으로 치닫는 만큼의 고부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부분은 적다. 며느리를 무시하는 말은 그간 보아온 드라마들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인지 두 사람의 갈등에 화해의 장을 만들어 주고 싶을 정도로 참 오순도순하다. 아마도 작가의 그런 심성을 닮은 것 같다. 물론 작가의 심성 따위 알지 못하지만 사진으로 보는 그의 얼굴에서 보여주는 선한 모습은 작품에 많이 녹아 있는 것 같다.

 

고부간의 갈등 중 가장 많은 미움을 받는 것은 중간 역할밖에 할 수 없는 남편이다. 왕원쉬안은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안쓰러울 정도로 우유부단하고 착하기만 하다. 그들의 관계는 한 나라의 역사와 많이 닮아 있다. 일본의 침략 속에서 언제 방공호로 몸을 피신해야 할지 모를 만큼 위태롭다. 아내는 시어머니의 모진 말과 멸시와 무시 속에서 언제 집을 나갈지 모른다. 나라를 언제 잃을지 모를 불안함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왕원쉬안은 가정에서도 똑같은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했다.

 

“어머니는 고통을 호고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아내는 빛나고 풍부한 생명력과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청춘으로 그를 대했다. 그는 어머니의 초췌하고 수심 어린 얼굴을 보는 게 두려웠고, 아내의 생기발랄한 얼굴을 대하는 것도 두려웠다. 그는 더욱 말이 없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P110"

 

그의 불안은 가정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점점 아파오는 몸을 위해 휴식을 취해야 하지만 전쟁의 불안한 시국에 언제 해고 시킬지 모를 냉정한 상사만 있을 뿐이다. 그를 가장 위로해 주었던 친구도 죽고 시어머니의 모진 말들도 참으며 같이 해줄 것 같은 아내도 떠났다. 그를 찾아오는 것은 폐결핵 균들밖에 없다.

 

고부간의 갈등은 역사의 갈등과 함께 존재하며 주인공의 쓸쓸한 최후를 보여주며 소설은 끝이 났다. 큰 굴곡을 가지고 있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읽는 동안 삶이 우리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을 계속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갈등에 누구하나 나쁘다고 말 할 수 없게끔 작가는 서로를 이해하게 주인공들을 설정해 놓았다. 자신의 세대와 다른 며느리를 이해해야만 하는 시어머니와 똑같이 살기엔 너무 젊고 똑똑한 며느리, 삶의 한편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가장의 무거운 현실에 어떤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먼 곳으로 전근을 갔던 아내가 다시 남편을 찾아왔다가 남편의 죽음을 알고 다시 돌아서서 가던 차디찬 밤의 기운이 소설 전반에 깔려있어 읽는 동안 차가운 바람이 계속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붉은 장미의 치파오를 입은 그녀가 멀리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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