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코브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디 아더스 The Others 1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 공보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이런 소설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상상력을 자극하는 SF,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경찰이 나오니 범죄 수사극, 한 마을을 탐구하는 걸로 해석할 수 있는 심리 드라마라고 해야 할까. 푸른숲에서 The others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고 언젠가 보았던 영화의 제목과 일치하니 일반적이지 않은 다른 것들과의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나는 이 책을 읽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좀처럼 나오는 등장인물에 몰입을 할 수 없었고 지루한 부분들을 어떻게 하면 빨리 넘어 거서 읽어 낼까 그 고민만 했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들을 많이 놓치고 말았다는 것을 알았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파인 코브는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미관 위주로 설계된 마을이어서 기능 면에서는 디즈니랜드와 다를 바 없다. 성업구역의 구조와 서비스도 주민들의 편의 따위는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 (P184)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많은 권태에 찌들어 있다. 그런 대표적인 인물은 살인 사건을 담당하게 된 시오경감이다.

시오는 오랜 세월 대마초에 찌들어 있었고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자신에게 찾아온 반갑지 않은 손님, 권태라는 것을 알았고 그 권태는 일순간 무너지고 곧 그의 권태를 날려버릴 것을 찾으므로 권태가 사라져 버린다.

 

파인 코브 마을의 9월, 9월은 밝은 앞날을 예고하는 달이라고 한다. 그 달은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달. 관광객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마을이기 때문에 그간 많은 관광객을 치루고 조용해진 9월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그렇게 한숨을 쉬며 평정을 찾을 줄 알았던 파인 코브 마을에는 세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첫 번째는 파인 코브 마을 남쪽으로 6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디아블로 협곡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 파이프에 작은 누수가 발생 한 것과 민달팽이 술집에서 블루스를 노래 할 가수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낸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인 베스가 목매달아 자살한 일이다.

 

첫 번째 사건과 마지막 사건이 서로 엮어지고, 두 번째 사건의 배경으로 깔리면서 이 세 가지를 풀어내는 것은 시오 경감이다. 앞에 말한 것처럼 그는 권태로 대마초에 찌들어 있다. 그는 대마초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다. 시오처럼 어떤 것, 즉 우울증이라는 것에 중독되어 있었던 마을 사람들이 그 중독을 벗어나면서 생기는 부작용과 함께 마을의 평정을 찾는 소설은 대 활극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잔잔하고 주인공이 뚜렷하게 없는 글이고 마을 주변의 인물들 간의 각각의 캐릭터들의 활용이 눈에 들어온다.

 

작가는 어느 작은 마을 전체가 우울증을 앓고 있고 그래서 항우울제 약을 복용하고 있다 중단했을 때의 반응과 그것과 함께 그 우울증과 함께 어떤 포식자라는 것을 하나 넣어서 일어날 것을 상상하며 소설을 섰다고 하는데, 솔직히 이 소설의 전반은 관광객이 빠져 나가 버린 텅 빈 마을의 모습처럼 지루하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그 어떤 호기심이 일어나기까지 작가가 서술하는 캐릭터들의 장황한 묘사들이 극적 긴장감이 떨어지며 작가의 의도가 정말 그랬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너무나 착하고 착실하게만 마무리 되는 이 소설의 결말을 미덕으로만 치부하기엔 너무 부족하지 않을까.

 

왜 두 아이의 엄마가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구구절절한 사연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삶의 한 이면을 보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다.

 

사람보다 사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방사능 물질에 눈을 뜬 커다란 바다괴물과 그 바다괴물을 사랑했던 몰리와의 만남, 이별이었다. 간혹 바다 괴물의 부분이 서술되는 장면에서는 이 바다괴물 참 매력적이고 통속적이다 싶다가 어떻게 결말을 맺을까 궁금했었는데 작가의 천성이 착한 것인지 인간과 사랑을 이루지 못한 바다 괴물에게 사랑을 찾아주는 것 같으니 사랑 전도사라고 해야 할까.

권태에 찌들어 있던 시오에게도 그 권태를 벗어 낼 수 있는 사랑을 찾아주디 더욱 그런 것 같다.

 

작가의 결말을 생각해보자.

그가 원하는 인간의 삶의 모습은 어때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착하게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사실 ‘칫, 착하게 굴기는’이라고 속으로 비웃었지만 그게 나쁘지는 않으니 이 소설의 결말처럼 뭐 괜찮은 결말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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