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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ㅣ 지식여행자 5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한번쯤 떠올리는 죄의식, 책임감
몇 년 전 아스카이 치사의 책 “하루가 떠나면”이라는 책을 읽었을 때의 일이다. 그 책속의 주인공 하루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개였다. 늙은 노모를 모시듯 늙은 개를 남매가 번갈아 가며 돌보며 남매의 얘기도 풀어간다. 책속의 주인공인 하루는 그렇게 자신의 주인들에게 끝까지 돌봄을 받으며 세상을 떠났고 세상을 떠나면서 남매는 하루를 책임지며 돌보면서 느낀 부분들을 떠올리는 내용이었다.
언젠가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있는 이슬 같은 강아지 한 마리가 떠올라 많이 우울했었다.
태어나서 주인이 네 번이나 바뀌고 결국 죽음의 원인도 알지 못한 채 싸늘하게 죽어간 그 강아지는 내게 두 번이나 왔다가 떠났던 강아지 이었고 그 강아지 때문에 책임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돼 초롱초롱한 눈망울 때문에 귀엽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 절대로 품속에 품어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 내게 마리여사의 행동은 존경스런 마음이 바다 건너 그녀의 집에 머물러 함께 그녀의 개와 고양이를 돌보고픈 마음까지 들게 한다.
많은 이들이 반려동물을 버리기도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는 말로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사람들도 많다. 마리여사처럼 유기견들과 고양이들을 키우는 사람들 또한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리여사가 들려주는 그들의 얘기들은 마치 운명처럼,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운명처럼 가족이 된 그들
러시아 번역가이며 통역사인 그녀가 일 때문에 만났던 무리와 도리, 그리고 겐, 페르시안 블루 고양이 타냐와 소냐, 겐 때문에 가족이 된 노라, 소냐의 자식인 시마와 료마의 대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마리여사는 마냥 동물이 좋아서 키우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함께 가족이 되면 그녀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태어날 때 가족을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유기견이었던 겐이, 길고양이였던 무리와 도리가 운명처럼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것도 어쩜 그런 선택 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유기견이었던 겐은 마리여사가 자신의 주인이 될 것을 알고 기다려 온 것처럼 작지도 않은 몸으로 얌전히 자신을 받아 줄 주인을 위해 케이지 안에 몸을 구부려 들어가 앉는 모습에서는 코끝이 찡해왔다. 이렇게 그들이 가족을 맞는구나 싶고 또 겐의 그 행동을 옆에서 봤었다면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 참 착하구나.” 칭찬을 많이 해주면서도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렀을 것 같다.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 같은 녀석의 그 행동이 참 애잔했다.
무리와 도리는 또 어떤가.
그녀가 발견한 두 마리의 길고양이들은 위험한 도로 속으로 사라질지 모르는 운명이었는데도 마리여사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지키기 위해 일하는 도중 우여곡절을 겪으며 다정한 ‘겐’이 있는 집으로 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러시아에서 별견한 타냐와 소냐는 세관을 통과하기위해 온갖 시뮬레이션을 다 생각해 만반의 준비를 해서 가족으로 만들고 말았다.
이렇게 마리여사는 참, 대단한 가족을 만들어 냈다.
인간 수컷이 없어도 사는 것은 다 똑같지.
“고양이나 개도 좋지만 자네는 그보다 빨리 인간 수컷을 키우도록 노력하게. 인간 수컷 말이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요네하라 마리여사는 그의 은사님에게 이런 연하장의 답장을 보내셨다. 그 선생의 그 제자라도 둘 다 어찌나 센스쟁이시던지. 그녀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해박한 사회적인 식견, 소신 있는 그녀의 정치성 그리고 무엇보다 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즉 나보다 더 나약한 것들을 안타까워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괜찮은 여자가 연애나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동물만 키운다는 것이 안쓰러워 보일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어쩜 우리가 꼭 짝을 지어 살아야 한다는 편견일 수 있다. 그녀는 동물과 함께 살면서 인간 수컷이 주는 희로애락을 더 많이 느끼며 살았을 것 같다.
겐의 충성심, 일이 밀려 있을 때는 힘들고 귀찮았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녀를 운동시켜주는 겐과의 산책, 그 산책덕분에 그녀는 밖의 향기와 소음이 주는 어떤 평화도 누렸을 것이다.
동네에서 절대적으로 아름다움을 뽐내는 도리를 지키기 위해 항상 밖에서 집을 지키며 돌아오는 무리의 든든함. 나무 타기를 마스터하고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마리여사를 기다렸다가 보여주는 깜찍한 도리의 묘기.
무리와 도리를 정관 수술을 시켰기 때문에 타냐와 소냐는 시키지 않았었는데 결국 소냐가 임신을 했다. 그래서 얻는 그들의 새끼들. 그 새끼들을 안았을 때의 그 환희. 그녀를 할머니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또 아니다. 사람도 사귀면서 상처를 받듯 가족들에게서 받는 상처들처럼 아픈 일들도 있다. 그중에 가장 큰 사건은 무리가 고양이 에이즈에 결려 죽게 된 것이고 두 번째는 내가 책을 끝까지 다 읽어 놓고서도 혹시 소식을 더 써 놓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뒷 페이지를 몇 번씩 더 펼쳐 보게 되었던 겐의 행방불명된 일이었다.
선책을 자주 나갔으니 집을 찾아 왔을 번한 똑똑한 겐 일텐데 왜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마리여사를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 집을 지키기 위해 짖었던 겐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돌아오지 않았을까.
겐을 찾기 위해 만나게 된 노라는 어쩌면 겐보다 처지가 더 안쓰러운 유기견이 아니였을까. 혹시 그걸 알고 있어서 그들의 언어로 노라를 마리여사에게 보내 그들의 가족으로 만들어 준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상상을 해 봤다.
“쇠사슬을 빼도 개는 꼼짝하지 않았다. 움직이지 못하고 짖지도 않는다. 보지 못하는 탁한 눈으로 나를 향하고, 힘없이 꼬리를 흔드는 모습이 불쌍했다. 귀 뒤의 목을 쓰다듬는데 자꾸만 눈물이 흘러나왔다. 개는 순식간에 생기를 잃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빨리 빼줄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개의 몸이 갑자기 뻣뻣해지는 것 같더니 가느다란 비명을 지르며 숨을 거뒀다. 주변은 이미 캄캄했다.” - P217
겐과 함께 산책을 하던 중 묶여 있던 늙고 병든 개를 위해 그녀가 해준 일을 읽으면 동물을 키웠던 사람들은 키워 보았기에 더 안쓰러운 마음을. 키우지 않은 사람들은 그녀의 표현의 공감으로 다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겐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를 사랑하는 독자들은 그녀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질 것 같다. 그녀의 이런 매력적인 얘기들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것에 말이다.
또한 그녀가 들려주는 러시아 얘기들은 얼마나 달콤한지.
<미식 견문록>에서는 더욱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지만 이 책에서도 그녀가 들려주는 고양이와 함께한 얘기들은 재미있는 동화 같다.
너무나 많은 것들을 알고 있고 좋아했고 즐겼던 그녀였기에, 나는.
그녀가 그토록 좋아했던 그 무엇인가로 그녀는 다시 태어났을 것이라고…….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