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서 살다
조은 지음, 김홍희 사진 / 마음산책 / 2001년 2월
평점 :
품절


" 사람이 달라지는 데는 반드시, 고통이 동반된다. 그것이 우리 삶의 본질이다. 그리고 그 고통은 평화로운 물처럼 흘러가지 않고 격랑을 몰고 오는 사랑에서부터 시작된다. - 사랑의 말 이곳 저곳에 대하여 P 51"

 

꼭 나이와 연결 지어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잘 맞춰진 옷처럼 내 몸의 이곳저곳을 잘 가려주는 듯한 옷을 입는다는 느낌이 드는 물건을 만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날 때도 나이와 연관이 있는 듯하다.

2002년 1판 4쇄에 발행된 <벼랑에서 살다>를 읽었을 때는 이십대 날것의 감성이어서 그랬는지 사실 어떤 감흥보다 시인 조은의 맛깔나게 글을 쓰는 것에 부럽다는 생각으로만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딱 8년이 지난지금 무심코 다시 들었던 책에서는 시간의 흐름만큼 나는 그녀의 집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책을 읽다가 뭔가 뚝 떨어져 화들짝 놀라보면 지네가 떨어져 있다는 그 황토로 지은 사직동 집에 들어가 여기저기 구경을 하면서 얘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밥 주는 주인의 손도 물어서 퉁퉁 붓게 해 야속하지만 안쓰러운 또또와 함께 사직동 밖을 거닐고 있다. 시인 조은의 얘기를 들으면서 함께 걷고 쉬고 웃고 햇볕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밤에 반짝이는 별도 함께 보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건강해야 한다는 시인 조은의 말에 화들짝 놀라서 열심히 밖을 뛰다가 들어와 지인들이 그녀의 집에만 오면 다들 왜들 그렇게 잠을 잘도 자고 가는지 모르겠다는 그 집으로 들어가 따뜻한 아랫목으로 이동해 목까지 이불을 덮고 잠이 들어 있기도 한다.

 

 

간혹 그런 밤이면 혼자 사는 여자라고 어린 그녀에게 대출 보증인으로 내세워 주지도 않는 돈을 줬다며 그녀를 원망 섞인 표정으로 보았던 그 때문에 억울해 울며 길을 걷다가 넘어진 그녀의 발을 다시 한 번 보며 어루만지고 다독이고 있다. 혼자 사는 여자들은 왜 이런 재물이 되는 것일까 같이 분개하며 두 손을 꼭 잡고 온몸을 흔들며 주저앉아 울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사는 것이 벼랑에서 마지막을 보내는 것처럼 애가 탄다.

 

 

하지만 그녀의 얘기들을 다 듣고 있노라면 그녀는 벼랑에서 사는 것이 아닌 좁다란 골목길이 즐비하게 놓인 작은 구멍가게를 지나 빌딩 속에 움트고 있는 황토방 같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분명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것은 그녀의 진실 된 표현의 공감에서 오는 애틋함 때문이다.

 

 

우리는 매 순간 벼랑에서 사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고 위태롭다. 때로는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추락하고 만다. 하지만 추락하는 그 시점에서는 분명 누군가 나를 잡아줄 사람이 있었고 때로는 그녀의 말처럼 내가 달라지길 바라며 고통을 이기며 벼랑 끝을 오르기도 한다. 그 벼랑이 대단한 것이 아닌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진 벼랑일지라도 그 위험에 서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삶의 본질인 것이다.

하지만 그 벼랑 끝에서 끝없이 자유롭고 행복한 조은을 느낀다. 그녀가 절대로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다. 내게도 그녀처럼 그런 여유로운 아늑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책으로 몇 번씩 읽는 책을 다시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녀의 책은 시간이 지나서 그녀와 함께 사직동 집을 거니는 느낌을 주는걸 보니 몇 해 지나 또 다시 읽으면 혹시 이번에는 내가 그곳에 집을 짓고 그녀와 얘기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해 봤다. 또또와 함께 놀러온 조은을 .....상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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