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반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78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아몬드 - 손원평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P27

[편도체(扁桃體, Amygdala)는 대뇌의 변연계(limbic system)에 존재하는 아몬드 모양의 뇌부위이다. 감정을 조절하고, 공포 및 불안에 대한 학습 및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겁이 많고 소심한 사람들은 다른 이들보다 편도체가 예민하다. 편도체를 제거하면 낯가림을 느끼지 못한다.

사람들이 많이 가지는 오해로, 실제로 공포 감정을 느끼게 하는 뇌 부위는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암묵적 방어 생존 회로에 가까운 것으로, 공포를 느끼는 감정과 별개로 몸의 반응을 만드는 역할이다. 공포의 감정(의식적 공포)이 만들어지는 곳은 전전두엽 피질.] - 나무 위키 발췌

주인공 윤재는 이런 편도체, 아미그달라가 남들과 다르다. 편도체 이상으로 고통을 느끼는 영역이 윤재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으니 남들이 느끼는 고통이라는 것을 모른다. 내가 느끼는 고통이 없으니 타인이 느끼는 고통에 대한 공감이 없다. 아파 보이는 얼굴을 하면 같이 느낄 고통의 교감이 없기에 윤재는 괴물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런 윤재를 위해 엄마는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교감의 영역을 수 없이 시뮬레이션을 했다. 엄마는 윤재에게 기쁜 얼굴일 때는 이렇게, 슬퍼 보이는 얼굴에 눈물을 흘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줬지만 정작 자신의 사고에 윤재의 모습을 잘 볼 수 없었다. 그 무시무시한 사고로 할머니를 잃고 엄마는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로 실려 갔다. 

엄마는 깨어나지 못하고 병원에 있고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리고 열여섯 윤재는 혼자가 되어 언제 깨어날지 모를 엄마를 기다리며 어른이 되어야 한다. 감정을 잃은 사람이 홀로 남겨 졌을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다행히 윤재에게는 그를 돌봐줄 사람이 있었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선한 도움이 윤재에게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 다행이라는 것은 또 얼마나 유지 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아지는 윤재의 삶에 나타난 ‘곤’이는 독자들에게 위로보다 위협으로 느껴진다. 13년 만에 가족이 되어 돌아온 집에 어색한 아버지보다 윤재를 위협하며 지내는 편이 좋은 곤이는 날카로운 유리조각처럼 살아간다. 

그 날카로운 유리조각은 결국 윤재에게 날아들었고 윤재는 그 날카로움의 고통을 모르고 가슴 깊게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윤재에게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윤재를 이해해주고 윤재의 상처를 함께 어루만져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 윤재를 지켜보는 독자들은 다행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그런 마음을 아는 것은 혼자가 된 윤재가 갖게 될 그 쓸쓸함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곤이는 늘 불편한 존재로 보였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열여섯 살의 소년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의식 없이 병원에 누워 있고 혼자가 되었는데 하필 그의 감정을 가장 자극 시키는 존재가 소년원을 들락거렸던 불량한 아이라니. 그 아이가 있는 한 윤재는 한번쯤은 어려운 시절을 보낼 것 같다고 느껴지게 된다. 결국 윤재는 곤이로 인해 엄마처럼 암흑의 세계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런 과정까지 가는 동안 불편한 마음이 살짝 손이 떨렸다. 언제부턴가 우리가 보는 드라마, 영화 이제는 소설까지 이렇게 폭력적일까. 다행히 윤재는 엄마처럼 오랫동안 암흑의 세상에 있지 않았고 눈을 떠서 다시 감정 없는 세상과 조우했고 스무 살이 되어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된 윤재가 또 어떤 세상을 살아갈까. 

“ 여기서부터는 아주 다른 얘기다. 새롭고, 알 수 없는.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말했듯이,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딱 나누는 것 따위 애초에 불가능한건지도 모른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 P228~229

윤재는 앞으로 나가기로 했고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는 윤재와 같은 그 쓸쓸함이 없는가. 감정 불감증을 낳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간이 지날수록 편도체가 멀쩡해도 마음이 기울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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