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웃었다.
나, 이렇게 멀쩡해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손톱 밑의 살 가시를 뜯어낼 때의 아픔이 눈가에 살짝 스쳐지나갔다.
3월 중순부터 몸이 많이 아팠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고 출근의 시작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날부터 퇴사를 생각했다. 직장인의 비애쯤으로 여기기에는 너무 지쳐있어서 여기서 한 발짝 물러 날 것인가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리니 바로 4월 중순이 되었다. 그때부터 다시 고통이 시작되었다. 한쪽 가슴이 아파 오자 느꼈다. 내 몸에서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구나. 너무 늦게 찾아간 병원은 아니겠지. 왜 이렇게 나를 모르며 살았니. 너는 너 자신만 생각한다며, 이기적으로 살겠다고 해 놓고서는 너 자신을 왜 안 챙겼니. 홀로 병원 대기실에 앉아 조직 검사 결과를 듣기 전까지 자책하고 책망하고 반성하는 시간이 흐르고 들어도 잘 모르겠는 알파벳 진단명을 듣고 울다가 일어났다. 담당 교수는 나 같은 환자를 많이 봤겠지만 처음 대하는 것처럼 위로해주셨다. 우리나라 의료 훌륭하잖아요. 걱정 말아요. 빨리 발견해서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렇죠. 요즘 암이 뭔 대수라고요...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지만 충분히 눈물을 흘리며 인사를 하고 나왔다.
병원을 나와 햇살을 받으며 멍하니 서 있었다. 한 어르신이 자녀의 부축을 받으며 내 앞을 지나가셨다. 한참 울고 나온 잠시의 시간이 사라졌다. 왜, 나에게라는 생각에서 그래도 빨리 알아서 다행이네, 그리고 나는 혼자도 걸을 수도 있고, 자유로운 손도 있고 아직은 많이 생각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데 얼마나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라며 말하는데 앞은 아득하기만 하다.
집에 돌아와서 정혜신의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를 읽다가 눈앞에서 아른 거리는 희망에 기도를 해 본다. 우리, 멀어지지 말자. 괜찮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