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음, 임진실 사진 / 돌베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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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을 그 이름들을 위하여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올해는 1948년생 전태일이 세상을 떠난지 50년이 된 해이다. 1970년 11월 12일 전태일은 그의 손에 들린 근로기준법전과 자신을 태우면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라고 외쳤다.(나무위키) 엉덩이를 제외한 온 몸은 3도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다음날 13일 세상을 떠났다. 12일 집을 나서기 전에 아침에 먹었던 라면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마지막 끼니였기에 배가 고프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는 그의 마지막 말에 목이 따가워진다.



 

드라마 <시그널>에서 1980년대에 있는 이재한은 2015년에 있는 박해영에 세상이 좀 바뀌었는지 묻는다. “죄를 지었으면 돈이 많건 빽이 있건 거기에 맞게 죗값을 받게 하는 그런 세상이 왔냐”고. 하지만 박해영은 이재한 형사에게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을 하지 못했다. 80년대의 그 세상이 2015년에도 바뀌지 않고 똑같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 해 달라며 자신을 태웠던 그 50년 전의 외침이 지금은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 것일까.

내게 김동준의 이야기는 안타까운 어린 죽음으로 기억되는 기사에 지나지 않았다. 동준이의 자세한 이야기를 다 알지 못하고 그저 또 어린 목숨을 세상 밖으로 몰아냈다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어른이 되었거나.


 

프로 게이머가 되고 싶었던 동준이는 동아마이스터고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프로그래머가 되어 그토록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동준이는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다. 마이스터고는 특성화고였기에 고3이 되면 현장 실습을 나가야 했다. 그렇게 동준이는 CJ그룹의 한 회사에 입사를 했고 그곳에서 원치 않는 회식에가 술도 마셔야 했고 담배도 피워야 했다. 그것이 싫었던 동준이에게는 선택권이 없었고 힘든 시간이 계속 되었다. 잘못이 없어도 동준이에게 돌아온 기압과 폭행은 동준이가 원했던 꿈을 이뤄주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의 응원 문자를 보지 못하고 투신자살을 했기 때문이다. 현장 실습생이였던 동준이에게 요구 되었던 많은 일들은 19살 동준이가 견디기 힘들었을 사회생활이었을 것이다. 간혹 그런 동준이에게 나약하다는 말을 할지 모르겠지만 그 고통은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동준이와 같은 아이들의 죽음이 너무도 많다. 제주도 생수 회사에서 일어난 이민호의 죽음은 또 얼마나 끔찍한가. 업무를 배운지 단 5일만에 베테랑이 하는 일들을 해내야 했던 민호는 적재 프레스에 몸이 끼어 열흘 동안의 사투 끝에 세상을 떠났다. 2016년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를 고치다 사망한 김군도 현장실습생으로 취업한 청년 노동자였다.


 

“지하철을 고치다가, 자동차를 만들다가, 뷔페 음식점에서 수프를 끓이다가, 콜센터에서 전화를 받다가, 생수를 포장.운반하다가, 햄을 만들다가, 승강기를 수리하다가....


그러니까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용하는 모든 일상 영역에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의 흔적이 남아 있다.” P17



기본적인 응대와 시스템에 적응할 시간을 주지도 않고, 사회 초년생도 아닌 그들에게 주어진 의무란 너무 큰 간극의 업무는 아니었을까.

산업 재해로 세상을 뜨게 된 아이들을 애도하기 위해 기록된 이 책속의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알려지지 않은 많은 아이들이 세상 밖 문턱에 놓여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떠나고 남겨진 부모들의 이야기는 세월호의 책들을 읽었을 때의 생각이 겹쳐서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도 못했다. 부모 형제가 저 세상을 가면 땅속에 묻는데, 자식은 머리와 가슴에 웅크리고 있다는 이민호군의 아버지의 말은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일들은 왜 자꾸 일어나는 것일까. 회사는 산업재해로 일어나는 죽음과 사고에 인정이 아닌 부인으로 일관되게 행동한다. 사측의 잘못이 되면 그들이 책임져야 하는 부분도 크겠지만 선례를 남기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 때문에 현장 실습에 있던 아이들의 죽음과 사고는 다르게 취급되지 않는다. 적당한 합의금으로 입막음하거나 사건을 무마시키기에 급급하다. 부모들은 자식을 떠나보낸 상처와 함께 더 큰 상처를 입고 머리와 가슴에 웅크리고 있는 자식에 생업을 놓고 괴로워한다. 후회가 되는 날들일 것이다. 아이의 말을 더 빨리 이해하고 그만두고 싶을때 그만 둘 수 있다는 얘기를 해줄 것을.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다 그런 거니까 견디고 버티라는 말을 위로라고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다.


 

책 뒷부분에 아이를 잃은 부모님들의 담화는 우리들에게 많은 울림을 남겨 놓았다. 모른척하지 않기, 그렇게 그들을 기억해내기. 그래서 앞으로는 이런 안타까운 죽음을 더 이상 만들어내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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