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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4-08-25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초하네요,퍼갑니다.
 
 전출처 : 마냐 > 아직 교회는 사과하지 않았다

 `오만하고 타산적이며 질투심 많고 불안정할뿐 아니라 인정사정없는 적이자 신의없는 친구이며 신용할 수 없고, 음흉하며, 변덕스러운데다, 고집스럽고, 미신적이다.'
 
 특정인물에 대한 묘사가 아니다. 이는 `여자'에 대한 12~13세기 도덕교과서의 설명이다. 지구상의 어떤 집단도 이토록 오랜 세월, 이토록 심하게 무시된 적은 없었다. 서구사회를 지배해온 기독교는 철저하게 여자를 악의 근원으로 규정했다. 여자는 음욕에 불타는 `창녀'이거나 악마와 빌붙은 `마녀', 터무니없는 영적 주장을 일삼는 `성녀', 혹은 아무 생각 없는 `바보'. 여기서 벗어나는 여자는 없다더라는 얘기다.
 
 하기야 성경에서조차 `여자는 조용히 복종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여자가 다른 사람을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많은)여자가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믿음과 사랑과 순결로써 단정한 생활을 계속하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디모테오전서 2장)'라고 하지 않았던가. 신학자들은 "신께서 한 사람에게 권위를 주고 다른 사람에게 복종을 주신 것은 평화를 위해서다. 평등이 있는 곳에서 평화를 찾아봤자 헛일"이라고 했다.
 
 교회의 `여성관'은 새삼 충격적이다. 책은 "지나치게 민감하지 않거나 교양이 많지 않으며 웅변적이지 않고 눈에 띄지 않으며 원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늘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고, 사회활동을 통한 존재감에 집착하지 않으며, 겸손하고 헛된 유행을 좇지 않고, 지적인 면에서는 평범한...즉 바보에 근접한 여자들을 카톨릭은 좋아했다"고 전한다.
 더구나 처녀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라니. `요한묵시록'은 "이 땅의 허물을 씻은 14만여명은 모두 동정"이라 한다. "여자들과 더불어 몸을 더럽힌 일이 없는 사람"이란 거다. 이상적 여성이던 성모의 핵심이 바로 처녀성과 모성이다. 이를 동시에 지키길 바라다니 카톨릭은 스스로 엄청난 모순에서 헤어날 길이 없었다.
 
 15세기 피렌체의 법은 "남자들이 생식한 새끼들이나 배는 여자들, 남편의 완벽하고 순수한 정액을 담는 봉지같은 여자들"이라며 여자들을 천박한 `정액자루'로 표현했다. 월경중인 여자가 미사에 오는 것을 허락해도 좋은지 여부가 논란꺼리였고. 월경중인 여자와 관계하는 것은 근친상간의 죄나 마찬가지라 했다. 이 `불결한 피'가 쏟아질 때 임신이 되면 나병이나 간질 환자가 태어날 수 있다고 했다. "월경의 피에 접촉하면 과일의 생육은 부진해지고, 포도즙은 시어지며, 풀은 죽구,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식으로 여자를 독을 뿜는 존재로도 만들었다. 생명의 근원이자 축복인 월경에 대한 인식은 불과 지난 수십년에만 해당된다.
 
 여자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은 장애물. 결국 여자의 아름다움은 `오물을 은폐하는 올가미'이며 `적이 친 덫'이라 했다. 웃기는 건, 그래도 처녀들에게만 아름다움을 인정했다는 거다. 처녀가 아닌 여자들에게 아름다움이란 완벽한 껍데기, 남자를 유혹해서 악마에게 데려가는 기만적 껍데기였다.
 
 성행위도 당연히 불경스러운 것으로 취급됐다. 아양 섞인 몸짓, 교태어린 정다운 시선, 애무, 키스 등의 전희는 1950년이 되어야 교회의 인준을 받았다고 한다. 기독교의 가장 고약한 점 하나는 끊임없이 인간들에게 죄가 있다고 주장해온 사실인데, 수세기동안 인류의 행복권을 어이없이 짓밟은 셈이다. 출산의 고통도 같은 맥락이다. 남자가 아이를 낳았다면, 그토록 끔찍한 고통을 방치하진 않았을 터. 죄악 덩어리인 여자는 반드시 출산이라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식의 사고는 어이없다. 20세기에 무통분만이 시작됐을때 카톨릭 작가였던 레옹 블르와는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이야기를 들었다. 분만의 고통을 면하기 위해 마취제를 주사받는 여자들이 있다는 것"이라며 악마적 뉴스라고 평했다. 요즘에도 고통을 느껴야만 '진정한 모성'이라 운운하니 지독히 이기적인 처사다.
 
 마녀와 성녀에 대한 잔혹사에 대해 교회가 아직 참회한 적이 없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여자들은 천부적으로 약하고 어리석은데다 음란해서 악마적 마법에 빠지는 성향이 강하다고 믿었던 신학자들은 마녀학살을 위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마녀 검사를 한답시고 여자들의 수치심을 농락했으며 고문도 극심했다. 마녀의 표식을 표시한답시고 "오른쪽 둔부 근육에 손가락 네개 길이 만큼의 침을 꽂았다. 아무리 해도 다시 뽑을 수가 없었다"는 기록도 있다. 고문은 멀쩡한 사람도 유죄를 인정하게 했고, 타인에 대한 잔인한 증언까지 유도했다. 미친 짓은 수세기동안 되풀이됐고 약 5만명의 여자들이 잔인하게 희생됐다. 대개 흉작일때 마녀 화형이 많았다는 기록은 마녀가 미친 사회의 희생양에 불과했다는 증거다.
 
 성녀에 대한 막연한 존경도 다시 돌아볼만 하다. 결혼을 했다면 남편과 성관계가 없었다는 사실이 인정되는 편이, 수도원을 세울만큼 부유한 경우가 유리했다. 교회가 단죄한 여성과 성녀의 차이는 종이 한장이었는데, 종종 예수와의 사랑을 과장하고, 육체적으로 예수를 만났다는 증언이 쏟아졌다. 어느 성녀가 고백한 `신의 감미로움'에 대해 자크 라캉조차 명백히 성적 쾌감이라고 주장한다. 수녀들은 고행 외에는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은 비참한 삶을 살았고 몇몇은 죽은 이후에야 성녀가 됐다. 살아있는 어떤 여자도 찬미할 수 없었던 교회는 성녀들도 무능하고 평범하고 경건하고 겸손하기를 원했다. 그녀들이 신에 관해 이야기하기 보다 학대받고 입에 재갈이 물려지기를 원했고 살아 있는 여자보다 죽은 여자들을 원했다.
 
 서구사회를 지배한 교회의 여성관은 시대와 사회를 초월해 이어졌다. 알만한 사람들의 한심한 의식수준이 놀랍다.
 
 아테네의 페리클레스는 "여자의 가장 큰 미덕은 입을 다물줄 아는 것"이라 했고 수학자 팔레스는 자신의 학문적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 결혼을 하지 않기로 했단다. 기독교가 아닌 그리스 문명에서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여성을 증오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암컷들이 수컷보다 질이 떨어지며 허약하고 불안정하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루소는 `에밀'에서 "모든 여성교육은 남자와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남자를 기쁘게 하고 남자에게 유용하며 남자를 위로하며 남자의 생활을 즐겁고 감미로운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시대에 변함없는 여자의 임무이며 어릴 때부터 여자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발자크도 "여자들을 해방시키는 것은 그녀들을 타락시키는 것"이라 했다. 오귀스트 콩트는 "여자들은 남자와 동일한 지적 수준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 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교에서 똑똑한 여자들 때문에 내신성적이 안좋다고 툴툴거리는 남학생들을 본다면 그들은 저세상에서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어디 기독교 뿐이랴. 이슬람교는 여성을 연약한 존재로 해석한다. 보호한답시고 차도르를 씌우고 직업도 못 가지게 한다. 간통한 여성을 돌로 쳐죽이는 전통도 여전하다. 유교가 어떻게 가부장제를 수호해왔는지, 여자를 아버지와 남편의 지배 아래 두었는지는 이 땅의 여자들이 더 잘 안다. 불교조차 윤회를 설명하며 `사람으로 나기 어렵고, 남자로 나기 어렵고, 불법을 만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전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비구니는 매우 보조적인 존재이며, 타이의 비구니는 사원의 하녀에 불과하단다. 힌두교조차 여성을 근본적으로 사악하다고 믿는다.
 
 여권주의자들은 B.C 10000-8000년 고대 사회를 모계사회로 추정한다. 그러나 증거는 없다고 신화일 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아내는 노예처럼 다루면서도 여신들을 숭배했을 수도 있다. 수세기에 걸쳐 성모를 예찬하면서도 여자를 모욕했던 카톨릭처럼.
 
 여성을 감시하고, 교양과 오락을 멀리하게 하고, 성생활을 정기적으로 심문하고, 생식능력을 감독하고, 모든 독립성을 부인한 교회. 지구의 절반과 싸워 수천년동안 성공했으니, 이제 패배를 논한다고 해도 너무나, 너무나 늦었다. 저자는 "교회가 21세기 유럽인들의 윤리적 삶을 규정하는데 있어 예전 무게를 회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여성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교회는 이제 인간들의 중요한 문제를 규명하고 결정하는데 들러리 역할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서구에서의 몰락과 달리 국내 교회는 여전히 승승장구한다는 점은 별로 따질 필요는 없겠다)
 
 책은 뿌리깊은 여성혐오와 여성차별의 논리를 추적한다. 여성은 오늘날에도 남성에게 매혹과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영적 구원의 걸림돌. 여성의 인격을 억누르고 유폐하려는 교회의 움직임은 중단되지 않는다.
 
 그저 옛날 이야기 아니냐고 무심히 지나치지 말기를. 요즘도 매맞는 여자들이 있다. 여자들 때문에 그나마 부족한 일자리가 더 줄고 있다는 불평이 나오고, 몸을 함부로 놀렸으니 혼내줘야 한다는 식으로 연쇄살인 동기를 설명한다. 훗날, `21세기 초 여자들은 어떻게 저런 대우를 견뎠을까', 어이없어 할 후손들이 없을거라 단언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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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 주거지는 움막 '집의 진화' 통념 깨뜨리기

김연홍 옮김/ 다우

이한우기자 hwlee@chosun.com

입력 : 2004.08.20 17:38 53' / 수정 : 2004.08.20 17:53 01'

30년 연구를 집약한 작품답게 방대한 자료와 그것을 친절하게 풀어내는 글솜씨가 우선 놀랍다. 저자는 시작부터 우리의 편견을 뒤집는다.

‘인류 최초의 주거는 동굴이 아니다.’ 실제로 수렵채집생활을 하던 초기 인류들은 동굴에서 살기보다는 움막을 지었다. 오히려 동굴은 임시 피난처였을 뿐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움막에 대한 통념도 깨뜨린다. “최초의 움막은 ‘방(方)’형이 아니라 원형이었다. 이는 곧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지었다는 뜻이다. 방형이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형태라면 원형은 감정적이고 직관적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6000여년 전 도시주거가 탄생하기까지 움막에도 발전의 역사가 있었다. 저자는 그것을 6단계로 나눠 설명한다.

첫째, 오늘날의 부시맨이나 피그미족의 움막에서 볼 수 있는 일시주거로 유랑하는 무리들이 며칠만 머문다.

둘째, 인디언의 천막집처럼 발달된 수렵채집기술을 가진 무리들이 몇 주 동안 사용하는 간헐주거다.

셋째, 이동주거로 목축경제를 영위하는 유목민들의 집이며 오늘날 몽골족과 키르기스족의 유르트나 베두인족의 흑색천막집이 그것이다.



넷째, 마사이족의 보마나 나바호 인디언의 호간처럼 목축과 부분농업을 같이 하는 반유랑식 부족사회의 경우에는 계절주거에서 산다.

다섯째는 마야인들의 타원형 주택처럼 여러 해 살 목적으로 짓는 반영구주거다.

그리고 끝으로 영구주거는 국가로서의 정치·사회적 조직이 갖춰지고 잉여농산물을 보유한 정착 농경사회에서 출현하며 오늘날의 대부분 주택은 여기에 속한다.

대략 이 무렵이 지금으로부터 6000여년 전이며 주거역사의 새로운 단계인 도시 주거로 접어들게 된다. 저자는 고대문명의 도시들을 추적한다. 크게 내향형과 외향형으로 구분하는데 내향형은 주로 동양에서, 외향형은 서양에서 발달했다.

내향형의 경우에는 가정생활과 물질소유라는 두 가지 중요한 프라이버시를 이웃으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거리를 중심으로 지어진 서양의 외향형 주거들은 각자의 개성을 뽐내고 싶은 욕망이 담겨 있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 서울 종로구 가회동의 한옥 내부. 최근 들어 한옥을 현대적으로 개량해 활용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조선일보 DB사진
중세의 건축으로 넘어오면서 저자는 일터와 주거가 통일되어 있던 당시 주거의 특징을 집어낸다. “중세시대의 대규모 주택은 다기능 주택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그 이후 어떤 시대도 중세의 주택만큼 주민생활을 위한 모든 시설을 제공한 적은 없었다.” 즉 그때의 주택은 기후와 외부침입자로부터 주민을 지켜주는 피난처임과 동시에 집주인의 신분을 나타내주는 성이었으며 보육원이자 학교였고 병원이었으며 교회이기도 했다.” 장인에게는 공방, 예술가에게는 아틀리에였다.

화약의 발명은 중세의 성벽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외부로 넓게 퍼져나가는 것이 도시방어를 더욱 어렵게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확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도시는 높아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는 1570년부터 1870년 사이에 도시면적은 그대로인 채 인구만 3배가 늘어났다.

저자는 20세기까지 각 나라 주거형태의 변화를 직접 그린 도판을 통해 상세하게 보여준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주거형태의 변화를 한눈에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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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특별기획 하늘과 땅의 신명난 축제
국립극장 <넌버벌 페스티벌>
Feel Good! Nal-Ri Good!




타악 뮤지컬 <야단법석>
9.1(수) - 9.4(토) 타악그룹 야단법석

하늘아래 소리 <천고>
9.8(수) - 9.11(토) D&D(Dance&Drum)

집단신명 퍼포먼스 <타오>
9.15(수) - 9.18(토) (사)문화마을 들소리

강만홍의 <두타>
9.22(수) - 9.25(토) 극단 달판춤

장소: 국립극장 하늘극장
주최: 국립극장
주관: (주)모아엔터테인먼트
예술감독: 최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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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95 2004-08-21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서울은 좋군요.. 저도 야단법석 보고 싶어요~~
 
 전출처 : 바람구두 > 나만의 Ex-Libris(장서표) 만들기

Ex-Libris

꼭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자기 물품에 자신만의 소유 대장 혹은 소유물이라는 증빙을 남기고 싶어하는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위의 물건은 일종의 장서표라는 것으로 자신의 장서에 각인을 남기는 스탬프이다. 나도 나중에 나무를 깍아서 하나 만들고 싶었는데, 시간은 안되고 해서 이런 걸 하나 사고 싶기도 하다. 위의 스탬프는 주문제작용이고, 본인의 이름이나 이니셜을 새길 수 있게 되어 있다. 한 때 책(Book)은 부유한 계층만의 전유물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부유한 계층에선 자신의 소유물에 각인을 했는데 Ex-Libris란 건 라틴어로 누구누구의 소유 장서란 뜻을 가지고 있다. 동양에서는 엑스리브리스가 아닌 장서인(藏書印)이란 걸 사용했다. 여기에 가면 누구나 자신만의 디자인으로 장서표를 만들 수 있다.

가격도 전각에 의한 "장서인"을 만드는 것보다는 저렴하니까, 원하는 분들은 시도해봐도 좋을 것 같다. 나도 하나 만들어봐야지. 흐흐.

 

 

http://www.stamp-hous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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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8-21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두 개의 장서인을 사용하고 있는대요. 두 번 째 줄의 왼쪽 스탬프...제 것과 같네요. ^^
손재주가 좋다면 제가 직접 새겨서 사용하고도 싶은데...언제쯤에나 가능할런지요?

stella.K 2004-08-21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나 같고 싶어져요. 냉열사님이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