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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는 껌, 다이어트에 좋을까?

껌이 똑똑해지고 있다.
심심할 때 씹는 것으로만 알았던 껌은 1989년 입냄새를 제거한다며 녹차추출물인 후라보노이드를 껌에 첨가, 기능성 껌의 시장을 연 이후 충치예방에서 이제는 충치치료, 노화방지, 면역기능, 골다공증 예방 등 기능성 껌이 고급화, 세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다이어트족에게 반가운 소식은 껌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 껌을 많이 씹으면 사각턱이 된다는 속설도 있지만 다이어트에 좋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으니 이제 '껌값'으로 다이어트해 보자.

과학적인 근거는 있는가?
미국 메이요 병원 연구진은 7명의 자원자를 대상으로 12분간 무설탕 껌을 씹게 하는 실험을 했다.
실험결과 껌을 씹을 경우 매 시간당 11kcal가 소모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하루 일과중 매 시간마다 껌을 씹을 경우 1년간 약 5kg의 체중이 줄어든다는 결론을 얻었다. 결국 껌을 씹는 동작이 열량 소비를 촉진시켜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증명한 셈이다.

어떤 껌을 씹어야 하는가?
보통의 껌 한 개에는 20kcal정도의 열량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다이어트 껌으로는 반드시 무설탕껌을 사용해야 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자일리톨이나 아스파탐 등 감미료가 포함된 껌을 씹으면 다이어트와 충치예방까지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최근에는 무설탕에 다이어트 기능이 있는 성분을 첨가, 다이어트 효능을 더 강화시킨 껌들도 등장했다. 이미 미국에서는 다이어트 껌으로 뉴트리껌, 브래스트어웨이 다이어트껌 등이 판매되고 있다. 이 제품에는 체내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의 효율을 높여주는 크로뮴피콜리네이트 등의 성분이 포함되었다고.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미라인' 껌과 김원희의 다이어트 껌인 '체감'이 출시되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데 두 제품 모두 식이섬유과 지방 흡수 저해 기능을 가진 '레반'이라는 성분을 첨가한 것.

효과적인 껌 다이어트는?
억지로 밥을 굶거나 무리한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껌다이어트의 가장 큰 매력. 그러나 빠른 시일 내에 다이어트 효과를 보고 싶다면 다른 다이어트와 병행하는 것이 좋다. 그 이유는 껌을 씹으면 군것질 등 불필요한 음식섭취를 막을 수 있고 또 껌을 씹는 동안 발생하는 침이 소화작용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병행하는 다이어트의 효과를 높여 준다.

껌에 관한 몇가지 상식
- 뇌 속의 해마는 씹는 운동을 할 때 활동이 증가되므로 껌 등을 많이 씹으면 치매예방 효과가 있다.

- 운동선수들이 껌을 씹는 것은 턱 관절을 움직여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집중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또 껌을 씹으면 침샘이 자극되기 때문에 침이 자주 마르는 운동선수에게 좋다.

- 복부 수술을 받은 환자가 껌을 씹으면 창자 기능을 정상적으로 회복하는데 도움이 된다.

- 껌을 씹으면 대뇌피질을 적당하게 자극해 졸음 운전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 쉴 사이 없이 턱 근육을 움직여야 하는 껌 씹기는 긴장을 완화시켜 준다.

- 껌은 뇌세포를 자극해서 일의 능률도 오르게 하고 베타 엔돌핀 분비를 촉진시켜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다.

- 껌은 10분 이상 단물이 다 빠진 뒤까지 씹으면 치아에 좋다. 껌의 설탕성분은 충치를 일으키는 요인이지만 껌에 치아표면의 찌꺼기가 묻어 나가기 때문. 따라서 무설탕 껌이 좋다.

- 하루에 껌 10개정도 씹는다고 해서 턱이 커지지 않는다. 하루 종일 껌을 씹는 제과 회사 연구원 중에서 '사각턱'으로 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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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기억하시죠?

 

70~80년대 숱한 한국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청순미인의 대명사 올리비아 허시.

 

68년 프랭코 제퍼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본 사람은
누구나 생각했을 겁니다. 그녀 이상의 줄리엣은 없다고..

솔직히 로미오, 했을 때 곧바로 리오너드 화이팅이 떠오르는 건 아닌데
(오히려 바즈 루어만 감독의 96년작 ‘로미오+줄리엣’에 출연한 리오너드 디캐프리오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줄리엣, 하면 여지없이 (클레어 데인즈도 다른 누구도 아닌) 올리비아 허시가 떠오릅니다.
저만 그런 걸까요?

 

 

 

  

 

 

 

초등학교, 중학교 때 '앙케이트'라는 이름으로

친구들끼리 수십가지 질문을 적은 노트를 돌려가며 답변을 받는 것이 유행이었죠.

한창 '로미오와 줄리엣'에 감명을 받았던 터라, (정확히 말하면 올리비아 허시의 외모에 감명을 받았던 터라)

'좋아하는 배우'라는 항목에 리너드 화이팅, 올리비아 허시를 빼놓지 않고 썼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당시에는 '레오나르도 화이팅, 올리비아 핫세'라고 썼습니다.)


허시의 이름 스펠링은 Olivia Hussey(본명은 Olivia Osuna)인데
어찌 된 일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올리비아 ‘핫세’라고 알려졌지요.
일본인들의 발음이 바다를 건너온 게 아닐까 합니다.
(신문협회 표기원칙은 ‘올리비아 허시’여서 그에 따라 표기하겠습니다.)

 

동그란 눈에 달걀형의 맑은 얼굴. 윤기가 흐르는 짙은 색의 긴 생머리..
당시 그녀의 선풍적인 인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한때 연예인 사진을 파는 어디에서나 그녀의 확대 사진을 볼 수 있었죠.


특히 평상복 차림으로 빛나는 긴 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정면을 바라보는 유명한 스틸 사진은
미장원과 호프집, 기타 무수한 대한남아들의 방 벽을(저희 삼촌의 방을 비롯해) 장식했습니다.
가로로 길쭉한 그 사진을 들여다보며 저도 ‘어쩌면 이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하고 감탄하곤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제가 가장 좋아하던 그 사진은 요즘 찾기가 힘들더군요.

햇살을 받아 빛나던 그 긴 머리가 아직도 생생한데.. 아쉽습니다.

 

대신 캡처가 가능한 DVD에 힘입어, 영화 사진은 각 장면별로 구하기가 훨씬 쉬워졌습니다.

다시 봐도 가슴설레는 명작입니다.

국내에서도 '말죽거리 잔혹사'에 출연한 한가인이나 S.E.S 출신 탤런트 유진 등에 대해

'한국판 올리비아 허시' 운운하는 말이 나오곤 했는데

얼굴은 일견 닮은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시절 분위기까지 닮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올리비아 허시는 이미 많은 이들의 기억 깊은 곳에 첫사랑의 추억처럼 절대적으로 각인돼 있으니까요.

 

 

 

 

 

 

붉은 드레스와 대비를 이루던 까만 머리,

세상의 더러움과 추악함은 아무것도 모를 듯 한없이 순진무구한 그녀는 눈동자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죽음마저 아름다운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세상에 미녀는 많지만, 서양인 가운데 올리비아 허시 같은 독특한 동안(童顔)의 청순미인은 흔치 않은데
유럽과 남미의 핏줄이 섞인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탱고 가수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를 둔 허시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의 성은 오수나였지만 두 살일 때 부모가 이혼함에 따라
그녀는 어머니의 처녀시절 성인 ‘허시’의 이름으로 활동했습니다.
일곱살에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온 뒤 어머니의 독려로 5년간 연기 학교를 다녔고
연극 무대에 섰다가 제퍼렐리 감독의 눈에 띄게 됩니다.
결국 그녀는 열다섯의 어린 나이로(실제 극중 줄리엣도 어린 나이였지만) 500명의 지원자 가운데 전격 발탁됐고,
그것이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줄리엣의 탄생이었습니다.

 

불과 중학생 정도의 나이에 전세계에서 팬레터를 받는 스타가 되고

골든글로브상과 이탈리아의 아카데미상에 해당하는 오나텔로 상을 수상하는 등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와 명예를 모두 어린 나이에 거머쥔 듯 보였지만

허시 개인으로서는 아름다운 시절의 종말이자 힘든 나날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딜 가든지 환호성을 지르며 달라붙는 사람들이 어린 허시에겐 감당하기 힘든 공포의 대상이었고

신경이 예민해진 그녀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근 1년간 집에서 은둔생활을 하다시피 했습니다.

활동을 재개한 이후에도 광장공포증(Agoraphobia)으로 사람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여 고생했는데
약물(medication) 대신 명상(meditation)으로 오래도록 쫓아다니던 불안감을 이겨냈다고 합니다.

 

제가 중학생일 때 대학원생이던 아는 언니로부터
70~80년대 일본 영화잡지 ‘스크린’을 왕창 얻은 적이 있습니다.
‘오래 돼서 버리려고 하는데 가지겠냐’고 해서 얼씨구나 받긴 했는데
사실 일본어를 전혀 모르던 상태에서 그림만 들여다 봐야 했죠.
가끔 등장하는 영어를 통해 배우들의 이름을 접하면서
예쁜 사진이 있는 페이지를 찢어서 교과서나 참고서를 싸곤 했는데
‘수학의 정석’ 표지가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신의 흑백 컷이었습니다.

 

당시 받은 스크린 가운데 한 권에는
20대 후반쯤 됐을 법한 올리비아 허시가 비키니 차림으로 찍은 사진도 실려 있었습니다.
서양인들이 워낙 빨리 나이가 들어보이기도 하지만
그 귀엽던 얼굴이 그 때 이미 웃을 때 뺨에 주름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조각같던 턱은 볼살이 빠지니까 너무 뾰족하게 느껴져서 거슬리고

(올리비아 허시는 아래 사진에 나타나듯이 웃을 때 턱이 길어보이는 스타일로,

좀 심하게 말하면 미 대선 민주당 후보였던 존 케리 상원의원과 약간 비슷합니다. -_-;)

당시 사진에선 몸매도 상당히 중년 여성처럼 펑퍼짐해 보이는 것이(물속에 있어서 더 그래보였겠지만)
줄리엣 시절에 비하면 너무나 나이가 들어 보여서 어린 마음에 실망했던 기억도 납니다.

 

 

 

   

 

 

 

지금도 그녀를 한 떨기 꽃처럼 청순한 얼굴로만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그녀는 상당히 굴곡 있는 풍만한 몸매의 소유자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잠깐 노출신이 등장하는데(당시 국내 TV로 보신 분들은 대부분 못 보셨겠지만)
당시 열다섯살의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매는 놀라울 정도로 어른스러웠지요.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순결하고 성스러운 역할도 잘 어울리고
따뜻한 어머니로서의 모성애적인 역할도 의외로 어울립니다.

 

우리나라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그녀의 소식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허시는 80년대 잠시 휴식기를 가진 이후 자주는 아니지만 꾸준히 영화와 TV 등에서 활동을 해왔습니다.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 모국어인 스페인어를 모두 구사하는 관계로
미국, 영국, 남미권,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인연이 깊은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적의 영화에 출연했지요.

 

그러나 대중들은 그녀가 줄리엣이 아닌 다른 인물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그녀는 다소 실망스러운 작품과 배역 속에 잊혀져갔습니다.

그러다가 1977년 프랑코 제퍼렐리 감독의 시리즈물 ‘나자렛 예수’에서
성모 마리아 역을 맡아 그녀에게 새로운 모습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밖에도 ‘나일강의 죽음’ ‘미망의 여인’ 등에 출연했고
‘사이코’ 4편에 얼굴을 비치는 등 깜짝출연도 몇차례 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나사렛 예수' 이후엔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던 허시에게

평생 꿈꿔오던 역할인 테레사 수녀의 역할이 주어진 것은 그녀의 나이가 50을 넘어설 때였습니다.

만인의 연인이었던 그녀가 성모 마리아 역에 이어 또한번 '성녀'로 돌아온 것이죠.

최근 국내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비아 허시의 이름이 오르내리길래 웬일인가 했더니

바로 그녀가 출연한 '마더 테레사'가 내년 1월 국내에서 개봉하기 때문이더군요. 

 

사실 그녀가 테레사 수녀 역으로 캐스팅됐다는 얘기는

이미 근 3년 쯤 전에 제가 조선일보 영화섹션 '씨네카페'에 썼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허시는 평소 테레사 수녀를 너무나 존경해왔기에 이 역할을 맡게 돼서 너무나 행복해 했습니다.
“매일 최소 한 시간은 기도한다”고 할 정도로 신앙도 독실한 그녀는
테레사 출연이 확정된 뒤 “25년 동안 갈구해 온 역할이었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마더 테레사’ 제작소식을 들었을 때 무릎을 꿇고 그 역을 맡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나흘 뒤 출연 제의와 함께 대본이 도착했죠. 전 제가 출연하게 된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모 마리아에 이어 이번에 테레사 수녀로 다시 태어난 그녀는
줄리엣 역 이후 언제나 기품있고 우아한 이미지를 유지해온 데다
조용하고 고전적인 역할을 주로 맡아 더욱 성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녀도 사생활을 들여다 보면 결국 한명의 속세의 인간일 뿐입니다.
스타라는 이름으로 군중 속의 고독에 시달려 왔을테니 더욱 그렇겠지요.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LA로 이주해 할리우드에서 활동해 온 그녀는
1971년 스무살이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딘 마틴의 아들인 록가수 고(故) 딘 폴 마틴과 사랑에 빠졌고

그와 결혼해 현재 배우로 활동중인 아들 알렉산더를 낳습니다.
그러나 마틴이 불법무기소지죄로 체포되면서 스무살의 환상은 끝나버렸죠.

결국 1978년 결혼 7년만에 둘은 이혼하고 맙니다.

"우리는 너무 어렸고, 너무나 서로 사랑했죠.

40대가 되면 다시 합치자고 말하곤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과거 한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

 

1980년에는 일본계 가수인 아키라 후세와 재혼해 1983년 아들 맥스를 낳지요.
그러나 이 결혼생활 역시 7년만에 끝이 납니다.
허시는 1991년 세번째 남편인 록스타 출신 데이빗 아이슬리와 결혼합니다.

"데이빗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50번 봤다고 했어요. 그 말에 전 저항할 수가 없었어요.

내 마음의 일부분은 아직도 내가 줄리엣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허시와 아이슬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딸 인디아 조이는 현재 열살이 됐습니다.

그녀가 소녀가 아닌 세 아이의 어머니로서 나이들어가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다소 묘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

'영원한 줄리엣'인 그녀는 왠지 영원히 나이들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였으니까요.

 

 

 

   


 

 

그러나 세월과 함께 그녀도 나이가 들어갑니다.

1951년생이니 지금은 만 53세가 됐겠네요.

끝없이 이어지는 촬영과 잦은 여행에 지친 허시는
간간이 연기활동을 멈추고 아이를 키우는 데 전력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LA의 한 목장에서 열살 난 딸과 애완동물들을 돌보는 재미로 산다고 하더군요.
딸 이름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녀는 명상의 나라 인도에 상당히 심취해 있나 봅니다.
“딸 아이가 좀더 크면 또 같이 인도에 가고 싶다”며 “인도는 마법처럼 내 영혼을 채워준다”고 하더군요.
나이가 들어도 그녀가 항상 평화롭고 맑게 보이는 이유도

그런 명상과 기도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줄리엣과 마리아, 테레사로만 기억될 수 있다면, 그걸로 전 충분해요."

허시는 “과거로 돌아간다면 좀더 일에 충실하고, 좀더 좋은 선택을 하겠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2001년 인터뷰 당시 자서전 집필에 전력하고 있다며
‘테레사’ 촬영이 끝날 때쯤까지는 그 작업을 끝내길 희망한다고 말했는데
예정대로 출간이 됐나 모르겠네요.

 

‘마더 데레사’는 내년 1월 21일 세계 최초로 국내 개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작년에 TV물로 방영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극장에서 개봉하는 게 우리나라가 처음이라는 뜻 아닌지 모르겠네요.

하여튼 세월의 깊이만큼 주름진 올리비아 허시의 얼굴이 어떤 아름다운 감동을 안겨줄지

그 옛날 '로미오와 줄리엣' 사진을 잡지에서 찢어내던 소녀처럼 설레는 심정입니다.


국내팬 중에는 영화사측에서 최근 공개한 ‘마더 테레사’의 사진만 보고
벌써부터 “늙었구나 늙었어 쯧쯧”하며 실망을 표하는 분들이 많던데
올리비아 허시, 하면 ‘줄리엣’ 당시 모습만을 기억하는 국내팬들이
이제 더이상 꽃다운 소녀가 아닌 장년의 그녀 모습을 보러 과연 얼마나 극장을 찾을지도 의문이지요.
흰 수녀복을 입고 타인의 밑바닥 삶까지 감싸안으며 나이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어쩌면 사랑을 잃고 목숨을 버린 붉은 드레스의 줄리엣보다 훨씬 더 아름다울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허시는 많은 이들에게 영원히 열다섯살 줄리엣으로 기억되겠지만

사실 이 스산한 겨울,

그립던 그녀가 테레사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돌아와준 것이 저는 이상하게 아주 고맙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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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녀 2004-12-19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줄리엣이라는 말을 듣거나 글로 읽을 때문 올리비아 허시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당분간은 다른 이미지로 대체되지 않을 듯 싶네요. 맨 위의 사진은 전에 서재 이미지로 쓰셨었죠? ^^

stella.K 2004-12-19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기억력 좋으시네요. 예. 제가 좀 그런 이미지라서...호호호.

근데 마더 데레사에 올리비아 허시라니 캐스팅이 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들어도 우아하네요.^^

stella.K 2004-12-20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좋아했어요. 청초하지 않습니까?^^

니르바나 2004-12-20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콤한 입맞춤이 그녀를 볼 적마다 생각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노랫책 앞장에 실린 사진이 말을 걸어옵니다.

밑에 있는 사진을 보니 마더 데레사 수녀님 모습이 숨어 있네요.


stella.K 2004-12-21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도 올리비아를 좋아하시는군요.^^
 

"모든 존재는 사람 사이의 관계망으로 존재한다"

/ 돌베개
유석재기자 karma@chosun.com
 

육사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그가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은 1968년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꼭 20년2개월 동안 그는 감옥 안에 갇혀 있었다. 당시 교도소에선 책을 세 권 이상 가지고 있을 수 없었고, 한 권을 가지고도 오래 읽을 수 있는 책은 동양고전만한 것이 없었다. 유년시절 조부로부터 한문을 배웠던 기억을 되살리며, 그는 차제에 ‘우리 것을 다시 공부해 나 자신의 정신적 영역을 간추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자신의 교양과목 ‘고전 강독’의 내용을 정리한 이 책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경전에 대한 훈고학적 탐구나 주해(註解)는 여기서 그가 천착하는 방향이 아니다. 문제는 “고전으로부터 바로 지금 우리의 과제를 재조명하는” 것. ‘시경’ ‘서경’ ‘주역’의 삼경(三經)도, ‘논어’ ‘맹자’ 등의 사서(四書)도, ‘묵자’ ‘순자’ 등의 제자백가도 모두 “그러한 논의를 이끌어내는 마중물의 의미”를 넘지 않는다.

그는 이 강독 과정의 화두를 한 단어로 분명히 드러낸다. 그것은 ‘관계론(關係論)’이다. 서구 근대사의 원리가 ‘개별적인 존재’라는 기본 단위를 상정하고 자본주의적 질서를 만들어낸 ‘존재론’임에 비해 동양고전에선 “세계의 모든 존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망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선 ‘자본론’과 ‘논어’가 “사회 관계를 중심에 놓고 있다는 점에서 동질적인 책”이 된다. 이 관계론은 ‘주역’에서부터 드러나는데, 하나의 사물인 효(爻)는 그 자체로는 가치판단을 할 수 없으며 그것이 자리잡고 있는 위(位)와 다른 효와의 관계인 응(應)에 따라 길흉화복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논어’는 이런 관계론의 보고(寶庫)와도 같다. ‘덕불고 필유린(德不孤必有隣·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은 공자의 말에서 그는 “덕(德)이란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에 무게를 두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나아가 운동론에서도 민중과의 접촉 국면을 확대하고 그 과정을 민주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 ‘덕불고 필유린’의 원리라는 것이다. “인간관계로서의 덕이 사업 수행에 뛰어난 방법론으로서 검증됐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이며 가치이기 때문에 귀중한 것”이다.


▲ 경제학 전공인 신영복 교수는 네 권짜리 '중국역대시가선집'(공역)을 냈을 정도로 한학에 조예가 깊다
군자의 덕목인 ‘화이부동(和而不同)’에서 ‘동(同)’은 자기와 타자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지배·흡수의 논리로, ‘화(和)’는 타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의 의미로 해석된다. ‘동’의 논리는 바로 전 지구적 자본주의와 세계화를 의미하는 반면 ‘화’는 세계가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구도가 된다. 이런 ‘관계론’은 현실도피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도가(道家) 사상에서도 나타난다. 장자(莊子)가 나비의 꿈을 꾼 우화는 ‘모든 사물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 조건이 된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을 나타낸다는 설명이다.

인간과 역사에 대한 사랑을 깊이 깔고 있는 그의 글은 준엄한 동시에 따뜻한 ‘체온’을 지니고 있다. 그 체온은 자신의 이론과 사상이 세상을 걸어가는 ‘실천’에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실천’을 밝히려는 부분이 때론 약간의 고집스러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논어’의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배우고 때때로 익힌다)’에서 ‘습(習)’을 실천이라는 의미로 읽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다)’의 ‘사(思)’까지도 실천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무래도 당혹스럽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 사이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무시하고 새로이 등장한 지식인 계층인 사(士)를 피지배계급으로 설정, 유가(儒家)를 ‘제3의 계급 사상’으로 본 부분은 지나친 도식화라는 이론의 여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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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0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4-12-21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신영복님을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읽고 싶기는 한데, 언제 읽게될런지 모르겠네요. 읽으시면 리뷰 좀...^^
 

[연재(15)-다시쓰는 금서(禁書),'일본 또 하나의 한국']

                                            

(2장 맺음말 앞뜰) -일본은 ‘東한국’                       

 

                           

                                                                  

      해밑섬 '야마토'에 내리는 비.. 

 

            

              

                        [江戶 스케치 第26景]                 

                          

         '비'( Rain 雨 )  

     Ando Hirosige 1797~1858

      1832~34년, 22.3*34.7cm, 개인소장

       [우키요에(浮世繪) 안도 히로시게 作 ]

     안도 히로시게: 우키요에 판화의 대가. 하급 사무라이 집안에서 태어나 화가를 부업으로 삼음. 미인, 풍경, 계절 판화를 주로 제작. 1867년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인상파 화가 '모네'에게 발견되면서 자포니즘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중 한사람. 고흐, 보나르 등 당대의 서구화가들이 그의 우키요에를 그대로 베껴 그리고, 그 영감(intuition)에 자극을 받아 많은 모방작이 탄생하게 된다.  

 

    일본은 ‘東한국’, 韓半島 領 ‘해밑섬’


  쯤에서 여러분들은 필자의 의도를 감지했을 줄 믿는다. 여러분들이 느끼는 대로 앞의 말과, 지명과 역사를 예화를 들어 줄줄이 엮어가며 이곳까지 온 것도 바로 이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이다.

  처음부터 이같은 명제를 앞에 내걸면 잘 모르는 우리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무슨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가 하고 의아해 할 것이고, 더더욱 잘 모르는 일본인들은 이야기도 듣지 않고 이 ‘무슨 소리냐’고 야쿠자 식으로 '칼'부터 들이댈테니 이를 염려해 조금씩 한 걸음씩 다가왔을 뿐이다. 각 장의 끝에서 그리고 각 절의 끝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지면상 생략한 것도 결국은 빨리 이 결론을 내고 싶어서이다.

 그 한줄은 바로 '일본은 한반도령(韓半島 領) 일본섬이었고,,따라서 일본어는 한국어의 일본섬 사투리'라는 것이다.  대영제국(大英帝國,British Empire, Great Britain)을 만든 것이 그 유럽의 한쪽 끝 대서양에 횡하니 붙어있는 초라한 조그만 영국섬이 아니라, 바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영국령(領, 영국연방 Commonwealth of Nations)이듯이 말이다.

  여기서 지금까지 우리가 살피고 익혀온 여러 잣대와 도구(tool)들을 이용해, 아예 '일본'이라는 말까지 해부해 보자. '일본'이라는 말조차 '한국어의 일본섬 사투리'라면 이 모든 명제들이 보다 분명하고 명확해지지 않겠는가.

 

              

      세계최대의 배수량을 자랑하던 태평양전쟁시  일본해군의 대표전함 야마토(大和)호.

     왜 한자로는 大和라고 쓰면서 '야마토'라고 읽는지 일본인들에게 물어보면 똑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교과서에 그렇게 쓰여 있는데요? ' 그 진짜 이유는.. 


  것도 결론부터 말하면 실제로 '일본'이라는 말조차 '한국어의 일본섬 사투리'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다.

 우선 '일본'이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여러 가지 발음으로 읽힌다. 우선 한자 발음 그대로 따서 '닛폰' 혹은 '니혼'이라고 발음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우리 역사상 실제로는 현대어의 한자발음 '신라(sinla, 新羅)' 혹은 '백제(baekje 百濟)'라고 불리던 나라가 없었듯이, 한자음을 빌어 표기한 용어일 따름이다.

  ‘신라’도 삼국사기 등에 한자로는 이렇게 신라(新羅 sinla, silla )라고 적혀있으나, 당시의 발음은 일본 역사책에서 전해 내려오는 '시라기(siragi)'와 유사한 발음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로(saro)', '서라(seora)', '서라벌(seorabul)' 등이 그것으로, 새로운 땅(새나라), '해뜨는(새는) 동쪽 나라'라는 뜻을 가진 우리 민족 ‘고유 한국어’ 의 한자 이두표기였을 뿐이다. 

        

           신라말   서라(서로)+벌 seora-bul > sae nara, sae bul 새나라. 새벌   현대어

 

‘백제’도 마찬가지다.  이 한자를 '백제'라고 한국사람들이 읽는 현대어 발음이 생긴지가 얼마 되지 않았고(현대식 국사 편찬이 아직 1세기가 안되므로, 당시에는 '구다라(큰 나라)' 등등 다른 음차의 표기를 했음이 역사상 문헌들에 남아있다.

  각설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결코 지금의 '일본'은 우리나라 말의 한자 읽기 표시인 '일본(ilbon)'이란 발음이 그렇듯이,'닛폰(Nippon)'이나 '니혼(Nihon)'이라는 한자의 차음방식으로는 처음부터 읽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江戶 스케치 第27景]         

   

  

  

 전세계적인 일본 애니 붐을 몰고왔던 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

(한국판 제목: 우주전함 V호)'.  텔리비전 애니메이션 이외에도

1983년까지 모두 4편이 극장에서 개봉돼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한 

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의 대표작이다. 야마토를 지칭하는 한자가 

여러가지로 쓰면서 유독 고유어인 '야마토'를 고집하는 것도, 이것이

바로 1천5백년을 내려온 범할수 없는 일본의  '국호'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일본의 고유어로 '야마토(やまと; yamato)'로 읽혀지는데, 포인트는 이 '야마토(yamato)'라는 것이 '일본'이라는 역사서의 기술보다 먼저 있었다는 사실이다. '해의 무녀(巫女 ‘해님이’)'라는 뜻을 가진 '히미코'에 대해서 앞장에서 설명한 적이 있지만 이 히미코의 야마대국(邪馬大國)부터 이미 '야마토'라는 말은 존재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도 기원 173 년에 왜국의 여왕 ‘히미코’(해님이) 가 사절을 보내왔다는 기록이 있듯, 이 '야마토 왕국'의 건국은 기원 170 년에서 180 년 전후로 추정되고 있으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국가로 기록되고 있다.

이 야마토도 한국어의 일본 섬 사투리로 풀린다. 지금의 현대 일본어에서 산(山)을 의미하는 '야마' 혹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雨)를 ''아메'라고 하듯이 야마토의 앞 '야마'(yama, ame)는 옛부터 신성시 되는 높은 곳 즉 하늘을 뜻했다. 한국어에서는 거의 쓰임이 없어졌으나, '맏형''맏며느리'의 '맏', 이전의 산을 뜻한 '뫼'(moi)에 원형이 남아있다. 즉 해가 뜨는 곳이라는 의미...따라서 음보다는 훈을 중시한 '야마'를 제외하고 보면 '토'부터 바로 우리말 '터'에 1대 1로 대응한다.

 

                      韓  터(基,址) teo     >   토  to (戶) 日 

                      韓  뫼(山),맏(先)moi  >  야마 아메 yama, ame (山, 雨) 日  

                             

        따라서,       韓  해뜨는 곳, 높은 곳, 산이 많은 곳

                          해밑,뫼터  moi teo   >  야마토 yamato     (日本)  日

                     

  그런데 이 일본서기 등에 의하면 백제의 학자들과 왕인 박사 등에 의해 일본에 한자와 그 한자 읽히는 법이 건너간 것이 3세기 말, 기원 370 년 전후로 추정되고 있다. 결국 그 이전까지 일본에는 문자가 없었다는 말이 된다.

 

라서 일본의 고유어-즉 한국어의 일본 사투리를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던 당시의 지식인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한국에서 하던 그대로, 한자의 음을 빌어 고유어를 표현했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 일본식 ‘이두문자’가 바로 현재의 일본어 표기법인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가 된 것이다. 즉 우리의 향가가 그렇듯 당시의 한자음을 빌어 한국어의 일본 사투리로 지명과 국명, 사람이름 등등을 그냥 기록한 것이다.

  당서(唐書),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등에 의하면 '일본'이 정식으로 국호로 쓰인 것이 서기 670 년으로, 백제(구다라)가 황산벌에서 신라(시라기)에게 패배하고 구원군인 일본(야마토)군이 지금의 금강으로 추정되는 백촌강 전투에서 패배한 후 일본으로 돌아와 나라 이름을 이같이 ‘일본’이라고 정하고 이것을 역사에 기록한 것이 처음이다.

天智라는 일왕은 이듬해인  671 년 백제 유민 중 66 명이나 조정의 고관으로 임명하고 조정의 공식 유니폼인 복식(服飾)조차 ‘백제식’을 따르게 했다. 그전에는 '큰나라'에서 살던 사람들로 일본을 천하의 야만족이고 '후진국' 취급했던 백제인들이 이 '왜(倭)'국에 옮겨와 살게 되면서 더 이상 자신들의 나라를 '왜국'으로 부르지 않고 '일본'이라는 정식 국호를 붙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일본이라는 ‘나라이름’과 일본 조정 고관들의 이름속에 바로 우리가 모르던 위대한  ‘한국어의 비밀’이 숨어 있게 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편에 ....(계속)


 

앨범명 : 10 Numbers からっと (Album)   
가수명 : Southern All Stars 
발매일 : 1979/04/05

 

♪♪♬

<출처 - Jpop in Korea™ >

 

- いとしのエリー (사랑스런 에리) -

 

泣かした事もある 冷たくしてもなお
나카시타 코토모 아루 츠메타쿠 시테모 나오
울린적도 있어 차갑게 대해도 더욱

よりそう 氣持ちが あれば いいのさ
요리소우 키모치가 아레바 이이노사
가까워지는 마음이 있으면 좋은거야

俺にして みりゃ これで 最後の lady
오레니 시테미랴 코레데 사이고노 lady
나에게있어 그대는 마지막 lady

エリ- my love so sweet
에리- my love so sweet
에리- my love so sweet

.... 
笑ってもっと baby むじゃきに on my mind
와랏테 못토 baby 무쟈키니 on my mind
웃어봐 더욱 baby 순진하게 on my mind

映ってもっと baby すてきに in your sight
우츳테 못토  baby  스테키니 in your sight
비추어줘 더욱 baby 멋지게 in your sight    

                                

                                                                                                     

출처:1004의millennium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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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화를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 386

요즘 뉴라이트 뉴라이트 하는데, 궁금하셨죠?
저도 사실 무슨 내용인지 확실히 몰랐습니다만, 시간을 내서 한번 정리해봤습니다.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파악한 내용만으로는 개인적으로 호감이 갑니다. 본글에는 제 의견이나 딴지등은 없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제 글과 곁들이면 더 좋은 포스트가 되었을텐데, 개념 정리하는 차원에서 읽어보시기바랍니다.
* 본 글은 '자유민주주의연대'의 발제문 2개를 요약정리한것입니다.
* 참고 사이트 : http://www.486.or.kr/

 


I. 뉴라이트의 개요

1) 배경과 목적, 주체

80년대 맑스레닌주의와 김일성주체사상을 선동하고 학습했던 386세대들의 현 '진보'정치세력들에 대한 지적과 반성
; 80년대 민주화운동은 반미친김일성 운동이며, 주사파가 주도권을 가진 운동이었다.
이 세력들은 이것을 애국과 정의라고 믿는다. 하지만 사회를 혼란으로 몰고 갈뿐이다.

2) 학생운동에서 모색되고 정립되는 혁명노선은 상층 재야민주화단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노동, 농민, 빈민운동계에는 물론이고, 종교운동계에도 해방신학 등과 연계하여 커다란 영향을 끼침
; 이는 민주화 그자체가 아니라 혁명전단계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3) 운동의 개요
386주체들의 특징과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뉴라이트 주체들이 같은 386세대로서 일말의 책임을 갖고, 혼돈의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여보겠다는 충정으로 뉴라이트 운동을 시작함.

4) 현재 386들의 4가지 유형
- 골수 386 : 여전히 김일성주의에 기초하여 북한화통일,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세력
- 업그레이드 386 : 자유주의를 수용했거나 한국에 진정한 자유주의가 정착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세력
- 정치권 386 : 반미친북적 성향과 사고, 그리고 80년대적 경향성 , 이를 개혁과 진보라 믿음
- 생활인 386 : 80년대 사고를 가지면서 일찍 생활에 적응, 운동을 뒤로하고 생활을 챙겼다는 부채의식에 더욱 강경한 의식갖고 있음. 노정권의 부실로 현정권에는 등을 돌림

5) 기대와 목적
레드 컴플렉스를 극복하고, 386세대들의 정신적 업그레이드를 통해 존재성을 확인과 건강함을 회복하고 장기적으로 사회에 긍적적으로 기여하기 위함.



II. 뉴라이트의 특징

1) 역사인식 :
건국-호국-산업화-민주화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50년사는 성공의 역사, 노무현 정권의 자학사관은 위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정과 청산’이 아닌 ‘계승과 발전’의 역사관

2) 뉴라이트 아젠다
산업화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 : 정치, 사회, 교육, 문화 모든 방면에서 보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격조 높은 나라

3) 선진화의 개념
선진화는 산업화와 민주화 양 흐름의 장점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단점을 극복하여 대한민국의 지향을 밝히는 21세기 신노선

4) 경제인식
- 작은정부 큰시장 : 민간의 창의력을 중시하는 시장주도형 자유주의 시스템만이 현재 경제문제를 해결
; 정부여당의 한국판 뉴딜정책 검토는 시대역행적 , 자율적인 환경에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 정부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데 주력, 이는 정경유착의 폐해를 구조적으로 차단 해결

5) 정치인식
- 이른바 민주화세력이 행정권력, 의회권력을 장악했으나 한국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하는중
;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80년대식 민중민주주의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
-자유를 신장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제약하는 신문법, 사립학교법, 과거사진상규명법 개정 움직임
현 정권이 표방하는 참여민주주의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
-사이버공간을 전자민주주의가 아닌 인터넷 포퓰리즘의 장으로 전락

6) 사회문화인식
갈등수준은 위험수위, “배고픈 건 참아도 배아픈 건 못 참는다”는 사회심리가 한국인의 특징
모든 특권을 철폐하고 기회의 균등을 제공하되 경쟁의 결과에 대해서는 승복하는 합리적 사회문화를 창출해야함
청부(淸富)를 사랑하며 빈부격차의 해소가 아닌 빈곤의 해소를 추구

7) 다원주의 인정
- 구우파(old right)와 구좌파(old left)의 선악 이분법과 색깔론(‘빨갱이’와 ‘수구꼴통’)을 극복
- 넓은 스펙트럼 :사회민주주의에 근접한 사회적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 법치주의(입헌주의)와 자기책임 원칙이 정착되어야 함

8) 상생의 자유주의 지향
‘공동체 자유주의(communitarian liberalism)’ 이는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되 21세기에 걸 맞는 새로운 공동체적 질서와의 조화를 도모하는 자유주의

9) 현정권에 대한 규정
현 정권의 참여민주주의는 80년대 운동권이 주창했던 민중민주주의의 노무현 버전.
盧 曰 “독재를 돕던 단체들도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를 누리고 있어 조금 제한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 - 지배계급 교체, 기존질서 해체 등의 발상은 민중민주주의에서 비롯,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변종

뉴라이트 운동은 지난 9월 이재오의원이 연찬회이후에 발표한 글과 맥락이 동일한것 같아 관련글을 올려드립니다.

http://www.leejo.net/board/viewbody.html?code=board_unity&number=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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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두호리와 유쾌한 일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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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nbahnstrasse 2004-12-20 0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감이 갈 여지가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