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s to a Young Poet

 

a Piano Quartet in E Flat Major - III. Andante cantabile / Schumann

 

R1


깊어가는 가을 날... 책상 위에 어지럽게 쌓여있는 책들 사이에서

릴케의 서간집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꺼내 들었다.


이 책은 릴케가 5년 동안 어느 젊은 시인에게 편지를 받고
그에게 보낸 답장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놓은 것.

아무 페이지나 펼쳐 봐도 명상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측정에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일년으로도 잴 수 없습니다. 십년으로도 안됩니다.
예술가로 존재한다는 것은 계산을 한다든가 헤아리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처럼 성숙하는 것입니다.

봄의 폭풍 속에서 여름이 오지 않을까 불안해 하지 말고
침착하게 수액을 뿜어내고 있는 나무처럼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름은 오고야 맙니다.
여름은 인내하는 자에게만 오는 것입니다. ..."


무릇 예술가란 인내해야 하며

나무처럼 침착하게 때를 기다리라는 말이다.

 

인내 patience 란 무엇인가?

그것은 고독은 물론 정신적 고통까지 안겨주지 않던가...

참아낸다는 것... 아무나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릴케는 "고독(孤獨)을 사랑하라!" 고 말했다.

어떤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봄에 있어

고독은 그것에 대한 사고(思考)를 더욱 깊고 넓게 만들어 주기에...   

 

                                                                                                                   written by michel

 

시인의 영감 The Inspiration of the Poet, 1636-38 / 푸생 Poussin, Musée du Louvre


R4

 

 

나의 투쟁

                                                - 릴케

나의 투쟁은
그리움에 몸 바치며
하루 하루를 헤쳐 나오는 것


수없이 많은 뿌리를 뻗어

강인하고 넓게
인생에 깊이 파고 드는 것


고통으로 몸을 태워버리며
참되게 성숙하여
생명과 시간으로부터 멀리 벗어나는 것  .....

                                                                                                                                                 

 

   1004의 아침편지

 

                   김보희 / 무제 / 한지 위에 채색 / 60×72.5㎝ / 2002    

                                                       Classic for you (michel)님 블로그-esiesta 님 jpg 펌 

 


   

                "희망이란..."




 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魯迅)의 《고향》 중에서 -


  망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생겨나는 것이 희망입니다.

 

  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존재합니다.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희망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도 희망은 없습니다.

 
 람이 가는 길도 그렇지만
물이 가는 길, 시내도 강(江)도
원래는 그저 땅이었을뿐입니다.
 
 음은 한 방울씩 솟아나는 샘이지만,
그 조그만 물방울들이 모여 길을 이루면....
언젠가는 대하(大河)가 됩니다. 
 
 (水)이 가는(去)길... 
그것이 길(道)이자,
곧 물길(法)입니다   
 "나무가 고통속에서도
수없이 많은 뿌리를 뻗어

강인하고 넓게
인생에 깊이 파고 들듯이.."

 

 케의 '나의 투쟁'과
루쉰(魯迅)의 '희망'이, 
동서양의 모든 철학과 사상과 예술이
결국 한 곳에서 만나듯이....
   
                                                     
                                                 1004 생각
펌-다듬은 글

 

출처:1004의millennium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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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킴벌리의 3H이론(Hand, Head, Heart)을 들어 보셨습니까?

 

손이 움직였을 때에는 개인의 능력을 2-30%

머리를 움직이면 4,50%

가슴을 움직이면 100~200%의 능력을 끌어낼 수 있다.

 

------------------

 

손과 머리는 가볍게 움직일 수 있지만 감동은 힘들다는 거다.

사실 머리=가슴이지만 감동이 변화시킨다.

출처:오즈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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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후사 2004-10-27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사람이 대한펄프 다니는데 이렇게 말하더군요.
'유한킴벌리가 대한민국의 희망 어쩌구 하는데 말도안돼. 내수산업인데 해봤자 제 살 깎아먹기잖아."

stella.K 2004-10-27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그래도 뭐, 요즘 같은 시대에 희망이라도 말하는 사람있으면 예쁘게 봐줍시다.^^
 

'결혼 안식여행' 이 여성에게 주는 의미

여성신문사
박영석기자 yspark@chosun.com
 


 

여성에게 ‘결혼’과 ‘자아’는 공존하기 힘든 화두인가? 자기 삶의 주역이 되지 못한 채 주부·아내·엄마라는 조연(助演)에 머물러야 할 숙명인가? 신문·잡지 편집인, TV 프로듀서, 전업주부를 거친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대학강사(워싱턴대 저널리즘)가 익숙한 일상과의 짧은 결별을 자기 정체성 회복의 계기로 만든 체험과, 다른 여성 55명의 사연을 책(원제 The Marriage Sabbatical: A Journey To Woman Within)에 담아 ‘결혼 안식년 휴가’의 가치를 전한다.

저자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떠나 있고 싶었던’ 36세 때 자신의 갈등과 무산된 기회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집에서 멀찍이 떠나 3개월간 쇼 프로그램 PD로 활약할 호기를 10대(代) 두 아들의 호소로 포기하고 만 것이다.

“아들들의 인생 폭이 넓어지는 동안 내 인생은 좁혀져 가고, 시간과 기회를 놓쳐 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는 그로부터 12년 뒤 홀로 떠난 3개월간의 여행이 ‘결혼과 자신을 함께 존중하는 법’ ‘의무와 책임을 화해시키는 법’을 일깨우는 재충전이 됐다고 말한다.

54세에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에티오피아 오지(奧地)에 이어 걸프전과 보스니아 내전에서 봉사 활동을 한 뉴욕 출신 엘지 로스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인데도, 친지들은 그저 남편을 혼자 남겨두고 간다는 사실만 꼬집어낼 뿐이었다”고 말한다.

‘필생의 연인’인 그림을 위해 동거 5년, 결혼생활 1년간 두 차례 남편을 떠나 있었던 미술가 메간(30)은 “비행(非行)을 의심하고 재앙을 경고하는 주변 사람들 반응에서 더 큰 심적 고통을 받았다”고 했다.


▲ 결혼은 '꿈'을 앗아가는 제도인가? 저자는 "기혼 여성이 꿈을 키워갈 때 자아가 강해지고 결혼 안식 여행은 부부 관계를 포함한 대인관계에 에너지를 준다"고 말한다.
자녀가 장성할수록 ‘나는 어디 있는가’를 자조하는 중년의 공허는 이런 편견의 벽 앞에서 사치에 가깝다. 보스턴의 안과의사 데보라에게 닥친 비극은 세상의 비정함을 증명할 따름이었다. 그녀는 둘째를 낳고 주3일로 근무시간을 줄였지만, 아이가 사고로 죽은 뒤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나쁜 엄마”라고 매도당했다. 저자는 “엄마가 행복하지 않으면 가족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며 ‘착한 엄마 콤플렉스’의 맹점을 지적한다.

소녀 적부터 선망했던 ‘평화사절단’의 꿈을 결혼 때문에 30년간 접었던 크리스는 49세 되던 해에야 비로소 펼친다. 1만3000㎞ 떨어진 아프리카에서 2년간 교사로 일하게 됐다는 사실에 놀라는 남편에게, 그녀는 “평생 같이 사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고, 당신을 떠나는 게 아니에요”라고 설득한다.

저자가 논하는 안식 휴가는 도피나 일탈의 대척점에 있는,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시간이자 자신을 새로이 창조하는 공간이다. 자신을 잊는 시간이자 자신이 누군가를 인지하는, 또다른 시작을 향한 귀가를 담보한 소중한 여행임을, 심리학·정신분석학적 이론을 원용해 설명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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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 2004-10-26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함께'는 영원한 물음표일뿐 마침표는 아닌가보군요. 살짝 씁쓸하네요. ^^

stella.K 2004-10-26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말미에,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이론을 인용했다는 부분에서 확 끌렸다는 거 아닙니까? 마침 결혼에 대해 알고 싶기도 했구요. 흐흐.
 

김승범 주간조선 기자 sbkim@chosun.com

 


 

#정치

다시보는 저우언라이 / 이경일 편저/ 우석

“역사는 왜곡할 수 없다. 두만강·압록강 서쪽은 역사 이래 중국땅이었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다. 이는 모두 역사학자의 붓끝에서 나온 오류이며 우리는 이런 것들을 바로 시정해야 한다.”(1963년 6월 저우언라이·周恩來)

저우언라이는 1976년 서거 후 30여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중국 인민의 벗’이다. 그의 추도비에는 “총리와 인민이 동고동락해 인민과 총리의 마음이 이어졌다”라는 글이 쓰여 있다. 하지만 최근 중국에서는 ‘동북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저우언라이가 경고했던 역사 왜곡이 진행되고 있다. 총리와 인민의 마음이 끊어진 것일까. ‘다시보는 저우언라이’는 저우언라이의 조명을 통해 한·중 역사 관계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게 한다. 1만원

#경제

공산당도 팔아먹는 중국재벌 / 미야자키 마사히로 지음·김현영 옮김/ 모색

중국의 GDP는 미국·일본·독일·프랑스·영국에 이어 세계 6위다. 휴대전화 보급 2억6000만대, 자동차 생산 444만대, 석유소비량 세계 2위. 중국은 세계 중심의 경제 대국이다.

이런 중국은 누가 움직이는가? ‘세계의 공장’ 중국 수출의 52%를 외국계 자본의 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그 외국 자본의 34%는 홍콩에서 투자한 것이고 대만(10% 내외), 말레이시아·싱가포르·태국 화교가 뒤를 잇는다. 외국 자본의 70%가 해외 화교 자본인 것이다.

‘공산당도 팔아먹는 중국 재벌’은 실제 중국을 움직이는 해외 화교를 비롯한 중국 기업의 연혁과 그 인맥을 정리해 중국 경제의 실태를 검증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정권과 자본의 결탁은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중국의 재벌들이 공산당을 팔아치우지 말란 법이 있을까. 1만2000원

#역사

5000년 중국을 이끌어온 50인의 모략가 / 차이위치우 외 지음·김영수 편역/ 들녘

중국 역사상 수많은 모략가들이 흘러 지나갔다. 이들은 중국 역사를 창조해나간 주역이기도 하다. ‘5000년 중국을 이끌어온 50인의 모략가’는 한비자(韓非子)·손무(孫武·손자병법 저자)·측천무후(則天武后) 등 중국을 대표하는 모략가들의 스타일과 특색을 소개했다. ‘모략가’ 하면 부정적인 느낌이 많이 드는데, 이는 ‘모략’이라는 단어에서 ‘속임수’나 ‘중상’이라는 의미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모든 사회 현상에 대한 인식과 그 인식을 바탕으로 정립해놓은 가치관’이 바로 모략이라고 정의한다. 모략은 삶의 기술이자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인 것이다. 역사 속 인물에게서 현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배운다. 2만1000원

#문화

루쉰의 편지 / 루쉰·쉬광핑 지음·리우푸친 엮음·임지영 옮김/ 이룸

“일주일에 겨우 한 번뿐인 선생님의 (소설사) 강의 시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학생이랍니다. 선생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담배연기로 자욱한 중국의 현실이 가엾지도 않으신가요?”

1925년 3월 11일 중국 신문화의 기수였던 루쉰(魯迅)은 베이징여자사범대 학생인 쉬광핑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사제지간이던 둘은 이후 170여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눴고 결혼에 이른다. ‘루쉰의 편지’는 그 중 43편을 골라 실으면서, 당시 삭제됐던 부분을 복원했다. 하지만 단순한 ‘연애 편지 모음집’이 아니다. 격동기 중국을 살아간 남녀의 사상적 논의와 자아 분석이 담겨있으며 루쉰의 인간적 품성이 묻어나온다. 1만7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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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10-26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은래의 말이 인상깊네요. 역시 위대한 사람은 요즘 잔챙이들처럼 놀지는 않는군요.
 
 전출처 : 브리즈 > 표현함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글쓰기

                           나이가 들면 옛 생각이 많이 난다고들 하던데, 바쁜 나날들 속에서도 예전에 읽었던 책이나 예전에 들었던 음악들을 다시 찾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과거의 나에 대한 태도는 “그때가 좋았어” 식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때는 그랬지” 식이 대부분이다. 즉, 회한이나 그리움처럼 나 자신에게 밀착해 생겨나는 감정보다는 무덤덤함처럼 스스로에게 거리를 두고 있을 때 만나는 허허로움 쪽이다.


  하지만 과거의 내 모습을 생각하는 동안 어찌 아쉬움이나 회한이 없으리. 그때 좀더 열심히 했었더라면, 그때 좀더 용기를 냈었더라면 하는 해묵은 후회의 감정들은 때때로 가슴을 무겁게 한다. 그럴 때면 보통은 담배 한 개피를 피우며 연기에 풀어 날려보내고 말지만, 어떤 날은 담배 한두 개비로는 성이 차지 않아 머릿속이 제법 엉켜들기도 한다. 요즈음처럼 머릿속이 깊어져 생각이 자주 고이는 때는 더 그렇다.


  나는 김훈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김훈의 소설을 두 권 갖고 있는데, 한 권은 어찌어찌 생긴 것이고, 한 권은 읽기 위해서 직접 구입한 것이다. 하지만, 두 권 모두 책이 생겼던 때에 읽을 시간이 마땅치 않아 읽을 기회를 놓쳐버렸다. 아니다,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김훈의 소설을 몇 장 읽었지만, 나는 더 읽어 나가지 않았다. 아마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김훈의 소설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쪽이냐면, 나는 김훈을 산문가로 기억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은 김훈의 첫 책으로, 지난 89년 처음 나왔고,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은 개정판이다. 15년 전에 나왔던 것을 최근 김훈의 인기에 힘입어 같은 출판사에서 다시 펴낸 것이다. 다시 펴냈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것은 맞는 말이 아니다. 이 책은 89년에 나왔던 <내가 읽은 책과 세상>에서 시에 관한 부분들만 떼어내 '김훈의 시 이야기'라는 부제까지 달아 내놓은 축약판에 불과하다. 활자 크기가 작았던 당시에도 300쪽을 넘었던 책이기 때문에 분량을 줄이느라 그런 것 같은데, 나는 이것을 개정판이라고 볼 수 없다. 이 책은 책값이 1만1,000원이나 하는 축약판일 뿐이다.


  대략 90년 초에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을 읽었던 것 같다. 그 전에 문예지와 한국일보 들을 통해 김훈의 글을 알고 있었고, 책을 읽으면서 한 줄 한 줄 김훈의 매끄럽고 아름다운 문장 속에 빠져들었다. 그 문장은 매끄럽되 찬란함을 갈구하지 않았고, 아름답지만 치장의 누를 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매끄럽고 아름다운 문장들 속에 숨쉬는 거센 자의식의 싸움, 그리고 그것을 감싸는 지적 성찰이 마음을 오래 끌었다.


  그것은 작가나 시인의 자의식과는 다른, 그러니까 정형화된 형태를 띠지 않는 자의식이었다. 뒤늦게 나는 그것이 지식인의 자의식이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 또한 그 속에는 지식인의 자의식이라고만 부를 수 없는, 김훈 특유의 자의식이 배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것은 독학으로 문학을 익힌, 즉 혼자 힘으로 세상을 익힌 자의 '죽기살기'였다. 그것이 내 마음을 오래도록 끌어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나는 새로 나온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을 축약판 운운하며 깎아내렸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김훈의 글들은 여전히 내 마음을 움직이며, 절판됐던 책이 다시 나오게 된 것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가령, 김훈이 미당 서정주의 시집 <질마재 신화>에 대해 쓴 글은 요사스럽다고 할 만큼 산문(山門)의 율법을 희롱하고 있는데, 그 솜씨는 김훈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이는 자신의 글을 통해 독자들을 미당의 시세계가 그리는 신화의 세계로 이끌고자 하는 무의식적 의도가 스며든 결과로 보이는데, 기실 이러한 글쓰기는 김훈의 글 곳곳에서 나타난다.


  김명인의 시릍 통해 동해 바다의 상상력을 짚어보고 있는 글을 보면, 도입부에 동해 한류 이야기가 나온 후 칼날같이 찬 겨울바다에서 투망질을 하느라 손금이 닳아 없어질 지경인 뱃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고 나서 “이 바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명인의 시들은...”하며 글을 풀어간다. 이 글이 씌어질 당시에 비록 김명인은 뱃사람이 아니라 교사일 뿐이었지만, 김훈은 김명인의 시에 드리워진 바다에 대한 이미지나 상상력 속에서 이러한 생생한 동해의 숨결을 느끼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이나 작가가 표현해 놓은 세계에 자신을 완전히 내던진 후에야 몇 줄의 글을 써나갈 수밖에 없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김훈이 독학으로 문학을 익힌, 즉 혼자 힘으로 세상을 익힌 자의 죽기살기로 글을 쓰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표현함으로써 익숙해지고, 표현함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이해하고 경험한 세계와 그에 대한 성찰인 자신의 글을 합일시키고자 하는 노력 말이다.


  산문의 정의 중 하나로 자신이 이해하고 경험한 세계를 온전히 기록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김훈의 산문은 그러한 과정을 잘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아울러 이는 비단 산문뿐만 아니라 문학의 의미이기도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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