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숨은아이 >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 "또야 너구리의 심부름"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는 좋아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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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끔찍한 연쇄살인마의 얼굴 - 인류(人類)의 자화상
사형 - 사형의 기원과 역사, 그 희생자들
카를 브루노 레더 지음, 이상혁 옮김 / 하서출판사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끔찍한 연쇄살인마의 얼굴 - 인류(人類)의 자화상

나는 이 책의 구판을 가지고 있는데, 목차와 다른 이들의 리뷰를 보니 내용에는 변함이 없는 듯 하다. 최근 나는 사형과 사형제도에 대한 두 권의 책을 연이어 읽었다. 사실 이 책은 스콧 터로의 책 "극단의 형벌"을 읽기 위한 용도로 다시 읽은 것이다. 스콧 터로의 책이 보다 최근의 사형과 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카를 브루노 레더 (Karl Bruno Leder)"의 이 책은 부제 '사형의 기원과 역사, 그 희생자들' 이 알려주듯 사형과 사형제도의 기원으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모습을 역사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사형(死刑, Todesstrafe)이란 단어 자체로 이미 '제(制) 혹은 제도(制度)' 와 결부된다. 사형의 출발 자체가 국가나 사회 구조의 체계 및 형태에 따라 각기 다양한 목적과 형태를 띠고 실시되어 왔기 때문이다. 사형이 국가나 사회구조에 의한 것이 아닐 경우, 우리는 그것을 살인 혹은 살해라고 부른다. 영어로 살인 혹은 살해를 가리키는 단어인 'homicide, murder, man- slaughter' 는 각기 '살의의 유무' 로 구분되는데 사전에 살의가 있었던 살해 행위는 'murder' 로 사전에 모의가 없었던 살해 행위는 'manslaughter' 이 두 단어를 포괄하여 지칭하는 단어가  'homicide'이다. (이외에도 살해를 지칭하는 말은 'kill, slay, slaughter, assassinate' 등 그 양태와 양상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과연 '제도로서의 살해' 즉 '사형'은 'murder'인가? 'manslaughter'인가? 또 그런 규정 뒤에 오는 사형에 대한 판단은 어떤 것이 될까?

과연 우리는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몇 가지나 알고 있을까? 이 책은 사람을 살해하는 온갖 기술들을 나열하고 있는 듯 보인다. 사람 하나를 죽이기 위해 인류는 그토록 오랜 시간을 들여 연구해온 것이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한겨레21"에 연재하는 '역사이야기'칼럼 "우리는 무덤 위에 서 있다"를 통해 여러가지 살해 방법을 나열한 바 있는데, 그 도움을 얻어보자.

참으로 죽이는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때려죽이는 타살(打殺), 구살(毆殺), 주먹으로 쳐죽이는 박살(搏殺),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박살(撲殺), 격살(擊殺), 쏘아죽이는 사살(射殺), 총살(銃殺), 포살(砲殺), 칼로 찌르거나 베어죽이는 자살(刺殺), 찢어죽이는 육살(戮殺), 육시(戮屍), 생매장해 죽이는 갱살(坑殺), 바퀴로 치어죽이는 역살(轢殺), 단근질해 죽이는 낙살(烙殺), 밟아죽이는 답살(踏殺), 깔아죽이는 압살(壓殺), 독을 먹여죽이는 독살(毒殺), 껍데기를 벗겨 죽이는 박살(剝殺), 끓는 물에 삶아죽이는 팽살(烹殺), 불에 태워죽이는 분살(焚殺), 소살(燒殺), 베어죽이는 참살(斬殺), 여기서도 머리를 베어죽이는 참수(斬首), 허리를 끊어죽이는 요참(腰斬)이 있다. 또 물에 빠뜨려 죽이는 익살(溺殺), 수장(水葬), 잡아죽이는 포살(捕殺), 굶겨죽이는 아살(餓殺), 목졸라 죽이는 교살(絞殺), 액살(縊殺), 채찍질하여 때려죽이는 추살(추殺), 철퇴로 쳐죽이는 추살(鎚殺), 몽둥이로 쳐죽이는 추살(椎殺), 발로 차죽이는 축살(蹴殺), 높은 데서 내던져 죽이는 척살(擲殺), 곤장으로 때려죽이는 장살(杖殺), 폭탄을 터뜨려 죽이는 폭살(爆殺), 기둥에 묶고 창으로 찔러죽이는 책살(책殺), 꾀어내어 죽이는 유살(誘殺), 죽일 사람이 없을 때 가족 등 다른 사람을 대신 죽이는 대살(代殺) 등 인류의 역사에 있었던 사람 죽이는 방법이 모두 동원된 것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현실이었다.

저자는 인류 사회가 제도로서 실시한 사형의 기원은 종교적인 '인신공양'과 종족 살해에 대한 '피의 복수'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제도로서의 살해 행위인 사형은 인간 사회에서 가장 오래된 형벌이었다. 그것은 인류가 최초로 만든 법률이랄 수 있는 거의 모든 고대의 법에 드러나는 '받은 그대로를 돌려준다'는 인과응보 원칙과 함께 공동체가 느끼는 죄책감, 불만, 공포 등을 발산하는 한 형태로서 존재해 왔다. 고대 바빌로니아 제 1 왕조 제 6 대 왕 함무라비(Hammurabi)왕이 제정한 함무라비 법전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법(成文法)이다. 이 성문법은 또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이라는 복수주의(復讐主義) 법률로도 유명하다.즉, 타인의 목숨을 빼앗은 자는 그 자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것인데, 다른 말로는 동해보복형(同害報復刑, 탈리오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이외에도 사형에는 자연재해나 기타등등의 사유로 공동체의 위기 의식이 고조될 때 이를 해소하기 위한 희생양으로서 제거되는 인신 공양의 형태가 남아 있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세계 101개 국가에 사형제도가 존치되고 있는 이유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강력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사형제도 존치론이 목소리를 얻는 까닭을 살펴보면 하나는 잔인한 범죄 행위가 주는 충격과 남겨진 유가족의 보복심리(동해보복형)에 기인하는 측면과 더불어 강력범죄로 인해 사회가 받는 스트레스(공포, 불안심리)를 사형이라는 제도의 존속으로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 때문으로 이는 과거 고대 사회의 인신공양이 주는 심리적 안정, 사회적 스트레스의 발산이란 측면에서 흡사하다.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며 사회에 의한 동일한 보복이라는 사형제도의 비윤리적인 측면이 강조되면서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을 중심으로 한 34개국이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하고 있으며, 전범과 군범죄를 제외한 일반 점죄에 대하여 사형을 폐지한 국가는 스위스와 영국을 비롯한 18개 국이 있다. 이외 법률로는 존속하지만 실제로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국가로 벨기에와 그리스 등 26개 국이 있다. 북한을 비롯한 소위 불량국가들의 인권 상황을 질책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인권 수호국을 자임하는 미국의 사형제도는 1972년 잠시 폐제되었다가 4년 뒤인 1976년 부활되어 2001년 현재까지 38개 주에서 사형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사법제도가 출범한 후 실시된 첫번째 사형 선고는1895년 3월 25일(양력 4월 19일) 재판소구성법이 공포되고 4일 뒤에 법무아문 권설재판소에서 녹두장군 전봉준(全琫準)에게 내린 교수형 선고가 최초이다. 1948년 이후 사형당한 사람은 모두 902명이다.

이 책은 고대와 중세, 근대를 거치면서 사형의 여러 모습들을 보여준다. 아마도 저자가 강하게 주장하고 싶었던 말은 사형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인 듯 싶다. 가장 이성적인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할 사법제도가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이유를 들어 사형이라는 비이성적인 제도를 이성을 가장한 제도로 존치시키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사형제도 뒤에 숨겨진 국가, 사회의 집단 의식이 어느 정도의 단계에 이르렀는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형제도가 사회의 안전판 구실을 한다고 믿는 집단 의식은 국가보안법이 국가안보의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집단 의식으로 연계된다. 그러나 사형제도가 범죄를 예방할 수 없고, 범죄율을 저하시킬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와 함께 더욱더 잘 알려진 사실은 사형이 빈번하게 실시된 시대일수록 독재자와 독재권력이 이를 그들의 목적에 맞게 적절하게 남용해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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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1-17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안 나와요 @.@ (저는 아직도 분류를 제대로 못 해서 특수문자 한 번 찾으려면 ㄱ부터 ㅎ까지 다 눌러본다지요 ㅎㅎㅎ)

비로그인 2004-11-17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래도 오늘은 댓글이 되어요 ^^;
 
 전출처 : 설박사 > 결국 생각대로 된다
생각의 법칙 10+1
존 맥스웰 지음, 조영희 옮김 / 청림출판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세상에는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다. 동화같은 사랑을 하고 싶지만 주위에는 멋진 사람이 없고, 시험을 잘 보고 싶지만 출제자와 나의 생각은 너무 다르며, 인생 역전을 하고 싶지만 로또 숫자는 3개 맞추기도 힘들다. 아침형 인간이 성공한다는데 밤늦게까지 해야할 일이 너무 많고, 다이어트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같아서 뱃살은 해가 갈수록 늘어간다. 물론, 내가 생각한대로 뭐든지 이루어진다면 그것 또한 겁나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인생살이가 어디 생각만으로 되는 것이 있던가?

'인생은 어렵고 복잡하거든... 생각만큼 쉽지 않지. '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내가 속아왔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을 확고히 하는지도 모르겠다. 동화속에는 왕자님, 공주님이 대부분이다. 나중에는 개구리도 왕자가 되고 야수도 미남왕자님으로 변한다. 드라마에는 왜이렇게 회장 아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부모없는 고아였다가도 나중에 알고보니 회장 손자인 경우가 아주 흔하다. 영화 속의 주인공은 총알을 맞아도 안 죽고 유연한 허리를 이용해 멋지게 피하기도 한다. 그런 동화와 영화와 TV를 보면서 혼자서 즐겁게 상상하다가 부딪치는 현실은 갑갑하고 차갑다.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나의 인생 경험을 통해서 얻은 현장 지식이다.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에 이 책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된다." 이 책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일단, '그렇지 않다' 혹은 '그러기 어렵다'로 책에 접근했다. 저자는 나를 설득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례를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예화의 대사 한 마디를 들자면.

"리처드, 자네는 황소를 타기 전에 (그의 머리를 가리키며) '황소'를 타야 해"

머리로, 생각으로 황소를 타는 것이 정말 가치있는 일일까? 황소를 타기 전에 먼저 충분히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할까? 연상 작용을 통해 황소를 타고 난 후에 진짜 황소를 탄다면 훨씬 잘 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면 나는 '아니요.'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것은 '황소타기'는 생각보다는 기술이나 연습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황소타기 챔피언은 위와 같이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지도를 받은 제자는 뛰어난 성과를 보여 주었다.

나는 생각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신중하게 고려하게 되었다. 이 책은 생각하는 방법을 다룬 부분이 70%정도이고 생각의 가치를 다룬 부분이 30%정도이다. 그러나, 책 제목과는 다르게 내게 영향을 준 부분은 바로 '생각의 가치'를 이야기한 부분이었다. 생각이 바뀌면 믿음이 바뀌고, 믿음은 기대를, 기대는 태도를, 태도는 행동을, 행동은 실력을, 실력은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단연코 그 마지막 인생의 성공이라는 결과물은 생각이라는 도화선을 통해 점화하기 시작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고민해보았다.

고민한 결과, 나는 생각에 대한 두 가지 개선점을 찾았다. 첫째, 최악의 상황과 그 다음 상황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늘 생각은 성공과 기쁨에서 멈춘다. '아, 좋은 대학에 가면 얼마나 좋을까?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면 얼마나 좋을까? 능력있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 보통은 생각은 늘 여기에서 멈춘다. 대학에 떨어지는 경우, 백수 생활을 오래하는 경우, 말도 안 듣고 능력없는 사람들과 일하는 경우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 다음 상황은 더 생각하지 않는다. 전혀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허둥대고 순간을 무마하려는데 급급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가 쓴 'Failing Forward'라는 책이 있는데, 나는 그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제목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실패는 분명히 있을 것인데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것까지 미리 생각을 해 두면, 넘어졌을 때 좀 쪽팔리기야 하겠지만 그 다음 과정을 신속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황소타기 챔피언의 제자도 황소에서 떨어지고 다시 타는 것까지 분명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넘어지는 것 자체도 분명 앞으로(Forward) 가는 과정인 것이다. 대개 인생의 목표나 목적은 단기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방향만 제대로 잡고 있으면 목표지점에 최소한 가까이는 갈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나는 생각을 충분히 해서 생각의 근력을 키워야 한다. 실패는 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실패의 쓴 잔은 음미할수록 더 그 맛이 쓰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말로 위로를 해보지만 잘 먹혀 들어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리고 그 실패의 경험으로 인해서 포기하게 될 때도 많다. 그런데 분명 포기는 생각으로 먼저 한다. '에이... 거봐.. 안 되잖아.' 이렇게 먼저 생각으로 포기를 한다. 내게 행동의 끈기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생각의 끈기가 많이 부족했음을 느꼈다. 생각의 힘이 너무 부족했던 것이다. 쉽게 고정관념을 만들어 버리고 장애물 앞에서 뒤돌아서버렸던 것이다. 생각으로 절대 포기하지 않는 힘이 있다면 다시금 도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다.

나는 앞으로 취미란에 '생각하기'라고 적을까한다. 그 만큼 좋은 생각의 가치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았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이 책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생각으로 꿈을 이루고 현실을 이겨낸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격려를 받았다. 최종적으로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결국은 생각대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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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와 227일간 바다에 떠 있었다면?

공경희 옮김/ 작가정신
이명랑·소설가
                                                                                                                                        
한소년이 태평양 한가운데서 무려 227일 동안이나, 그것도 벵골 호랑이와 함께 바다에 떠 있었다? 그런데도 죽지 않고 사투를 벌인 끝에 살아남았다?

“뭐야, 이거? 동화야?”

누군가로부터 이 소설, ‘파이 이야기’에 대한 대략적인 줄거리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저 동화 같은 모험담이려니 했다. 그러나, 첫 장을 펼친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책상으로 가서 볼펜을 가져와야 했다.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달아나고 싶은 이유가 뭐든, 미쳤든 아니든, 동물원을 곱지 않게 보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점이 있다. 동물은 ‘다른 곳으로’가 아니라 ‘뭔가로부터’ 달아난다는 사실이다.

밑줄을 그으며 나는 이 소설을 읽어나갔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파이의 아버지는 동물원을 경영하고, 파이는 동물원에서 동물들과 함께 성장한다. 그리고 힌두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통해 우리가 누구이며 왜 존재하는지, 나무는 길을 안내하고, 길은 공기를 인식하고, 공기는 바다를 생각하고, 바다는 햇살과 모든 걸 나눈다는 것을, 모든 종교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간다.

성경을 읽고 이슬람식 기도카펫 위에서 기도를 하는 힌두교도인 파이. 이 아이에게 신은 어떤 삶을 마련해 주셨을까? 그 삶은 나를 구원해줄 거라 믿었던 선원들에게 붙들려 이미 구명보트로 옮겨 탄 하이에나의 먹이로 내던져지는 것이고, 부모를 잃고 인도산 벵골 호랑이와 태평양 한가운데 버려지는 것이고, 공포 속에 내몰리는 것이다. 공포는 생명을 패배시키고, 관대함도 없고, 법이나 관습을 존중하지도 않으며, 자비심을 보이지도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에 접근해, 손쉽게 약점을 찾아낸다. 이성은 그 앞에서 나자빠지고 우리는 초조감에 끔찍해진다.

죽음과 공포, 슬픔과 충격 속에서, 언제든 파이의 목숨을 끝장낼 수 있는 맹수 앞에서, 파이는 허우적대고, 울부짖고, 끝장내고 싶어하고, 그리고... 자신의 뭔가가 생명을 포기하려 하지 않음을, 놔주려 하지 않음을,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면 이 소설, ‘파이 이야기’는 단순히 침몰한 침춤 호의 유일한 생존자인 파이가 비극적인 상황에서 용기와 인내를 보여준 놀라운 이야기일 뿐인가?


▲ 2002년 부커상을 수상한 얀 마텔.
30만t급 유조선이 파이가 타고 있는 구명보트를 그저 스쳐지나가고, 파이가 거품 이는 물결 속에서 출렁이며 또다시 버려졌다는 아픔과 분노와 외로움을 곱씹어야 했을 때, 파이 앞에는 공포의 대상인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버티고 있다. 그런데 이제 그 맹수를 향해 파이는 순수하게 외친다.

“사랑한다. 정말로 사랑해. 리처드 파커. 지금 네가 없다면 난 어째야 좋을지 모를 거야.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그래, 못 견뎠을 거야. 희망이 없어서 죽을 거야.”

그리고 이제 육지에 닿자 영영 사라져버린 맹수, 리처드 파커는 파이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호랑이와 227일간을 함께 했다는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파이는 묻는다.

“어느 이야기가 사실이든 여러분으로선 상관없고, 또 어느 이야기가 사실인지 증명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묻는데요,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나요? 어느 쪽이 더 나은 가요?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요, 동물이 안 나오는 이야기요?”

파이가 말한 동물… 상실이었다가 공포였다가 길들여야 하는 대상이었다가 위안이었다가 사랑이었다가 삶의 이면으로 자취를 감춰버린 그 어떤 존재는… 어쩌면, 그가 거기 있다는 것, 누군가 그와 대화하고 싶을 경우에 대비해서 거기 있다는 것, 영혼의 문제든, 무거운 마음이든, 어두운 양심이든, 무슨 말을 해도 그가 사랑으로 들어주리라는 것, 그가 맡은 일은 사랑하는 일이었고, 그는 최선을 다해서 위로해주고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로 그분이었을지도….

희망이 점점 커져 당신 심장 안에서 노랫가락이 되어 흐르기를, 첫 햇살의 따스함 속에 감싸이기를 바라다면, 뭔가로부터 달아나는 대신에 파이의 구명보트 위로 훌쩍 뛰어올라가 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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