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물만두 > 뤼팽 어떤 식으로 볼 것인가.

첫째, 단편집만 본다!

 

 

1.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1907) 

 -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

   감옥에 갇힌 아르센 뤼팽

   아르센 뤼팽 탈출하다

   수상한 여행객

   왕비의 목걸이

   세븐 하트

   마담 엥베르의 금고

   흑진주

   셜록 홈스, 한 발 늦다

 

 

2. 뤼팽 대 홈스의 대결 (1908)

 - 첫 번째 에피소드: 금발의 귀부인

   23조 514번 복권

   푸른 다이아몬드

   셔록 홈스, 전투를 개시하다

   어둠 속의 희미한 빛

   납치

   아르센 뤼팽, 두번째 체포되다

 - 두번째 에피소드: 유대식 램프

   219

   259

 

 

6. 아르센 뤼팽의 고백 (1913)

 - 거울 놀이

   결혼 반지

   그림자 표시

   지옥의 함정

   붉은 실크 스카프

   배회하는 죽음

   백조의 자태를 지닌 여인

   지푸라기

   아르센 뤼팽의 결혼

 

 

11. 여덟 번의 시계 종소리 (1924)

 - 망루 꼭대기에서

   물병

   테레즈와 제르맨

   영화 속의 단서

   장-루이 사건

   도끼를 든 귀부인

   눈 위의 발자국

   메르쿠리우스의 신상(神象)

 

 

14. 바르네트 탐정 사무소  * 모리스 르블랑이 가장 좋아한 3대 작품

 - 진주알들의 행방 : 짐 바르네트

   조지 왕의 연애편지

   바카라 게임

   금이빨을 한 사나이

   베슈의 아프리카 탄광 주식(株式)

   우연이 기적을 만들다

   흰 장갑... 하얀 각반...

   베슈, 짐 바르네트를 체포하다

 

둘째, 모르스 르블랑이 가장 좋아한 3대 작품을 본다!

 

 

3. 기암성 (L'AIGUILLE CREUSE) (1909)

 

 

14. 바르네트 탐정 사무소 

 

 

12. 칼리오스트로 백작 부인 (1924)

 

세째, 돈 루이스 페레나가 등장하는 연작 시리즈를 본다!

 

 

8. 황금 삼각형 (1918)

 

 

9. 서른 개의 관 (1919)

 

 

10. 호랑이 이빨 (1923)

 

네째, 뤼팽이 탐정 역할을 하고 베슈 형사가 등장하는 작품!

 

 

14. 바르네트 탐정 사무소 

 

 

15. 불가사의한 저택 (1928) : 장 데느리스

 

 

16. 바리바 (1930) / 에메랄드 사건 (1930)

 

다섯째, 백작부인이 등장하는 작품 '- 뤼팽의 적임!

 

 

12. 칼리오스트로 백작 부인 (1924)

 

 

19. 백작 부인의 복수 (1935)

 

여섯째, 강력추천 3권!

 

 

4. 813의 비밀 (1910)

 

 

5. 수정 마개 (1912)

 

 

7. 포탄 파편 (1916)

 

일곱째, 더 읽으면 좋은 작품들!

 

 

13. 초록 눈동자의 아가씨(1926)  / 암염소가죽 옷을 입은 사나이(1927)

암염소 가죽 옷을 입은 사나이는 포우의 작품에 대한 르블랑의 오마쥬 작품이다.

 

 

17. 두개의 미소를 지닌 여인 (1932)

 

 

18. 강력반 형사 빅토르 (1933)

 

 

20. 아르센 뤼팽의 수십억 달러 외 (1939) / 아르센 뤼팽의 어떤 모험 (1911, 희곡)

국내외적으로 처음 번역 출판되는 작품임.

 

꼭지 : 그러니까 결론은 시리즈는 몽땅 보라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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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생활백서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방송의 인기개그 프로그램에서 백수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꼬집은 '백수생활백서' 코너가 있었다. 거기서 나온 고혜성이란 개그맨이 얼마나 그럴 듯한 캐릭터로 시청자들을 웃겼는지 한동안 그것이 세간에 회자가 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실업자들을 풍자한 것으로  꽤 인기를 구가했다.

 

실업자의 설움이 얼마만한 것인데 '백수생활백서'가 하늘을 찔렀던 것일까? 희극배우의 성공요인 중에 제일로 꼽는 건, 본인은 무대에서 슬픈데 보는이들은 오히려 카타르시스와 희열 느낀다면 그 배우는 대단히 성공한 배우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대한 대표적 인물을 꼽자면 단연 채플린이 아닐까? 그 다음으론 로베르토 베니니 정도?

 

이 책, <백수생활백서>를 읽으면서 갑자기 '백수'의 정의를 내리고 싶어졌다. 그냥 단순히 실업자면 다 백수일까?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실업률 몇%라는 수치에, 무조건 일을 안하고 있으면 실업자의 대열에 넣는 것에 대해 억울해할 사람은 있지 않을까? 그들은 여러 이유에서 일을 안하고, 경제활동을 안할 뿐이다. 자신이 경제활동을 하고있다고, 또 모든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고, 이런 사람을 얕잡아 보고 우습게 여긴다면 그건 또 얼마나 오만한 것인가.

그들은 보통의 사람들과 가치가 다를 뿐이지 그것이 문제가 되거나 병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회는 아직도 획일적인 것이 많고, 분류기법이 세밀하지가 않아서 그들을 단순히 실업자의 대열에 집어넣기를 서슴치 않고, 사지육신 멀쩡한데 왜 일을 안 하느냐고 단죄하기도 잘한다.

 

그렇다면 백수를 정의하기 전에, 무엇이 백수가 아니냐를 논해 보면 어떨까? 당연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으면 백수가 아니다. 일하다 잘려 억울해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들 역시도 백수로 보는 건 너무 성급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억울에 한다는 것은 일 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라는 것으로, 그는 언젠가 복직을 하던가, 아니면 새 일을 찾게 되던가 할 것이다. 또한 부류가 있다. 부모를 잘 만난 덕에 평생 무슨 일을 할까, 뭐하며 먹고 살아야 하나 걱정 안 해도 되는 사람들. 그들이 백수라고? 웃기지 마라. 그건 '베짱이'거나 '양아치'라고 하지 그런 부류의 사람한테 '백수'란 거룩한 이름을 부여하는 건 옳지 못하다.

 

그럼 어떤 사람을 '백수'라고 하는가? 우선, 백수는 자발적이다. 돈을 벌라고 등 떠밀어도 절대로 그 말에 굴복해는 안된다. 그리고 자신이 어떠한 재주를 가졌던 지간에 그 재주로 자신의 안일을 도모 하려고 해서도 안된다. 그러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빌붙어 살아도 그것을 부끄러워 해서도 안 되고,  최소한의 용돈벌이는 하되 긴 안목에서의 노후대책이나 재테크를 위한 경제활동은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백수'는 오늘이라고 하는 이 하루를 살뿐, 자신이 미래에 어떻게 살거라고 하는가 그림 같은 것은 애초에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 하나가 있다. 그것은 자신이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 딱 한가지만을 미치도록 아니 미쳐서 하고 있으면 그것이 바로 완벽한 '백수'가 되는 것이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자기 좋아하는 일이 미래에 돈벌이가 될런지 안될건지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사화는 어떤가? 이런 '백수'를 보호해 주고, 그들도 살 수 있게끔 하는 사회보장 프로그램이 없다. 그들은 나중에 돌봐 줄 사람이 없게되면 기껏해야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최저생계비는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사회에서 인정만 된다면 억울하게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아도 좋고, 실업률 몇%란 수치를 다소 떨어뜨려 줄 수 있고, 그 때문에 국가의 위신도 올라갈 뿐만 아니라  대외신임도도 올라갈텐데 국가에선 이런 '백수'에겐 관심도 없다.        

  

왜 우리나라는 '백수'라고 하면 문둥병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아까 말했던 부모 잘 만난 골빈 베짱이, 양아치와 결혼할 망정 '백수'와의 결혼은 꿈도 안 꾼다. 이건 그가 아무리 잘 생겨도 거부한다. 왜 그 잘난 인물 가지고 인물값도 못하냐고 다그친다. 그러므로 인물이 좋다는 건 백수가 되는데는 치명적인 결격사유가 될 수도 있다.

 

백수는 말한다. 왜 사람들은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봐 주질 않는거냐고. 내가 꼭 뭔가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경제적 가치가 환산이 되야만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라면 그 가치가 참된 가치일 것인가?   

 

책에서 주인공이 피 한방울 섞이지 않는 외할머니에게 묻는다. 왜 할머니는 소설을 쓰지 않냐고, 그러자 외할머니는 말한다. 소설보다 소설을 쓰는 것보다 인생을 사는 것이 더 재밌거든. 사는 재미에 빠져서 소설을 써야 한다는 생각은 자꾸 미뤄졌지.(316p)라고.이것이 백수의 삶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직 자기 자신으로만 충만한 상태를 즐기는 것. 솔직히 난 인생을 사는 것이 뭐가 재미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인생을 즐길 줄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현재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란 아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란 말이지 백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설의 주인공도 책을 좋아하고, 저자도 책을 좋아한다. 그러나 주인공과 저자가 좀 다르긴 하다. 언젠가 저자에 관한 기사를 읽어보니, 그녀는 사회생활 하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대학원을 갔다고 솔직히 털어 놓았다. 하지만 저자는 처음부터 백수가 될 생각은 아니었나 보다. 그러니까 이렇게 '오늘의 작가상'이란 타이틀을 거머쥐고 작가라는 직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거이 아닌가.

 

물론 그녀는 소설 어디엔가, 작가는 직업이라기 보단 정체성에 불과하다고 피력해 놓았다. 나도 거기엔 상당부분 동의한다. 그래도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온전히 글만 써서 밥벌어 먹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렇게 보면 작가는 직업은 직업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친철하게 <상업문화예찬>이란 책의 예를 들어가면서 역사상 유명한 예술가들이 순수하게 예술활동만 가지고는 자신의 삶을 재대로 영위할 수 없음을 역설해 놓음으로 자신은 여전히 백수임을 말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274p)

 

'상업문화예찬'이라! 작가는 자신의 책에서 상당히 많은 책들을 인용해 놓았는데, 그중 단연 이 '상업문화예찬' 은 나의 가장 많은 흥미를 끌었다(난 이책을 언젠가는 손에 넣고 말 것이다). 왜냐구? 나 역시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온전한 백수이길 바라지만, 자꾸 일에 대한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나의 이런 유혹에 대해 이 책이 일말의 답을 주지 않을까 한다.

 

솔직히 작년에 잠깐 돈을 벌기위해 일을 해 본적이 있는데, 하면서 나는 그 일 때문에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가 없다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다. 책을 읽는 것과 일. 이 둘 다를 잘할 수 없다면 한가지를 포기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고 하나만 잘하는 것이 나에겐 차라리 더 유리할 것 같아, 난 그 일을 버리고 내 본업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미 말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역시 엄밀하고 순수한 의미에서 백수는 아니었다. 나 역시 책 읽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 일을 통해서 뭔가의 일을 꿈꾸고 있지 주인공처럼 책만 읽지 않는다. 그렇다면 난 좋던 싫던 지금으로선 백수가 아닌 실업자로 분류되야 마땅할 것이다. 일을 기다리는 실업자. 언젠가 나의 날개를 피면 이 딱지도 떨어질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런지 모르지만.

 

내 후배 한 애는 내가 돈을 벌지 않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다 못해 닦달까지 한다. 난 녀석이 좀 무례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직 그애의 닦달에 제동을 걸어 본적은 없다. 그럴 때마다 난 오히려 서글퍼진다. 왜 사람을 돈벌이를 하느냐, 안 하느냐로만 구분지을려고만 하느냐고 녀석에게 따지고 싶어지기도 한다.

 

나는 녀석의 그런 시각이 마음에 들지않고, 미안한 얘기지만 조금은 천박해 보인다. 그러면 녀석은 그러겠지. 언니는 현실감각이 없고 아직도 구름위를 걷고 있다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치열하고 천박한 것인데. 어디 한번 자기 같이 싱글맘으로 살아보라고, 대뜸 치고 들어 올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내가 참는 수 밖에. 이것이 백수가 된 죄라고 밖에 달리 뭐라고 설명하랴?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백수가 대우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을 어쩌랴.

 

그래도 이 책이 백수의 위상을 올려놓은 것 같아 나름대론 애정이 갔다. 하지만 한 사람의 독자로서 이 책을 앞으로 읽을 사람들에게 오해 안 했으면 한다. 물론 그럴리 없겠지만, 백수는 책만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갖지 말았으면 한다.  물론 이 책이 안 그래도 독서인구 감소 방지에 조금이나마 기여한다면 좋은 일이긴 하나, 백수가 책만 읽어야 진정한 백수라고 어디 나와 있겠는가? (솔직히 난 초반에 읽으면서 제목에 불만이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때문에 다소의 불편을 감수하고 사는 것이 진정한 백수가 아니겠는가? 단지 이 소설의 주인공은 책읽기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때로는 영악하게 사람과 거래를 하기도 한다는 것뿐이지. 어쨌거나 이 책은 나에게 즐거운 독서체험을 하게해 준 것마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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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7-20 0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에 적극 동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추천!

Mephistopheles 2006-07-20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리뷰 좀 자주 올리면 안되겠니~~!! (요)

stella.K 2006-07-20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오랫만에 리뷰에 댓글을 받아 보네요. 그동안 쓰면서 얼마나 외로웠는데요. 서재 폐쇄하려고 했어요. 엉엉~

소쿠리 2006-07-2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학원에 다니다가 휴학을 하게 된 20대 후반 남성입니다. 학원강사 자리를 구하려고 하는데 쉽지 않아서, 본의 아니게 놀고 먹는 백수 신분이 되었지요... 백수를 단지 일 안하는 사람으로 쉽게 구분하는 사회의 편견을 잘 지적하신 것 같습니다... 주위에서는 저보고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는 살 수 없지 않느냐는 근엄한(?) 충고를 하기도 하지만, 저는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서 살고 싶지 않아서 쉽고 편안한 길을 포기하고 인문학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요즘들어 미래가 많이 불안하기도 하고 사회에 진출해야 하는데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님의 리뷰가 저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stella.K 2006-07-24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시군요. 위로가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006-08-01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6-08-01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self-esteem! 얼마만에 들어보는 말인지! 고마워요. 읽어주셔서.^^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안건모 지음 / 보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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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에 이 책을 그냥 지나칠려고 했었다. 저자가 낮선 이름인데다가, 듣도 보도 못한 <작은책>이라고 하는 잡지에 실린 저자의 글을 모은거라고 하니 그렇고 그런 글모음은 아닐까 해서였다.

막말로 얘기해서 세상에 떠도는 게 글이요, 개나 소나 책을 낸다고 한다. 그러니 잘 고르지 않으면 낭패 보기 쉽다. 더구나 잘 만들어지지 않은 다음에야 누가 거들 떠나 보겠는가? 책 다자인이 좋다고 해서 그책의 내용이 다 좋은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역시 겉포장에 약한 법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보기엔 허술해 뵈도 제값 그 이상을 해 내는 책들이 있다. 그런 책 만나면 횡재하다 못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이렇게 괜찮은 책이 재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이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지나칠려다 마음을 고쳐먹길 잘한 것 같다. 평소에 우리나라 버스에 불만이 많은 내가 아니던가?  이 다소 촌티나는 책을 그냥 지나친다면 뭔가 후회할 것만 같았다.

우리나라 버스에 대한 나의 불만은 좀 오래되었다. 과속에, 기사의 거치른 언행, 손님들이 미쳐 다 타기도 전 출발하려고 하는 것, 특히나 노약자나 어린아이를 동반하고 타는 경우 그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또는 자신들이 서야하는 위치에서 안전하게 손잡이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 출발해 줬으면 하는데, 그런 배려가 없을 땐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 왜 내가 내돈 내고 버스 타는데 이런 최소한의 서비스도 못 받는 것인가? 

무엇보다 버스비 올릴려면 시민들을 볼모로 파업하는 것. 그리고 극적타결이 이루어지면 좀 더 나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노라는 말은 잊지 않지만, 지난 2년 동안(우리나라 버스비는 평균 2년마다 한번씩 올렸던 것 같다) 무엇이 더 나아진 것인지, 그들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시민들이 시내버스를 욕을 하면 회사를 상대로 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버스 기사한테 한다.그러면 버스기사는 대신 욕을 먹어주는 것이지.  그 기사아저씨라고 배차시간 늦고 싶어서 늦고, 사고는 내고 싶어서 내겠는가? 밥 먹을 시간 없고, 화장실 갈 시간도 줄이는데 늦는다. 그럼 뒤에서 궁시렁대는 승객도 있지만 대놓고 욕지거라 팍팍하면서 니네 회사에 고발할거라고 엄포까지 놓는다. 버스기사가 뭔 죄란 말인가?  

버스기사 그들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버스기사가 무슨 동네 북도 아니고, 회사 가면 업주한테 당하고, 길 밖으로 나가면 시민들에게 채인다. 느는이 거칠어지는 입이요, 하는니 더러워 못해 먹겠다는 한탄뿐이다.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는 바로 이런 자잘하고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버스기사의 애환과 삶을 쫄깃쫄깃한 글발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난 또, 버스기사 쳐놓고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처음 본다. 버스기사면 블루칼라에 속하는데 그들은 하나 같이 공부도 못하고, 책 읽기는 귀찮아하고, 오직 기름 때만 쭐쭐이 묻히고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우린 그들을 잘못뵈도 한참 잘못 보는 것일 것이다. 

그들 속엔 비록 가방 끈은 짧아도 뜨거운 가슴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나는 솔직히 이 한 권의 책에 린치를 당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버스에 대한 불만을 기사아저씨한테 싸잡아서 욕을 하는 건 확실히 잘못한 일이었다. 욕을 한다면 그들(버스기사)을 가지고 놀려고 한 악덕업주들이고, 무능한 정부다!

솔직히 매일 버스승객들의 소중한 목숨을 실어나르는 버스라고 한다면 안전이 우선이 아니겠는가? 매일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그나마 적어도 운전기사라도 복리후생은 고사하고,컨디션을 보장해줘야 하는데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면서 업주들은 이윤만을 생각하고, 그들의 생명줄을 쥐락 펴락한다. 세기는 21세기인데, 업주들의 경영방식은 20세기를 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 기업을 생존방식은 윤리경영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버스회사들이 알까 싶다.

직업이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역시 이상적인 말처럼 들린다. 어떤 직업이든 제대로된 대우를 못 받으면 열등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저자처럼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자신의 일의 부당함을 외부에 알리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기 일에 대한 가치를 높이는 일이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물론 그 일이 때로 힘들고 외로운 길이 되겠지만 말이다.

읽으면서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말미에 자신에 대해 피력한 글을 읽으면서 역시 그는 반항아적 기질이 다분해 보였다. 하지만 반항아적 기질만으론 인정 받을 수 없고 세상을 온전히 살아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기질로 '저항'하지 않으면 안된다.

세상 어디를 가나 거짓과 탐욕은 존재한다.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건 '저항정신'일 것이다. 저자가 읽어 온 독서편력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남다른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업주에게 찍혀서 "이 회사의 주인이 누구야?"라고 시비를 걸어 올 때, 그는 당당하게 "우리 노둥잡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그가 멋지다!   

글이 사람의 영혼을 밝혀준다. 아무리 개나 소나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그 가운데 정말 빛과 소금 같은 글들이 있다. 나는 오늘 이 책을 그러한 범주에 넣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제 버스운전하던 손을 놓고 <작은책> 편집장으로 눌러 앉았다고 한다. 사람의 손이 참 멋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저자에게서 본다. 그 손 가지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가정을 지켜내고, 사람들의 생명을 책임지며, 영혼을 밝히려 하고 있다. 부디 편집장으로서의 역량과 <작은 책>의 무한한 발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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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7-02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쓴 안건모입니다. 리뷰를 쓴 분들에게 뒤늦게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제 책을 좋게 평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버스 기사들의 실태가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죠.
월간 <작은책>이라는 진보 월간지를 발행하는 것까지 알고 계시는 걸 보면 깜짝 놀랐습니다. 혹시 작은책 독자님은 아닌지요. 작은책은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부터 시사 문제까지 우리말로 쉽게 풀어 쓴 책입니다. 저희 작은책 사이트에도 들어 오셔서 어떤 책인지 구경하시고 작은책도 널리 퍼뜨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달에 한번 글쓰기 모임도 하고 강연도 있고 <역사와산> 이라는 모임에서 다달이 산도 갑니다. 혹시 가까우면 참석하셔서 같이 활동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www.sbook.co.kr
02-323-5391
 

 

[김탁환의 책과 램프사이] 정직한 회상의 힘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

 

밀도가 높은 문장을 읽고 싶을 때면 이성복의 산문집과 프랑소와 트뤼포의 영화들 그리고 아니 에르노의 소설들을 찾아 읽는다. ‘단순한 열정’이나 ‘아버지의 자리’도 좋지만, 내 손가락이 마지막으로 가 닿는 책의 제목은 ‘부끄러움’(열림원)이다.

스토리 창작 강의 첫 시간, 자신의 삶에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곤 한다.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숙제를 제출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교수나 동급생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부끄러운 순간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성경 구절 비슷한 문장을 들려준다. “작가가 발가벗지 않고 어떻게 등장인물을 발가벗길 수 있으며, 작가가 죽지 않고 어떻게 등장인물만 죽일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얇은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꼭 읽어보라고 권한다. 좋은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은 화려한 손놀림이나 명석한 두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임을 ‘부끄러움’은 단숨에 보여준다.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넘었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 했다”로 소설을 시작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우리는 그녀가 못할 말이 없음을 알게 되고 과연 무슨 장면까지 쏟아놓을까 궁금해진다.

평생 감추고픈 치욕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각하거나 외면하거나 도피하는 방식으로 그 날 그 사건과 다시 부딪히려고 하지 않는다. 고통의 핵심으로부터 비켜서서 종교나 도덕 혹은 가족애에 의지한다.

그 사건을 겪은 아니 에르노에게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존재의 모든 것이 ‘부끄러움의 표식’으로 바뀐 것이다. 이 상황은 그녀를 절망의 나락으로 이끈다. 그녀는 고백한다. “나에겐 어떤 일이건 일어날 수 있고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며, 부끄러움 뒤에는 오직 부끄러움만 따를 것이란 느낌.” 이 느낌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녀가 택한 것은 글쓰기다. 글쓰기가 어떻게 몸에 배인 부끄러움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또 하나의 가면이나 방패가 아닐까.

정직은 용기다. 그녀의 글쓰기는 망각과 외면, 도피로 얼룩진 기억들을 날카롭게 반성하면서, 자기 합리화의 지점들을 하나씩 짚어나간다. 아니 에르노는 주장한다. “회상도 하나의 체험이다.” 그녀는 과거의 감각을 일깨우는 섬세한 글쓰기를 통해, 어린 시절 겪은 충격적인 사건을 새롭게 체험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부끄러움의 탑이자 치유의 탑이다.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졌을까. 독자들이 이 작은 책을 읽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너그럽게 바라보고 용서하게 된다면, 아니 에르노의 노력은 헛되지 않으리라. 독자의 고통을 치유함으로써 자신의 구원까지 얻는 자, 그가 바로 작가이다.

김탁환 소설가·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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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 Philosophy + Film
이왕주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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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대했을 때 저자에 대한 소개가 흥미로웠다. 미국에는 영화철학 관련 세미나가 있는가 보다. 저자는 이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영화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영화철학이라...! 뭐 없으라는 법 없겠지. 법에도 철학이 있고, 과학에도 철학이 있으며, 미술 작품에도 철학이 있는데 영화라고 철학이 없을라고.

언젠가 후배와 그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야, 대학에 철학 강의를 신청하는 사람이 없어 패쇄하는 대학이 점점 늘어 난다더라. 이래가지고서야 철학이란 학문이 재대로 버텨내기야 하겠니?" 그러자 그 후배는, "철학이 철학 자체로 살아남을 수 없다면 다른 분야와 합쳐져서 계속 발전해 갈거야." 그러면서 철학의 위기론에 그다지 걱정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는 그 후배의 말을 들으면서, 그렇겠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웬지 서글퍼 지기도 한다. 철학이란 그 어려움 때문에 나는 선듯 좋아할 마음이 내키지 않지만 그래도 인문학의 꽃이요 한때는 강의실이 꽉찰 정도로 그 명성을 구가 했는데, 지금은 여러 실용학문에 밀려 그 명맥만을 유지한다고 하니 안타까울 노릇이다.

그래도 80년대 초 들어서면서 소위 철학에세이류가 서서히 나오기 시작하면서 철학이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가를 모색하기 시작했고, 나 역시 그에 대한 수해를 입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철학에세이류는 다소는 애매모호 했다. 철학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볍고, 에세이라고 하긴엔 또 좀 어색하다. 그냥 철학 개론서를 쉽게 풀어 놓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러니 철학 개론서류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밖에.

그후 내가 이런 류의 책을 즐겨읽은 건 아니지만, 그동안 철학을 쉽게  풀이한 책들은 진화의 진화를 거듭해서 선택의 폭도 다양해지고 개중엔 꽤 괜찮은 책도 나온 것 같다. 

이 책 역시도 영화라고 하는 매개를 통해 철학은 이런 거라고 소개하고 있다. 얼핏보면 철학책이 하도 인기가 없으니까 요즘 영화 안 보는 사람 거의 없겠다, 접목시켜 또 하나의 칵테일을 시도한 듯도 싶다. 하지만 저자의 세련된 문체와 깊은 사유가 돋보인다. 저자는 어떻게 영화를 통해 철학을 깊이있게 설명해 놓을 수 있었을까?

읽다보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면서 니체의 이론을 녹여내고, 헤겔의 변증법을 이렇게 끼워 맞추고, 최신 철학 개념을 이렇게 섞어 넣고...기타 등등. 뭐 이러면서 영화를 만들었을까?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어느 영화 제작자나 감독은 철학 지식이 해박해 그렇게 종횡으로 끼워 맞출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이런 스토리를 이렇게 비주얼 하게 보여주면 될 것인가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을 것이다.

그것을 어떠한 스펙트럼을 들이대느냐에 따라 의미는 달라져 보인다. 저자 이왕주  씨는 철학자답게 아주 노련하고도 세련된 문체로 자신이 본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철학을 잘도 설명해 내고 있었다. 덕분에 자꾸만 좁아지려고 하는 나의 시야와 사고가 조금은 넓어진 듯도 하다.

뭐 다 아는 얘기겠지만, 철학은 세계와 사물을 바라보는 사고체계를 구체화시켜 준다. 예전 고대철학은 이것이 진리가 아니겠는가라고 제시해 준다면, 현대로 진입할수록 진리를 말하기 보다는 현상을 직시하고 해석하려고 하는 의미가 더 강해 보인다.

특히 저자는 <슈렉>이라고 하는 에니매이션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을 너무나 잘 설명해 내고 있는데, 나 역시 이 에니메이션을 보는 내내 깔깔거리며 잘 만들었다고 생각만 했지 이런 철학이론이 내재되어 있는 줄은 잘 몰랐다. 이를테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 사회에 작동되고 있는 합리적인 원리, 규칙, 질서, 코드 등에 간하게 반발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나의 욕망과도 일치한다.

왜 세상은 뭐든 정해진 대로만 돌아가는 것인가? 잘 생긴 사람이 출세할 확률도 많고, 잘 생긴 사람과 사랑에 성공할 확률도 많고, 부자는 부자끼리만 결혼을 해 부의 세습만을 노린다. 왕자와 공주는 만나서 행복하게 오래 오래 잘 살았다고 하지 않는가? 이 얼마나 재미없는 세상인가? 이런 가치 체계를 패러디를 통해 유쾌한 반란을 꾸면던 작품이 <슈렉>이다. 그때 내가 얼마나 통쾌해 했었던가?

저자가 말하는 <와호장룡>이란 영화는 어떠한가?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긴다고 하는 장자의 '무위'를 인용해 세상의 이치와 섭리를 잘도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면서 개인은 고려하지 않은채 학벌과 재산 늘리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요즘의 세태를 고집는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선 선택의 기로에서 잠시 흔들렸던 나를 다시한번 추스르게 되는 계기가 되서 저자에게 감사하고 싶을 지경이다.

이렇게 보면 철학은 지혜의 학문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가끔은 가치관이 혼란스럽고 생각을 어디다 둬야할지 모를 때 이런 책 한번쯤 읽어 주면 생각이 정리된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 아무리 인문학의 쇄퇴를 걱정한다고 해도 우리가 인문학의 세례를 받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영화라고 하는 친숙한 매체를 가지고 이렇게 친절하게 철학을 풀이해 주니 읽으면서 흐뭇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철학에세이류에만 매달릴 것인가 회의도 하게 된다. 언제부턴가 철학이 내게로 가까이 왔다면 언젠가는 내가 철학에 가까이 가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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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8-06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작년에 구입해서 재미있게 읽었는데 수요일에 문예진흥원 주최 강연회에서 이왕주 교수님에게 강연듣고 사인도 받았죠. 열정적인 분이시데요.

stella.K 2006-08-07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지런하심다. 담뽀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