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생활백서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방송의 인기개그 프로그램에서 백수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꼬집은 '백수생활백서' 코너가 있었다. 거기서 나온 고혜성이란 개그맨이 얼마나 그럴 듯한 캐릭터로 시청자들을 웃겼는지 한동안 그것이 세간에 회자가 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실업자들을 풍자한 것으로  꽤 인기를 구가했다.

 

실업자의 설움이 얼마만한 것인데 '백수생활백서'가 하늘을 찔렀던 것일까? 희극배우의 성공요인 중에 제일로 꼽는 건, 본인은 무대에서 슬픈데 보는이들은 오히려 카타르시스와 희열 느낀다면 그 배우는 대단히 성공한 배우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대한 대표적 인물을 꼽자면 단연 채플린이 아닐까? 그 다음으론 로베르토 베니니 정도?

 

이 책, <백수생활백서>를 읽으면서 갑자기 '백수'의 정의를 내리고 싶어졌다. 그냥 단순히 실업자면 다 백수일까?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실업률 몇%라는 수치에, 무조건 일을 안하고 있으면 실업자의 대열에 넣는 것에 대해 억울해할 사람은 있지 않을까? 그들은 여러 이유에서 일을 안하고, 경제활동을 안할 뿐이다. 자신이 경제활동을 하고있다고, 또 모든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고, 이런 사람을 얕잡아 보고 우습게 여긴다면 그건 또 얼마나 오만한 것인가.

그들은 보통의 사람들과 가치가 다를 뿐이지 그것이 문제가 되거나 병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회는 아직도 획일적인 것이 많고, 분류기법이 세밀하지가 않아서 그들을 단순히 실업자의 대열에 집어넣기를 서슴치 않고, 사지육신 멀쩡한데 왜 일을 안 하느냐고 단죄하기도 잘한다.

 

그렇다면 백수를 정의하기 전에, 무엇이 백수가 아니냐를 논해 보면 어떨까? 당연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으면 백수가 아니다. 일하다 잘려 억울해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들 역시도 백수로 보는 건 너무 성급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억울에 한다는 것은 일 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라는 것으로, 그는 언젠가 복직을 하던가, 아니면 새 일을 찾게 되던가 할 것이다. 또한 부류가 있다. 부모를 잘 만난 덕에 평생 무슨 일을 할까, 뭐하며 먹고 살아야 하나 걱정 안 해도 되는 사람들. 그들이 백수라고? 웃기지 마라. 그건 '베짱이'거나 '양아치'라고 하지 그런 부류의 사람한테 '백수'란 거룩한 이름을 부여하는 건 옳지 못하다.

 

그럼 어떤 사람을 '백수'라고 하는가? 우선, 백수는 자발적이다. 돈을 벌라고 등 떠밀어도 절대로 그 말에 굴복해는 안된다. 그리고 자신이 어떠한 재주를 가졌던 지간에 그 재주로 자신의 안일을 도모 하려고 해서도 안된다. 그러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빌붙어 살아도 그것을 부끄러워 해서도 안 되고,  최소한의 용돈벌이는 하되 긴 안목에서의 노후대책이나 재테크를 위한 경제활동은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백수'는 오늘이라고 하는 이 하루를 살뿐, 자신이 미래에 어떻게 살거라고 하는가 그림 같은 것은 애초에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 하나가 있다. 그것은 자신이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 딱 한가지만을 미치도록 아니 미쳐서 하고 있으면 그것이 바로 완벽한 '백수'가 되는 것이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자기 좋아하는 일이 미래에 돈벌이가 될런지 안될건지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사화는 어떤가? 이런 '백수'를 보호해 주고, 그들도 살 수 있게끔 하는 사회보장 프로그램이 없다. 그들은 나중에 돌봐 줄 사람이 없게되면 기껏해야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최저생계비는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사회에서 인정만 된다면 억울하게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아도 좋고, 실업률 몇%란 수치를 다소 떨어뜨려 줄 수 있고, 그 때문에 국가의 위신도 올라갈 뿐만 아니라  대외신임도도 올라갈텐데 국가에선 이런 '백수'에겐 관심도 없다.        

  

왜 우리나라는 '백수'라고 하면 문둥병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아까 말했던 부모 잘 만난 골빈 베짱이, 양아치와 결혼할 망정 '백수'와의 결혼은 꿈도 안 꾼다. 이건 그가 아무리 잘 생겨도 거부한다. 왜 그 잘난 인물 가지고 인물값도 못하냐고 다그친다. 그러므로 인물이 좋다는 건 백수가 되는데는 치명적인 결격사유가 될 수도 있다.

 

백수는 말한다. 왜 사람들은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봐 주질 않는거냐고. 내가 꼭 뭔가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경제적 가치가 환산이 되야만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라면 그 가치가 참된 가치일 것인가?   

 

책에서 주인공이 피 한방울 섞이지 않는 외할머니에게 묻는다. 왜 할머니는 소설을 쓰지 않냐고, 그러자 외할머니는 말한다. 소설보다 소설을 쓰는 것보다 인생을 사는 것이 더 재밌거든. 사는 재미에 빠져서 소설을 써야 한다는 생각은 자꾸 미뤄졌지.(316p)라고.이것이 백수의 삶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직 자기 자신으로만 충만한 상태를 즐기는 것. 솔직히 난 인생을 사는 것이 뭐가 재미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인생을 즐길 줄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현재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란 아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란 말이지 백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설의 주인공도 책을 좋아하고, 저자도 책을 좋아한다. 그러나 주인공과 저자가 좀 다르긴 하다. 언젠가 저자에 관한 기사를 읽어보니, 그녀는 사회생활 하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대학원을 갔다고 솔직히 털어 놓았다. 하지만 저자는 처음부터 백수가 될 생각은 아니었나 보다. 그러니까 이렇게 '오늘의 작가상'이란 타이틀을 거머쥐고 작가라는 직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거이 아닌가.

 

물론 그녀는 소설 어디엔가, 작가는 직업이라기 보단 정체성에 불과하다고 피력해 놓았다. 나도 거기엔 상당부분 동의한다. 그래도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온전히 글만 써서 밥벌어 먹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렇게 보면 작가는 직업은 직업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친철하게 <상업문화예찬>이란 책의 예를 들어가면서 역사상 유명한 예술가들이 순수하게 예술활동만 가지고는 자신의 삶을 재대로 영위할 수 없음을 역설해 놓음으로 자신은 여전히 백수임을 말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274p)

 

'상업문화예찬'이라! 작가는 자신의 책에서 상당히 많은 책들을 인용해 놓았는데, 그중 단연 이 '상업문화예찬' 은 나의 가장 많은 흥미를 끌었다(난 이책을 언젠가는 손에 넣고 말 것이다). 왜냐구? 나 역시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온전한 백수이길 바라지만, 자꾸 일에 대한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나의 이런 유혹에 대해 이 책이 일말의 답을 주지 않을까 한다.

 

솔직히 작년에 잠깐 돈을 벌기위해 일을 해 본적이 있는데, 하면서 나는 그 일 때문에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가 없다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다. 책을 읽는 것과 일. 이 둘 다를 잘할 수 없다면 한가지를 포기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고 하나만 잘하는 것이 나에겐 차라리 더 유리할 것 같아, 난 그 일을 버리고 내 본업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미 말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역시 엄밀하고 순수한 의미에서 백수는 아니었다. 나 역시 책 읽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 일을 통해서 뭔가의 일을 꿈꾸고 있지 주인공처럼 책만 읽지 않는다. 그렇다면 난 좋던 싫던 지금으로선 백수가 아닌 실업자로 분류되야 마땅할 것이다. 일을 기다리는 실업자. 언젠가 나의 날개를 피면 이 딱지도 떨어질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런지 모르지만.

 

내 후배 한 애는 내가 돈을 벌지 않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다 못해 닦달까지 한다. 난 녀석이 좀 무례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직 그애의 닦달에 제동을 걸어 본적은 없다. 그럴 때마다 난 오히려 서글퍼진다. 왜 사람을 돈벌이를 하느냐, 안 하느냐로만 구분지을려고만 하느냐고 녀석에게 따지고 싶어지기도 한다.

 

나는 녀석의 그런 시각이 마음에 들지않고, 미안한 얘기지만 조금은 천박해 보인다. 그러면 녀석은 그러겠지. 언니는 현실감각이 없고 아직도 구름위를 걷고 있다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치열하고 천박한 것인데. 어디 한번 자기 같이 싱글맘으로 살아보라고, 대뜸 치고 들어 올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내가 참는 수 밖에. 이것이 백수가 된 죄라고 밖에 달리 뭐라고 설명하랴?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백수가 대우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을 어쩌랴.

 

그래도 이 책이 백수의 위상을 올려놓은 것 같아 나름대론 애정이 갔다. 하지만 한 사람의 독자로서 이 책을 앞으로 읽을 사람들에게 오해 안 했으면 한다. 물론 그럴리 없겠지만, 백수는 책만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갖지 말았으면 한다.  물론 이 책이 안 그래도 독서인구 감소 방지에 조금이나마 기여한다면 좋은 일이긴 하나, 백수가 책만 읽어야 진정한 백수라고 어디 나와 있겠는가? (솔직히 난 초반에 읽으면서 제목에 불만이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때문에 다소의 불편을 감수하고 사는 것이 진정한 백수가 아니겠는가? 단지 이 소설의 주인공은 책읽기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때로는 영악하게 사람과 거래를 하기도 한다는 것뿐이지. 어쨌거나 이 책은 나에게 즐거운 독서체험을 하게해 준 것마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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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7-20 0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에 적극 동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추천!

Mephistopheles 2006-07-20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리뷰 좀 자주 올리면 안되겠니~~!! (요)

stella.K 2006-07-20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오랫만에 리뷰에 댓글을 받아 보네요. 그동안 쓰면서 얼마나 외로웠는데요. 서재 폐쇄하려고 했어요. 엉엉~

소쿠리 2006-07-2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학원에 다니다가 휴학을 하게 된 20대 후반 남성입니다. 학원강사 자리를 구하려고 하는데 쉽지 않아서, 본의 아니게 놀고 먹는 백수 신분이 되었지요... 백수를 단지 일 안하는 사람으로 쉽게 구분하는 사회의 편견을 잘 지적하신 것 같습니다... 주위에서는 저보고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는 살 수 없지 않느냐는 근엄한(?) 충고를 하기도 하지만, 저는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서 살고 싶지 않아서 쉽고 편안한 길을 포기하고 인문학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요즘들어 미래가 많이 불안하기도 하고 사회에 진출해야 하는데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님의 리뷰가 저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stella.K 2006-07-24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시군요. 위로가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006-08-01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6-08-01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self-esteem! 얼마만에 들어보는 말인지! 고마워요. 읽어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