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또 생리가 시작이 됐다. 요즘 같이 여성의 생리가 박해 받은 적이 있을까? 나는 또래에 비해 늦게까지 생리를 하고 있는 셈인데 이제 완경을 해서 그렇지 않아도 뒤숭숭한 이슈에서 어느 정도 자유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생리란 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도 나올 생리가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인 가운데 이번에도 생리대를 쓸 수 밖에 없는 처지가 심란하다.
이런 와중에도 불우청소년 생리대 지원 사업은 계속될 거라고 하던데 이걸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 아이들도 깨끗하고 안전한 생리대를 사용할 권리와 의무가 있는데 설마 비싸고 안전한 유기농 생리대를 지원하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이 문제가 앞으로 좀 개선되길 바라긴 하지만 덕분에 생리대값만 더 올려놓는 부작용을 낳을 건 아닌지 걱정이기도 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여성이 마음 놓고 생리도 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어쩔 것인가?
2. 개그우먼이었다가 영화배우로 전햔한 곽현화 재판에서 졌다고 한다. 이에 항소하는 의미로 감독과 나눈 증거록 취록을 증거물로 제시했다고 하는데 이번엔 꼭 승소했으면 좋겠다. 도대체 법원은 무슨 정신으로 감독에 손을 들어 줬는지 알 수가 없다. 김기덕 감독도 고소 당한 마당에. 법원이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나라 영화판에서 여자 영화배우는 고양이 앞에 생선 꼴이다. 그동안 감독들 예술이란 이름하에 여자 배우들한테 좇 같은 짓 많이 하고 강요하지 않았는가?
3. 나도 드라마 중독일까? 갈수록 보는 드라마가 늘고 있다. 그나마 <명불허전>은 하도 거지같아 안 보기로 했다. 과연 <시그널>을 쓴 그 작가가 맞나 싶게 의욕만 앞섰지 도무지 지지부진해서 봐 줄 수가 없다. 게다가 뭐든 이야기를 풀 수 없으면 사랑으로 몰아 가려고 한다. 그게 가장 쉬운 방편이긴 할 것이다. 멋진 남녀 주인공이라면. 그런데 그게 너무 식상하다 못해 썩은 방식 아닌가? 사랑 이야기도 받혀 주는 것이 탄탄해야 멋지게 빛나는 법이다.
대신 오늘 작품 하나를 끝냈는데 그건, 작년에 JTBC에서 방영했던 <청춘시대>다. 처음 방영했을 때 1편인가? 2편까지만 보다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야 어차피 오래 전에 청춘을 떠나 보냈는데 이제와 새삼 무슨 청춘물인가 싶어서. 그런데 최근 베트남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잠시 귀국해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드라마가 너무 괜찮다는 말에 현혹되 다시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과연 정말 잘 만든 영화란 생각이 든다.
그 드라마에서 보면 윤진명 역을 맡은 한예리와 강이나 역을 맡은 류화영의 대비된 연기가 볼만하고 결국 난 그 두 인물에 감정이입이 되고 말았다. 윤진명은 그야말로 불우한 환경속에서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해 가며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꿋꿋한 여대생이고. 반면 강이나는 미모 하나로 남자들이나 후리며 대충 살아가려는 꽃뱀이다. 둘은 한 집에 살면서 서로의 입장을 어느 정도 동경하기도 한다.
요즘 열심히 사는 삶에 대해 거의 혐오 수준을 보이며 현재를 즐겨라, 나를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에 저당잡히지 말아라. 그런 주장이 많은데 이론적으로야 틀리지 않는 말이긴 하지만 과연 실제로 그렇게 살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물론 그렇게 사는 청춘도 없진 않지만 여긴 대한민국이다. 그렇다고 힘들게 스펙을 쌓으며 어려운 사다리를 오르는 젊은 청춘이 비난 받아선 안 된다.
물론 다소 한심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불행하지만 자기 목표를 향해 가는 윤진명을 비난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한 번도 행복한 삶을 살아봤을 것 같지 않은 진명이지만 어쨌든 주워진 삶은 살아야 하지 않는가? 그 과정이 싫지 않게 느껴진다. 정말 가까이 있으면 등이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다.
적어도 난 그런 캐릭터에 많이 끌린다. 그건 꼭 진명이 대견하게 느껴서만도 아니다. 내가 단 한 번도 그런 삶을 살아 본 적이 없어서다. 난 삶 자체가 진명 같이 불우하지가도 않다. 그래선지 악착같이 버텨내는 힘을 가지지 못했다. 힘들면 쉽게 포기하고 또 버텨내는 힘도 약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강이나를 보면 젊음이 항상 저리 꽃 같지 않은데 혀를 끌끌차지만 사실은 강이나의 모습 속에 나의 욕망도 숨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강이나의 삶을 동경한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이용하고 쉽게 의지하고 싶어지는 그것 말이다.
대신 윤진명을 보면 불행하거나 불행하지 않거나 저렇게 진지하게 다시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암튼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이 보는 것만으로 넘 좋았다. 꽃을 좋아하랴? 젊은 청춘을 보는 게 더 좋지. 물론 자신들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하겠지만. 좀 더 살아봐라. 그때도 좋았지 할 때가 있을 것이다.
4.
책 자체도 흥미롭지만 이벤트 또한 흥미롭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단편 공모를 하는데 그 분량이 문제다. A4 용지 10포인트로 3장 분량이란다. 안 써 봐서 모르겠지만 아무리 단편이라지만 분량이 너무 적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수록작품이 3장 내외냐면 그렇지도 않다. 작가들 제각각이겠지만 어떤 작품은 실제로 타이핑을 해 보다면 3장은 족히 넘어 보이는 것도 꽤 있다. 그렇다면 이 3장의 제한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 걸까? 3장짜리 단편이 없으란 법은 없겠지만 그건 꽁트이거나 단편에 대한 시놉시스 정도 밖에 더 될까? 아무래도 심사위원 배려 차원은 아닐까 의심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언제나 그렇듯 17편의 단편이 하나 같이 다 매력적이라고는 말 못할 것 같다. 그래도 하나 같이 호퍼 마니아들 아니겠는가?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썼다는 게 새삼 놀랍긴 하다. 그리고 호퍼가 그림을 생각 보다 많이 그렸구나 싶다. 난 이전에 그의 대표작 몇 작품 밖에 몰랐는데 이번에 새로 보는 작품도 꽤 있어 놀라고 있는 중이다.
나야 그림에 거의 문외한이긴 하지만 그게 또 자랑은 아니겠지만,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가장 미국적이면서 현대인의 고독을 이만큼 잘 표현한 작가가 또 있을까 싶다. 그러면서 묘한 매력에 빠져 드는 것도 사실이다.
5. 가끔 내가 미국의 인종차별을 비난하곤 하지만 우리나라라고 날까?
얼마 전, 탈북자들 실태를 들으니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넘어오지만 적응을 하지 못해 역으로 다시 탈남을 하는 사람도 있단다. 아니면 제3국행인데 그것 역시 쉽겠는가. 물론 이게 다 살기가 팍팍해진 인심탓일 수도 있겠지만, 탈북자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도 무시 할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 부모들 좀 까탈스러운가? 같이 공부하는 것에 경기를 일으킬 정도란다. 사상이 의심스럽고 내 아이 물들까 봐. 과연 이래서 통일이 되겠나 싶다. 통일 대박, 통일 대박 하지만 통일을 너무 경제적으로만 보려고 하는 시각도 문제였구나 싶다. 정신적으로 변한 것이 없는데 무슨 얼어죽을 통일인가. 남북이 갈라져 산지도 반세기가 넘었다. 통일되도 연방국가 개념으로 살게되는 건 아닐까? 하나된 나라에서 살아보지 못한 세대가 그렇지 않은 세대 보다 더 많으니 뭔가 불안하고,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