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부자들 ‘책 읽어주는 노예’ 두기도
찰스 디킨스는 낭독회 수입이 원고료보다 많아
‘소리 책’은 인류의 본래 독서방식
▲ 표정훈 출판평론가 | |
책 읽기의 읽기는 본래 ‘소리내어 읽기’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소리내어 읽음으로써 비로소 텍스트가 완성된다고 보았다. 고대 로마의 부자들은 책 내용을 통째로 암기하고 있다가 주인의 명령에 따라 내용을 들려주는 노예를 두기도 했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책’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극장이나 공중목욕탕 등에서 낭송회가 열리기도 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를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대표했던 메디치 가문의 통치자들도 책 읽어주는 학자들을 두었다. 서양에서 묵독(默讀)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가장 이르게 잡아야 10세기부터다.
근대적인 의미의 작품 낭독회를 말하자면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858년부터 유료 낭독회를 열기 시작하여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정기적으로 낭독회를 가졌고 1867년부터 2년 간 미국에서도 낭독회를 열었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작가 랄프 월도 에머슨은 보스턴에서 열린 디킨스의 낭독회에서 “온몸이 부서져 나갈 듯이 웃었다”고 회고했다. 모두 471회에 걸쳐 낭독회를 가진 디킨스가 낭독회로 벌어들인 고정 수입은 글로 벌어들인 수입보다 많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낭독의 전통이 없는가? 경기도무형문화재 제32호는 ‘송서’(誦書)와 ‘율창’(律唱)이다. 송서는 산문에 가락과 사설을 실어 읊는 것이요, 율창은 한시에 가락을 실어 노래하는 것이다. 송서와 율창은 일제 강점기 때도 부잣집 사랑채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풍류였다. 선비의 글 읽는 소리에 반한 옆집 처녀가 흠모의 정을 품은 나머지 담을 넘어 선비의 방으로 뛰어들었다는 일화도 많다. 뿐만 아니다. 전문적으로 소설책 읽어주는 일을 했던 이업복(李業福)에 관해 ‘청구야담’(靑丘野談)은 이렇게 전한다. “이업복은 아이 적부터 소설책을 잘 읽었다. 그 소리가 노래 같기도 하고 우는 듯도 하고 웃는 듯도 하며, 호방한 선비 같기도 하고 아름다운 여인 같기도 하니, 책 내용의 배경과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 바뀌었다.”
조수삼(趙秀三)의 ‘추재기이’(秋齋紀異)에는 서울 동대문 밖에 살았던 “기이한 이야기를 전하는 노인” 즉 전기수(傳奇?)가 나온다. 전기수는 종로 일대를 정기적으로 돌아다니며 숙향전·심청전·설인귀전 등의 언문소설을 낭송했다. 전기수는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에서 낭송을 일부러 멈추었다. 그러면 청중들은 다음 줄거리를 재촉하며 앞다투어 돈을 던졌다.
이처럼 소리 내어 읽고 듣는 책의 전통은 오늘날 카세트 테이프나 CD 형태의 ‘오디오 북’으로 되살아났다. 미국에서는 일찍부터 오디오 북이 활성화되어 에드거 앨런 포우나 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은 고전적인 작가들은 물론, 토머스 프리드만의 ‘세계는 평평하다’ 같은 최근 나온 책도 대부분 CD로 나와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등 MP3 파일 형태의 오디오 북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