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주일학교를 나와서 시간만 죽이고 있던 어느 날 당시 구독하고 있던 신문에 아기 손바닥만한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여느 때 같으면 너무 작아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뭐 때문인지 그 조그만 광고가 나를 그냥 놔주질 않았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창작을 가르쳐 주는 학원에서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광고였다. 왠지 난 그 학원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 글을 시작했던 초두에 글을 쓰려면 학원이나 문화센터를 다녀 보라는 걸 난 그때야 비로소 실행했던 것이다.

 

무작정 등록하고 다녔던 곳이 또 나름 별천지였다.

일반인에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문학계에선 나름 유명한 시인 김정환 선생이 원장으로 계신 곳이었는데, 선생은 80년 대 민주화 운동을 하셨고, 그곳에 포진되어 있는 강사들 대부분 민주화 운동에 가담했던 작가들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남자들은 모이면 군대 이야기를 하고, 여자는 아기 낳은 이야기와 시댁 식구들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데 그곳은 모이면 운동 이야기를 했다. 사회적으로 볼 때 한풀 꺾인 것이긴 했지만 아직은 할 이야기가 많은 때이기도 했다. 

 

나는 그곳에 다니면서 막연했던 참여 문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로서 자의든 타의든 시대를 진단하고 비판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군부독재에 맞서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은 다만 글을 썼을 뿐이다.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뭘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그 불꽃 같은 시대 그들의 투쟁을 나 같은 사람이 강건너 불구경 하듯 한 것에 대해 답답해 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나름 존경스러운데가 없지는 않지만 이제 지나간 시절 살게 되어서일까? 스스로 영웅인 양 하는 것도 없지않아 보였다.)     

 

아무튼 난 거기서 초급반을 수강했는데, 글쓰기 전반에 관한 강의와 함께 워크숍 작품으로 처음 단편 소설을 완성해서 선생님과 수강생들로 부터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때 초급반을 담당했던 선생님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 나는데, 자신이 글을 쓸 사람인지 아닌지를 아는 것 두 가지가 있다고 헸다. 내 안에 분노가 있느냐와 글을 쓰고도 또 쓰고 싶은 욕망이 있느냐. 그때 나는 당연히 분노가 있었다. 그 제자에 대한 분노와 실의가 있지 않았더라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곳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가 이때가 아니면 언제 그런 수업을 들어 보겠는가? 나는 선생님이 좋았고, 나와 함께 듣는 수강생들이 좋았다. 수업이 끝나면 우린 2차로 술과 밥을 먹으러 갔고, 거기서 교실에서 들을 수 없었던 문학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이게 또 언제인지도 모르게 내안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워크숍에서 좋은 평가를 들었던 게 훗날 다시 주일학교로 돌아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만일 그 워크숍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위축되어 그 일을 다시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난 어느 틈엔가 다시 연락하겠다던 목사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일학교를 나왔을 당시엔 목사님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목사님 언제고 나에게 연락만 해 봐라. 내가 어떻게 거절할지 본떼를 보여 주겠다고 별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내가 그런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다시 연락하겠다던 그 말을 순수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목사님은 그 해가 다 지나가도록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아마도 안 했다기 보다 못 했을 것이다. 어떤 책임의식 때문에. 나는 다소 낭만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넘어졌던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땐 내가 먼저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고, 나 이후에 그 일이 전혀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듣고 다시 돌아가 그 일을 정상화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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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05-29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창작 학원, 문학 강좌...스텔라 님 의외로 이런 강좌 많이 참여하신 듯합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도 그런 강좌는 생각도 못해봤는데 말입니다요..ㅎ

어쨌거나 대단하시다는..


stella.K 2017-05-30 14:08   좋아요 0 | URL
ㅎㅎ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저의 서재에서 야무님을 뵈오니 참으로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죠?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이 길에 뜻을 두지 않았다면
그리고 평탄한 세월만 살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던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전에 창작은 대학의 문창과나 가야 배우는 것인줄 알았다니깐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