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권유로 주일학교에 남기로 했던 그해 주일학교 예배에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예배 가운데 짧은 드라마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에 내가 투입이 된 것이었다. 그 일은 주일학교로서도 획기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때 내가 연극을 잘 알고 그 일을 한 것은 것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그런데 왠지 내가 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 이유는, 예전부터 습작을 하면 나는 도전하는 글마다 쓰다가 중단하곤 했다. 그게 너무나 괴로워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있어도 일부러 누르고 안 쓰곤 했다. 써 봤자 또 쓰다가 말 걸 써서 뭐하나 꾹꾹 눌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은 맡은 이상 해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 일을 통해 글을 쓰는 성실함을 배울 수 있겠구나 생각했던 것이다. 여기에 글을 쓰는 세번째 방법이 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상황으로 나를 몰아 넣어라. 

 

기자들을 보라. 그들이 마감 시간에 맞추기 위해 얼마나 피 말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지. 그들이 기사를 잘 쓰고 못 쓰고는 둘째 문제일 것이다. 어쨌든 시간에 맞춰 기사를 쓰지 않는가? 나에게도 그런 것이 필요했다. 연극 대본을 쓰는 일은 그것을 몸에 베게하는데 최적화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난 평소 글을 쓴다면 소설을 쓸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연극 대본을 쓴다는 게 조금은 아쉬운 일일수도 있겠지만 소설이나 희곡이나 글을 쓴다는 건 같은 일이고, 나중에 소설을 쓰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나는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그 일에 최선을 다했다.

 

물론 그때 그 일은 힘들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당시 그 일에 나 말고도 두 분의 선생님이 더 계셨는데 그들은 초반에 조금 하다가 나가 떨어졌다. 하지만 난 그 일이 얼마나 재미었던지 힘든 줄도 모르고 했다. 무엇보다 연극 대본을 쓰면 원고료를 받았는데 나는 그때 비로소 알았다. 작가와 작가 지망생을 구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원고료를 받으면 작가인 것이고, 이걸 받지 못한다면 그건 작가지망생인 것이다. 그러니 난 이제 더 이상 작가 지망생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내가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했는지 소개해 보겠다.

우선 내가 맡은 일은 목사님 설교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맞는 상황을 연극으로 표현해 줘야한다. 일종의 상황극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엔 굳이 결말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그저 주인공이 이래야 하나, 저래야 하나 고민하다가 끝을 내면 나머지는 목사님의 설교에서 답을 찾는 뭐 대충이런 형식이다.

 

그런데 목사님 설교가 돌아오는 주일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보통은 수요일 정도에 알 수가 있다. 그럼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날은 목금 정도가 된다. 그 이틀 동안 그에 맡는 글감을 찾아야 한다. 이 글감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으로 빨리 찾으면 빨리 쓸 수 있지만 못 찾으면 그야말로 피가 마른다. 나중에 요령이 좀 생겼는데 그 무렵 시중에 <마음을 열어주는 101 가지 이야기>나 <내 영혼의 닭고기 스프> 뭐 이런 짧막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가 유행했었다. 그게 또 그런대로 목사님 설교와 매칭이 되는 부분이 있어 도움이 많이 되었다.

 

대본은 A4용지 3장을 넘지 않으니 분량 자체는 그렇게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것을 다음 날인 토요일 오후에 아이들과 연습을 해야한다. 하지만 워낙에 짧은 시간이라 연습이랄 것도 없었다. 그냥 동선을 잡는 정도였다. 그러면 아이들은 내가 써 준 대본을 집에 돌아가 밤새도록(물론 빨리 외우면 잠도 잘 수 있겠지) 외우고 다음 날 8시, 10시 두 번 있는 예배를 위해 아침 7시에 만나 다시 한 번 대사와 동선 체크하고 올라가는 그런 식이었다. 

 

앞서 나는 이 작업을 '피 말리는 작업'이라고 했는데 정말 피가 마른다면 그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은 피가 말라도 좋았다. 너무 대본이 안 써질 땐 컴퓨터 모디터를 창문 밖으로 내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하지만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그렇게 내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마다 짜릿한 쾌감이 있었고, 연극은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미친다더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았다.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좋아했냐면, 애초에 목사님이 그러셨다. 많으면 한 달에 두 번. 그저 평균 한 달에 한 번만 해달라고. 그것을 나는 한 달을 4주로 잡았을 때 세 번까지도 올린 적이 있었다. 그러리만치 난 그 일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내가 뭔가에 쉽게 미치는 그런 열정적인 성격이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 일만큼은 열정을 바쳐서 열심히 했다. 

 

누가 나에게 지금 그때로 다시 돌아가 그렇게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못한다고 할 것이다. 그때 내가 하나님께 영감을 달라는 기도를 참 많이 했었다. 목사님 설교는 수요일 날이면 나오지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이틀 정도지. 그 기도 밖에 무슨 기도를 더할 수 있었을까? 사막에 정자를 짓고, 외줄타기가 따로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를 생각하면 선생님을 믿고 밤새도록 대사 외우고, 주일 날 유일하게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일텐데도 그것을 포기하고 새벽에 나와 준 아이들에게 진 빚이 많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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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6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대회 마감일 하루 이틀 전에 글을 써요. 처음부터 일찍 준비해야하는데, 다른 책들을 읽다보니 시간에 쫓겨서 글을 써요. 성공 확률은 계산해보지 않았어요. 오히려 상황이 쫓기고 있을 때 글이 잘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물론, 당첨에 실패한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마감일 1~2주일 전에 준비하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

stella.K 2017-05-26 16:55   좋아요 0 | URL
아, 그런 게 있다더군.
왜 시험 공부도 시험 보기 바로 전이나 몇 시간 전이
가장 잘 된다잖아. 그걸 심리학 용어로 뭐라고 하던데...
궁하면 통한다는 뭐 그런 것과 비슷한 거지.
어떤 사람은 책을 일부러 도서관에서 빌려 보잖아.
반납일까지 읽어야 한다는 명분이 생기니까 게으른 사람에게
필요한 거지.
내가 한때 서평 이벤트에 목숨 걸었던 것도 그 이유고.
배운 도둑질이라고 아주 끊지는 못하겠더라.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