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일하는 친구가 휴가를 맞아 귀국을 했다. 우린 강남역 근처에서 1년 만에 다시 만나 소박한 점심을 먹고 와플을 전문으로 하는 카페에서 후식으로 딸기 와플과 커피를 먹었으니 밥 보다 후식을 더 거하게 먹은 셈이랄까?
그 친구는 이렇게 한 번씩 나오면 현지의 물건들을 가져와 만나는 지인들에게 선물로 나눠주곤 하는가 본데 이번에 나도 한 아름 선물을 받았다. 그런데 비해 나는 그 친구를 위해 뭐하나 제대로 해 준 것이 없다.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친구가 한국에 있지 않은데다 그곳에선 웬만한 생필품은 한국 보다 쌀 테니 돌아갈 때 다 짐이 될 것 같아 함부로 뭘 못해 주겠는 것이다. 그나마 부끄럽지 않은 건 지난여름에 나온 나의 불후의 명저(<네 멋대로 읽어라>.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겐 실패한 걸작 같다.ㅠ)를 내밀었을 때라고나 할까?
아무튼 우린 그렇게 선물을 교환하고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웬 등과 어깨에 짐을 진 어느 키 작은 할머니가 가래떡을 팔겠다고 각 테이블을 돌고 있었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거의 애원조다. 할머니는 누구에게라도 얼른 팔고 싶어 하는 모습이 역력했는데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도 떡을 사지 않았다. 드디어 할머니는 우리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도 왔는데 우리 역시 사지 못했다. 사실 비스하게 늙어버린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그 할머니의 바람을 거절하면 안 될 것 같기도 했다. 더구나 할머니는 내 친구 보단 나를 바라보며 사달라고 했는데 결국 나도 바람을 이루어드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 있기도 하거니와 방금 친구로부터 선물을 건네받아 가방(그리 큰 것도 아니지만) 가득 챙겨 넣은지라 이 할머니한테 떡을 사면 집에 가는 길이 다소 번잡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좀 미안한 마음에 조그만 소리로,
“저희 집에도 있어서요....”
그러자 할머니는 물러설 생각이 없는지,
“가래떡을 누가 없어서 사나? 다 쟁여두고 먹는 거지. 그러지 말고 좀 사 줘요.”
“죄송합니다. 다음에 살게요.”
그러자 할머니는 서운했는지,
“다음에 사긴 언제 산다고 그래.”
하고는 팩 토라져 다음 테이블로가 가는 것이다. 물론 그 할머니도 그것이 거절의 뜻이라는 걸 모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거절만 당해 온 지라 나는 혹시 살까 싶었는데 나 의 완곡한 거절이 오히려 부아가 나셨는가 보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로부터 그런 핀잔을 들었다고 기분이 상했던 건 아닌데 어쩌면 그 할머니가 지고 있는 짐 보따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고 또 엄마 때문인지도 모른다. 엄마 역시 늘 장을 봐 올 때면 어깨에 손에 한 짐을 지고 돌아오곤 한다. 무겁게 이것저것 사지 말라고 아무리 말려도 살아 온 스타일은 좀처럼 바꾸질 못하는 것 같았다. 요즘도 벌써부터 손주들 설에 오면 먹이겠다고 시간 날 때마다 명절 먹을거리를 하나 둘씩 사 나르고 있다. 어쩌면 그 할머니도 그랬는지도 모른다. 가래떡을 팔아 엄마처럼 명절 음식을 장만하거나 설에 세배 오는 손주들에게 세뱃돈 주겠다고 저리 기를 쓰는 건 아닌지. 그때 문득 학교 때 외웠던 시조가 생각났다.
이 보오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서러워라커든 짐을 조차지실까
그땐 너무 어려 별 감흥 없이 워웠을 뿐이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수시로 생각나는 시조가 됐다. 그리고 그런 시조는 외울 줄 알면서 정작 그 할머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할머니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사려고 하는 이가 없었다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저 각박해진 세상 때문이라고 단정 짓듯 말해도 되는 걸까? 과연 거기 앉아 있었던 사람들이 그 할머니와 비슷한 또래의 어머니나 친(외)할머니가 없어서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각박해도 연말연시에 얼마의 불우이웃 돕기 성금 정도는 낼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거기 앉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생각을 안 하고 있었던 건 내가 아니어도 누구든 사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내지는, 아무도 사지 않으니 나도 못 사겠다는 집단 심리가 작용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할머니도 그다지 장사하는 데는 소질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정말 그렇게 가래떡을 팔기를 간절히 바랐다면 냄새는 고사하고 가래떡의 하얀 속살이라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저 헝겊 가방만을 들고 떡을 사라고만 하니 정말 그 가방에 떡이 들어있는지 팥이 들어있는지 알 길이 없고 구매 의욕이 전혀 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구체적인 가격이나 하다못해 싸게 해 주겠는 말조차도 하지 않았으니 누구라도 괜히 얼마냐고 물어봤다 덤터기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 할머니는 공략 장소를 잘못 선택한 것 같았다. 그 카페는 1층에 나름 깨끗하고 럭셔리한 인테리어를 자랑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런 곳에서 번잡스럽게 그 기다란 가래떡을 펼쳐 팔고 사기엔 적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도 할머니는 떡의 하얀 속살을 펼쳐 보이지 못했을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카페 관계자와 모종의 약속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냄새가 나거나 국물 또는 부스러기가 있는 물건은 팔 수 없다는 규정 같은 것 말이다. 결국 할머니는 그곳에선 떡을 파는데 성공하지 못했는데 나는 한동안 할머니가 진 짐이 못내 마음이 쓰였다. 할머니는 그날 다른 곳에서라도 떡을 파는데 성공하셨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