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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무너지다 - 한국 명예혁명을 이끈 기자와 시민들의 이야기
정철운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공교롭게도 박정희 대통령 사망과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 사망일이 같았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바뀌어 있더라고 전날까지도 두 사건 다 그렇게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충격적이기는 박정희 대통령이 더 했다. 그땐 내가 어리기도 했거니와 그때까지 우리나라에 대통령은 단 한 분뿐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도 무너질 수도 있구나 놀라웠다. 이번 사건도 그에 못지않다. 웬 듣도 보도 못한 최순실이란 이름이 TV는 물론이고, 신문, 인터넷에 연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전에 한 번이라도 들어봤던 이름이라면 말도 안하겠다.
솔직히 이 최순실이란 다소 촌스러운 이름 때문이었을까? 난 그전까지 드문드문 듣던 뉴스를 그 일이 터지고 매일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다. 역대 대통령의 비리가 있을 때마다 처음 듣는 이름이 나와도 그리 관심이 없었다. 역대 대통령치고 비리 없는 대통령이 있었던가? 대통령=비리라는 공식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기에 또 그렇게 언론에서 몇 번 때리다 다른 사건이 묻히겠지 했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뭔가 다른 것 같았다. 뭐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운데 이제까지의 사안과는 다른 끈적끈적함이 있었다. 그리고 새삼 내가 언제 정치에 관심이 있었던가? 나도 이참에 정치에 관심 좀 가져보자 했다.
그런데 (너무 내 시각으로 일반화 시키는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그 마음은 나만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촛불집회가 그것인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 될 때까지 매주 회가 거듭할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만 갔다. 난 그들 모두가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아서 그렇게 모였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는 것도 빠듯한데 정치는 무슨, 하는 서민들이 다수고, 학교에서 수학 문제 하나라도 더 풀고,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야할 학생들 역시 정치와는 그다지 깊이 관련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무엇보다 국정농단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정을 자신의 리더십으로 통솔할 수 없어 국민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듣보잡에게 맡기고 자신은 꼭두각시 행세를 해 왔다. 이 나라가 대리청정을 했던 이씨 조선의 나라도 아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을 국민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이거야 말로 국민을 우롱한 것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찬성을 했건 반대를 했건 어쨌든 대통령이 된 이상 그저 잘 해 주길, 이전의 대통령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자랑할 건 아니지만 난 선거 때 박근혜를 찍지 않았던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 무렵 인터넷 불로그를 돌아다닐 때마다 목격했던 ‘#_그런데 최순실은?’란 해시태그가 뭔가 참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보고 그것의 기원을 비로소 제대로 알았지만 처음 발견했을 때 내가 잘 알고 지내던 몇몇 블로거들이 이번 사태를 조롱하는 의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찌 보면 누가 국정을 농단했는지는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그 사건을 계기로 정제계의 비리와 연루자들의 이름이 굴비 엮듯이 터져 나오고 그들의 전횡과 행태를 보는 건 정말 내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괴감이 들 정도다.
사실 이 책은 지금까지 사건이 터지고 나서 이미 뉴스 보도에서 접했던 내용을 복습하는 정도라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읽기도 조금 늦게 읽기도 했고. 단지 사태의 배경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는 것과 저자가 언론인 출신인 만큼 책의 구성이 브리핑을 하듯 간결하다. 원래 보수 정권과 보수 언론은 밀월관계 내지는 서로가 서로를 이용해 먹는 관계가 공공연한 정설인데 박근혜는 그것의 생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청와대를 들어간 건 아닐까 싶고, 그것을 선민의식과 공주병으로 연결시키는 것을 보면서 여성 리더십이 실추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앞으로 향후 30년 안 아니 그 보다 더 오랜 세월 한국엔 여성 대통령은 더 이상 기대해 볼 수 없지 않나 어두운 전망도 해 보게 된다. 무엇보다 정제계의 비리가 이 정도였단 말인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들의 탐욕과 모르쇠는 알 듯 모를 듯 한 청문회에서의 그들의 표정이란 인면수심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망국의 말로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적으로도 탐관오리들의 탐욕과 득세가 망국의 말로로 이어지지 않았던가.
앞서 보수 정권과 보수 언론의 관계를 얘기했지만 이건 또 박근혜 정권과 조선일보와의 진흙탕 싸움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정의만이 비리를 혐오하는 게 아니구나 그런 생각도 든다. 비리 그 자체도 비리를 혐오하기는 마찬가지구나 그리고 언젠가 그 비리가 위협을 받을 때 정의의 모습을 가장하기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내가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가운데 하나가 <낭만닥터 김사부>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속이 후련해지는지. 왜 그런가를 생각해 보면 주인공 김사부는 하나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의사로서 환자의 생명을 무조건 살린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을 지켜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정치인 누구도 원칙을 주장하며 국회의사당에 진출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얼마나 원칙을 지키며 의정활동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당리당략의 원칙이 아니라 국가의 장래와 국민을 위한다는 이 원칙 말이다.
박근혜는 이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 탄핵이 결정되고서야 깨닫는 후회는 너무 늦다. 땅을 치고 후회해 봤자 그의 시간은 돌이킬 수 없게 돼 버렸다. 이제 역사는 그 이름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기억한다면 가장 불명예스런 대통령, 앞으로의 역사에도 있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로서의 대통령으로나 기억되겠지. 솔직히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조차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다. 왜 우리나라엔 자랑할 만한 대통령은 나오지 않고 있는 걸까?
박근혜의 탄핵이 결정되던 날은 확실히 시민 혁명이 승리하는 날로 기억될만한 날임에 틀림없다. 누구는 그런 말을 한다. 우리나라는 정치와 환경 문제만 해결되면 살만한 나라라고. 촛볼시위를 보라. 각자 스스로도 놀랄 만큼 성숙한 시민 정신을 보여줬다. 우린 이제 조기 대선이란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이제는 자중하고 이번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다시는 국정을 농단하고 비리 저지르겠다는 대통령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제목이 강렬과 진부를 오가는 느낌이다. 지금은 뻔한 내용이라 좀 지루할 수 있지만 사람의 기억력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앞으로 1, 2년 후면 잊힐 사건이다. 그때 다시 읽으면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을 오래도록 간직해 볼 생각이다. 뭐 대단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중에 역사는 이 사건을 어떻게 평가할지 비교해 보고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