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 1
파라마운트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이 유명한 영화 한 번은 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안 봤었나 보다. 영화가 낮설다. 이 영화를 안 보고 영화에 대해 논할 수 있을까? 아니 적어도 영화 감상이 취미라고 어디가 말이라도 하겠는가. 어쨌거나 이렇게 뒤늦게나마 정자세로 다시 보니 정말 잘 만든 영화란 생각이 든다.

 

특히 영화 종반쯤에 사제가 마이클의 아기에게 유아세례를 집례하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총질을 해 대고, 또 사제가 마이클에게 교리문답 같은 맹세를 받으려 하면 넙죽 그러겠다고 하는 그 이율배반적 장면은 가히 압권이란 생각이 든다. 뭐 그게 아니어도 영화 전반에 걸쳐 촬영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40년의 세월을 거슬러 다시 보아도 역시 엄지 척이란 생각이 든다. 모르긴 해도 영화사에 길이남을 100대 영화 중 수위를 차지하지 않을까?

   

                            

느와르에 무슨 사람을 죽이는 개연성이 필요하겠는가? 그냥 멋있게 죽이면 그만이다. 멋있게 죽이고, 멋있게 죽는 가장 효과적인 대비는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느와르 영화가 계단씬을 선호하지 않던가. 시간을 거슬러 이 영화를 보니 그 클리셰의 역사가 굉장하겠구나 싶다. 훗날 이 영화 보다 더 오래된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을까?

 

아무튼 그런 명성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결코 베스트가 아니다. 오히려 워스트다. 하긴 40년전 영화, 그것도 수컷들의 영화에서 무슨 얼어죽을 페미니즘이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런데 그러기 전에 마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 우린 마초하면 변강쇠의 이대근 같은 이미지를 얼핏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실제론 그렇지만은 않다. 흔히 마초하면 헤밍웨이가 생각이 나는데 사실 알고 보면 그가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며, 여자에 대한 애증을 교차해 왔는지는 쉽게 알아 볼 수가 있다.

 

이 영화도 보라. 말년에 표정이 거의 없고, 피곤에 찌들은 돈 코를레오네 역을 말론 브란도는 너무도 완벽히 소화해 냈다. 그런데 세상에 두려울 것도 거칠 것도 없는 그의 마지막 엔딩씬은 고작 3살짜리 손자와 마당에서 놀다가 숨 몇 번 헉헉대고 쉬더니 영영 못 일어나는 것으로 설정됐다. 또 영화 전반에 흐르는 음악은 얼마나 비장하고도 고독을 잘 표현해 주고 있는가?

 

그런데 비해 이 영화에서 여자가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다뤄졌는지 봐야할 것 같다. 이 영화는 돈 코를레오네가 주인공 같지만 사실은 그의 막내 아들 마이클(알 파치노)가 주인공이다. 정확히는 돈 코를레오네는 지는 해고, 마이클은 뜨는 해다. 남자는 여자 하나로 만족을 못한다는 것을 암시라도 하듯, 마이클은 미국의 애인을 두고 이탈리아의 어느 시골 처녀와 눈이 맞아 결혼을 한다. 그런데 이 두 여인은 거의 힘없는 백치미로 나온다. 미국의 애인은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금발이다.

 

마이클의 첫 부인이 되는 여자는 그가 선물한 목걸이에 매혹되 결혼을 하고 수다스런 말괄량이가 됐다. 이들의 첫날밤을 보면, 여자가 황홀경에 빠져 스스로 어깨를 드러내고 마이클과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데, 뭐 이것 역시 설정이겠지만 여자를 꼭두각시로 만들었다 생각이 든다. 남자가 여자의 옷을 벗기는 것도 부족한 판에 스스로 가슴을 드러내고 헤벌레 하다니. 그럴 땐 오히려 여자가 남자의 옷을 벗겨야 하는 거 아닌가? 아마도 이 영화가 요즘에 다시 만들어진다면 이런 디테일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나중에 이 이탈리아 색시는 어이없게도 자동차 폭파사고로 죽는다. 그런 것으로 보아 코폴라 감독은 뭔가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닐까 의심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마이클의 누나가 매형에게 이유없이 폭력에 시달린다. 돈 코를레오네 가문의 남자들 누구도 이 누나의 남편을 제대로 손을 봐주는 사람이 없다. 그것을 마이클은 기어이 복수에 성공한다. 나중에 울며 불며 마이클에게 찾아가 노발대발 하는데 왜 죽였냐고 원망은 할지언정 욕 한마디 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수시로 '썬 오브 비치'하면서 욕을 남발하면서 말이다. 물론 남자에게 욕을 하는 것이 페미니즘은 아니다만 이렇게 영화는 여자를 철저히 규제하며 다루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 엔딩도 보면, 마이클의 두번째 아내가 된 금발이 정말 매형을 죽인 거냐고 묻자 안 죽였다고 하고 그때야 비로소 안도하는 것을 보면서, 감독은 여자는 생래적으로 자신이 알고 싶은 것만 아는 백치미라고 생각하는가 보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자들만 우글우글한 방의 문이 닫히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가. 여자는 철저히 배제된 영화다. 

 

현대의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본다면 오히려 누나는 마이클의 얼굴에 대고 감사의 키스를 퍼부어줘도 부족하다. 그렇게 맞고 사는 것이 좋은가?  세상에 그런 마조히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한 걸 보면 확실히 옛날 영화는 옛날 영화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 영화의 역사라는 게 남성들에 의해 쓰여지고 있음을 무엇으로 부인하겠는가. 

 

그러고 보니 시나리오를 공부하러 다녔을 때 나의 사부는 이 영화가 당신 인생의 영화라 며 수슨 수행하듯이 일년에 한번씩 본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렇게 말씀하셨던 그 세월만해도 상당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도 그렇게 하시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왕성히 강의를 하고 계신 줄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여전히 보고 계시지 않을까? 이런 워스트한 영화를. 누가 마초 아니랄까봐.(참고로 나의 사부는 '시네마 천국' 같은 영화야 말로 별볼일 없는 영화라고 말씀하셨다.)    

 

난 영화가 재미없으면 잘 안 보는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2, 3편도 마저 봐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이 워스트한 영화가 2, 3편을 거듭하는 동안 페미니즘적으로 어떻게 완성도가 있는지 아닌지 알아야 할 것 같다. 형만한 아우 없다고 2, 3편은 1편만 못하다는 말도 있던데.  

 

솔직히 이 영화 별 두 개만 주고 싶기도 한데 촬영이나 편집 같은 기술적인 측면이 좋아 세 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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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01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부> 영화를 보다가 여배우 노출 장면 나오고 순간 당황했어요. 솔직히 <대부> 영화가 잔혹성 때문에 ‘19금’ 등급 붙지만, 노출 장면이 있다는 걸 생각 못 했어요. 저는 장 자크 아노의 <장미의 이름> 영화 봤을 때, 베드신에 당황했어요. 그것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었거든요. ^^;;

stella.K 2016-11-02 19:15   좋아요 0 | URL
ㅎㅎ 그게 그렇게 당황스럽나? 별로 야한 것도 아닌데...
아마도 잔인한 것 때문에 19금이 됐을거야.
특히 마이클의 매형을 가족중 누가 죽이러 가잖아.
그때 총격을 당하는데 완전 인간 그물로 만들어 놓잖아.
이미 죽었는데 또 몇발로 확인사살하고. 정말 잔인하지.
눈에다 총을 쏘지 않나. 그런 거 어떻게 촬영했나 몰라.
암튼 이건 정말 반페미니즘적 작품이야.
그래도 남자들은 좋아하겠지?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