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미학? 상투적 허무?

첫 단편집 ‘강산무진’ 뜨거운 논쟁

▲ 첫 소설집 ‘강산무진’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 “내 소설을 옹호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는 작가 김훈. /한영희 객원기자
‘칼의 노래’로 유명한 작가 김훈의 첫 단편소설집 ‘강산무진’을 둘러싸고 미학적 찬반 논쟁이 뜨겁다. ‘강산무진’은 지난 4월 초 초판 2만부를 선보인 뒤 최근 1만부를 더 찍는 등 매우 이례적인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에 논쟁은 더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최근 문학창작집은 초판 1500부부터 시작한다).

‘강산무진’은 이상문학상 수상작 ‘화장’과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 ‘언니의 폐경’ 등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렸다. 대부분 50대가 주인공이다. 남성 인물은 외환위기 이후 실직하거나, 간암 선고를 받는데, 여성은 이혼당하거나, 폐경기를 맞는다. 이 작품집은 오늘의 사회 현실을 중년의 사적 일상 속에 세밀하게 재현하면서 삶의 근원적 비애까지 탐미적 단편 미학 속에 담았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평론가 차미령은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에 쓴 작가론에서 ‘강산무진’을 세 축으로 요약했다. “자본제 사회가 부여한 견고한 삶의 형식, 중장년에 이르러 맞닥뜨린 삶의 고독과 허무, 그리고 무엇으로도 상징화될 수 없는 실체가 불러일으키는 환영….”

그런데 평론가 장석주는 평론집 ‘들뢰즈, 카프카, 김훈’을 통해 ‘언니의 폐경’에 혹평을 내렸다. “이 작품에 황순원 문학상이 주어졌을 때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는 그는 “갱년기의 두 여자가 끌어안고 있는 삶은 통속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김훈 소설의 ‘도저한 허무주의’가 감각의 물신화, 남근주의, 죽음 예찬, 영웅 숭배 등을 통해 ‘파시즘의 기미’를 보인다고까지 했다.

이 논란에 대해 평론가 심진경은 “김훈 소설은 고단한 남성들의 평범한 삶의 비애를 숭고하게 그려낸다는 점에서 386세대 이상 남성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것 같지만, 여성 육체 묘사를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신선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여성의 성기는 구멍이고, 블랙홀이기 때문에 남성이 매혹되면서도 거기에 빠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갖는다. 김훈 소설은 섬세한 미문으로 그리기 때문에 평가가 애매하지만, 결국 여성의 육체를 대상화·타자화한다.”

김훈은 이런 비판에 대해 “내 소설 안에 파시즘과 마초(macho)의 싹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런 징후를 극대화하면 그 논리 안에 허구가 생긴다. 그 허구 안에 빠진 평론가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매우 가엾게 생각한다. 그들이 지적한 대로 내 소설의 결함과 반(反)역사적 오류가 있는 것은 ‘있는 것’이다. 나는 오류를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작가가 되려 한다.”

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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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6-05-29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지난 토욜 강산무진 샀는데...일단 읽어보고 이 글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퍼갈께요.

stella.K 2006-05-29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있는데...빨리 읽어얄텐데...^^

하루살이 2006-05-29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86세대 남성 독자들을 매료'라는 부분은 확실히 맞는것 같군요. 제 주위를 둘러볼 때 말이죠. 저는 잘 모르겠는데, 선배들은 다들 좋아합니다. 저로선 읽긴 힘들어 진도가 잘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태반인데... 세대별로 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만으로도, 독해의 난이가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관심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