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다니엘 글라타우어가 쓴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를 읽고 화가나 던져버렸던 적이 있다. 읽은 지가 좀 돼서 정확한 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날 여주인공의 이메일에 잘못 들어 온 어느 낯선 남자와 이메일 교환을 통해 사랑을 키운다는 일종의 연애 소설로 기억한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면서 이메일 교환을 통해 사랑을 키운다는 게 도무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그게 사랑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지 모르겠는 것이다. 뭔가 속은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이야기가 밑도 끝도 없이 사랑에 대한 상상을 증폭시키다 영화 <파리대왕>의 마지막 장면처럼 여자 주인공의 남편이 끼어들어, 당신 여기서 뭐하냐며 여자의 의식을 깨우는 것에서 끝이 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아닌가?). 그래서도 더더욱 그 둘의 사랑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게다가 불륜이기도 하지 않는가). 모름지기 상대의 눈을 보고, 숨소리 하나도 느끼며, 서로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 사랑이지 이메일을 사이에 두고 이게 뭐하는 건가, 디지털 시대엔 이런 식의 사랑도 사랑이라고 봐줘야 하나 뭔가의 의문이 들었다.

 

 예전 아날로그 시대엔 펜팔이라는 것이 있어 서로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도 편지 교환을 하고 사랑을 키우는 커플도 있다고 들었다. 솔직히 난 그때도 그런 사랑을 믿지 않아 펜팔이란 이름은 들었어도 어떻게 하는 건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도 그 비슷한 경험을 할 뻔 한 적이 있었다. 

 

사춘기 시절 책에 관심이 많아 모 출판사에서 독서회원을 모집한다는 조그만 문구 하나를 발견하고 거기에 간지로 끼워있는 엽서를 이용해 우리 집 주소와 내 이름을 적어 보냈다. 그러자 얼마 안 있어 웬 모르는 남자들로부터 무더기로 편지를 받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했더니, 내 이름과 주소가 그 출판사에서 회원을 상대로 정기 간행물을 속에 새로운 회원들의 신상정보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그걸 보고 나에게 편지를 보내 준 것이다. 난  그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사람의 성격이 천차만별이라고, 편지도 제 각각이긴 하지만 하나 같이 자신을 어필하려는 게 안쓰럽기도 하고, 우습기 도 했다. 내 이름 석 자만으로도 어떻게 그렇게 상상력을 발휘하는지 인간의 두뇌가 새삼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난 갑자기 받은 편지가 당황스러워 집에 놀러온 두 명의 친구에게 자랑 반, 고민 반으로 그 편지를 보여 주었다. 그 속엔  먼 제주도에서 까지 보내 준 편지도 있었는데, 친구들은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이며, 그 편지들을 다 읽더니 개중 제주도 청년의 편지가 가장 순수하고 좋아 보인다며 이 사람한테 만이라도 답장을 써 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난 끝내 아무에게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답장을 한다는 게 어색했고, 왠지 그 사람들을 훗날 실제로 만나게 된다면 나에게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중 앞서 말한 제주도 청년은 정말로 미안했는데 그 후에도 서너 번 더 나에게 편지를 보내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한 번은 답장을 보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날은 어떠한 시댄가? 오늘도 인터넷 블로그에만 들어가도 몇 년째 얼굴 한 번 보지 않고도 댓글과 선물까지 주고받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 시대가 올 줄 알았더라면 그때 그들에게 성실히 답장 보낼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그 시대 나의 로망이 애인과 편지를 주고받는 거였는데, 그것의 시작이 될지도 모르는 기회를 그렇게 놓쳐버리고 만 것이다. 지금도 어느 명사들이 자신의 배우자와 연애기간 동안 몇 백 또는 몇 천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하면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그것이 알고 보면 기록으로 다 남을 것들이 아닌가.        

 

 

언젠가 영화 <그녀 her>(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 테오도르가 너무 외롭고 공허한 삶을 살다가 우연히 인공 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영화)를 보면서, 그때 그 책을 읽다 던져버린 걸 잠시 후회한 적이 있다. 이건 뭐 한 술 더 뜨는 얘기 아닌가? 그래도 책은 온라인이란 기계 너머에 있는 사람과의 소통을 얘기하고나 있지. 이건 인간이 기계를 사랑한다는 얘기지 않는가? 그제야  새삼 내가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감지 못하고 살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으니 나의 머릿속 운영체계야 말로 아직까지 디지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또 영화의 상상력만도 아니다. 홀로 외로운 사람에게 말을 걸어주는 대화  어플이 있다는 걸 얼마 전 한 예능 프로를 보고 알았다. 그런데 이건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일본은 40이 넘어도 이성교제를 한 번도 못해 본 사람이 적지 않으며 그들을 위한 학원이 등장했다고 한다(이 보도는 10년 전에도 했던 것 같다). 인간소외가 극에 달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전에 인연은 한 번의 눈빛, 한 번의 옷깃의 스침만으로도 있을 수 있다고 배웠는데, 그건 옛날 순수문학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였나 보다. 

 

그 옛날 아직 디지털 시대가 오기 전, 교회 주일학교 교사 시절 아이들 사이에서 다마고치가 유행했을 때 벌써 직감하고 있었어야 했다. 그때 나는 그게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장난감 같은 건줄 알았지 인간의 감정을 대체할 수 있는 거라고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그것의 위력을 알았더라면 훗날 책을 던져버린다던가, 영화를 보고 새삼 놀라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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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9-23 1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 허 > 재미있게 본 사람입니다. 전 영화 속 주인공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저 옛날에 늦가을에 파리 한 마리가 방안에 들어와서 열흘 넘게 있었던 적 있는데 나중에 친구 먹엇습ㄴ다. 제가 이름도 지어줬죠. 크로낸버그`라고.... 파리 이름을 크로낸버그라고 짓고 부르니 아.. 짠 하더라고요..ㅎㅎ

stella.K 2016-09-23 12:01   좋아요 0 | URL
ㅎㅎ 크로낸버그! 이름 좋네요.
하여간, 곰발님의 독특함은 알아 드려야할 것 같습니다.ㅋㅋㅋㅋ
그런데 파리는 보통 며칠을 살까요? 정말 열흘쯤 살려나요?

사진 또 바꾸셨습니다.ㅎ

2016-09-26 1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9-27 19:3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2016-09-27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