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랜드 - 여자들만의 나라 Rediscovery 아고라 재발견총서 5
샬롯 퍼킨스 길먼 지음, 황유진 옮김 / 아고라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표제작 <허랜드>를 읽으면서 새삼 내가 한 번이라도 여자들만의 세상에 대해 상상해 본적이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내가 고작 생각한 건 이 세상에 남자가 없다면 동성애가 만연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 생각하는 수준이 바닥이다.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여자들이 사라진 남성들의 세계는 더 끔찍하지 않을까? 하긴 내가 여자들만의 세상에 살아 본 적이 없으니 상상불허다.

 

좀 우스운 얘기 같긴 한데, 시나리오를 공부했을 때 조 편성을 했다. 어찌하다 보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여자 수강생들이 몇 명 있었는데 거기에 나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결국 그렇게 남겨진 사람들이 하나의 조가 되었다. 난 원래 학교 때부터 조 운이 없긴 했지만 속으로 이건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모르긴 해도 다른 조원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 거라고 생각했다. 여자는 여자가 더 잘 아는 법이니까.

 

그런데 선생님은 놀리듯 막 배정된 우리들에게 아마조네스란 조명을 하사하시려 하는 걸 거부하고 다른 이름으로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우리가 무엇으로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수강 기간 내내 우리가 서로 못 지낸 건 아니다. 나름 잘 지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인데 다른 조의 사람들은 우리 조를 나름 꽤 부러워했다는 것이다. 남자 수강생들이야 뭐 여자들의 모임을 동경할 테니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여자들은 남자들과 썩어 놓으니 불편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여자들끼리 있으면 더 끈끈하고 재밌지 않겠냐는 것이다. 결국 우리들은 서로 남의 떡이 더 클 거란 상상을 하며, 자기가 속한 조에 대한 불만을 그렇게 표현하는 모양새였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결국 남자들은 어디를 가나 인기가 없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 되는 지도 모르겠다. 같은 남자들끼리도 재미없고, 여자도 싫다고 하니 말이다.

 

이 작품을 읽으니 새삼 그때 붙이려다만 아마조네스가 생각이 났다. 아마조네스와 허랜드는 다 여자들만의 세상이란 점에선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 둘의 성질은 판이하게 다르다. 아마조네스는 여성 무사족을 뜻한다. 여성을 무사로 만들기 위해 활쏘기 좋으라고 어려서 오른쪽 가슴을 도려냈다고 하니 좀 무시무시하다. 그들은 자손을 번식시킬 때에도 일정기간 이웃 나라의 남자들과 통정을 하고, 아들을 낳으면 버리거나 죽였다고 한다. 아무리 신화라고는 하나 배면에 완전히 남성을 배제했다고는 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아마조네스는 진정한 여성 사회를 보여주고 있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남성화된 여성성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런데 비해 허랜드는 아마조네스 보다 훨씬 더 고도화되고, 치밀하며, 설득력 있다. 무엇보다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해 이웃 나라로 원정을 가는 법이 없다. ‘처녀 생식을 통해 아기를 낳으며 낳는 아기마다 딸이다. 그러므로 아들을 낳았다고 잔인하게 죽일 필요도 없다. 또한 그 사회는 철저하게 모성애와 자매애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해 생각할 것은 아마조네스 여성의 무사성과 허랜드의 모성애다.

 

사람은 어떻게 키워지느냐에 따라 결국 운명이 결정되기도 하는데, 날 때부터 무사로 키워지는 것과 어머니로 키워지는 것이 어떻게 다르겠냐는 거다. 무사로 키워진다면 무엇을 위한 무사겠는가. 적들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남성 무사와는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조네스의 여성 무사들은 누구를 적으로 삼았을까? 당연 남성이었겠지. 여성들만이 사는 세상이니 남성들은 얼마나 그 세계가 궁금할까. 만만히 보았을 것이다. 남성성에 정복하고자 하는 욕구도 있지 않은가. 그것으로부터 자기네 부족을 지켜야 하니 당연 더 많은 힘과 전략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허랜드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물론 그 나라에도 무사들 내지는 군인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건 국가를 이루는 많은 요소 중 하나로 존재할 뿐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그녀들은 그리 많이 여성스럽지 않고 오히려 중성에 가까우며, 보통 여자 보다 약간 큰 편이라고 한다. 여기서 작가의 상상이지만 깊은 혜안이 느껴진다. 양성의 사회에선 여성성의 원형이 온전히 지켜지기가 어렵다. 그것은 여성이 남성 주류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성성을 변형하나 왜곡시키며 발전해 왔을 거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선 여자 혼자 자신을 지켜나가기 힘들기 때문에 자기를 지켜주는 남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이제이인 것이다. 폭력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공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에 대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안 그러려면 남자 보다 몇 배는 더 영리하고 남자다워져야 한다.

 

하지만 허랜드는 기본적으로 모성애를 전제로 하고 있고, 남자들이 없기 때문에 남자를 유혹하기 위한 관능이 발달되지 않고 오히려 퇴화되었을 것이다(나는 여자가 힘도 세면서 여성다움을 잃지 않은 건 남성적 사고가 반영된 거라고 본다). 양성의 사회에서는 여성성을 대표하는 것이 관능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여성성엔 그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모성애도 있으며 어찌 보면 관능은 상대적인 것인 반면, 모성애가 원형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양성사회에서 모성애를 발휘하며 사는 건 어렵고 점점 축소되어져 가는 느낌이다. 그게 단순히 여자가 아기를 낳기 싫어하는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엔 이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걸 의식으로든, 무의식으로든 알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내 아이를 이렇게 위험하고 오염된 세상에서 키우고 싶은지. 그렇다면 양성 사회에 사는 사람이 허랜드의 사람이 관능이 없다고 안타까워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 모성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을 더 염려해야 하는 것이 맞다.

 

작가는 허랜드에 표류한 세 명의 미국 남자를 통해 허랜드와 자기네 나라의 여성의 실체를 대변하며 의식을 깨운다. “... 그렇다. 그녀들은 어머니들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무기력하고 비자발적인 다산의 어머니들, 모든 땅을 사람으로 가득 채우도록 강요받고, 아이들이 서로 끔찍하게 싸우며 고통 받고 범죄를 저지르며 죽어가게 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지각을 가진 어머니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모성애는 잔혹한 열정, 즉 개인만을 위한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였다.

그들의 모성애에는 우리가 너무도 믿기 힘들어했던 그들의 단결성을 바탕으로 한 무한한 자매애가 포함되어 있다. (121p)“

이것은 단순히 저자가 허랜드의 이상을 설명하기 위해 현대 양성 사회의 여성성을 비교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진정한 여성성을 꿰뚫고 있으며, 그런 만큼 현대 여성들의 그것을 얼마나 위협받고 있는가를 역설하는 것처럼 보인다.

 

허랜드는 완벽한 이상 사회를 구현하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분업화가 잘 이루어졌다. 단적인 예로 양성사회에선 오로지 여자만이 육아를 담당하지만, 여기선 그것의 담당이 국가다. 그것에 대해 표류하게 된 세 명의 미국 남자들은 당황해 하지만, 독자는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에 나오는 남자들은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이고 보면 19세가 말의 사람들이다. 그때 무슨 육아 시스템이 발달이 됐겠는가? 그러니 작가가 19세기 여성으로서 얼마나 앞선 생각을 가지고 허랜드를 그렸을지 놀랍다.

 

선진국의 조건을 여러 가지로 말하기도 하지만 그중 빼놓지 않고 말하는 게, 여권과 아이의 양육이다. 그만큼 발달된 나라일수록 육아는 개인이 아닌 국가가 담당한다. 그런 점에서 요즘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는 유치원 교사 폭행 사건이나 예산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라고 말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 교사 선발은 갈수록 더 엄격해져야 하고, 고급 인력으로 양성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들의 근무 환경이나 재교육의 기회가 봉쇄되어 있으니 그런 일이 자꾸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어쨌든 이 소설은 하나의 허구만으로는 읽혀지지 않았다. 19세기에 쓰인 이 소설이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만큼 미래에 가능성이 있다는 말기도 하다. 어느 때부턴가 여군이나 여경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힘으로 나라가 지켜진다면 여자들이 남자에게 자신의 안위를 맡기는 일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또한 역대로부터 모든 전쟁이 남자들에 의해 자행되어 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 결정권을 더 이상 남자들에게 맡길 수마는 없다고 할 때가 올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볼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와 노인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분별력이 없고 힘이 없으며, 노인은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힘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제 전쟁의 위협에서 가족을 지킬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될 것이다. 허랜드에서의 처녀 생식이란 것도 오늘날의 시험관 아기의 은유 같기도 하다. 어찌 보면 지금의 남성성을 가지고는 설 자리가 가면 갈수록 좁아질 것이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다. 또 남성성을 어느 정도 무력화해야 세상의 평화가 유지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좀 놀랍다. 그렇게 오래 전에 쓰였음에도 세월의 흔적을 하나도 느낄 수가 없다. 그런 작가의 필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할 정도다. 여성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과 문체에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다. 요즘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는 잘 살아 볼 생각은 안하고 이상한 싸움 양상을 보이고 있는가 본데 그런 쓸데없는 소모적 싸움은 그치고 이런 책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문제작이고 수작이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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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4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9-05 13:44   좋아요 0 | URL
ㅎㅎ 무슨...
정말 가능할 거 같다니까요. 남자들 정말 정신 차리고
여자들한테 잘 해야해요. 안 그러면 쫓겨나요.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9-05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복적인 상상력이군요. 여자들만 사는 나라라...
이 책 재미있겠네요.. 이 리뷰, 뭔가 정성을 들여 쓴 느낌이 듭니다..

stella.K 2016-09-05 13:54   좋아요 0 | URL
이거 이벤트에서 받은 거라서 리뷰를 써야하는데
정말 어떻게 써야하는지 고민 많이했어요.
왜 그렇게 안 써지는 ...
그나마 쉽게 쓰려고 하다보니까 써지는데
가끔 책 내용이 너무 좋으면 리뷰는 못 쓰겠더군요.
뭐 좀 달리 생각해 보던가, 뭔가 까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이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인정을 해 버리게 되거든요.

이 책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 볼려구요.
빌려 드릴까요?
그냥 사서 보세요. 곰발님은 책 같은 거 빌려 볼 것 같지는 않아요.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9-05 14:48   좋아요 0 | URL
안 읽은 책이 산더미여서 아직 책은 사지 않아도 됩니다.
다, 2년 이상 예약된 상태라.. 이 책 읽으려면 2년 후에나.. ㅎㅎ

cyrus 2016-09-05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해경이라는 중국 신화 모음집에 여인국을 소개하는 글이 있어요. 여인국과 아마조네스는 여자만 사는 유토피아에 대한 남자들의 동경과 판타지가 투영되었어요.

stella.K 2016-09-05 14:13   좋아요 0 | URL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마조네스는 여자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지.
근데 허랜드는 완벽해.
어떻게 19세기에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줄 쫙쫙 치면서 읽었는데 정작 리뷰에선 하나 밖에 인용을 못했어.ㅋ

니르바나 2016-09-07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지안님^^

첫 저서 <네 멋대로 읽어라>가
알라딘 서재 대문에 금색 트로피를 수상하고 있네요.
블로거 베스트셀러 종합 1위 등극을 축하드립니다!!!

2016-10-15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