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을 다시 한 번 보았다. 개봉 당시 보고 이제 본 것이니 다시 보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세상의 모든 영화는 아니어도 적어도 예전에 괜찮게 보았다고 하는 영화들은 두 번 이상은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전에 보지 못했던 장면과 대사와 그것들이 주는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살인의 추억은>을 처음 봤을 땐 그 내용을 따라가느라 바뽰던 것 같다. 그후 난 뭐 때문인지 시나리오 대본집까지 사서 봤던 것 같다. 근데 하나도 기억에 없다. 그걸 왜 샀는지도 잘 모르겠다. 분명 유명해서 샀을 것 같긴한데...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몇년 후 대본집을 샀을 때만해도 봉준호 감독이 그렇게 유명한 감독인 줄은 잘 몰랐다. 그러다 8년 전쯤  얼떨결에 시나리오 학원을 다닌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봉준호 감독은 거의 신으로 통했다. 당시 내가 배웠던 선생님도 영화 감독이셨는데 그분은 거의 시간마다 "밥은 먹고 다니냐?"를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땐 그 대사가 이 영화에서 씌였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선생님이 시간마다 떠올린 대사였는데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단지 확인을 안해 봤을 뿐. 그런데 이번에 확인하고 새삼 그 선생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상은 물론이고 인품이 좋으셔서 시나리오에 뜻이 있었다면 한 번 정도는 더 그 선생님에게서 배웠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래 볼 생각이었다. 그 선생님께 배웠던 5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워크숍 작품 하나 

완성 못하고 종강을 맞은 게 좀 아쉬웠다. 그래서 순수 창작은 그렇고 당시 내가 좋아했던 소설 하나를 각색해서 다시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근성이 없었던 건지, 정신을 차렸던 건지 그때 이후 시나리오 공부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선생님은 작품에 들어가게 되서 당분간 학원을 떠나게 됐다는 사이트 공지를 보았다. 그런데 또 얼마 후 선생님은 다시 복귀해 시나리오를 가르치고 계셨다. 선생님의 작품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어 본 적이 없으니 모르긴 해도 부침이 많은 영화판에서 선생님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오셨던 것 같다.

 

지금은 또 그 보다 세월이 한참 더 많이 흘렀으니 이제 영화 같은 건 감히 만들 생각을 못하시는 걸까? 그때나 지금이나 후배 감독들이 치고 올라오는데 무슨 수로...  모든 건 때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도 전성기가 있으셨겠지.

 

선생님껜 차마 진지는 드시고 계시냐는 말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묻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는가. 그냥 지금 평안하신지, 건강은 하신지 여쭙고 싶긴 하다. 어쩌다 이런 옛 추억을 떠올리게 되었을까?

 

봉준호 감독은 봉테일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디테일의 완벽을 추구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당시 선생님은 늘 말씀하셨다. 시나리오는 과학이라고.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말이 실감이 난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아귀가 딱딱 맞는 것이 서늘할 정도다.

 

어찌보면 이 영화는 수컷의 동물적 감각에 대한 영화 같기도 하다. 다 잡은 사냥감을 눈 앞에 두고 결국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동물의 안타까운 포효를 듣는 것도 같다. 악에 대한 응징, 정의에 대한 수호.뭐 이런 것까지 읽히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란 모티프에서 나온 영화가 아닌가. 만일 그 사건이 영구미제가 아닌 해결된 사건이라면 영화도 달라졌겠지.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너무나 완벽해서 영화의 교과서로 쓰일만 하다.

 

 

미제의 사건을 다뤄 처음 봤을 때는 그렇게 긴 영화일 거라고 생각 못했던 것 같다. 이제 보니 러닝타임이 2 시간이 넘는 영화였다.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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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8-16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은 먹고 다니냐는 아마 시나리오에 없었을 겁니다. 송강호 애드립이라고 하더군요..

stella.K 2016-08-17 13:43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그런데 이미지 또 바꾸셨군요.
이 이미지가 좋은 것 같아요. 귄해요.ㅋㅋ

cyrus 2016-08-16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낙 유명한 영화라서 그런지 검색하면 영화를 해석한 글들이 엄청 많아요.

stella.K 2016-08-17 13:46   좋아요 0 | URL
아직도 그런가...? 이 영화 10년도 더 된 영환데.

yamoo 2016-08-18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봉 감독이 유명해 지기 전에 2번 봤습니다. 제가 갖고 있던 한국 영화의 편견을 날려준 고마운 영화죠^^

영화가 뜨니, 이 영화를 분석한 책들도 엄청나더이다~ 이 영화가 들어간 평화 평론집은 쌔고 쌨구요~ㅎ

stella.K 2016-08-18 13:1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평론집이 있는 줄 몰랐어요.
그쪽엔 별로 관심이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