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많이 들어 본 이름이라 내가 프랑스와 오종 감독의 작품을 한 작품이라도 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작품이 처음이다.
이 작품 그야말로 발칙하고 조금은 충격적이다. 그나마 이야기가 시종 위트함을 잃지
않아서 그럭저럭 보는대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위트함 때문에 과연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 그 그럴수도 있다는 것의 전제는 성 정체의 경계가
무너지면이란 전제다.
이미 유럽 같은 나라는 남성과 여성을 태어나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선택하도록 한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남자라고 해서 남자로 자라는 것이 아니고, 여자라고해서 여자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남자라고 해도
자신이 자신을 느낄 때 여자라고 판단되어지면 여자인 거고, 여자도 자신이 남성성이 더 많으면 남자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거다. 나로선 잘 용납이
안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이미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으니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럴 경우 문제는 없겠느냐는 것이다.

서로 너무 친해서 어렸을 때 피의 맹약을 하는 것도 철없을 때 한 때 그럴수도 있다하지만 그런 건 어리석은 일이며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그것은 영원한 친구없을뿐더러 자신의 운명을 올가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너무 우정, 우정해도 언젠가
둘 중 하나는 먼저 떠나게 되어 있다. 그때 그 공허함을 무엇으로 메울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하필 죽은 친구의 남편이 여성 복장에 집착을 보이면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여성으로 하기를
원한다.
프랑스는 이미 성이 개방된 나라다. 동성애는 이미 자연스러운 거고, 트랜스젠더를 원할
수도 있고 그걸 굳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여자가 남자 복장을 하는 건 어느 정도 봐 줄 수 있더라도 남자가 여장을 하는 건 그
나라도 별로 자유롭지는 못하는가 보다. 그래서 주인공의 친구의 남편은 수시로 여자와 남자를 오간다. 친구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친구의 남편은
자신이 여자인 것 같다고 그러고, 주인공은 친구의 남편을 좋아하는데 자신이 이 사람을 여자로 좋아하는지 남자로 좋아하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결국 그래서 온전한 섹스에도 이르지 못한다.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긴 한데 그 과정이 극적이긴 하지만 억지스럽지는 않다. 그러니까
주인공이 친구의 남편은 온전한 친구로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을 발칙하면서도 나름 유쾌하게 그렸다. 친구의 남편으로 나오는 로망 뒤리스의 연기가
일품이다. 그는 남자역을 자연스럽게 한다. 당연하다. 그런데 여자역은 더 잘한다. 남자들이 대체로 하이힐을 못 신는데 로망 뒤리스는 영화를 위해
연습을 많이 했는지 하이힐 신고도 여자 보다 더 멋지게 거리를 활보하고, 여자다운 몸짓도 능수능란하다. 나는 보수적인 사람이라 이렇게 성정체를
다루는 영화가 익숙치는 않다. 하지만 영화와 상관없이 늘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는 감독의 정신은 높이 사 줄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은 역시 뭔가 걱정스러운 여지는 있다. 둘은 좋아서 친구가 되기도 하고 애인이 되기도 한다지만, 친구의 아이는 자기 부모를 어떻게 인식을 할까? 엄마로? 아니면
아빠이면서 엄마로? 이런 시대 아이들도 엄마와 아빠를 굳이 따로 구분하지는 않게될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