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들 - 영화 같은 삶, 삶 같은 영화, 그 진짜이야기
한창호 지음 / 어바웃어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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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이란 영화는 모 패션잡지에 실릴 사진을 찍기위해 우리나라 간판급 여배우 여섯이 모여 그 하루를 보여주는 일종의 관찰 카메라다. 그것이 어찌나 자연스럽던지 관객들의 관음증을 100% 만족시켜준다. 하지만 그 영화는 사전 모의가 있었던 것으로 100% 리얼은 아니다. 이 책을 발견했을 때 그 영화를 떠올렸음은 당연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새삼 여배우들이 스크린에 등장한 역사가 정확히 얼마가 될까를 가늠해 보고 싶어졌다. 영화의 역사를 꿰지 못한 나로선 그들의 정확한 연도는 알 길이 없고, 저자는 1940년 대 '악녀의 탄생'으로부터 여배우의 역사를 연대기 순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여배우들이 각 연대기마다 영화에서 어떤 역할과 이미지로 변화해 갔는가를 그들의 삶과 필모그래피를 통해 조명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언제나 역사가 남성 중심의 시각에서 읽히는 것도 사실인데 이 책은 여배우들을 통해 본 영화의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거창하게 다룬 것은 아니다. 대중서인만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평이하게 읽히는데, 꽤 만족스럽다.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은 저자가 2013년 4월부터 2년 간 씨네21에 격주로 썼던 글을 이번에 묶어 낸 책이라고 한다.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여배우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를 묻고 싶어졌다. 흔히 영화 배우를 '스크린의 꽃'이라는 표현을 쓰길 좋아하는데 이 표현은 누구를 위한 표현일까? 

 

솔직히 영화는 처음부터 여성이 할만한 작업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거의 철저하게 남성을 위한, 남성에 의한, 남성의 영화다. 거기에 여배우들은 필요적절하게 쓰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여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마냥 고고하고 예쁘게 보이길 원하는 건 실은 남자들을 만족시켜 주기위한 수단으로 보여질 때가 많다. 어차피 자본은 남성의 바지춤에서 나오는 거니까. 관음이나 관능도 여자를 위한 단어는 아닐 것이다. 

 

예를 들면, 이 책의 첫번째로 등장하는 바버라 스탠윅은 계몽주의 시대에 스크린에서 나쁜 여자로 나오는데, 이것은 또 프랭크 카프라의 발명품이기도 하다. 계몽주의 드라마가 늘 그렇듯 못됐지만 마음에는 누구보다 맑은 양심이 숨어 있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는 남성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야 남자들이 마음이 편하니까(18p~ )    

 

책의 거의 말미에도 보면,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여배우는 전통적인 위치, 곧 영화감독이자 평론가인 로라 멀비의 용어를 빌리면 '남성 시선의 대상'에 머물 때 훨씬 사랑받는다. 곧 남성들이 원하는 위치에 서 있을 때, 여성은 더욱 아름답게 보이고, 그래서 청순한 이미지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데 유리한 것이다(잉그리드 버그만의 허리우드 시절이 그렇다). (258p~ )   

 

이런 의식이 오늘 날 좀 변했을까?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만 하더라고 영화를 보는 관객이 남성 보다 여성이 더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에 따라 여성 영화도 많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들 영화를 움직이는 건 남성이란 걸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영화가 여성 관객이 많아졌다고 해서 여성을 배려하기 시작했을까? 이 또한 회의적이다. 요즘 브로맨스란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남자 콤비를 내세운 영화가 대세를 이루었다. 이것이 남자 관객 보단 여자 관객을 타킷으로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므로해서 영화에서 여배우들이 설자리는 줄어들기도 했다. 

 

그만큼 영화판의 역사는 남성의 정글의 역사이고, 거기서 여배우들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책은 그렇게 남자들의 작업에 뛰어든 여배우들이 어떻게 영욕의 세월속에 자신의 역할(영화 안에서나 바깥에서)을 관철시키고, 변형시키며 진화해 갔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소개된 여배우들은 스크린 안에 함몰되어 꼭두각시처럼 움직이지만은 않았다. 물론 어떤 여배우는 영화에선 화려했지만 삶에서는 실패자가 되기도 하고, 어떤 배우는 영화만큼이나 성공적이고 당당한 삶을 산 배우도 있다. 특히 나 개인적으론 제인 폰다가 눈에 들어 왔는데, 그녀는 아버지 헨리 폰다의 후광을 덧입고 섹시 이미지로 스크린에 성공적으로 데뷔 하지만 정치적으론 진보 성향을 띈다. 그에 따라 베트남전 반대를 외치다 미국으로부터 여론의 뭇매를 맞고, 하다못해 그녀가 그려진 변기가 나올 정도로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배우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았던 것을 보면서, 이 사람이야말로 모든 여배우의 이상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다시말해 여배우는 스크린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크린 밖에서도 배우로서의 정체감을 확립시켜 나가야 하는데 그것을 가장 성공적으로 한 배우가 제인 폰다는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여배우의 역사와 함께 앞으로 어떤 여배우가 나와야 하는지도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그것은 여배우가 제대로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카메라 앞에서 예쁘고 섹시하게만 보이려 하지 말고 성격과 역할을 연구하고 그것을 넓혀 나가야 한다는 소리로도 들린다. 흥미롭다. 추천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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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1-12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배우 분들이 이책 많이 읽었으면 하네요^^..

stella.K 2016-01-12 17:45   좋아요 1 | URL
이 책 재밌어요. 영화 관심있으시면 유레카님도
함 읽어 보세요.^^

cyrus 2016-01-12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신인 여배우는 노출을 하면 뜬다고 생각해요. 데뷔작부터 과감한 노출로 유명세를 얻고 반짝 뜨는 여배우들이 있어요. 결국 자신의 진짜 연기력을 펼치지 못하고 잊혀져요.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에 출연할 신인 여배우를 찾는다던데 조건이 영화에서 노출을 해야한다더군요. 

stella.K 2016-01-13 11:45   좋아요 0 | URL
ㅎㅎ 난리 나겠구만.
그런데 웃기는 건 그렇게 벗고나오면 마치 연기력있는 배우처럼
둔갑한다는 거지.
뭐 그것도 하나의 용기라면 용기일 수도 있는데 좀 씁쓸하다.;;

2016-01-18 1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18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18 2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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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9 1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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