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마침내 병원에 입원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그토록 병원에 안 가겠다고 버티더니 이제 당신도 버티기가 어려웠던지 작은 아들 인도하는대로 순순히 따라 나선 것이다. 그게 지난 목요일 날의 일이었다.
내시경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긴 한데 지금까지의 검사 소견으로는 엄마는 대장쪽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 암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엄마의 암은 같은 대장암이더라도 전이가 빠르지 않고 비교적 예후가 좋은 암이라고 한다. 그게 뭐라고 전문 용어를 쓰더만 익숙치도 않은데다 뒤돌아 서면 잊어버리는 나의 단기 기억이 그것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을 리 없다. 어쨌든 그래서 수술 밖엔 방법이 없으며 초기에만 조금 불편할뿐 삶의 질은 그렇게 많이 떨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게 내 동생의 전언이다.
그런 말을 들으니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이것도 내시경 검사가 나오면 또 다른 말이 나올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바라기는 더 이상의 이상 소견만 나오지만 않아도 하나님! 하겠다. 물론 그럴지라도 앞으로 해야할 일들을 생각하면 좀 캄캄하긴 하다.
엄마가 병원에 가기를 한사코 반대했던 이유 중 하나는, 지나친 검사 때문에 몰라도 되는 병까지 잡아내 사람을 겁을 준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내시경 검사가 그럴테지. 딱 거기까지만 알면 좋겠는데 내시경 검사 결과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것까지 발견해내면 물론 병원측으론 병의 근원까지 확실히 알아내야 한다는 취지가 있겠지만 그게 환자로선 때론 엄청난 부담과 불편하게 한다는 것이다. 마치 병원은 병을 찾아내지 못해 안달 난 것 같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되고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무엇보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지금까지 얼마나 당신의 몸을 아껴왔는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몸의 이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도 어떻게든 운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왠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고, 음식도 몸에 좋은 것만 가려 드셨다. 무엇보다 당신 몸 하나 건강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그것이 자부심이라면 자부심이었는데 이렇게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으니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당신의 큰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낸 계절이 2년 전 딱 이맘 때다. 그러니 그 마음이 어떨까.
젠장, 빌어먹을! 난 도무지 이 세상을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제대로 이해하는 게 몇 가지나 되겠냐마는 뭐가 까딱하고 기침만 해도 암아라는 것인지, 당뇨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뭘 얼마나 잘못하고 살기에 암이고, 당뇨라는 것일까? 난 자꾸 이게 조작된 것만 같고 이제는 아예 신화처럼 자리잡은 것은 아닐지 의심이 갈 정도다. 그래서 수잔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을 설파했던 것은 아닐까?
오늘 뉴스에도 이젠 당뇨가 30세 이상 성인에게서 세 사람 한 사람 꼴로 나타난다고 보도하고 있다. 암도 세 사람 가운데 한 명이라고. 이게 우리가 믿어야 할 신화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옛날엔 흑사병이나 폐병이 그런 것이라면 지금은 암 아니면 당뇨다. 믿을 수 있겠는가? 이거 다 병원과 정부의 짜고치는 고스톱은 아니냔 말이다. 그러면서 한쪽에선 건강 100세를 얘기한다. 우리 오빠를 비롯해, 마이클 잭슨, 하다못해 스티브 잡스도 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구만 뭐가 건강 100세라는 건지? 좋게 말하면 다 은유고 나쁘게 말하면 개 잡소리 같다.
어쨌든 그러다 보니 요즘엔 다롱이와 함께 혼자 집에 있는 날이 많아졌다. 아니 이제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엄마는 언제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지 장담하기가 어렵게 됐다. 물론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이렇게 오래도록 집을 떠나 있기는 엄마도 처음이라 많이 당황할 정도일 것 같다. 평소 소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라디오나 TV를 오래 켜놓진 않은데 어제는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TV를 보고 있기도 하고, 라디오도 일부러 오래 켜놓는다. 물론 또 그에 따라 책을 읽는 경우는 많이 줄어 들었고, 자꾸만 우울한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비교적 예후가 좋다고는 하나 아버지도, 오빠도 다 안 좋게 세상을 떠났던지라 엄마마저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자꾸만 목이 조여오고, 뼈가 녹아내릴 것만 같고, 뭔가 아찔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느낌이랄까?
자꾸 귀찮은 생각이 들긴 하는데 오늘은 평상시처럼 교회를 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는 지인을 만났다. 그 지인은 오래 전 엄마를 잃고, 작년엔 아버지마져 병으로 잃었었다. 그렇게 슬픈 일이 있었는데도 난 제대로 위로도 못해줬다. 그래도 동병상련이라고 1년의 시차를 두고 오빠와 아버지를 비슷한 시기에 잃은 사람과의 만남이니 짧지만 애틋했다. 그리고 서로 잘지내냐고 묻다 결국 난 엄마 얘기를 하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별 것 아닌 양 "아유,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요즘엔 대장암 정도는 예후가 좋아서 70대 때 수술 받고 80 넘은 지금까지도 건강하게 사는 분들 많아요."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게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사람이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더니 그 말 한마디에 천근만근 하던 마음의 짐이 다소 내려지는 기분이다.
그후 갑자기 만남 하나가 취소된 게 있어 이렇게 교회 나온김에 엄마 보러 병원엘 들려보려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내가 가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펄쩍 뛰며 오지 말라고 해 무안할 정도였다. 그리고 "너 내 성미 알잖아!" 이렇게 말하면 모르는 사람은 조폭은 아닐까 의심하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고, 엄마는 워낙 호불호가 분명한 분이라 싫은 건 싫은 거라 결국 내가 포기했다. 그리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있는 것으로 봐선 몸상태는 과히 나쁘진 않은 것 같다. 나중엔 부모 자식지간에 내외하냐고 웃고 말았데, 모르긴 해도 내 동생이야 엄마를 병원으로 인도한 당사자니 어쩔 수 없고, 환자복 입은 당신의 모습을 나에게까지 보이고 싶어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그러니 따라 드리는 수 밖에. 나는 그래도 엄마가 어찌지내는지 한번 보면 마음이 놓일 것 같은데 말이다.
역시 사람 사는 집엔 사람 사는 소리가 나야 정상인데 이렇게 tv 소리와 라디오 소리만 나고 있으니 처량하긴 하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