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독서를 꾸준히 하니 생각이 깊어지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책
속에 길이 있다더니 정말 뭔가를 발견할 것만 같아 자꾸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작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책은 나에게 있어 선악과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자유의지를 시험하고자 에덴동산 중앙에 심어 두셨다던 그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다던 선악과.
오늘 날 책도 그런 것 같다.
책의 디자인이나 내용이 왜 그리도 설레고 탐스럽고 고혹적이기 까지 한 건지? 어떤 책은
정말 읽으면 금방이라도 지혜로워지고 똑똑해질 것만 같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해 눈이 밝아져 서로의 벗은
몸을 봤고, 또한 그로 인해 하나님은 남자에게는 일하는 수고로움을 여자에겐 해산의 고통을 더하셨다고
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과연 아담과 하와가 따 먹었다던 선악과는 나쁜 것이기만 한 것일까? 오히려 그 원죄가 누구에겐 하나님께 도전하는 영적 교만이기도 하겠지만, 누구에겐
오히려 온갖 고뇌와 몸부림으로 신께 더 가까이 가려는 매개물은 아니었을까?
책 역시도 그런
것 같다. 어떤 사람에겐 책이란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어떤 사람에겐 지적 교만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것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고백하건대, 그 시절 나는 책을 읽고 생각이 깊어지는 건 좋았지만
지적 교만이 자라고 있는 건 몰랐다.
아버지와 엄마는 툭하면 잘 싸웠다. 그때 언니가 벌써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니까 아버지와 엄마가 부부로 산지도 족히 15년쯤은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와 엄마가 언제부터 싸우고 살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만하면 지칠 때도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그분들의 싸움은 여간해서 잦아드는
법이 없었다.
남자와 여자는 금성과 화성만큼 서로 달라 싸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내가 조금이라도 일찍 알았더라면 사는 게 좀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을 알리 없던 나는
두 분이 싸우는 게 정말 싫었다. 용기가 있으면 가출이라도 해 보겠는데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건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으니 그럴 수는 없고 그렇다고 이 소란함과 냉전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고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였다.
솔직히 어렸을 땐 그리 논리적 이지가 못해 아버지와 엄마가 싸우는
게 나 때문이라는 근거 없는 죄책감에도 시달리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도 밝혔지만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몸이 안 좋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나는
그것이 아버지와 엄마를 끊임없이 불화하게 만들었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중에 내가 다시 건강을 회복했을
때도 아버지와 엄마의 싸움은 여전했다. 그러니까 나 때문도 아니었다.
두 분이 싸우면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씩 말도 안하고 지냈다. 그것이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얼마나 괴롭고 처량 맞아
보이는 지 두 분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니 이젠 나라도 그것을 깨닫게 해 드리는 수 밖에.
위로 언니도 있고, 오빠도
있지만 이런 일엔 나설 생각도 안 했고, 그 둘은 독서를 좋아하지 않아 별로 문리를 깨우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나마 문제의 심각성과 문리를 깨우치는 중인 내가 나서는 것이 날 것 같았다. 사람이 아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나의 앎이 뭔가 두 분의 평화에 기여할 수만 있다면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가화만사성이라고 집안이 평안해야 우리 4남매도 좀 기를 피고 학교도 다니지 않겠는가? 가뜩이나 싫어하는
학교를 이렇게 편치 않은 마음으로 다니고 있으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그래서 난
아버지께 ‘아버님전상서’를 썼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건, 나를 비롯한 우리 4남매는 워낙 아버지를 어려워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맨 정신으로 아버지 얼굴을 보며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엄마와 아버지의 싸움엔 두 분이 똑같이 잘못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엄마는 여자고 약한 존재가 아닌가?
또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가부장, 가부장 하는데 가정이 화목하냐 못하냐는 여자의 책임 보다는 남자에게 있다. 그래서
당연 그 상서는 아버지를 위한 것이었다.
그때 뭐라고 썼는지는
기억엔 없다. 아마도 엄마와 잘 지내달라는 부탁의 편지를 썼겠지. 그것도 16절지도 아닌 8절지 갱지에 빽빽이 썼는데, 그래도 확실히 기억이 나는 건 맨 마지막에 ‘저는 아버지를 존경합니다.’란 다소 낯간지러운 글 한 줄을 참가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편지를 드리고 하룬가 이틀 후에 아버지에게서 반응이 왔다.
그날 따라 아버진 맨 정신으론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건지 술이
다소 거나하게 취해서는 내 편지를 읽었고 감동해서 눈물까지 흘렸다고 했다. 순간 난 아, 이만하면 성공이구나 했다. 솔직히 나도 아버지에게 그렇게 해 보기는
처음이라 어떤 결과를 얻을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어려워만 하고 자랐으니 야단을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한테서 그런 반응을 얻으니 안도했고 흡족한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술을 안 드셨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난 원래부터 아버지가 술 취한 모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그만도 충분했다.
그런데 그때 또 아버지가 물었다. 너의 꿈이 뭐냐고. 난 아버지에게서 그런 질문을 받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있었다. 작가라고. 그러자 아버지는 “작가? 그렇구나. 작가. 그래. 작가 해. 넌 충분히 작가가 될 수 있어.” 하는 것이었다.
물론 아버지가 그런다고 내가 당장 작가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날
나는 조그마나마 작가가 뭐 하는 사람일지를 알 것만 같았다. 그렇다.
작가는 모름지기 이렇게 자기 부모라도 서로 싸우면 화해하게 만드는 즉 글로써 평화의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작가는 대의를 위해 위험을 무릅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기도 했다. 역시 작가는 멋있는 일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후에 아버지와 엄마가 더 이상 싸우지 않았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여전히 싸웠다. 그렇다면 그날 흘렸다던 아버지의 눈물은 뭐란 말인가?
세월이 흘러 나도
중학생이 되었다. 그때 또 한 번 ‘아버님전상서’를 올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아버지와 엄마의 결혼 생활이 거의 20년에 가까워지고 있던 무렵이었다.
그런데 난 머리가
나쁜 것 같긴 했다. 그렇게 한 번의 ‘아버님전상서’를 올리고 몇 년간 지켜 보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냥 포기하면 될 것을 뭐라고 그 같은 일을 또 했더란 말인가?
아마 모르긴
해도 그때 나는 작가의 꿈이 그 어느 때 보다 확고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그러지 않았나? 작가 하라고. 미래의 작가로써 작가도 고집이 있다는 것을 보여 드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뭐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쉬운 법이다.
그때도 뭐라고
썼는지는 역시 기억에 없다. 아버지께 드리는 첫 번째 편지엔 그래도 말미에 존경한다는 말이라도 썼지만
두 번째 편지엔 뭐라고 마무리를 했는지 기억에 없다. 어쨌든 짐작은 했겠지만 결과는 첫 번째와 달라
참패였다.
무엇보다 처음에
아버지는 감동의 눈물까지 흘렸다고 했는데 이번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게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차라리 아버지한테 야단을 맞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걱정이 되어
엄마와 상의를 했다. 결국 엄마와 관련이 있는 일이기도 하니 엄마가 무슨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엄마는 심리학자가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궁금하면 아버지께 직접 물어 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난 좀
어이가 없긴 했다. 아버지랑 한 이불 덮고 산 세월이 몇 년인데 그렇게 남 얘기하듯 하는 걸까? 좀 믿을만한 정보 좀 흘려주면 안 되나? 내가 이렇게 엄마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또 어찌
생각해 보면 그것이 최선인 것도 사실이다. 모르면 물어야지 별 수 있는가? 물론 거기엔 엄마의 약간의 코치가 있긴 했다.
그래서 나는 마침내
용기를 내 아버지를 내 방으로 모신 후 얼마 전 드렸던 글 읽으시고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때서야 기다렸다는 듯 네가 왜 엄마와 아버지 사이에 끼어 들어 참견이냐며 화를 버럭 내시는 것이었다.
순간 난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뒤통수를 얻어 맞는 느낌이었다. 내가 무슨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쩌면 그렇게
사람을 무안하게 하는 것인지 속이 상했다. 하지만 아버지 입장에서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잘 한다, 잘 한다 하면 진짜 잘하는 줄 착각하는 것이 또한 인간인지라
이러다 내가 어떻게 인생을 망칠지 모른다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도 생각이 짧았다. 물론
싸움은 좋은 것이 아니겠지만 인간이 살면서 어떻게 싸우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형제들과도 하루가 멀다고
싸우는데.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나의 집이 아니다. 엄마와 아버지의 집이다. 나야 엄마와 아버지의 자식이란 이유로 얹혀
사는 것 아닌가? 생각하기에 따라선 두 분의 집에서 두 분이 싸울 수도 있다는 걸 그땐 생각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어찌 보면 두 분의 권리 같은 것 일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은 싸움을 통해 관계가 파괴되기도 하지만 다듬어지기도 한다는 걸 그때 난 미쳐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뭐가 그리 잘났다고 아버지를 훈계하려 했던 걸까?
어쨌거나 그러면서 아버지는 앞으로 엄마와 싸우던 말던 참견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나는 무슨 자존심인지 성경 말씀을 들이대며 성경에 보면 해 질 때까지 화를 품고 있지 말라고 했는데 도대체 며칠째냐고 따졌다.
그때는 아버지도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던 때이기도 했기 때문에 나는 성경을 들이대며 내 행동의 정당성을 꽤나 내세우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성경이 그러라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나도 애초에 아버지를 그런 식으로 궁지에 몰아 넣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창피하기도 하고, 뭔가 빠져나갈 구멍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홧김에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러자 아버진 엄마와 화해하는 것도 나고, 싸우는 것도 나니 더 이상 참견하지 말라고 하곤 내 방을 훅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부부 싸움이 이젠 부녀 싸움이 될 판이었다.
나는 분하고 속상한
마음에 훌쩍대고 울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괜히 부녀 간에 싸움을 부추긴 것 같아 미안했던지 뭘 그런
걸 가지고 우냐며 위로하는 척 했다. 나는 속에서, ‘쳇, 다 엄마 때문이야.’라고 하고 싶지만 말아버렸다.
아무튼 그래도
반쪽 짜리 성과는 있었던 걸까? 두 분은 얼마 못 가서 화해를 했다.
그렇게 두 분이 싸우다가도 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 싶게 화해할 걸 뭐 때문에 싸우는 건지?
또 모를
일이다. 그 화해 끝에 두 분 중 한 분이, 이제 자식 새끼
머리 커 놓으니까 내 집에서 싸움도 맘대로 못한다고 투덜대셨을지. 그랬다면 그건 아버지일 확률이 높고, 그러면 엄마는 맞장구라도 칠 요량으로 “그러게 말이예요. 어디서 족보에도 없는 자식이 나와 가지고……” 했을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난 그건 나의 영원한 선악과 책 때문이라고 말하리라.
하지만 나는 그
일을 두고두고 생각할 때 아버지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지만 그
물을 베고 안 베고도 역시 철저하게 두 사람의 몫인 것 같다. 그것은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다.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는 건 새만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나의
똑같은 행동에 아버지의 첫 번째 반응과 두 번째 반응이 서로 달랐던 것은 뭘까?
추측컨대, 첫 번째는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 4남매는 아버지를 어려워하면서 자랐다. 그래서 아버지와는 눈도 잘
마주치질 못했다. 아버지 역시도 이런 자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몰랐을 것이다. 그러다 내가 의외로 편지로 재롱 아닌 재롱을 부렸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을 것이다. 무엇 보다 그날 딸의 꿈이 뭔지를 알지 않았는가?
하지만 아버지의
두 번째 반응은 내가 그만큼 컸으니 당신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줄 아셨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같은 것을 가지고 투정이나 부렸으니 얼마나 섭섭하셨을까? 그런데 난 정말 그 알량한 몇 줄의 글 가지고 아버지를 또 한 번 감동시킬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대의명분 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 인간이해일 텐데 아버지를 이해하기엔 나는 아직도 너무 어렸던 것이다. 그러니 책 좀 읽고 뭐 좀 알 것 같다는 이 생각은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가?
그야말로 눈에 뵈는 것이 없었던 거겠지.
싸움도 관심이
있으니 할 수 있는 것일 게다. 사랑이 식어버린 사람이 서로 싸우는 것 봤나? 아버지와 엄마는
꼭 30년 사셨다. 그 삶을 볼 때 안 싸웠던 세월은 합해봐야
10년이나 될까? 그래도 두 분은 끝까지 가정을 지켰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그런데 나는 자식으로서 두 분께 무엇을 바랐던
걸까?
어쨌거나 난 그
후 아버지 말대로 더 이상 편지 같은 건 쓰지 않았다. 그리고 두 분이 싸우던 말던 더 이상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런데 언제였을까? 그때도 엄마와 아버지가 말 다툼을 했다. 하지만 이번엔 아버지도
늙는 것일까? 그렇게 싸워도 생전 우리 앞에선 엄마 험담을 하지 않던 아버지가 (엄마는 외출해서
집에 없었고)우리에게 고기를 구어 주면서 험담을 하는 것이었다. 순간 난 입맛이 떨어졌다. 이런 것도 집안이 화목해야 맛있는 거지
고기를 씹는 건지 고무를 씹는 건지 알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그러는 건 아버지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 마디의 볼멘 소리로 아버지 말을 막았다. 그러자
당신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지금에
와서 후회가 남는다. 그때 왜 난 아버지 말을 끝까지 들어 드리지 못했을까? 부부 싸움은 하면 좀 어떤가? 어차피 세상엔 화목한 가정 보단 그렇지
못한 가정이 더 많을 것이다.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불행할 거라고 어떻게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가?
누구는 가정을
군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무리를 이루고 있는 작은 섬. 평소
아무 일도 없을 땐 관심도 없다 무슨 일이 있으면 함께 뭉치고 힘이 되어주기도 하는. 거기에 화목이란
어떤 의미일까? 요즘 ‘…의 역습’ 또는 ‘…의 배신’이란
역설의 논리를 담은 책이 나오기도 하는데, 가정이 늘 화목해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강박 같은 것은 아닐까? 그 말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누구는 결혼을 찬란한 오해로 시작해서 처절한 이해로 끝나는 거라고 하지 않는가?
어쨌거나 그때
아버지는 외로웠을 것이다. 아무리 엄마와 오래 살았어도 다 이해 받을 수 없어서 여전히 싸우고 있는
당신이 헛헛했을 지도 모른다. 그것을 자식이 이제 웬만큼 컸으니 이해해 줄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아버지에게 편지를 쓸 줄 알았던 자식. 그래서
어찌 보면 당신을 가장 잘 이해해 줄 것만 같은 자식이 오히려 그러고 나오니 섭섭하고 어색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책은
많이 읽었다고 자랑할 것이 못 되는 것 같다. 인간을 이해하려는 마음 없이 1만 권의 독서를 했다고 자랑한들 뭐하겠는가? 작가의 꿈은 가져서
뭐하겠는가?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나의 이런 생각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엄마의 생존 전략에 휘말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엄마도 아버지와 싸우니 얼마나 속이 상했겠는가? 그러면 스트레스를 누구에게든 쏟아 놓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여자는 수다로 스트레스를 푼다지 않는가? 물론 엄마는 우리들에게 직접 대놓고는 안 하더라도 전화로나
누군가 집에 놀러 오는 사람(친척이든 친한 사람이든)에게
그 동안 남편에게 받은 압박과 설움을 쏟아 놓는 것이다. 물론 그럴 때 그 대상이 남자일 리는 없다. 아이는 어른의 대화에 낄 수 없다는 불문율이 있다고 해도 오다 가다 이것을 들을 수 밖에 없을 것이고, 듣고만 있어도 여자는 꽤 불행한 존재라고 알게 모르게 세뇌를 당하는 것이다.
더구나 나는 여자고, 가재는 게 편 아닌가? 그러니까
그때 나는 아버지에게 엄마를 변호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