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TV에서 '보통 사람들'을 해 주길래 보았다.

이 영화가 81년도 작이다. 엄청 오래된 영화다. 당시 어렴풋한 기억으론 로버트 레드포드가 제작자인지 감독으로 나서서 그해던가 그 이듬해 아카데미상에서 꽤 높은 주가를 올렸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그때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 상륙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공교롭게도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실로 24년만에 영화를 봤으니 운이 좋다고 해야할까? 옛날 영화 웬만해서 보기 쉽지 않던데...

꽤나 잘 만든 영화다.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과 가족의 모순을 잘도 그렸다.

큰 아들을 사고로 잃고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려는 엄마와 아버지. 형을 잃은 동생이자 막내 아들.

형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했던 콘래드는 자책에 몸을 떨어야했고, 자살미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아직도 그 충격과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해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했고 그 때문에 학교에선 약간의 부적응 상태면서 친구들로부터 은근한 따돌림을 받는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끊임없는 연민과 자상함으로 카바하려고 하고 엄마는 자신의 마지막 남은 아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엄마 아들의 교차하는 시선이 탁월하다. 엄마는 아버지가 아들만 너무 감싸고 돈다고 생각하고, 아버지는 엄마가 아들에게 너무 무관심하고 때론 무자비하다고 생각한다. 아들은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아버지는 자신에게 너무나 지나치게 친절한 게 싫다.

아들은 꼬박 꼬박 정신과 상담을 받지만 왜 기분이 나아지지 않느냐고 화를낸다. 당연하지. 정신과 의사는 다른 과 의사와 달라서 다른 의사는 증세를 치료하고 호전시키지만, 정신과 의사는 밑져야 본전이라고 치료시켜 놔봤자 기껏 듣는 소리가 "그거 별거 아니네"라고 한다.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영화속 정신과 의사는 "그때 느낌이 어떠냐?"만을 연발한다. 환자의 상태 중 거의 대부분 감정이나 느낌을 중시하니까.  왜 그리도 느낌만을 물어대느냐고 짜증을 부려도 그것 때문에 그 물음을 중단할 수가 없다.

아버지는 꽤 오래도록 정신과 상담을 거부하지만 아들의 주치의를 찾아간다. 괴로운 발걸음이었겠지만 동시에 그건 희망적이기도 하다.

그 와중에 콘래드는 새로운 여자친구도 사귀고 수영도 그만두었으며, 지난 날 병원에서 함께 있었던 여자친구의 자살 소식도 듣는다. 그리고 마침내 의사에게 자신의 맨 밑바닥의 아픔을 토하고 치료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그러면서 한번도 엄마를 진심으로 안아주지 못했는데 어색하게나마 엄마도 안아주게되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같이 상담을 받아 보자고 설득하지만 어머니는 끝내 거절을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괴로운 심정을 토로했을 때 어머니는 짐을 싸서 집을 나가 버린다.

가족이 서로 진실해 진다는 건 정말로 어렵고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지상 최초의 가족, 아담과 하와 그리고 가인과 아벨. 그들이 완벽한 가족은 되지 못했다. 가인은 끊어오르는 질투 때문에 아벨을 죽였다. 가인의 입장에선 이유있는 항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인은 그 죄 때문에 살던 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됐다. 그것을 지켜 봐야했던 아담과 하와는 어땠을까? 둘 다 아벨의 죽음을 슬퍼했겠지만 그 때문에 아단은 가인을 미워했을지도 모르고, 하와는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는 가인에게 연민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들의 입장이 서로 반대였을지도 모르고.

이 영화가 세간의 관심을 모으자 그 이듬해였던가? 극작가 나연숙 씨가 이 영화의 이름을 차용해서 일일 드라마를 방영했고 공전의 히트를 쳤다. 그런데 그 드라마는 대가족이 함께 살고 하나 같이 잘 나가는 사람에 아무런 문제없이 갈등도 없이 화목하게 사는 가정으로 묘사했다.

그게 왜 그토록 인기가 있었는지는 지금도 미스테리다.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하나 같이 잘 나가는 사람들이라 저게 무슨 <보통 사람들>이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때 인기가 있었던 건 등장인물의 맛깔나는 연기 때문이었는지? 화목한 가정에 대한 동경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영화하고는 너무나 동떨어져있다.

문제없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겉으론 문제가 없어뵌다. 그것이 더 문제다. 그러나 그것을 잘못 쑤셔놓으면 벌집 쑤셔놓은 격이 될 수가 없어 가족끼리 서로 참고 산다. 그게 과연 얼마나 위험한 것일까?

나도 상담에 대해서 공부해 봐서 알지만 가족상담이 재대로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영화에서 어머니처럼 나는 문제가 없다고 하고, 받더라도 나중에 받겠다고 발뺌하고 미루는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가끔은 우리 가족도 아프지만 가족상담이란 걸 받았으면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느 저자는 이렇게 조언한다. '가족의 상처, 아파도 감추지 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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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5-05-09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한 우스운 이야기 하나,
오스카상 작품상 수상작은 영화관에서 보기.
그렇게 달랑 1편만 영화관에서 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영화관 발 끊었습니다.
그러나 DVD숍을 보니 대부분의 영화는 다 보는 셈이더군요.
보통사람들 오래전에 보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영화도 잘 만들었다는 기억이 새삼스럽군요.

stella.K 2005-05-09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잘났어요. 레드포드는...

2005-05-09 2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5-05-10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