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해도 벌받는다
유태영 지음 / 북치는마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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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 안 읽었으면 후회할 뻔했다. 

저자에겐 좀 실례가 될지 모르겠으나, 얼핏 저자의 연배가 나의 아버지나 작은 아버지뻘은 되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요즘 젊은 사람이 읽으면 어떨지 몰라도, 나는 약간의 향수도 느껴지면서 참 따뜻한 책이란 생각을 했다. 또 그만큼 글에서 삶의 연륜이 느껴져 좋았다. 예전에 수필을 읽는 맛은 이랬다. 요즘엔 하도 스마트, 스마트 떠들어대서일까? 요즘에 나오는 에세이들 역시 스마트해진 느낌이 든다. 뭐 그 자체로도 나쁘진 않지만 깊이는 덜하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이책을 읽으면서 또 지난 가을 시인 문정희님의 에세이를 읽으면서도 그렇고 과연 수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글쎄, 나이가 드니 소설 보단 수필이 자꾸만 좋아진다. 항창 감성이 풍부한 사춘기나 젊을 때는 수필은 잘 안 읽게 되는 것 같다. 어디 수필에 대해 뭐라 한정지어 놓은 게 있나? 그냥 편하게 마음 가는대로 쓰는 글. 뭐 그 정도가 아니겠는가? 그런 책은 왠지 밋밋하고,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하여 읽기가 싫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같은 문학 문야라고 해도 흉내내기 가장 좋은 분야가 수필은 아닐까? 사람의 마음이 또 그러해 만만하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시시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수필을 그렇게 생각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내가 그렇게 만만하다고 생각하여 쓴 수필(이랍시고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 웬만한 낙서 보다 못할 때가 많다. 상황에 대한 묘사는 어느 정도 어설프게나마 갖췄을지 모르겠지만 깊이는 없다. 그리고 그런 글들은 내심 수필을 만만하게 여기던 젊은 시절 또는 사춘기 때 쓴 글이 대부분이다(물론 많이 쓴 것도 아니지만). 

 

하지만 이책을 보거나, 앞서 말했던 문정희님의 수필을 읽으면 삶의 연륜이 느껴져서 감동을 할 때가 많았다. 그렇다. 수필은 거져 써 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편하게 쓸 수 있는 글이 수필이라고 해도 삶의 향기가 베어있지 않으면 쓰지 못할 분야가 수필이라고 생각한다. 이책은 삶의 향기뿐만 아니라 작가가 문학 교수라서 그런지 문학적 족적을 종횡으로 엮기도 하고, 삶의 교훈도 내포하고 있어 마치 아버지나 선생님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이들면 누가 나에게 훈화하는 사람이 없어진다. 어릴 땐 그것을 드러내놓고 싫어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좋은 때임을 지나놓고 나면 깨닫게 되는데 그땐 이미 나이가 들만큼 들때라 돌이킬 수가 없다. 특히 책의 말미에 문학을 하려는 사람에게 온화하면서도 엄중히 써 놓은('문예 창작, 그 험로를 넘어') 부분을 읽으면 정말 가슴이 뭉클해질 정도였다. 물론 그런 말은 여태까지 어디선가 많이 듣던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저자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뉘라서 이런 말을 또 해 줄까 싶은 묘한 감동이 있다. 게다가 이책을 읽는 또 하나의 기쁨은, 나는 옛 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춘원 이광수나 김유정 작가의 이야기를 읽는 건 정말 이책을 읽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새롭게 알게된 '서음(書淫)'이란 단어의 이야기도 재밌고. 강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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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2-20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필 좋아하시면 김수미 할머니 수필도 읽어 보셔요. 참 아름답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