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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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마태우스님이 주최한 번개모임에 갔을 때, 난 참 묘한 경험을 했더랬다. 그것은 일상적인 나의 이름을 두고 온라인에서 쓰는 닉네임으로 불리워진 것이다. 이것은 나만이 경험한 것은 아니고, 거기 못였던 모든 서재인들이 본명으로는 누가 누군지 모르겠고, 온라인 상에서의 닉네임으로 불리워져야 누가 누군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나도 그랬지만, 오프 라인에서 조차 닉네임으로 불리워져야 한다는 그 사실이 익숙치 않아 서재인들 서로 어색해 하는 것이 역력했음을 엿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또 그것에 금방 익숙해져서 닉네임으로 서로를 불렀다. 아마도 알라딘에서 나의 본명이 불리워진다면 이것 또한 꽤 어색했을 것 같다.

이름이란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다들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회 또는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불리워지느냐에 따라 자신이 갖는 자아 정체감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비교적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가끔 정말 이런 이름이 존재할까 싶은 이름이나, 어떻게 저런 이름을...하는 혐오스러운 이름의 소유자를 볼 때, 나는 그의 부모가 어떠한 사람일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이름은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인데 어떻게 자식한테 그런 이름을 지어줄 수 있을까 놀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도, 아버지가 작가 고골리를 좋아하고 인도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이름을 바로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 한동안 고골리로 불리웠던 아들에 관한 이야기다. 아들은 고골리란 이름을 어렸을 땐 좋아해서 그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걸 좋아했지만 커서는 그 이름이 싫어 '니킬'이라는 본래의 인도식 이름을 부여 받는다. 하지만 그러면서 늘 그렇듯 미국 내에서의 이민족으로서 겪는 자아정체의 혼란을 작가 다름의 시선으로 밀도있게 그려나간다.

그런데 이 소설이 인도인이 쓴 인도 소설이냐라고 했을 때 인도 작가가 쓴 소설은 맞지만 인도 소설이라고는 역시 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중간 중간에 인도인의 풍습이나 주인공의 부모가 인도를 그리워 하는 건 보여지지만 작가는 역시 인도계 미국인인 것처럼, 지극히 미국풍이란 느낌을 내내 받았다.

미국 문학을 가리켜 '거리의 문학'이라고 누군가 말을 했는데, 역시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어찌보면 뿌리가 없어뵈고 또 어찌보면 그것 자체가 뿌리인지도 모르겠다. 모험과 활동성은 그려지지만 깊은 성찰의 의미는 그리 드러나지 않아 보인다.

나는 가끔 미국의 허리우드 영화와 미국 문학이 같아 보인다는 느낌을 배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미 영화화된 작품을 굳이 소설로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안든다. 결국 미국 소설은 참 영화적이란 생각이 든다.

미국 문학을 왜 거리의 문학이라고 했을까? 거리는 머물기 위해 나 있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어디론가 가야만 하는 것이다. 가다보면 미로를 경험하기도 하겠지. 미국인의 인생 또한 그러하리라. 미국 그것도 중심부라고하는 뉴욕이 최첨단 문화의 메카라는 것은 굳이 뉴욕을 가 보지 않아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름대로 이민족으로서 주류사회에 정착한 사람일지라도 그들은 자아 정체의 혼란을 겪는다.

현대 문학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성(性)인데,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과 그의 아내가 여러 사람과의 섹스를 하는 과정이 나온다. 심지어는 주인공 니킬의 아내 모슈미는 결혼해서도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해서 결국 결혼이 파경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현대 문학에서의 담론은 역시 자이 정체성의 혼란과 성인 것 같고,  이 작품 역시 그것을 굳이 비껴가지 않고 있다.  자아의 모호성이 성의 탐닉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이란 소설 제목에서 나는 나름대로 굉장한 의미를 담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하지만 뭔가 이름에 그리 값하지 못하고 미진한 아쉬움이 남는 소설인 것 같다.

인도 작가가 썼다고 해서 그나름의 독특함이 있을 줄 알았는데, 지극히 미국적이었다고 한다면, 작가는 그다지 소설적 모험을 즐겨하지 않던가, 아니면 떠나 온 인도를 잊고 있는 건 아닌가란 의구심도 가져본다.

그리고 이 만한 작품에 뉴욕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는 소설이란 수식어가 나로선 그다지 탐탁지가 않다. 이를테면 이 소설을 완독한지 얼마 안되는 나로선, '뉴요커들 별것 아니네' 이거나 내가 이런 풍의 소설을 그다지 즐겨하지 않던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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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11-08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축복받은 집 을 읽으면서 느꼈던 건 미국과 인도의 경계에 들어있는 작가의 모습이었어요. 미국 사회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열망도 보였지만, 이국땅에서 자신의 기원을 잃고 싶지 않은 이면이 아닐까 해요. 인도를 알리고 싶은 욕구도 있겠지요... 요즘엔 장편소설을 잘 읽지 않았어요. 나중에 읽어봐야겠네요. 추천합니다, 스텔라님...!

stella.K 2004-11-08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못 쓴 글인데...고마워요. 사실 리뷰 쓰고 반응 없으면 좀 민망하더라구요. 그래도 플레져님이 이 리뷰를 빛나게 해 주셨네요.

이 책 전에 판다님한테 싸게 산 거예요. 알라딘엔 참 좋은 분들 많아요. 그죠?^^

icaru 2004-12-30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자료를 찾아볼려고 검색했는데~~ 님의 훌륭한 리뷰가 있었네요~~!!

이 소설...인도판 '영원한 이방인'인가봐요.. 음~!

stella.K 2004-12-30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복순 언니, 이미 한참 전에 쓴 리뷰라 이젠 읽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님 같은 분이 계셔서 반갑군요. 근데 그리 잘 쓴 리뷰도 아닌데...작품은 그만 그만한 것 같아요. 물론 님이 읽으면 다른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