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판 '그랜드슬램' 달성… "독자와 함께 어디든 갈것"
입력 : 2004.10.04 17:57 31'
▲ 김영하는 “이 소설은 집필 초반부터 승부를 걸어도 될 것 같았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한영희기자 yhhan@chosun.com) | |
―수상을 많이 기대했었나?
“아내는 특히 ‘검은 꽃’으로 수상한 것을 기뻐했다. 동인문학상은 꼭 받고 싶은 상이었다. 하지만 올 들어 이미 두 개의 상을 받았기 때문에, 같은 학교에서 일하는 황지우 선생조차 ‘(문단의 관행상)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말해 줄 정도였다. 책을 낸 문학동네 편집위원들은 ‘심사위원들이 정말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친한 문인들도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고 기뻐해 주었다. 수상 소식을 들은 날, 이미 포기하고 아내와 신촌에서 저녁을 먹고 있다가 문학동네로 달려갔다.”
―‘스타덤’ 혹은 ‘그랜드슬램’이란 말을 우리 문단에서 들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왜 평단과 독자들이 당신 소설에 매료된다고 생각하는가?
“좀 멋쩍은 얘기지만, 나는 등단 때부터 ‘이런 것을 써도 되나’ 하는 얘기를 쓰자는 원칙을 세웠다. 그래서 우리 문학사에서 계보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신춘문예 응모작품(‘거울에 대한 명상’)부터 동반자살하는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충격요법이나 센세이셔널리즘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한 번도 안 써본 세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탐험을 즐기는 명랑한 모험가라고나 할까. 미국의 노벨상 수상작가인 토니 모리슨은 ‘자기 서가에 보이지 않는 종류의 책을 써라’고 했다.”
―당신에게 ‘검은 꽃’은 어떤 작품이었나?
“작가로서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이다. 묵직한 장편으로 승부를 내고 싶었고, 기존 문학의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 이 작품은 민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사상·관점·국경의 경계를 넓혔다. 소설을 읽은 한 멕시코 교민은 편지를 보내 ‘내가 이런 사람들의 후예인지는꿈에도 몰랐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얼마 전 멕시코를 다녀온 최승호 시인은 이 소설이 멕시코 교민 신문에 무단 연재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주었다.”
―이젠 무엇을 할 작정인가?
“올겨울 미국에 간다. 국립공원 투어를 해보고 싶다. 현재 계간지에 ‘빛의 제국’이란 장편을 연재 중이고, 언젠가는 햄릿풍의 궁정심리극, 그리고 SF소설도 쓸 예정이다. 교수가 되면 창작이 시들해진다는 통설도 깨고 싶다.”
―올해 등단 10년을 맞았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소설의 길에 들어설 때 ‘1년에 1만부씩 10년 동안 팔리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꿈을 얘기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낸 책 9권(산문집 3권 포함)을 합하면 한 해 1만부씩은 팔린다. 소수라도 열광적인 독자와 함께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상금은 어디에 쓰고 싶은가?
“제일 먼저 부모님 댁의 10년 넘은 TV를 바꿔드릴 생각이다.”
유한자 인간의 기품과 슬픔 뇌쇄적으로 그려
수상작 선정 이유서
김영하의 ‘검은 꽃’은 뇌쇄적인 작품이다. 가장 약한 나라의 가장 힘없는 사람들의 인생 경영을 이렇게 강렬하게 그린 작품은 일찍이 만나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작가가 이들의 고난을 처절하게만 그려 연민의 눈물을 쥐어 짜내는 감상주의에 빠지지도 않았고 주인공의 의지만으로 역경을 헤쳐 나가는 ‘영웅본색’식 모험담에 유혹당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검은 꽃’에서 가혹한 운명과 마주한 사람들은 그 운명에 맞서 싸울 힘 하나 없는 바로 그 처지로 자신들의 운명을 다스려 나가는데 그러한 과정 자체가 운명의 블랙홀 속으로 무참하게 흡입되어가는 형국을 이룬다. 그리하여 독자는 가장 비천한 사람에게서라도 사람답게 살고자 할 때는 어김없이 비쳐나는 고결한 기품과 유한자 인간의 어찌할 수 없는 패배가 자아내는 깊은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작가는 ‘동일시’와 ‘낯설게 하기’라는 모순된 기법을 하나로 융합시켜 나가는 가운데 정념의 ‘두 무한’을 인간 정신의 높이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처럼 세워 놓았다. 올해의 한국문학이 배출한 최고의 수작이라고 서슴없이 말해도 좋으리라.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