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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꽃이 아니다 - 세계사 속 여인들의 당당한 외침
신금자 지음 / 멘토프레스 / 2012년 2월
평점 :
이런 책은 언젠가 읽은 것도 같다. 요즘 같이 페미니즘이 왕성히 발달된 시대에 여자로서 이런 책 한권쯤 안 읽었다면 거짓말 아닌가? 뭐 꼭 그렇지 않더라도 단편적으로나마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클레오파트라나 엘리자베스 여왕, 마리앙트와네트 등의 이야기야 소설로 영화로 많이 만들어져 알고 있는 이야기 아닌가.
그래서일까 책의 초두 부분은 마치 역사를 다시 훑는 느낌이다. 그것도 여성사적인 관점에서. 하지만 피로 목욕을 했다던 바토리 백작부인(194p~)의 이야기는 확실히 엽기적이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뒤로 갈수록 현대에 가까운 여성이 나와 재미있게 읽혀진다. 솔직히 이름 정도만 알고 풍문으로만 아는 여성사의 인물에 관해 '아, 이랬었구나.' 새삼 깨닫는 것도 있어 흥미로웠다. 특히 독일의 여자 첩보원이었다는 마타하리는 이번에 확실히 알고 실소했다. 그녀를 몰랐을 땐 나름 똑똑하고 첩보원으로서의 역할을 잘한 줄 알았더니 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뭐 자신이 죽는지도 모르게 미소를 띄며 죽었다니 나름 행복한 죽음 아닌가?
그래도 내가 가장 흥미있게 읽은 건, 조르주 상드와 루 살로메, 보부아르와 오노 요코랄까? 특히 조르주 상드와 루 살로메는 그동안 비슷한 공통점이 있어 무의식 중에 거의 구분없이 동일인물처럼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당대 남성 지식인들이 기꺼이 사랑해 마지않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었을까? 약간은 부러웠다.
그런데 여기서 볼 수 있는 건, 봉건의 시대에 여자는 똑똑하면 안 된다는 건 남자들이 만들어 놓은 가치관이기도 한데 그것을 깨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남성 지식인은 그에 걸맞는 여성 지식인을 원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여자도 공부하길 원한다면 누구 핑계대지 말고 공부해야 한다. 남자들이 말하는 똑똑한 여자와 여자들이 생각하는 똑똑한 여자 좀 다른 것 같다. 전자의 여자는 부정적인 것으로 오만에 가득찬 여자를 두려워 해서 일테고, 후자는 남자와 동등한 역할과 지성을 원했을 것이다. 그것이 남성에 의해 봉쇄되었다고 생각하는 건 확실히 잘못된 생각 같다. 어차피 세상과 운명은 지배하는 사람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면에선) 가장 현명하고 이상적인 삶을 구가했던 건 커플은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아니었을까 싶다. 보부아르는 하다못해 요리하는 시간 조차도 할애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는가.
솔직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를 만드는 것도 행복이긴 하겠지만 합리적며 동반자적인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이 행위는 솔직히 예외로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요리를 해야한다는 강박을, 또 그 요리를 먹어줘야 한다는 이 강박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남녀평등이 이루어지는 거라고 말하면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것 때문에 스스로 부과한 잘못된 사고와 족쇄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 세기 전 여성만 하더라도 여성들이 경제활동의 주체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이건 거의 계약적이면서도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날의 세기는 역전이 추세이기도 해 남자들에게 음식을 해서 먹이는 걸 부담스러워 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사르트르는 한 세기 전의 사람으로써 미리 간파했을까? 또 모를일이지. 보부아르는 워낙에 똑똑했으니 잽이 안될 거라고 생각하고 그보단 덜 똑똑한 여인을 가까이두고 이 문제를 해결했을지.
아무튼 앞으로의 삶의 방식은 보부아르가 이미 구가했던 삶의 방식을 답습하거나 그것을 넘어설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모르긴 해도 다음 세기는 명절이 여성에 의해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냥 단오같이 24절기의 하나쯤으로 치부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그런데 오노 요코는 확실히 같은 여자가 봐도 그다지 좋다는 인상을 갖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동양 여자라고 곱지 않은 시선이었다고 하는데 왜 비틀즈가 해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안 먹어도 될 욕까지 더 먹었는가 말이다. 그것도 입 한 번 잘못 놀려서 말이다. 물론 그녀가 아니어도 비틀즈는 해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마치 여자 하나가 물을 흐려놓은 것처럼 되어버렸으니, 모르긴 해도 이 여자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한 짓이 뭔지 모를 것이다. 안다고 해도 인정하지도 않을 거고.
이 책은 나름 가독성은 있어 보인다. 현대적인 편집 감각도 있어 보이고, 더 관심을 가지라고 그 인물에 대한 역사적 배경 설명도 나름 꼼꼼했다. 이렇게 여성사의 개괄적 흐름을 대중적인 글쓰기로 시도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지만, 내용면에선 새롭다거나 그다지 깊이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이 썼으면서 어떻게 우리나라 여성 인물 한 명도 할애할 생각을 안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동양 여자로 측천무후와 서태후를 배치했는데 그것도 그냥 모양 좋으라고 끼워넣은 느낌이라 오히려 안 넣는니만 못한 것은 아닐까 아쉽다.
하지만 무엇보다 앞으로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이 책을 읽어야할 필요성을 있을까? 의문스럽다. 그냥 역사적 인물중의 하나로 보겠지. 그들이 왜 그런 삶을 살고, 당대 추앙 내지는 질시를 받았는지 후대는 잘 이해 못할 것 같다. 아마 그래서도 여성학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없어져야 할 학문이라고 규정하고 그토록 열심히 공부하며 여성의 권리신장에 몸바쳤나 보다. 아무튼 이렇게 평가는 후대의 몫일텐데 바로 이 평가가 이 책에서는 약하거나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 아쉽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