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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음악 순례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창비 / 2011년 11월
평점 :
고민스러웠다.
이책을 읽기는 벌써 며칠 전에 다 읽었는데, 과연 이책을 어떻게 알려야할지 막막한 느낌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나는 엉뚱하게도 어느 CF 광고에서 건강식품회사 사장님이 나와 자사의 제품을 알리기 위해, "좋은데, 참 좋은데 도무지 알리 방법이 없네."하며 탄식했던 그 장면이 생각이 났다. 딱 그 느낌이 내 느낌 같아 어떤 말로 표현을 해야할지 머리만 복잡하고 간지러웠다.
과연 이만큼 음악에 대해 탁월하고도 유려한 문체를 구사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그렇다고 그가 아예 음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또 그런가 보다 하겠다. 대학에서 법학을 가르치면서 호사가적 취미랄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사유가 깊다.
사실 클래식이 그렇듯 쉽게 그 속살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그는 고백하기를, 클래식 음악에 대해 반감이 많았다고 했다. 그것은 중산계급의 표식이요, 일본인의 표지며, 손에 넣을 수 없는 사치스러운 장난감 같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이 말에 백번 공감한다. 내가 클래식을 알게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사춘기가 일찍 찾아 온 관계로 모든 것이 시큰둥 했다. 그런데 내가 다니던 반이 서울 시내 초등학교 합주대회 출전 지정반이었다. 우리반은 이를 위해 수업이 끝나도 집에 가지도 못하고 늦게까지 남아 연습을 해야했고, 대회를 앞두고는 일요일 날에도 나와 연습을 해야했다. 우리가 연습한 건 요한 스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이었는데, 나 같은 귀차니스트가 그것을 견딘다는 게 좀 지겹긴 했지만, 음악의 멜로디가 이상하게도 내 뼈에 켜켜이 쌓이는 느낌이었다. 과연 클래식이 이런 것인가?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뭔가의 부딪힘이 있었다. 그것을 저자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걸어가는 유복해 보이는 여자아이를 보면 돌이라도 던져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케이스 속의 아름다운 악기를 잠시라도 만져보고 싶다, 무슨 소리가 날지 내 손으로 켜보고 싶다,......그런 애타는 동경을 주체할 수 없었다. 마치 신분이 다른 연인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오페라의 주인공처럼."(43~44p)
저자는 바이올린이었겠지만, 그때 나는 엉뚱하게도 아코디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합주인만큼 여러 파트가 나눠 완벽한 연주를 이루어내야 하는 것인데, 아코디온 파트는 그야말로 있는 집 아이들이나 할 수 있는 악기였다. 그게 그냥 볼 땐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꽤 신기하고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할 수도 없거니와, 있다손치더라도 구두쇠 아버지가 그렇게 비싼 악기를 사 줄리 만무했다. 내가 맡은 파트는 멜로디혼이었는데, 그것도 처음엔 아무 것도 안 맡고 견학만하고 있다가 그것은 독특하게도 한 손으로만 연주 할 수 있는 악기라 그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 나중에야 합류하게 되었다. 반 아이들 저마다 한 가지씩 악기를 맡아 연습에 참여하고 있는데 유독히 나만 아무 것도 안하고 멀뚱히 있자니 아이들도 나름 안타까웠나 보다. 담임 선생님도 딱히 나에게 권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뭐라도 하게되길 바랬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합류를 하고나니 선생님도, 아이들도 나름 만족하고 응원하는 눈치였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피아노를 잠깐 치고 그후 음악과는 인연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 어렸을 적 음악을 알면 얼마나 알았겠는가? 그냥 시켜주니까 하는 것뿐. 그리고 부모님은 이 어린 것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게 했다고 어깨에 잔뜩 힘을 넣고 있었고, 나는 놀러 온 친척이나 친지들 앞에서 죽기보다 싫은 피아노를 쳐야만 했다. 그처럼 부모님이 독재자처럼 보인 적도 없었다. 내가 원했던 것도 아닌데, 너는 남이 그렇게 원해도 할 수 없는 피아노를 치게 해 줬으니 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무언의 압력이 은근히 나를 눌렀다.평소에도 피아노를 사이에 두고 부모님과 나 사이의 신경전은 말도 못했다. 그리고 나는 꼭 의식했던 건 아니지만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사이에서 적지 않은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나중에 피아노를 안 치게되고, 못하게 되어버렸을 때 나는 차라리 자유로웠다(나는 어렸을 때 3년쯤 피아노를 쳤었고, 그후 오른손을 쓰지 못하게 되어 더 이상 피아노에 미련을 두지 않아도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반 아이들과 합주를 하다보니 음악이란 게 이런 것이었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깨침이 있었다. 그 합주엔 당연히 클래식 피아노도 전체를 받히고 있었는데, 그 피아노를 맡은 아이는 듣도 보도 못한 피아노 곡을 유창하게 연주하기도 했고, 우리나라 음악 교육의 메카라 불리우는 모음악 중학교를 입학하려고 시험을 준비중에도 있었다.
난 너무나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살았던 것이다. 그후 난 점점 더 알 수 없는 심연속으로 빠져들어 가끔 학교도 빠지고 하루종일 클래식 음악을 듣거나, 그때 왜 나는 좀 더 열심히 피아노를 치려고 하지 않았을까, 혼자 자책을 하곤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자책이 오래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앓을만큼은 앓았던 것 같다. 그렇게 그 시절 내가 음악에 가까이 간 경험은 행운이면서도 강렬한 경험이었다.
이렇게 사람들 저마다 음악에 대한 경험은 다르겠지만, 저자의 말에 누구든 동의할 것이다.
"음악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다. 한없는 청순과 고귀함, 그리고 바닥 모를 질투와 욕망을 동시에 지닌 존재, 이쪽의 이해를 거부하면서 끌어당기고는 다시 뿌리치고 농락해 마지않는 존재, "어디가 그렇게 좋다는 거지?" 하고 누가 물어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존재, 한마디로 불가해한 여성과 같은 존재, 그것이 음악이다."(20p)란 말에.
변명일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의 말에 나는 역으로 동의한다. 그렇다. 음악은 또 안 듣기 시작하면 안 들을 수 있다. 내가 음악으로부터 뿌리침을 당하고 농락 당하고 싶지 않아 사춘기 이후 나는 음악을 거의 듣지 않거나 들어도 아주 짧은 시간만 들었다. 나는 뭔가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할까봐 겁이나고 싫었다. 바로 음악이 내겐 그랬다. 음악. 그것이 주는 평안함, 안온함도 만만치 않지만 어쩐지 그것이 나를 점령해버릴까봐 경계하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확실히 남자는 남자 맞는가 보다.
입고 갈 옷이 없어서 잘츠부르크음악제에 가기를 주저하는 아내에게, 여성이란 정말 엉뚱한 일에 신경 쓰는 존재라며 어이없어 하니 말이다. 저자의 말대로 그것이 카라얀시대의 음악제 이미지가 각인됐기 때문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저자는 그저 어떠한 장소에 가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뭔가에 대해 예를 갖추길 바라는 것을 옷에서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고, 천성적으로 잘 차려 입어야 어딘가를 가도 갈 수 있는 사람일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여자를 모르면서 또 둘이 잘 사는 것을 보면 확실히 결혼이란 것이 음악보다 더 불가해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더구나 저자의 아내는 가수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직업상 얼마나 외모에 신경을 쓸지 짐작이 간다. 그것을 엉뚱한 일에 신경을 쓰는 존재라고 조소해 버리다니. 피식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렇게 외모에 관심이 없는 남자라면 나는 당장 고려해야할 존재란 생각이 든다. 뭐 나 역시 외모에 그다지 많이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쨌든 어쩌다가 하는 나의 어떤 변화에도 신경을 써 주지 않는다면 그런 남자에 평생을 바치고 싶지는 않다.
이책은 또 몇 개의 쳅터에 거쳐 음악의 도시라 불리는 빈을 취재하기도 하고 음악제를 소개도 한다. 또한 몇 명의 음악가를 집중 조명하기도 하는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무래도 작곡가 윤이상과 자신을 겹쳐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싶다. 무엇보다 둘 다 디아스포라고, 생의 여러 가지 아픔을 겪었다. 그러니 오죽이나 이심전심이었을까. 무엇보다 윤이상이 우리나라 정부의 무관심속에 고국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독일에서 외롭게 죽음 맞이한 것은 정말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오래 전에 봤던 영화 '아마데우스'는 알고 보면 감독이 꽤 사실에 근접하여 만든 것임을 이책을 보며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모짜르트의 사후 그의 시신이 거의 버려지다시피 여러 시신과 함께 묻혀진 것에 관해 나는 선듯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책을 읽으면서 그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고, 비록 수세기 전의 사람이긴 하지만 역시 안타까운 죽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뿐만 아니라 말러에 관해 쓴 것도 꽤 흥미롭다.
교수님 이시니 얼마나 바쁠까. 그런 중에도 알뜰살뜰하게 쓴 저자의 글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다. 그리고 그의 다른 책도 읽고 싶어졌다.
이 책은 만만치 않은 내공을 자랑하지만 동시에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어 읽기가 편안하고 좋다.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